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513
513화
승태는 제갈량의 움직임에 굉장히 놀랐다. 항상 신중하던 제갈량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담대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위연이 대장군의 자리에 앉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송에서 알아차린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진의 군세는 빠르게 움직였다. 전황은 금방 수춘으로 전달되었으나, 각 관을 넘는 시간은 모든 것이 계획된 것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동진을 시작한 제갈량은 거침없었다. 군을 일으킨 이유로 관우의 복수, 무너진 황조의 재건 등을 들었으며, 그 명분을 적은 깃발은 송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낙양 앞까지 당도하였다.
승태는 낙양을 점거하기 전에 제갈량을 막기 위해 움직여야 할지, 아니면 이를 그냥 관망해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조회에 나온 이들은 꽤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승태는 한 칸 정도 단상이 높은 곳에 올라 권좌에 앉았다. 이윽고 내관들의 예식이 끝나고, 승태가 서서를 부르자 그는 제갈량이 일으킨 일을 고하기 시작하였다.
서서가 전황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낙양에 제갈량의 군세가 모였다는 것을 알리자, 조회에 모인 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서로 이번 사항에 대하여 어찌해야 할지 논의하는 듯했다.
“고는 이번의 일을 대처하기 위해 낙양으로 구원병을 보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진의 행태를 보고 있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소.”
승태의 말에 신하들이 다시금 웅성거리다가 이내 재정을 담당하는 재정부장인 최림이 나와 예를 표하였다.
“그간 서조와는 굉장히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한데 그 와중에도 본국은 높은 자리에 올라, 나라와 나라의 분쟁을 다루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런 태평성대를 만들어 주신 전하께 찬사를 올리옵니다.”
‘서론이 긴 것으로 보아 분명 반대하겠군.’
승태의 예측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기야 이미 외왕내제 (外王內帝)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송국에서 황도와 황제가 어찌 되든지 무슨 상관이겠는가?
“전란이 오래 이어져 백성들은 피폐해졌습니다. 게다가 현재 양주의 남부와 교주에 군을 보내고 있으며, 형주와 예주에서는 진과의 군사적인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란을 직접 겪었던 예주와 연주는 그 황폐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최림은 한 번 숨을 가다듬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또한, 얼마 전 전란에 휩싸인 청주의 백성들까지 책임지게 되어 송국 내에서 소비되어야 할 양초가 많사옵니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곧 추수철입니다. 그러하니 징집병들을 충분히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강제로 병사를 모은다면 백성들이 고단함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
승태는 권좌 등받이에 기댄 채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소신이 생각건대 백성들의 원망을 송국이 질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이는 실로 옳지 못한 일이니, 전하께 오선 아국의 백성을 위해 병사들이 힘쓰게 하소서!”
최림의 말에 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였다. 사실 정말 최림의 말처럼 송국에 전혀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민심이 회의적일 것은 당연할 터. 심지어 아국을 위한 전장도 아니고, 서조를 위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만이 더욱 커질 것은 명약관화했다.
재정부가 보기에도 무역로를 여는 것도 아니고, 무역을 방해하는 이들을 벌하는 게 아니니 아무런 이득을 셈할 수 없었다. 군의 파견을 막는 것은 당연했다.
최림이 이익을 중심으로 군의 파견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자 좌중이 수긍하고 이 일을 그냥 넘기려는 그때, 젊은 관료 하나가 나와 예를 표하였다. 승태는 그 관리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제갈근이 놀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제갈가의 인물로 보였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의 돌발 행동에 꽤 놀라고 있었다.
“소신, 외교부 이주 관리부 부서를 맡은 제갈각 이옵니다.”
“다른 의견이 있는가? 있다면 이야기하여도 좋다.”
제갈각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고하였다.
“서조는 본시 아국에 구원이 많은 곳이옵니다. 한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한조가 무너져 버린다면, 분명 자신을 천하의 주인이라 칭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중 첫 번째는 분명 진이겠지요.”
“한조의 재건을 명분으로 삼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아마 황제의 자리에 유선이 오르지 않겠는가?”
“이는 한조의 천명이 끝났음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유씨라고는 하나, 유선의 아비인 유비는 그 촌수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옵니다. 제갈량이 낙양을 공격한 일은 과거 진의 소양왕이 주나라의 구정을 빼앗은 일과 비견될 만하옵니다. 제아무리 유선이 한조에 선양을 받는다고 한들, 이는 구정을 빼앗은 일처럼 비난받을 것이옵니다. 만일 관우의 복수를 천명하며 황제에게 죄를 묻고, 유선이 황좌에 오른다면…….”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일이 되겠군.”
“그렇사옵니다. 하여 소신들은 그들의 뒤를 노려 쫓아낸 뒤, 손견과 마찬가지로 불타 버린 낙양에 들어가 재건을 노리면 될 것입니다.”
제갈각은 자신의 이론을 주창하며 스스로 대단하다는 듯 자만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 승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몇 가지 맞는 말은 있으나 내가 보기에 단순히 그리될 것 같지 않군. 제갈량이 파장을 모르겠는가?”
제갈각은 눈을 껌벅이며 그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제갈근이 나서 말했다.
“전하의 총명함이 참으로 밝게 빛나옵니다. 소신이 생각하건대 진의 상국으로 오른 제갈량은 본시 침착하고, 체계적인 성격입니다. 하니 이번에 움직인 것은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에 이루어진 일일 터입니다. 그 증거로 군을 일으키면서 낙양으로 가는 관들이 모두 귀부하며 길을 열지 않았습니까? 그뿐 아니라 진의 침공을 인지한 관인들 또한 낙양을 버리고 떠난 이들이 많사옵니다.”
승태는 일전에 서서에게서 올라온 장계를 생각하였다. 낙양의 권족들이 연이 있는 이들을 따라 낙양을 떠나서 서주나 형주로 흘러들고 있다는 내용이 많았다. 당시 승태는 낙양에도 정보가 빠르게 흘러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갈근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갈량이 일부러 흘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도 황제나 최상위 관리들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지…….’
승태는 동소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승태는 이번 일을 알아차리자마자 동소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동소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족인들 몇 명만 보내었다. 자신은 낙양에 남아 일을 마무리 짓겠다고 하며 말이다.
동소를 말리지 못한 승태는 쉬이 그에게 무슨 말을 더 보내지 못하고, 그저 덤덤히 받아들였다. 동소도 제갈량이 올 때까지 어떠한 행동도 추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승태가 마음속에서 동소의 생각을 하는 그때, 제갈근은 더욱 말을 이어 나갔다.
“전하. 이미 낙양 안의 하급 관료들이 모두 사라져 제대로 된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죄인들이 옥사에서 굶어 죽는 일들이 허다하다고 합니다. 낙양은 이미 제갈량의 손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입니다. 가장 빠른 연주나 허의 군세를 움직인다고 하여도 이미 점령된 낙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낙양을 수복한다고 하였는데, 저들 또한 낙양을 쉬이 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들의 발언을 사뿐하게 지르밟은 제갈근이 제갈각을 보았다. 분기에 얼굴이 붉어진 제갈각의 모습에 제갈근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소신은 재정부에서 고한 바가 매우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군을 파견하는 일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옳지 않은 일이며, 실익 또한 없을 것이옵니다. 하나 군을 아예 보내지 않는 것 역시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되옵니다.”
“어찌하여 그렇던가?”
“아국은 적이라고 한들 나라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면 도움을 주고, 한조를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보루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망을 보여 준다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저희 송이 한조를 버린 게 아님을 천하에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동조를 세워 서조와 척을 졌으나, 한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입니다.”
한조에 대해 굉장히 호혜적인 양수의 말은 신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사실 그간 동조나 서조, 즉 한조에 의해 계속해서 간섭받아 좋지 않았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습을 취하여야 할 필요가 있겠소? 굳이 명분 하나 때문에 많은 물자를 사용하는 것이 불필요할 듯합니다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곳이 어느 정도나 되겠습니까? 수춘과 서주 일대… 아마 그 정도일 것입니다. 아직 많은 백성이 한조가 더욱 익숙하고 옳은 길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저희는 그런 백성들에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옳은 길이고, 우리가 진정한 제후였다고 말입니다.”
양수의 말에 대전이 웅성거리면서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았다.
제갈근과 최림 또한 자신들의 생각을 고치며 말했다.
“소신들이 높은 자리에 오래 있어 직접 백성을 만나지 못한 것이 길어, 단순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저 쉽게 생각한 소신들을 벌하여 주소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던가? 그러하면 군을 보내는 것은 확정되었고, 그 크기가 중요하겠군. 어차피 생색만 내는 길이니 말이오.”
“생색을 낸다고 하지만, 혹 제갈량이 기습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니 너무 적은 숫자는 안 될 것입니다.”
승태는 잠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러하다면 장수의 인선 또한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인데…….”
승태의 눈이 제갈근에게 닿았고, 제갈근은 약간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차피 진정 싸울 것도 아니니 제갈량과 논의를 할 수 있는 인물이 가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렇다면 친족이 직접 움직이는 게 어떻소. 제갈량도 한발 물러나지 않겠는가?”
“총명, 총명하십니다.”
“잘 부탁하겠네.”
“명을 받들겠나이다!”
* * *
제갈량은 멀리 보이는 불길들을 바라보며 부채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래서… 아직 송의 움직임은 없는가?”
“그렇사옵니다. 송의 병마들이 움직이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 아군을 대적하기 위함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제갈량은 잠시 부채를 휘휘 젓다 말했다.
“그렇다 하여도 적들의 움직임이 급작스러울 수 있으니 경계는 철저히 하도록 전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제갈량은 자리에 앉아 편지를 쓰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아들이 이제 곧 세상이 나온다는 생각에 기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부인의 산달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걱정스러움 또한 커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행할 일은 그 둘에게 그다지 좋은 그림은 아닐 것이었다. 혹여 자신 때문에 아들의 앞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일었다.
“벌써 앞날이 걱정되니, 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