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53
삼국지 : 미완의 군주 52화
장훈은 저 멀리 원술의 거대한 막사가 불타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피를 토한
채 멍한 표정의 장훈에게 많은 병사가 몰려왔다.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장훈
은 칼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 말했다.
“돌아가야 한다. 주군을··· 아니, 폐하를 지켜야 한다.”
그러자 부장 중 하나가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장군, 제 등에 타십시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장훈은 그의 어깨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자네가 말도 아닌데, 어찌 저 먼 거리를 나를 업고 가겠는가? 후방으로 가서
기병들과 합류하여 후퇴하게”
“대장군!”
“누군가는 앞을 지켜야 후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눈물을 흘리는 부장들이 장훈을 붙잡았으나, 그는 각혈했음에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부장들을 양손에 들어 뒤로 던졌다.
“가게. 운이 좋으면 그대들의 뒤를 따라 주군을 모시러 가지.”
결국 부장들은 예를 취한 뒤, 눈물을 흘리며 몇 보병들과 함께 빠르게 원술의
군영으로 달려 나갔다.
장훈은 검을 꺼낸 뒤, 주변의 병사들에게 물었다.
“도망가고 싶으면 지금이 기회다.”
그러자 병사들은 칼에 진흙을 떼어 내며 말했다.
“폐하가 아니면 저희 같은 패전노병(敗戰老兵)을 받아 주는 곳도 없습니다.”
장훈은 굳은 얼굴로 전투를 준비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로군.”
반면, 유협들과 호족의 호위병들은 상황이 이상한 것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
었다.
“이런 빌어먹을······.”
마지막까지 싸우려는 상황이었지만, 원술이 무너진다면 굳이 자신들이 목숨까
지 걸며 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전 때문에 싸운 것이지, 의리나 충
성 따위는 없었다.
고순은 그런 그들을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칼을 거꾸로 들고 저들에게 달려가면 목숨은 물론이고, 도망갈 수 있게
해 주겠다. 어차피 서주에서 살지는 못할 것이니, 강동으로 향하는 것도 나쁘
지 않을 것이다.”
고순의 말에 결국 그들은 칼을 거꾸로 들고 원술군에게 하나둘 달려들기 시작
했다.
한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진궁의 앞에 달려온 전령이 예를 취하였다.
“무슨 일이냐?”
“고 장군께서 유협의 무리를 선동하여 서로 충돌하게 했으니, 후에 해야 할
일을 알려 달라고 하십니다.”
진궁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서로를 죽이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될 것 같군. 고 도독에게 원하는
바대로 하면 될 것이라 전하게. 어차피 목적은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던가?
장훈의 병력을 잡아 두는 목적을 다했으니 최대한 패해가 없는 선에서 공을
세우면 될 일이지. 그런데 저렇게 많이 자리를 지킬 줄은 몰랐군. 원술을 잡
으면 좋겠지만, 글쎄··· 내 보기에는 아직 원술이 인망을 잃지 않은 것 같으
니 힘들 것 같군.”
***
창희의 도움으로 쉽게 원술의 진형으로 들어온 장료의 관서의 기병들은 말 그
대로 내부를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삼백의 철기와 창희의 무리는 불
타오르는 원술의 막사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뱉고 있었다.
“원술이 막사에 없었다고?”
창희는 말 위에서 한숨을 내뱉는 장료를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창희의
덥수룩한 수염이 깔끔하게 일자로 잘려져 있는 것은 덤이었다.
“만에 하나 안에 있었더라도 이렇게 불타고 있으면, 안에서 뛰쳐나왔을 것 같
지 않소?”
“겁을 집어먹고 아직 안에 있을 수도 있지.”
그러자 창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원술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것 같소. 병사들과 신하들이 먼저 나서 원술의 길
을 내었으니까 말이오.”
장료는 그렇게 말을 하는 창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술이 도망가는데도 놓아
주었다는 생각에 창희에게 물었다.
“창 도위, 어째서 원술을 잡지 않은 것인가?”
창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장료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 첫 번째 목표가 원술이 아닌데, 뭐 하러 잡겠소? 그리고 원술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무슨 한둘인 줄 아시오? 그 병사들만 해도 기천은 될 텐데, 열 명
남짓한 우리 애들도 거기 들어가 원술을 자으라는 것은 자살하라는 것과 뭐가
다르겠소? 거기다 장 장군도 나하고 부하들 덕에 쉽게 들어온 거 아니오? 아
니었으면 저 미친 듯이 높은 나무 벽을 넘어올 수나 있었겠소?”
장료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창희
에게 말을 꺼내었다.
“창 도위가 돕지 않았어도 들어올 수는 있었을 것이네. 시간이 더 오래 걸렸
을 뿐이겠지만.”
창희는 그런 장료를 빤히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련하시려고. 그 훌륭한 무예로 벽도 타고, 병사들도 쓸어버렸을 거야 엉?’
장료는 턱을 긁으며 물었다.
“그래서 원술이 움직인 곳이 어디라고 했소?”
“남쪽이오.”
“쫓아가면 잡을 수 있으려나?”
“장담은 못 하지만, 그쪽도 말을 타고 갔으니 무거운 철갑기로는 잡지 못할
것 같소만.”
장료는 고개를 끄덕이고 짧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큰 공을 세우려고 했는데, 정작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군. 빌어먹
을··· 그렇게 장담을 했는데,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어.”
조운의 모습이 떠오른 장료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희미한 진동이
말을 타고 장료의 하반신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장료는 말고삐를 돌렸다.
“누군가 말을 몰고 왔군. 병사들하고 같이 말이야. 히야!”
“장 장군, 어디 가십니까?”
장료가 진동의 근원지를 향해 턱을 까딱이자, 병사가 그 턱을 따라 멀리서 보
이는 먼지구름이 보였다.
장료가 철기와 기병 몇을 데리고 갔을 때, 장훈의 깃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숫자도 꽤 많았기에 장료가 이끄는 기병들이 작게만 보였
다. 그러나 장료는 그들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착!”
장료의 말에 기병들이 창을 들어 올리면서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겨누었다.
“거!”
말들이 한 발, 한 발 천천히 움직였고, 말들이 흥분을 시작하며 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전마들이 언제 뛰어드냐며 주인에게 재촉하는 것처럼
들렸다.
“격!”
장료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봉의 철기와 그를 따르는 기병들이 달리기 시작했
다. 적병들이 기병들을 막기 위해 창을 들어 올려 그들을 겨누었다. 그러나
전투에 흥분된 말들은 날카로운 창을 앞발로 쳐냈고, 가까스로 말의 피부에
닿은 창은 갑주에 튕겨 나가며 부러졌다.
그런 앞줄의 창병들을 짓밟으면서 철기병들이 들어가자, 그 뒤를 따라 경기병
들이 정리하듯 창과 도로 무너진 창병들의 목숨을 주워 담았다.
이내 장료는 극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안문의 장문원이 여기 있으니 누구든 와 보거라!”
장료의 기행에도 감히 그의 기세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아니, 막으
러 달려 나왔더라도 순식간에 말에서 떨어지거나 목이 베였다.
어느덧 흥건히 피 칠갑을 한 장료는 웃으면서 외쳤다.
“그래! 이런 전투를 하려 했다고!”
그때, 멀리서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다시금 창을 잡
고 달려 나가려는 순간, 백마 수십 기로 이루어진 기병들을 보고 한숨을 내뱉
었다.
“젠장, 벌써 본대가 오고 있나 보네. 빨리 끝장을 내야겠어.”
장료는 마치 장난감을 빼앗기는 아이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뒤에서 함진영과 백마의종이라 자칭하는 놈들이 달려오는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물음에도 기병들이 빤히 쳐다만 보고 있자, 장료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
고는 극으로 원술을 도우러 온 지원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두려움에 빠져 질질 짜는 놈들을 빼앗길 것이냐고 묻는 거다. 우리가
침을 발라 놓은 놈들인데, 뒤에 오는 놈들이 있으면 나누어 먹어야 해.”
그러자 철기 중 하나가 나와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이제 한 입 베어 먹었는데, 어떻게 남은
걸 주겠습니까? 우리가 다 먹어야지요.”
이에 장료가 웃으면서 극을 들어 올리자 말이 흥분한 듯 계속 프르릉거렸다.
이윽고 장료는 극으로 다시 적들을 가리켰다.
“장문원이 간다!”
장료가 먼저 달려가자, 그를 따라 기병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원술군의
병사들은 장료의 기세에 놀라 뒷걸음질 치거나 무기를 두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 장료는 마치 온몸에서 열기와 피를 흩뿌리는 괴
물로 보였다. 그들 중에 한 명이 장료를 가리키며 말했다.
“괴물이다! 괴물이 온다! 괴물이 오고 있다!”
장료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괴물 취급한 병사를 극으로 걸어 찢고, 달려 나가
며 말했다.
“이거 곤란한데? 괴물 취급이라니, 엄연히 이름이 있는데 말이야.”
장료가 조운의 등장에 급하게 자신의 무예를 뽐내며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을
때, 고순 또한 자신의 앞을 막던 병사의 목에 칼을 꼽았다가 빼며 장훈의 앞
에 섰다.
장훈은 서 있기도 힘든 모양인지 검을 지팡이 삼아 서 있었다. 유협들과의 싸
움을 격하게 치렀는지 갑주 곳곳에 구멍이 보였다. 고순이 보기에도 얼마 지
나지 않아 죽을 것처럼 보였기에 그도 칼을 검집에 넣고서 그의 앞에 섰다.
장훈은 쿨럭이며 물었다.
“크흠, 칼은 왜 집어넣는가? 검도 필요 없다는 것인가?”
고순은 그런 장훈의 말에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여 그냥 서 있었소. 거기다 솔직히 이 정도로 싸우게
만든 적에 대해 예우도 할 겸 말이오.”
“비참하군. 여포 휘하의 무명이 높은 고순과 한번 겨루어 볼 기회였는데 말이
야.”
고순은 그런 장훈의 말에 덤덤히 말했다.
“멀쩡했어도 열 합 정도밖에 안 됐을 것이오.”
“쿨럭··· 그런가? 내 눈이 침침하여 그러는데, 살아 있는 내 수하들이 있는가?”
“없소. 유협 놈들 몇은 살아 있는데 칼질은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고, 공을
따르는 병사들은 끝까지 싸우려 하여 완전히 끝을 냈소이다.”
장훈은 몸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지 검이 펄에 더 깊게 박혀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 못 했는지 장훈은 자세를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폐하께서는 잡혔는가?”
“원술이라면 아직 잡히지 않았소.”
“그렇군. 이제 누워도 되겠는가? 졸리는군. 혹여 목을 벨 것인가? 시신은 좀
온전하게 묻히고 싶은데 말이야.”
“어째서 말이오? 두렵소?”
장훈은 힘없이 웃음을 지으며 고순에게 말했다. 기침은 도리어 잦아들었지만,
마치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러다 보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죽을 사람이 무에 두렵겠는가? 후에 저승에서 폐하께서 놀라실 것 같아서 말
이야. 카흠, 폐하께서 맘이 여려서 나까지 몸이 온전치 않으면 많이 슬퍼하실
듯하니··· 흐음.”
고순은 얼이 빠진 이야기를 하는 장훈에게 한 발 더 다가가 물었다. 고순과
장훈의 거리는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어째서 그런 자를 끝까지 따르는 것이오?”
장훈은 그런 고순의 말에 답하지 않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심장
위를 주먹으로 살포시 치고 눈을 감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장훈의 신체가 고순의 품에 들어오자, 쓰게 입맛을 다신 고순은 그를 조심스
럽게 그 자리에 눕히고 시신에 검을 쥐여 주었다.
그때, 함진영 병사들이 달려와 고순에게 물었다.
“조 서주께서 오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거라고 직접 먹을 것을 직접 수레를
몰고 오셨는데, 어찌 전하면 되겠습니까?”
고순은 함진영 병사의 말에 웃음을 만면에 띠우며 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주공께서 직접 수레를 몰고 오셨는데, 이리 서 있을 수 있겠느냐? 어서 가자
꾸나.”
고순은 약간 빠른 걸음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음식과 술을 나누어 주는 승태가 보이자, 고순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져 거의
뛰는 모습이 되었다.
피와 개펄이 섞여 갑주에 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던 고순은 얼마 정도
가서 혹여 승태의 옷에 개펄이 튈까 조심하게 걷기 시작했다.
승태가 한껏 미소를 띠운 채 주먹밥처럼 생긴 음식과 술을 직접 주러 걸어오
자, 고순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진창이 많아 혹여 튈까 무섭습니다.”
승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직접 싸우신 고 도독만 할까요? 저야 이런 일밖에 하지 못하니 도리어 미안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술입니까?”
“광릉태수가 몰래 가져온 것을 털어서 가져온 것입니다. 제게 바친다는 헛소
리를 하길래 술은 싸운 이들이 먹어야 한다고 우겨서 가져왔습니다.”
고순은 그런 승태가 건넨 음식을 받으며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러자 승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했습니다. 제가 음식을 가져왔는데 못 했을까요?”
고순은 그 말에 주먹밥을 반으로 나누며 승태에게 건넸다.
“거짓말이 너무 티가 난다고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승태가 머리를 긁으며 고순이 준 주먹밥을 먹자, 고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장훈이 마지막 지던 웃음과 똑 닮은 웃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