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54
삼국지 : 미완의 군주 53화
원술은 아직 기천의 병사들을 이끌며 도망가다가 서구를 넘어 유수에 다다랐
다. 장사인 양홍은 진가의 서신을 기다린다고 하였으나 원술군 내의 어떠한
인물들도 진가가 완전히 패배한 원술를 지지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
었다.
“아니 된다! 아니 된다!”
원술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원술의 얼굴은 핏기가 싹 가셔 있었
다. 거기다 눈이 퀭하게 꺼져 있기까지 했다.
원술이 마차의 창문을 열고 밖을 보자, 수많은 병사가 힘든 얼굴로 원술의 마
차를 호위하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원술은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마차를 세웠다. 마차가 멈추자, 양홍이 말에서
내려 달려와 원술에게 예를 표했다.
“대장군은 어디 있는가?”
“오고 있을 겁니다. 전장에 남아 폐하를 위해 시간을 끈다고 하였으니, 금방
올 겁니다.”
“······그런가.”
원술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양홍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양홍은 약간 우물쭈물하다가 답을 꺼내었다.
“원소에게 가려고 합니다.”
“원본초라··· 참으로 질긴 인연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평생 나는 원
본초를 그렇게 경멸하고 미워하였네. 그의 가슴속에 가진 무자비한 분노에 나
는 그를 경계했고, 또 두려워했네. 그래서 그를 무너트리고 깎아내리기 위해
내 힘을 모두 사용했지. 그런 인물에게 내 안위를 부탁해야 한다니··· 하하.
쿨럭쿨럭.”
“폐하.”
“되었다. 인제 와서 무엇을 하겠다고, 그런 굴욕을 당하겠느냐?”
“폐하······.”
양홍은 원술을 설득하고자 말을 꺼냈으나 그는 말을 듣지도 않고 손을 까닥였다.
“쿨럭쿨럭··· 가까이 오게.”
양홍이 조심스럽게 원술에게 다가갔다.
“가족들과 가문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모두 무사하십니다. 호위와 장수들이 지키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원술은 웃음을 지으며 양홍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러한가? 그런데 내가 그들을 살리는 데 걸림돌이 될 것 같군.”
그 말에 양홍이 눈을 크게 떴고, 원술은 인자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내 마지막을 그대가 이루어 주게.”
“폐하, 아니 되옵니다. 대장군께서 제게······.”
그러나 원술은 인자한 미소로 양홍에게 물었다.
“나로 인하여 양주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나로 인하여 양주의 백
성들이 얼마나 많이 고통 받았는가? 나의 목숨 하나로 가족과 가문 양주의 백
성들을 구원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양 장사?”
양홍의 표정에 절망이 어렸지만, 원술은 장난기 있는 얼굴로 말할 뿐이었다.
“욕심 많고 잔인한 본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표문이나 작성해야겠네.”
양홍은 눈물을 흘리며 예를 취하고 말했다.
“먹과 붓, 비단을 대령하겠습니다.”
“비단까지야 필요하겠는가? 그냥 무명천이면 되네.”
이윽고 양홍이 물러가고, 원술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렇게 끝이 날 줄
은 몰랐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유능한 자들에게
일을 맡기면 모든 것이 잘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모두 죽은 뒤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욕망을 털어 버리고 나서야 탁하던 머리가 맑게 갠 것이다.
“본초야, 네 욕심에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네놈도 풍비박산이 나야 하지
않겠느냐?”
원술은 양홍이 들고 온 약과 붓, 먹, 그리고 무명천을 받아 들었다. 양홍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폐하, 더··· 더 원하시는 것이 없으시옵니까?”
원술은 약을 가리키며 물었다.
“약이 쓴가?”
상황에 맞지 않는 원술의 물음에 양홍은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말했다.
“석청(石淸)··· 석청을 구해오겠습니다.”
원술은 컵에 담긴 검은 약을 흔들며 말했다.
“많이 쓴가 보군.”
양홍은 예를 취하고 멀리 뛰어갔고, 원술은 붓을 들어 글을 써 내려갔다.
― 우제가(愚弟)가 형님께 몸을 의탁하기 전에 전하옵니다. 한나라가 천하를
잃은 지 오래되어 천자는 권신들의 손에 끌려다니며, 정사(政事)는 권신들의
집안일이 되었습니다. 호걸 영웅들은 각축하며 강토를 나눠 찢으니, 이것은
주나라 말기에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세력을 나눈 것과 다른 바 없으며, 끝내
는 강한 자가 겸병하게 될 뿐입니다. 더하여 원 씨는 천명으로 왕이 된다는
상서로운 조짐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지금 군께서는 사주(四州)를 옹유하
며 백성들의 호구는 백만이요, 강한 것으로는 이보다 더 큰 것으로는 비할 바
가 없으며, 덕을 논하자면 이보다 더 높은 것으로는 비할 바가 없습니다. 조
조는 쇠퇴하고 미약한 한실을 붙잡고 돕고 있다지만, 어찌 끊어진 천명을 잇
고 이미 멸망한 것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군께서 천자에 올라 천하를
밝게 비추소서.
“원소야, 네가 욕심이 있으니 이 편지에 설레고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그 즐
거움이 사실은 영생의 약이 아니라 진시황의 약과 같아 네놈을 죽일 것이다.”
원술은 자신의 옷단을 뜯어 양홍에게 쓰는 글과 가족들에게 쓰는 글을 쓰고
나서 약을 들어 쭉 들이켰다. 쓰디쓴 맛에 원술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가를
닦았다.
원래 탕약이 발현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지만, 원술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입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켁!”
원술의 입에서 피가 덩어리 채로 나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다가왔
다. 하지만 원술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양 장사가 약을 가지러 갔으니 기다려라.”
멀리서 뛰어오는 양홍이 보이자, 원술은 일어나 그를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다리서부터 힘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더는 서 있지 못하게 되었다. 그
모습에 호위들이 급히 달려와 그를 일으켰다. 원술은 그들의 품에서 피를 게
워 내며 말했다.
“꿀물이··· 먹고 싶구나······.”
여기저기서 ‘폐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원술은 아무런 생각이 들
지 않았다. 그때, 양홍의 목소리가 들리자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황제 노릇은 잘했나?”
양홍은 손을 달달달 떨면서 원술에게 꿀물을 올리며 말했다.
“폐하의 곁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소신 끝까지 폐하를 따르고자 합
니다. 소신이 가져온 꿀물을······.”
원술은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양홍에게 자신이 적은 물건들
을 전하였다. 그러고 나서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리자,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바
닥에 머리를 찧으며 원술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표하였다.
그리고 절망한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군대가 있었다.
“태사 장군, 조랑이 단양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태사자는 멀리 보이는 원술군의 조기(弔旗)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단양을 손가의 손에 지키는 것은 나보다 그가 더욱 나을 것입니다. 그는 월
족들과 친분이 많으니 내가 나서는 것보다는 더욱 수월할 테니 말이오.”
태사자의 옆에 서있는 허탐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서 정위(서구)의 말이 맞아 다행입니다. 이곳에 원술이 없었으면 허탕을 칠
뻔했지 않았습니까?”
“하긴, 꼴이 너무 멀쩡해서 의심했으니, 죄송한 일입니다.”
“태사 장군의 의심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조정으로 가다가 원술에게 잡혔다
고 하는데, 원술이 망하니 다른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원술을 위해 일했는데, 변명을 하려고 그런 식으로 말을 지어냈다는
말입니까?”
“어차피 허도로 가 봐야 죄다 죽을 사람들 아닙니까? 다른 곳으로 다 흩어질
겁니다.”
태사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옥새를 빼 올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일을 다 한 것이 아니겠소?”
“맞습니다. 주공께서도 옥새를 얻어 조 사공께 바칠 수 있다면 조정에서 또
다른 인정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태사 장군께서도 큰 인정을 받
을 것입니다.”
태사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꺼내자, 허탐이 물었다.
“저들을 모두 도륙을 내실 겁니까?”
이에 태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중심이 없으면 알아서 무너질 텐데.”
커다란 불이 원술군의 진영에서 올라오자 태사자는 말고삐를 잡고 빠르게 아
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구가 급하게 말을 몰며 달려온 뒤로 원술군이 그를 쫓고 있었다. 태사자는
그들을 향해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
승태는 전장을 정리하며 많은 양의 보물과 군량들을 바라보며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장료가 직접 보물들을 하나하나 걸쳐 보면서 물었다.
“조 서주께서도 한번 걸쳐 보시죠. 어차피 정리하면 다시는 보지도 못할 물건
들 아닙니까?”
조운은 그런 장료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조 서주께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노 국상께서 가볍게 대할 일은 아닐 것으
로 생각됩니다.”
장료는 그런 조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자네 생각을 듣고 싶다고 했나? 조 서주께서 챙길 물건인데, 괜찮은 물
건이 있으면 팔아서 돈으로 만들기 전에 챙기시라는 것이지.”
그때, 창희가 물건들의 상태를 쭉 보면서 말했다.
“이 정도 물건들이면 상단에 맡겨도 제값을 받기에 무리는 없을 겁니다. 거기
다 보석보다는 금이 많아서 어중간한 물건은 그냥 녹여서 급전으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러고는 장료가 매고 있는 물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물건은 그다지 좋은 물건은 아니니, 그냥 수레에 올려 두십시오.”
장료는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여 목에 걸고 있던 물건을 빼어 마차 위에 올려
두었고, 창희는 주머니에 있던 보물 구슬을 그에게 쥐어 주며 말했다.
“이런 게 진짜 보물입니다. 쉬이 구하기 어려운, 티 없는 취옥(翠玉) 구슬은
부르는 게 돈일 겁니다.”
그 말에 장료가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보자, 승태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 장군의 공이 크니, 그런 거 정도는 챙겨도 됩니다. 어차피 과를 만들어
주목에서 실각당하고 완으로 쫓겨날 생각인데, 뭐라도 못 내주겠습니까?”
승태의 말에 장료는 기침하며 물었다.
“크흠, 괜찮으시겠습니까?”
승태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안 괜찮을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장료는 승태의 눈치를 보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고 도독이나 여기 장군들하고 좀 상황이 달라서 끝까지 따라가지는 못
하지만, 언제나 주공의 편에 설 것입니다.”
장료의 말에 승태는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믿을 만한 분들이 많아 다행입니다.”
그때, 멀리서 말의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전투가 끝났음에도 몇 기의 기병이
달려오자, 모두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백기가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장료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원술인가? 원술이 박살 나서 살려 달라고 오는 것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승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역적은 어차피 못해도 삼족을 멸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원가는 끝장나
는데, 항복하러 오겠습니까?”
그 말에 장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전령들이 거리를 두고 말에서 내린
뒤, 승태의 앞까지 달려왔다. 그러고는 예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자, 승태는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어디서 왔습니까?”
“태사 장군의 휘하에서 있습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강남에서 여기까지 제법 먼 길이었을 텐데, 좀 쉬엄쉬엄 움
직이시지.”
“아닙니다. 태사 장군께서 이미 강을 넘어 원술의 뒤를 치기 위해 움직이셨습
니다.”
“예? 그럼 단양은 어찌······.”
“조랑 장군께서 인수를 받아 능양에서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보고하려고 오셨습니까?”
“원술의 전국옥새를 지금 태사 장군께서 가지고 계시어 이를 보고하고자 이렇
게 왔습니다.”
전국옥새라는 말에 좌중이 모두 놀라 눈치를 보고 있었으나, 승태는 아무런
감정이 없이 말했다.
“어차피 조정으로 들어갈 물건이니 보관에 조심하도록 해 주세요. 이 일이 알
려지면 분명 노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니 말입니다.”
모든 이들이 덤덤하게 명령을 내린 승태를 바라보았고, 그는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주공, 무려 전국옥새입니다.”
승태는 마치 관심이 없다는 듯 입 주변을 만지며 다시며 물었다.
“그래서요? 원술처럼 황제를 칭하라는 말입니까?”
그러자 장료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절대, 절대 아닙니다. 무슨 무서운 말을 그리 가볍게 하십니까?”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일인데 놀랄 것도, 아까울
것도 없지 않습니까.”
장료나 조운, 창희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승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옥 쪼가리에 의미를 부여하여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그걸로 조 사공에
게 뭘 받아내는 게 훨씬 이득이지. 그거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