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9
삼국지 : 미완의 군주 48화
원술군이 세운 막사들 사이로 거대한 이동식 막사가 우뚝 솟아 있었다. 화려
함으로 치장한 막사는 마치 금색 수를 놓은 산같이 보였다. 높은 단에 앉아
있는 원술은 단 아래의 신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조의 조카가 짐을 노리고 군을 일으켰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조조의 조카인 조승태가 감히 아군을 양주를 노리고 남
하하였다고 합니다.”
원술은 무릎을 탁 치면서 일어나 웃음을 지었다.
“하! 잘되었다! 저번의 수춘 전투로 나의 장수들이 원통함을 풀지 못하고 구
천을 떠돌 것이다. 이번 기회에 조조의 사촌을 포로로 잡아 수춘에서 목을 베
어 제(祭)를 지내야겠다. 이제야 내가 조조 놈에게 단장의 아픔을 알려 줄 수
있겠구나!”
“소신들이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행하겠나이다.”
원술에게 고개를 숙인 신하들이 동의를 표하였고, 원술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
며 말했다.
“원가의 사재를 털어 이렇게 군을 일으키니,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원가의
조상님들도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나의 장수들이여, 나의 신하들이여! 조조
의 조카를 시작으로 수춘을 되찾고, 다시금 천명을 되찾을 것이다!”
원술의 말에 신하들은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원술은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환관이 가절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환관은 단에서 내려와 크게 외쳤다.
“대장군은 나와 가절을 받으라!”
수춘 전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환자인 장훈은 성큼성큼 걸음을 걸어 단 앞
에 섰다. 원술은 그런 장훈을 보며 말했다.
“짐은 대장군에게 10보까지 허락한다.”
칼을 차고 있는 장훈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단 위로 올랐고, 원술의 10보 앞에
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원술은 그런 그를 보며 다시금 말했다.
“짐은 대장군에게 3보까지 허한다.”
원술의 말에 좌중이 웅성거렸으나, 그뿐이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장
훈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장훈은 혹여나 원술의 얼굴을 볼까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다시금 단을 올
랐다. 그러고 원술의 3보 앞에 서자, 원술이 말했다.
“대장군은 짐의 용안을 보라.”
그 말에 환관이 화들짝 놀라 이를 막으려 했으나, 원술은 손을 내밀어 그를
제지했다. 그러나 장훈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자, 원술은 인상
을 찌푸렸다.
“죄 많은 소신이 어찌 폐하의 용안을 뵐 수 있겠습니까?”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대장군은 몸을 세우고, 얼굴을 들어 짐을 보라.”
장훈이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자, 원술은 가절을 들고 그의 앞에 섰다.
“사지절(使持節)을 내려 모든 이들을 감독하게 함이 맞으나, 내 힘이 없어 그
러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게. 군을 헌납한 이들이 많아 통솔하기 위해서 그대
에게 많은 힘을 내려 주어야 하는데.”
“폐하, 소신이 잘 하겠습니다.”
원술의 눈에는 얼굴에 그어진 흉터가 보였다. 과거 원술과 유협질을 할 무렵
준수한 외모로 꽤 인기가 많던 장훈이었다. 하지만 입술부터 시작한 흉터는
장훈의 얼굴을 무섭게 만들었다. 누가 보면 훈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원술
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흉이 수춘에서 죽은 장수들의 얼굴들을 떠
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먼저 떠난 장수들의 생각에 원술은 가슴이 아려와 눈이 벌게진 상태로 가절을
들어 직접 장훈에게 건네주었다.
“부탁하네. 내 유협 시절을 아는 장수는 그대 하나 남았네. 부디 흠 부디 목
숨을 중히 여기게.”
장훈은 두 손으로 공손히 가절을 받아들었다. 차마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원
술의 모습에 수춘에서 죽은 친우들이 생각나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펑펑 흘
렸다. 이윽고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소신, 명을 받아 적들을 토벌하겠나이다.”
장훈이 가절을 받고 물러나자, 양홍이 조심스럽게 원술에게 고했다.
“폐하, 적군의 무장 중 하나인 창희라는 자가 감히 서주목을 칭한 조제의 통
치에 불만을 품고 귀순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사옵니다.”
원술은 눈물을 숨기고 다시 호탕한 웃음으로 양홍의 말에 답하였다.
“좋다! 좋다! 벌써 아군의 위엄에 조조의 세력들이 분열되고 있구나! 서주의
부민들이 가혹한 통치에 우리의 휘하에 든 것이 다 이유가 있구나! 좋다! 내
직접 보겠다. 장사는 준비토록 하라!”
“폐하의 명을 받자옵니다.”
전쟁에 필요한 자세한 일들이 나오자 원술은 이를 장훈에게 위임하고 자리에
서 물러났다. 장훈은 가절을 허리춤에 매고 회의를 주최하였다. 삼공으로 임
한 원가의 인물들은 원술과 같이 물러갔기 때문에 전장의 일을 주최하는 일은
장훈이 직접 담당해야 했다.
장훈은 수염을 쓸어 넘기며 양홍에게 물었다.
“창희라는 사람은 믿을 수 있겠는가?”
양홍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본시 도적의 출신으로 믿을 만한 인물은 못되옵니다. 태도도 무례하여 서주
목인 조제를 무시한 일로 편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를 거부하고 수하들과 같이
도망쳤다고 합니다.”
장훈은 어이가 없는 얼굴을 하며 양홍을 바라보았다.
“그런 자를 받아들이자고 폐하께 고한 것이오?”
양홍은 예를 표하며 말했다.
“감히 그런 자를 중용을 청하고자 폐하께 고한 것이 아닙니다. 조조의 조카가
그의 권위를 빌려 칼을 휘두르니, 그 패악이 작금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부
민이 조제의 패악을 피해 양주로 내려왔고, 덕분에 군을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 아직 떠나지 못하고 조제의 통치에 반기를 가진 이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장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군.”
“특히 서주의 거족인 진가는 세액이라는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수탈당했
다고 하니 분명 반감을 품고 있을 겁니다.”
장훈은 머릿속으로 의뭉스러운 진규의 모습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의뭉스러운 인물이 원술과 꽤 친하여 자주 중요한 일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러나 황제 등극에 대한 일 후에 연락이 끊겨 더는 친분을 논하기 어려워졌
는데, 이번 일로 진가를 포섭할 수 있다면 서주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진규가 황제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며 원술에게 부디 한의 충신으로 남
아 달라는 말을 했을 때, 원술이 실망하며 다시는 진규와 중요한 일에 대하여
논의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따랐어야 했는데··· 하긴, 폐하의 천심을 바꿀 수 있었겠는가.’
원술의 칭제는 협천자가 된 조조를 반대하는 세력을 모으기 위한 배수의 진이
었다. 원가의 힘을 과신하고, 동적이 세운 황제로 인해 한의 기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 인물들이 세운 짧은 계책이었다.
하지만 원가의 원로들도 원술 본인도 그 계책을 마음에 들어 했다. 물론, 그
결과는 도리어 원술 본인을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몰아넣었고, 작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연약하신 폐하께서 부디 끝까지 무사해야 할 텐데······.’
장훈은 계속되는 호재에도 한구석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였다. 혹여나 후일
자신이 사라진 자리에서의 원술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진가를 포섭할 이야기를 하며 장훈에게 고하고 있었으나,
딱히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차피 포섭과 같은 일은 자기 일은 아니
었기에 양홍이나 서소와 같은 이들이 해결할 일이었다.
“그쯤 해 둡시다. 어차피 군이야 사병들의 대다수이니, 부민들을 잘 다독이기
만 하면 될 일이 아니겠소? 그리고 남은 일은 삼 공분들과 따로 회를 열어 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만 회를 파하겠소.”
다른 이들이 예를 표하고 회를 나가려 하자, 장훈은 나지막이 양홍을 불러 세
웠다.
“양 장사는 남아 나와 따로 이야기합시다.”
다른 이들이 모두 거대한 막사를 떠나고 양홍과 장훈만 남았다. 장훈은 주변
을 돌아보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양 장사, 내 느낌이 별로 좋지 않소이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차분히 하나하나 호재가 쌓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호재가 칭제 전에도 있었소이다. 하나 결과는 어떠했소?”
양홍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또한 원가의 힘을 과신하고 한을 무시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장훈은 그런 양홍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내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려 하오.”
“무슨 일입니까?”
“혹여 이번 전투로 내가 횡사를 하게 된다면, 그대가 폐하를 모시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파천(播遷) 갈 것을 주창하시오. 하긴, 수춘도 잃은 마당에 파
천이랄 것도 없구려.”
양홍은 장훈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대장군이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패배를 논하다니요?”
그러나 장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군의 크기는 우리가 확실히 크기는 하나, 명령은 통일되지 않고 부민들은 자
신들의 병사를 믿고 원가의 부만 축내고 있소. 내 그런 자들이 앞장서서 공을
세우려 하는 것은 믿지 않소. 이번에 조제를 격파한다고 하여도, 뒤에는 유비
와 조조가 있소이다. 이러한 병사들을 가지고 그런 자들을 이길 것이라 장담
하지 못하오이다.”
양홍은 절망적인 눈으로 장훈을 바라보았다.
“대장군, 그럼 어찌하옵니까?”
“혹 진가가 포섭된다면 손책과 손을 잡아 강남에서 후일을 도모하고. 아니라
면 원소에게 의탁함이 맞을 것이오. 원가의 전통과 원가의 부가 아직 폐하의
손에 있으니, 원소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오.”
양홍은 장훈의 마지막을 이으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전국옥새 또한 폐하의 손에 있으니,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단지 그
후 폐하께서는······.”
“다른 것이 중요하겠소? 폐하의 목숨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요. 제아
무리 비굴하다 하더라도 말이요. 그리하여 끝끝내 살아남아 천명을 받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될 것이오.”
“예,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양홍이 예를 취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장훈은 무엇이 걸리는지 양홍을 잡고
말했다.
“혹··· 혹, 말이오. 폐하께서 참담한 일을 당하신다면, 태자전하만큼은 꼭 지
켜··· 아니, 어떻게든 원가의 핏줄은 꼭 지켜 주시길 바라오.”
양홍은 멍하니 장훈을 바라보다가 서글프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제가 그리 만들겠습니다.”
“부디 그러길 바라오.”
“대장군도 무운을 빌겠습니다.”
***
창희가 백기를 들고 원가의 막사에 도착하자, 양홍이 말을 타고 나와 직접 창
희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숫자가 적은 창희의 무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으
나,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물었다.
“반갑소이다. 혹시 이분들이 답니까?”
“뭐요? 설마 고순이나 장료 같은, 죽은 여포의 상장들 사이에서 이 정도밖에
못 빼 왔다며 타박하고 싶은 거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미친놈들 사이
에서 겨우 요리조리 피해서 나온 것인데. 나야 도망갈 거면 원소에게 도망가
는 게 내 안전에도 그렇고 대우도 이롭소. 내 별 거지 같은 이유로 벌을 내린
서주목의 멱을 따려고 온 것인데, 갈까? 엉?”
창희의 말에 양홍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단지 여러분을 위해 상을 내리고자 하시는 폐하의 의
지가 있어 혹여 더 있으시면 더 준비하려 했을 뿐입니다.”
“호오, 상이라?”
창희가 눈을 번뜩이자, 양홍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얼굴을 바로잡고 말했다.
“그 상에 관한 것은 직접 폐하께서 말씀하실 것이니, 빨리 움직이시죠. 폐하
께서 주연을 마련하였습니다.”
“호오, 술도 있소? 내 그 서주목 놈의 막사에는 술을 보기 어려우니, 술도 좀
먹어야겠소.”
‘이 미친 산적 놈이··· 항장(降將)이 되어 이리 온 놈이 뭐가 이렇게 당당하
단 말이냐?’
창희가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자, 그의 수하들이 껄껄 웃으며 시끌시끌해졌
다. 양홍은 속으로 마구 욕을 했으나, 창희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창희가 원가의 진형에 들어오자, 창희의 눈이 달라지면서 진형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한구석에서 좋은 옷을 입은 무리가 창희의 무리 옆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저, 저, 저! 네놈이 왜 여기 있단 말이냐!”
창희는 자신을 삿대질하는 사람을 스윽 바라보았다.
“뭡니까? 지금.”
양홍은 한숨을 쭉 뿜어내며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삿대질을 하는 이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큰 소리를 듣고 몰려온 인물들 사이로 고함을 지르
는 이가 나왔다.
“저놈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 내 원수와 같은 하늘에 있을 수 없다! 나를
죽이든지, 저놈을 죽여라!”
창희는 그 말을 꺼낸 이쪽으로 말을 몰아 그들의 앞에 서서 말했다.
“거참, 땍땍거리는 게 짜증이 나구먼? 거기 부유하신 양반들! 나 같은 놈이야
명령을 내리면 받드는 게 일인데, 어쩌라고! 나도 너희처럼 팽당해서 여기 왔
는데, 엉!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그러자 몇몇 인물들이 약간 화가 가라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
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친인을 그에게 읽은 인물들은 멈추지 않고 비난을
해 댔다.
양홍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운데 서서 그들을 바라만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본 창희는 한 번 웃음을 지어 보인 뒤, 허리춤의 거치도를 뽑아 들고 외쳤다.
“나와! 원수에게 원한을 갚고 싶으면 남자답게 직접 칼 들고 나오라고! 무리
속에서 손가락질하고 비난만 하지 말고 나오라고!”
그러자 그들 사이에서 무예가 좀 자신 있는 이가 창을 들고 나왔다.
“네놈이 내 동생을 죽였다고 들었다.”
그러자 창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죽였다는 거야, 아니면 안 죽였다는 거야?”
분노한 상대방이 칼을 뽑아 들고 달려오자, 창희는 가볍게 옆으로 피한 뒤 다
리를 걸었다. 그러자 그자의 몸이 기우뚱하며 넘어갔고, 곧바로 그의 목에 거
치도를 내리쳤다.
거치도가 동맥을 건드린 것인지, 피가 파아악 튀며 그 주변에 뿌려졌다. 피
묻은 창희의 모습은 흉신악살이 강림한 것 같았다.
“아, 잘못 쳤네! 으! 피가 옷까지 튀었네. 잘 안 닦이는데. 쯧.”
그러고는 거치도를 죽은 인물의 옷에 문지르며 군중을 향해 물었다.
“더 나올 사람 없나?”
흉신악살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앞으로 나올 수 있겠는가. 그냥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창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원은 다 정리된 것으로 생각하고 나가겠소. 엉! 다음부턴 좋게 봅시다.”
창희가 뒤를 돌자, 몇 인물이 그를 찌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때, 양홍이 소
리쳤다.
“위험!”
창희의 무리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몸을 돌린 창희는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