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497
497화
승태의 서신을 받은 조비는 순간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분노를 느꼈다. 화가 난 조비의 모습을 아는 오질은 한 발 물러나 이를 가져온 놈을 죽여야 한다며 소리쳤고, 주삭은 이미 칼을 뽑은 채 돌아다녔다.
조진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었다. 그럼에도 조비는 서를 버리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진림의 글을 보고 나서 불태우지 못하고 보관한 이유를 알겠구나.”
조비는 시문을 읽으면서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지만,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온 이를 죽이는 것보다 이를 누가 썼는지, 아니면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물어야 할 것이네.”
조비의 말에 주삭이 멈춰 서 칼을 집어넣었고, 오질 역시 조용해졌다.
“자단, 어찌할 생각인가?”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패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전투입니다. 하북에서야 모르겠지만, 청주의 지리도 익숙하지 않은데 송국의 병사들과 대적하다가 위험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조비는 전혀 내키지 않는 듯 불만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번만한 기회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승태의 군세가 지금 요하의 공손씨들도 신경 써야 하니 더욱 좋은 시기이지요. 하나 달콤한 향기가 난다고 하여 그 모든 것을 먹으려 든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위험한 상황이다… 그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본래 계획은 임치를 점령하고, 하북 일대에 뻗은 송의 영향력을 뿌리 뽑는 것이었습니다. 작금의 상황은 그 선을 넘어 청주를 장악하고자 하시니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국의 움직임에 송왕까지 직접 움직였으니 그만 돌아가는 것이…….”
“나보고 작은 소가 되라는 것인가?”
조진은 시를 기억하지 못하여 무슨 어리둥절한 표현을 하는 것이지라는 얼굴을 보였다. 조비는 인상을 찌푸리는 조진을 보고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진을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조진을 물린다면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마땅하지 않았다.
자신 가까이에서 군을 이끌 인물들이야 많지만,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는 다른 법이었으니까. 조진이야 끝까지 자신을 지키며 송나라와 싸워 왔으니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친족들마저 모조리 배신한 이때,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조비는 손을 내리고 이내 한숨을 내쉬며 조진을 바라보았다.
“방법을 한 번 찾아내 보게. 정 안된다고 하면 그대의 뜻을 따르겠네.”
조진은 예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나갔고, 조비는 약간 숨을 가쁘게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오질과 주삭은 조진을 욕하며 그의 무능을 크게 욕하였지만, 조비에게는 그들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때의 복수를 하질 못하였는데 이렇게 도망가야 한단 말인가?”
조비는 과거 승태가 자신을 발로 차 당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끄러움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것 때문에 혈족들이 하나둘씩 배신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분명 간악한 그자의 입이 동생들을 데려갔을 것이다. 형님을 데려갔듯이 말이다.’
조비는 입술을 씰룩이며 이를 갈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도에 불을 놓아 모조리 태우라 전하라.”
이미 황폐화된 황도에 불을 놓으라는 조비의 말에 오질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사옵니다. 황도만 불태우면…….”
“모조리 불태워 밖에서도 보이게 만들도록. 조제가 못 보고 지나치면 아니 되니 말이야.”
주삭은 갑자기 일어나 조비에게 좋다고 연신 외쳤다.
“저들을 임치에 끌어들이는 것입니까? 함정을 파고 저들을 모조리 끌어들이면, 쉬이 상대할 수 있을 것이고, 저들이 설혹 이긴다고 한들 황도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황도가 불타는 것을 본 이들은 조제의 휘하에 있다고 한들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 터이니 참으로 기기묘묘한 계책이옵니다!”
“기기묘묘한 계략이 따로 있겠는가? 적들이 원하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신산의 작전 아니겠는가. 적들이 하기 싫은 일은 반드시 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지.”
“지당한 말이옵니다.”
“그럼 조 장군에게 전투 준비를 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진이 군을 담당하고 있으니…….”
“아니네. 적을 속이기 전에 아군도 속여야 하지.”
조비의 말에 오질과 주삭은 마치 자신들은 인정받았다는 듯 기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는데, 조비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로 저들을 한꺼번에 털어 내야겠어. 아부를 듣는 것은 즐거우나, 영 도움이 안 된단 말이야.’
자신의 악행을 대신 이루게 하여 저들에게 비난을 돌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조비는 이번 출진에 주삭과 오질을 처리할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포도를 입에 넣었다.
“저놈들과 함께 조제도 함께 스러지면 좋겠지만…….”
조비도 알고는 있었다. 이런 수법으로 송왕이라는 인간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방금 한 말처럼 임치를 불태워 황제가 승태와 함께하거나 임치를 다시 올리기 위해 고생을 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동시에 저들에게 죄를 씌워 죽이거나 병사들에게 죽어도 참으로 잘된 일이지. 내 책임은 아닐 테니 말이야.”
조비는 잠시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아버지가 조제를 처리하려던 때 했던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을 소자가 이루어 드릴 것입니다.”
* * *
조진은 밖으로 나가는 도중 빠르게 움직이는 오질과 주삭을 바라보았다. 저 둘이 아주 친밀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은 꽤 오랜만이었다.
“나쁜 일을 할 때만 저리 움직이는 이들인데…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 것인가?”
“알아보겠습니다.”
그의 부장이 조진에게 고하자 그는 손을 들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전하께서 군을 물리기로 한 상황이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큰일은 아닐 것이다. 퇴각하는데 할 일이야 약탈 정도밖에 더 하겠느냐? 아니면 주변의 예쁜 아낙이라도 봤나 보지.”
조진의 비꼼에 부장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사를 좀 붙이겠습니다. 혹 퇴각로에 불이라도 놓으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리하거라. 아무리 그래도 머리라는 것이 있는 이들인데, 설마 그런 짓이라도 하겠느냐?”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황궁을 불태우는 것으로 공을 보인다고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조진은 부장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무슨 지탄을 받으려고 말이더냐. 동탁이 그런 짓을 했다가 난리가 나지 않았느냐?”
* * *
임치에 불이 크게 나며 엄청난 세기로 옮겨붙었다. 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적이라도 하더라도, 잠깐이나마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씨가 거했던 황궁에 누가 불을 지피겠는가?
그러나 주삭과 오질이 시작한 화마는 쉽게 꺼지지 않고, 임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타올랐다. 그 연기는 태산으로 올라가 태산에 불이 번질 뻔하기도 하였다.
불타는 임치를 본 이들은 분기를 표하기도 하였으며, 누군가는 주저앉고 쓰러져 눈물을 흘렸고, 또 누군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마음에 그저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 유민은 임치의 황궁이 불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어찌… 어찌 이런단 말인가? 내가 그리 잘못했다는 것인가? 내가 마음을 잘못 먹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유민은 송왕을 징계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던 생각을 싹 지워 버리고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뛰어나갔다. 멀리 보이는 화마 때문인지 자신의 옥대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모후께서 이루신 것이다. 또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공 국상이 이룬 땅이었다. 내가 한 일은 저곳을 불태운 일뿐이로구나……. 모두가 홀로 일어나 입지를 세우라 하였는데, 내 입지만 세우려 하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던가?”
“폐하…….”
황제를 따르는 이들은 황제의 침통한 마음을 받아들이며 그저 침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것은 하늘이 나에게 명을 내려 주신 것이 아니겠느냐? 응당 화덕의 한나라가 화마를 맞았으니, 더는 한나라가 화덕을 얻을 수 없음을 알리는 것이리라.”
“폐하…….”
“화덕이 다하면 토덕이 올라오는 것 아니겠는가.”
“폐하, 어찌 그런 말을 하신단 말입니까? 한조를 지키는 제후들이 이렇게 많사옵니다. 지금 송왕 또한 폐하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군을 이끌고 왔고, 청주의 뭇 제후들도 오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폐하, 부디 마음을 가다듬고 굳건해지소서.”
“굳건해지라… 알았네, 명심하지. 굳건해질 것이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앞에 섰다.
“내가 피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고개를 들게.”
내관은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눈은 맑았고 또렷하였다.
“아니옵니다. 폐하께서는 피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네. 나는 피하는 것이 아니네. 그저 내가 그 자리에 맞지 않기에 이를 넘기고자 하는 것이지.”
“폐하…….”
황제가 마치 모든 것을 결심하듯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장패가 나타나 모든 것을 흐트러트렸다.
“폐하, 그러한 결정은 다른 시기에 하시지요.”
“장군!”
내관이 일어나 장패의 말을 막으려 했으나, 옆에 서 있는 장애가 그를 막았다.
“폐하, 폐하께서 하실 일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장패의 말에 황제는 이제 무엇인가 끊어지는 것 같아 장패에게 외쳤다.
“장군! 그것이 송의 장수가 황제를 대하는 모습인가? 이는 송왕이 나를 그리 본다고 생각해도 되겠는가? 내 칙서를 내려 의기를 가진 인물들이 송왕을 베도록 하면 되겠는가?”
장패는 황제의 당당한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폐하, 충신을 모조리 죽게 하고 싶으시다면 그리 말을 하십쇼.”
“장패!”
장패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패도를 황제 앞에 던졌다.
“베시지요! 폐하의 마음이 상하여 그리 분노하신다면 저를 베어 일을 끝내시지요.”
황제는 아무런 말을 못하고 그저 장패가 던진 칼을 바라보았다.
‘지금 장패를 베어 버리면 어찌 되겠는가?’
송왕이 서조를 저버리고 직접 동조를 세운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자신의 수하인 고순을 순욱이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순욱은 이제 비록 유능할지라도 충심을 버리고 권신이 되어 제 이의 동탁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장패를 벤다면, 지금 오간 대화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청사에 임치가 불타 분노하여 노인인 장패를 죽인 얼간이 황제로 기록할 것이다…….’
제아무리 모든 것을 놓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못할 일이었다.
“베지 못하신다면 그저 기다리소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다음에 그 짐을 전하께서 직접 벗겨 드릴 것입니다.”
황제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꾸욱 쥐었으나, 장패의 눈은 이미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임치를 향해 움직이는 군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