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507
507화
제갈량이 내부의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 남중을 정벌하는 수를 두는 동안, 위는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진과 달리 위는 조비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시킨 형태였기 때문에 누군가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송을 상대로 조진과 조휴가 직접 나서 많은 양보를 하면서 성사시킨 거래로 겨우 위로 돌아온 조비. 그는 돌아온 후 며칠 드러누운 뒤 오랜만에 조회를 열었다. 조진과 조휴는 조비의 안위를 걱정하여 이를 반대하였으나, 조비는 그러한 걱정을 가볍게 여기며 그들의 말에 반박하고 있었다.
“전하, 잠시 휴식을 취하시며 사태를…….”
“하후가가 지금 과거와 같지 않다고 하지 않았는가? 고의 건재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속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는가?”
“전하께서 돌아왔으니 그러한 마음은 품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전하께서 평원공(조예)에게 조금 힘을 실어 주어 대리로…….”
조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지금 고를 몰아내려는 것인가?”
조진은 바로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전하! 어찌 그런 참람한 말씀을 고하신단 말입니까? 소신, 그러한 불충한 마음을 전혀 품고 있지 않사옵니다. 단지 대리청정은 쉬이 거둘 수도 있는 일이니…….”
“그만! 내 못들은 것으로 하겠네. 이번 패전으로 내외가 어수선할 것이니, 군을 이끌고 순방을 할 준비나 해 두게. 내 북벽을 돌아보고 원가와 한 번 이야기 할 것이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조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진을 슥 보며 말했다.
“조회에는 나오지 말고 빨리 준비해 두게.”
조진이 다시 한번 예를 표하며 크게 외쳤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조비가 그 자리를 떠나고 남은 조진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빈자리를 보았다. 그러나 그저 휑할 뿐이었다. 잠시 후, 내관들이 들어와 조진을 안내해 조비의 거처에서 내보냈다.
조정에 들어온 조비는 권좌에 앉아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패전을 했는데도 뭐가 잘났다고. 아휴, 정말 뻔뻔하군.”
“선왕께서는 나아가 승리만 하였으며, 적은 군으로도 언제나 승기를 잡았는데 대군을 이끌고도 정말… 변변치 않군.”
“선왕께서 다른 왕자께 왕의 자리를 넘기려 했던 것을 아는데 말이야.”
“고개를 저리 뻣뻣이 들고…….”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조비의 분노는 점차 커졌다.
그리고 그의 손이 권좌를 뜯어낼 것처럼 힘줄이 튀어 올랐으니, 조비는 분노가 자신의 한계점을 넘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치욕감이었을 터였다. 그 치욕감은 앞에 보이는 모든 인물을 의심하게 했다. 지금 들리는 게 그저 환청인지, 진짜 소리인지 말이다.
그리고 의심과 함께 환청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신하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가장 치욕적인 순간도 함께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조비의 눈에 자신이 이름이 적힌 돌에 절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주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비난과 고성, 그리고 울음소리가 들린 순간 조비는 괴성을 지르며 대전을 뒤흔들었다.
“그만!”
조비의 외침에 상소를 읽던 인물이 말을 멈추었다.
두려운 신료들의 눈빛. 그렇다, 이것이 자신에게 보여야 할 눈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귀에 환청이 들려왔다.
‘저놈을 죽여야 한다!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순간 진정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조비는 편두통이 크게 이는 것을 느꼈다.
“나를 죽인다고?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칼 칼을 가져와라!”
조비는 갑자기 권좌에서 내려와 호병의 칼을 빼앗아 주변에 겨누었다.
“누구더냐! 감히 누가! 누가 짐을 해하려 하였어!”
“저, 전하!”
조비의 모습에 신료들이 놀라 한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조비가 멀쩡할 때에도 행동을 고치라고 충언했던 인물을 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히 고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자를 죽여야겠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야 이 환청이 없어질 것이다! 그자가 이렇게 나를 만들었다! 그자를 죽이겠다…….”
조비는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신료들에게 다가갔다.
신료들은 두려워하며 몇 걸음을 움직였는데, 조비는 다시금 칼을 겨누었다.
“네놈들이구나. 그래, 네놈들이 그런 것이야. 하기야 충심이 없으니 칼 앞에서 두려움을 가진 것이겠지.”
조비는 무예를 익힌 인물이라는 것을 알리듯 빠르게 달려가 칼을 휘두르려 했으나, 이내 조홍의 칼이 그의 앞을 막았다.
너무나 쇠한 노인이 조비의 앞을 막은 것이었다. 조홍은 완벽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허연 머리가 그의 머리를 덮었으나, 이미 그 머리카락조차 듬성듬성해 두피가 보일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조홍의 허연 수염은 정리도 되지 않아 이리저리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조비는 놀란 눈으로 조홍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을 막다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조홍이 유일하기도 하였다. 이곳에 들어올 때 검을 들 수 있는 검리상전의 예를 가진 인물은 하후돈, 하후연과 조홍 정도였다. 하후돈과 하후연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으니, 위국에서 조비를 제외하고 대전에서 칼을 찰 수 있는 인물은 이제 조홍뿐이었다.
하나 조비는 종가의 어른이 이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조홍!”
“전하, 제가 그래도 종가의 어른이옵니다. 이름을 어찌 그리 함부로 부르신단 말입니까?”
조홍의 담담한 목소리는 마치 지금이 가벼운 상황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왕에게 칼을 겨눈 것은 반역이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검리상전은 칼을 차고 설 수 있는 명예이지, 결코 왕에게 칼을 겨눌 수 있는 권리는 아니었기에.
“반역이다! 역모가 일어났다!”
조홍은 고개를 저었다.
“역모가 아닙니다, 전하.”
“이놈!”
조홍은 그런 조비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송왕에게 당하여 부끄러운 것을 신하들의 목숨으로 갚게 하려고 하시니, 제가 나서 막은 것입니다.”
“역모다!”
조비를 지키는 호위병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검을 조홍에게 겨누었다.
“전하. 이 죽어 가는 노인의 검도 쳐 내지 못하시는데, 대체 어떤 분노가 솟아 소리를 질러 대신단 말입니까?”
“조홍!”
“소신, 나이가 이리 먹었어도 아직 귀가 그리 먹지는 않았습니다.”
“선주의 은덕을 입었는데 기군망상의 죄로써 은덕을 더럽히느냐!”
“전하, 명공께서는 제게 목숨값을 빚지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많은 양의 양초와 집안의 부를 가져가셨지요.”
“조홍!”
조홍은 조비의 칼을 쳐 내고는 품 안의 금패를 던졌다. 조비는 무슨 짓인가라는 생각과 분노에 휩싸여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조홍의 말에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선주의 위신에 기대어 멋대로 살아왔고, 검리상전의 명예도 얻었지. 어찌하여 그런 것을 주었는지 아는가? 저러한 대가 덕분이지. 명공께서는 빚을 진 것을 갚으려 하셨고, 나에 대한 모든 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주셨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명공의 유지를 어기고 내 목을 자를 것인가?”
조비는 순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홍의 금패를 바라볼 뿐이었다. 확실한 물건이었다.
분명 과거 조조가 금패를 가진 인물은 자신과 같이 대할 것이며, 죄인이라면 죄를 사하고 권력을 원한다면 관직을 내려 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가까운 친인이나 정말 큰 은혜를 얻은 인물에게 주었을 조조의 금패가 조홍의 품에서 나온 것이었다.
조비는 금패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조조의 얼굴을 보았다. 과거 승태에게 맞아 눈물을 흘리며 조조를 찾아갔지만, 결국 자신을 돕지 않은 아버지가 보이던 눈빛. 그것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네놈이 뭘 하겠느냐?’
그 눈길은 피하고 싶었다. 조비는 검을 내던지고 조홍을 바라보았다.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조홍은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다.
“약조는 지킬 생각이신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내관이 빠르게 금패를 들었고, 조비는 그것을 보고 손을 내저었다.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니 그대는 들어가 병상에나 누워 있게. 내가 죽이지 않아도 이미 죽을 때가 되었는데, 굳이 죽을 자리를 찾아오니 목숨을 이어 준 것뿐.”
하기야 조홍도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느끼니 이리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조홍처럼 제 몸을 극진히 아끼고, 조비에게 이리저리 돈을 빼앗기면서도 아첨을 하는 인물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였다.
그리고 조홍은 가문 같은 것보다는 일신의 영달과 조조의 과업이 더욱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제 곧 죽을 목숨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조홍이 빤히 조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고개를 돌렸다. 조비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 아무런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고, 조홍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다가 이내 주저앉았다. 솔직히 지금 힘을 모두 풀어버리면 굉장한 실례를 할 것 같아 그저 주저앉아 온 신경을 몸을 가다듬는 데 썼다.
잠시 후 신하들은 그런 조홍을 두고 물러나가기 시작하였고, 그들 사이에서 조홍의 아들 둘이 튀어나와 그를 도우며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조홍은 손을 내밀어 잠시 멈추었고, 신료들이 모두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돌아가자꾸나.”
약간 축축해진 옷 아래를 보며, 조홍의 아들들은 어찌하여 아버지가 잠시 시간을 두었는지 알았다. 그들은 조홍을 업으며 말했다.
“예, 아버님.”
부축한 조홍의 아들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조홍을 업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조홍이 아들들에게 물었다.
“아비가 밉지 않더냐?”
그럴 만하였다. 조홍이야 죽을 날이 가까웠으니 그냥 죽으면 될 일이지만, 그의 아들들에게는 가문이 무너지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주로 가면 될 일이지요. 그곳에도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조홍은 가볍게 이야기하는 그의 아들들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아비는 두고 말이냐?”
“아버지께서 저희를 생각지 않는데 저희도 저희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둥지가 무너졌으면 같은 곳에 둥지를 트는 법은 없습니다.”
“껄껄껄! 그래, 그렇지. 그러한 것이 맞는 일이지. 내 평생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 너희도 그럴 권리는 있는 법이지.”
“신료들이 너무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선주와 위를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자를 살려 준 것이 아닙니까?”
“그간의 일이 있지 않더냐?”
“방자한 이들을 가까이한 것 말입니까? 그것은 모두…….”
“그 입을 조심하거라. 그것은 내가 오만방자한 이들을 불러들인 것이고,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조홍의 엄포에 아무런 말을 못 하던 그때, 그의 옆에서 둘째가 물었다.
“전하께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설 것이다. 돈 한 번 빌려 드리지 않아서 큰 원한을 가지고 해를 입히려 하신 분이니 말이다. 죽은 뒤에 치욕을 주려 하실 수도 있는 일이지.”
“그냥 서주로 넘어가시지요. 다른 이들도…….”
“명공의 모든 것이 이곳에 있는데 내가 어딜 가느냐?”
조홍의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이곳에 묻힐 것이니, 너희는 내일 업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거라.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있어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전하의 일 때문에 그렇습니까?”
“조비가 나를 공격하는 것이 하루 이틀이 된 것도 아니고, 빈객들의 도움이 있으니 걱정은 없지만… 그다음이 문제이다.”
그들은 조홍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자 조홍이 말을 이었다.
“하후가가 곧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