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승태의 모습은 얼핏 보아도 죽어가는 영웅과 같았다. 조창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혹여 송왕인 승태가 죽는다면 송은 어찌 되겠는가.
옳은 길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터였다. 그 모든 일의 시작이 자신이 승태를 지키지 못한 것에서 올 거라는 생각이 들자, 조창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하… 전하! 이대로는 아니 되옵니다!”
움직임이 없는 승태의 모습에 조창은 더더욱 크게 소리를 치며 달려갔다. 그러고는 승태의 앞에 엎드려 눈물을 보이고 곡을 하듯 울음을 터트렸고, 그 소리가 황궁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전하! 종제 조창이 왔습니다. 주군께서 어여뻐 하는 종제가 왔습니다! 소… 소인을…….”
승태는 자신의 앞에서 거의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조창을 바라보며 힘들게 눈을 떴다.
“창아, 종형 아직 안 죽었다. 네가 그리 크게 우니 내 머리가 다 울리는구나. 오히려 네 목소리에 놀라서 쓰러지겠다.”
승태의 말소리에 조창은 눈을 크게 뜨고는 위를 올려다보았고, 피범벅이 된 얼굴 사이로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전하아아아!”
우렁찬 조창의 외침에 승태는 다시 한번 머리가 울려 오는 것을 느꼈고, 이내 조창을 자신에게서 살짝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조창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내 진등이 도착해서야 조창은 승태에게서 멀어졌다. 진등이 군을 어찌했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마치 벽이라도 쳐진 것처럼 누구도 들어오지 못했다. 그제야 오롯이 진등과 승태, 그리고 조창 세 사람만 자리하게 되었다.
승태는 살짝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진등에게 말을 건네었다.
“내 현신의 말을 듣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무사하셨으면 되었습니다. 한데 상황이 꽤 생각지 않은 대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승태는 진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석상의 지지대에 기대었다.
“예상과는 좀 달랐소이다. 처음에는 버티는 정도로 끝내려고 했지. 아니면 성문을 열어 퇴각하든지 말이오. 한데 적들도 문제이고, 호병들도 문제라서 말이오……. 적군은 수가 우리보다는 확실히 많았지만 뭐 무기를 쓰지 못하더군. 하여 상대하다 보니 이리되었지요.”
“전하께서는 과거 온후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온후께서도 적 함정에 걸려들어… 으음. 어쨌든 그리하신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물러갈 구멍은 만들어 놓고 하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한데 이러한 일을 꾸민 이들은 잡았습니까?”
“구출한 이들과 적들이 섞여 구분할 시간이 없어, 모두를 모조리 죽여 묻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까지는 알 수는 없었습니다.”
승태는 진등의 말에 순간 싸늘함을 느꼈다. 그러나 딱히 꺼림칙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승태는 자신의 탓을 했다. 자신이 진등의 말을 들었으면, 느긋하게 이들을 이끌며 어찌 이용할지 생각했을 것이었다.
승태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진등이 먼저 선수 쳤다.
“소신이 판단을 잘못하였습니다.”
뜬금없이 진등이 죄를 청하자 승태는 손을 내저으려고 했으나, 진등이 고개를 저었다.
“전하, 본디 신하란 주인께서 가실 길을 먼저 나아가 등불을 밝히고 위험을 알리며, 주인께서 그 길을 피해 안전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인물입니다.”
“하니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고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등은 고개를 저었다.
“신하들이 보는 것은 그저 몇 촌의 위험일 뿐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안위를 배제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승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주군께서 바라는 방향이 아닌 그저 안전한 길 위를 걷기만 할 뿐이옵니다. 아니, 가만히 서 있기만 바라는 이들로 차 있을 것입니다.”
승태는 진등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미래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에 대한 선행적인 행동과 이미 판단된 인재들을 끌어 쓰는 모습은 아마 승태 자신을 거대한 선구안으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성인으로 보이기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승태가 현명하기보다는 그저 판단된 지식을 근거로 한 일이었다. 과거에는 그 거대한 선망을 이용하고 우쭐해 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와 멀어진 지금, 그와 같은 선망은 무거운 짐이자 자신을 쉬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족쇄와 같았다.
과거 진궁, 진규, 가후와 같은 믿을 수 있는 노신들이 있고, 또 노숙과 같이 심신을 내려놓고 논의할 수 있는 신하가 있을 때는 달랐다. 함께 같은 위치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지금은 대다수 신료가 자신의 입만 바라볼 뿐이었다.
“명군의 바로 후대에 암군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겠군요.”
아마 이러한 일이 지속한다면 왕의 권위는 높아지겠지만, 신료들의 판단이나 생각이 점점 무뎌질 것이고 새로운 왕의 움직임만 바라볼 것이었다.
문제는 후대의 왕들이 모두 현명하고 옳은 길로 나가면 좋겠지만 그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현상 유지라도 하면 다행일 것인데, 괜히 선왕의 업적에 짓눌려 이상한 짓이나 하다가 나라를 말아먹을 가능성이 태반이었다.
진등도 승태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승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저곳의 근육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듯하여 순간 비명을 지를 뻔하였지만, 앞에 보이는 둘 때문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신음 한번을 내뱉으며 진등을 보았다.
“그 멀리 있는 길이라는 것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길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먼 길을 알아도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신하들이 구하고 판단하는데, 먼 곳을 알고 있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리고 나 또한 이기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사람……. 그저 그 이기적인 방향이 조금 좋을 뿐이었지요.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청사에 밝게 빛나는… 뭐, 그런 좀 허황된 방향을 꿈꾸기도 했고.”
조창은 승태의 말에 약간 감동을 한 것처럼 바라보았고, 진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하지요. 하여 소신은 주군께서 크게 다친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승태는 자리에 앉아 진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내가 적들을 속이기 위해 죽음을 가장한 것과 지금 내가 그것을 행하는 것이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않습니까? 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송으로 가면 얼마나 혼란해질지는 생각하고 말한 계책입니까?”
“적들도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 수까지 쓰며 당장 조비를 잡아야 하는 겁니까?”
“단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조비를 꺾어 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옵니다.”
“굳이 이곳에서 꺾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승태는 조비 따위가 불쌍해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다. 지금 조비를 쓰러트린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위국의 영토일 텐데, 갑작스레 넓혀 봤자 혼란만 올 뿐이었다. 또한, 원래 역사와는 다르겠지만, 조비의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니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내가 온지 어언 삼십여 년이 되어 가니…….’
딱 조비가 죽을 시기가 지금이었다. 바뀐 세계에서는 죽음의 계기가 자신이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남정의 시기를 생각하여 보아도 대강 맞기는 하고.’
“전하, 굳이 이곳에서 꺾어야 하옵니다. 그것이 주군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곳이라……. 설마 진등 그대는 양위를 바라는 건가?”
승태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하나 진등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렇사옵니다.”
“신료들은 왕 정도로는 만족이 아니 되나 보군.”
조창은 자리에 앉아 수염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등의 마음을 그 역시 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창은 다시금 갑주를 정리하고 승태의 옆에 앉았다.
“형님… 아니, 전하. 이미 많은 이들이 굳이 한 황제를 앞세워야 하는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특히 공융이 상국의 자리에 올라 전횡을 저지르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이들도 있었고, 혹 그들이 전하께 칼을 들이밀지도 모른다는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조창의 말투는 방금 전 승태가 죽은 줄 알고 통곡하던 때와 비슷하게 절절했다.
“그러고 나서 결국 이러한 일이 일어나자 많은 이들이 절망했습니다. 한실에 충심을 보이는 이들이 남아 있긴 하나, 그들도 현실을 깨닫고 대강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저 유씨를 멸족시키지 않고 존속하고, 공부(公府)를 열 수만 있다면 딱히 말은 없을 것입니다.”
승태는 입맛을 다시며 진등을 바라보았다. 진등은 승태가 방금 조창이 이야기한 것들을 바라고 일부러 청주에 황실을 세웠음을 알았다. 그래서 크게 숨을 내뱉었다.
“주군께서 바라는 바가 아니셨습니까?”
“양위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양위를 바라지는 않았소. 창아의 말대로 많은 이들이 이미 인정하지 않았소? 내가 황좌에 앉는다고 한들 무엇이 바뀌겠소. 그저 황실을 차지하기 위해 이러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딱히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소.”
진등은 잠시 서 있다가 승태에게 다시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비를 잡아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군. 대체 어째서? 잡는다고 한들 조비를 죽일 수도 없을 터인데. 하북 또한 조씨 가문의 인물이 차지하기 위해서는 내 조비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소.”
승태가 일어나 허리를 두들기며 물었다.
“그래도 해야겠소?”
승태가 뒤를 돌아보며 진등을 바라보았다.
흠칫.
순간 승태는 놀랐다. 그간 진등이 보여 주었든 능글맞은 모습은 전혀 없었고, 무엇인가 복수심을 가진 듯한 모습이었다.
“서주의 학살 일 때문에 그런 것이오?”
“그것도 들어 있습니다.”
“그럼 조비를 사로잡은 뒤, 서주민들에게 머리를 박고 사죄하는 것으로 합시다.”
조창은 눈을 껌벅이며 승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멋쩍은 모습을 보였다. 조조의 핏줄이 자신들에게도 이어져 있는데, 조비가 서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인다면 자신들 또한 해야 하지 않을 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승태는 조창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걱정되느냐?”
조창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승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굴복하여 무릎을 꿇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나,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귀인이 된 이들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라면 누가 그것을 치욕이라 하겠느냐? 나는 응당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인데, 네가 어렵다면 빼주마.”
승태의 말에 조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조그맣게 물었다.
“전하께서… 무릎을 꿇으신단 말입니까?”
“하면? 이는 조가 모두가 짊어질 일이다. 내 서주의 많은 집이 동시에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절로 눈물이 지어지는데, 너는 어찌 아무런 생각이 없느냐?”
하기야 조창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서주 대학살이 있을 당시, 조창의 나이가 몇이겠는가? 그 일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여길 수 있도 있었다. 하나 조창이 이리 이름을 떨칠 수 있던 것이 조조의 권세와 힘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언제 한 번 같이 서주를 돌아보자꾸나. 그러하다면 네가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조창은 승태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했다.
“하면 소신을 조비를 잡는데, 선봉으로 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