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65
조조와 유비의 앞에 놓인 술병들을 보고, 승태는 약간 징그럽다는 생각을 했다. 갖갖의 술 단지들이 바닥과 상 위에 흩트려져 있었다.
‘하나, 둘, 셋··· 아이구, 벌써 거나하게 잡수고 계셨네.’
그때, 조조가 손을 흔들면서 승태를 불렀다.
“아, 우리 조카가 왔구먼!”
유비는 조조의 말에 벌떡 일어나 승태와 어깨동무를 하며 자리를 권했다.
“이번에 전국옥새를 가져왔다는 그 조카분인가 보군. 잘 왔습니다, 잘 왔어요.”
‘으, 술 냄새··· 얼마나 먹은 거야, 둘이서?’
조조는 유비의 손에 끌려와 앉은 승태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자자 한 잔 받아라. 내 유 사군과 함께 즐겁게 영웅을 논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젊은 영웅이 왔으니 참으로 즐겁구나.”
승태는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조조의 술잔을 받아 들었다.
“너무 과하신 말입니다. 제가 어찌 여기 앞에 계신 영웅들 앞에서 영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조조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러느냐? 여기 둘이 영웅이라! 유 사군, 우리 조카가 눈 하나만큼은 대단한 인물인데, 우리가 영웅이라 하더이다.”
승태는 눈이 좋다는 조조의 말에 약간 걱정이 되었으나 이내 근심을 털어 냈다. 그러고는 조조가 따라 준 술을 들이켰다. 술을 단번에 비우자 유비가 곧바로 술을 따라 주었다.
‘엄청 빨리 따라 주네.’
“그럼 한 잔 받으시지요. 조 사공께서 조 남양을 얼마나 칭찬하던지.”
‘칭찬? 아닐 것 같은데······.’
“과분한 일입니다. 그저 조 사공께서 바라시는 대로 했을 뿐인데요, 뭐.”
조조는 그런 승태의 모습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천하에 영웅이 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 술은 마시고 답하고.”
승태는 술을 쭉 들이켠 뒤, 숨을 푸욱 내뱉고 나서 말했다.
“천하의 홀로 일어난 이들은 참 많으나 영웅이라 불릴 수 있는 여기 두 분뿐이지 않겠습니까?”
승태의 말에 유비는 승태를 바라보았다가 조조를 바라보았다. 조조는 승태의 말에 허벅지를 내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본시 원가의 인물들은 가진 것이 많아 유산을 딛고 일어난 것이니, 영웅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원소는 홀로 일어난 것이 아니겠소.”
유비가 또다시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물음을 던지자, 승태는 술을 들이켜고 답했다.
“원소가 스스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나, 원가의 인맥을 활용하여 수많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자신을 알리어 기반을 만든 것입니다.”
“그럼 유표는 어떠하냐?”
“황실의 종친이시나 작금의 상황에서 조공도 끊으며 예를 무시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예와 식을 잃은 종친이 영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조조는 껄껄 웃으며 다시금 술을 따라 주었다.
“그래그래, 그렇구만! 예도 잃고 식도 잃었는데, 어찌 영웅이 되겠는가?”
유비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등, 손책, 유장들을 물어봤으나, 승태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이에 답하였다.
“마등은 역적과 친우를 맺었으니 어찌 영웅이 될 것이고, 아버지인 문대공은 영웅이었으나 손책은 감히 역적을 토벌하는 여 장군의 뒤를 노렸으니 불가합니다. 유장은 호족들에게 둘러싸여 휘둘리는 인물일 뿐입니다.”
“하면 남은 것은 유 사군과 이 조조밖에 없군!”
“예, 사공. 동적(董賊)을 토벌할 때 뭇 제후들은 서로 아귀다툼을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을 걸고 분연히 일어난 분 중 남은 이들은 두 분 뿐이니, 어찌 영웅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유비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 남양, 어찌 내가 사공과 같은 곳에 이름을 오르겠소이까?”
그러자 조조가 유비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건 이 조조가 말해 보지. 솔직히 말해 사군, 나는 인의란 말을 의심하고 부정했소. 그런데 동탁을 토벌할 때 그대를 보고 알았지! 아! 인의란 저렇게 보이고, 저렇게 쓰는 것이구나, 라고 말이요. 천하의 그 누구도 인의라는 검을 뽑은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그것을 무기로, 갑옷으로 쓰는 사람을 보았으니, 영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유비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자, 조조는 그의 가까이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그 검이 누구를 향할지 참으로 두렵고 궁금하오이다. 그렇지 않소, 유 사군?”
마침 천둥이 쳤고, 유비가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조조가 젓가락을 떨어트린 그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영웅이 천둥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유비는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성인(聖人)이 말하길, ‘빠른 천둥과 거센 바람에는 필시 낯빛을 고친다’ 하셨으니, 실로 그러합니다. 이런 저보다는 이 앞의 젊은 영웅이 더욱 영웅에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승태가 유비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그저 헤실대는 낯짝으로 조조에게 술을 따를 뿐이었다.
“저자에 도는 이야기로는 사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서주로 갔으며, 천하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의지를 꺾고 여 장군의 여식과 결혼했으며, 서주를 다시 일으키고 역적을 꺾었으며, 한조(漢朝)를 위하여 옥새를 돌려놓지 않았습니까? 전국옥새는 영웅이라 불리는 문대 공도 혹하게 만든 물건인데, 참으로 의연하기까지 하니···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유비, 이 인간이?’
조조는 그런 유비의 말에 승태에게 손을 흔들어 가까이 오게 했다. 승태는 무릎걸음으로 조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승태는 조조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그것이야 사공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내가 원하는 대로?”
“저야 사공께서 명하시는 대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자의 명성 또한 사공의 몫이지요.”
“그런가?”
“당연한 일입니다.”
승태의 말에 조조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이내 굳어지며 물었다.
“그럼 내가 서주의 백성을 다시 갱살(坑殺)하라고 하면 하겠느냐?”
그 말에 유비나 승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조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다, 장난. 내 진짜 그런 일을 시키겠느냐? 그냥 한번 물어봤을 뿐이야. 그때의 일은 나도 후회를 하거든.”
조조가 술을 쭉 들이켜고 탁탁 털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승태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영웅이 모인 자리에 노래가 없으면 되겠는가? 저번에 네가 부른 노래가 저자에 큰 회자가 되었는데, 이번에도 한 번 해 보겠느냐?”
승태는 유비와 조조가 흥미로운 듯 바라보는 것을 보고 숨을 크게 마시며 일어났다.
“영웅들의 자리에 영웅의 큰 뜻을 바치는 노래를 하고자 합니다.”
조조는 승태의 말에 놀라며 웃음을 흘렸다.
“호오, 그간 고관들을 욕하는 것만 하더니, 이번에는 참으로 흥미롭구나! 덕조! 덕조!”
양수가 붓과 천을 들고 달려오자, 조조는 승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덕조와 매우 친하다고 하길래 내 불렀다. 이 자리는 끼지 못하지만, 네 시는 남겨 줄 것이다.”
승태는 양수의 그런 모습을 보며 신음 흘렸다. 양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승태를 바라보았다. 조조가 양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승태야, 덕조가 참 고민이 많은 애야. 엉. 가문도 그렇고, 너를 따라다니면서 일도 하고. 참 힘들지. 그렇지 않은가, 덕조?”
양수는 고개를 저으며 조조에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사공, 아닙니다. 사공의 조카를 돕는 일이 사공의 마음도 편해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내가 참 신기한 것이 사마가나 양가 같은 이들이 승태의 곁에 붙은 게 신기해. 참 굴욕적인 일이 아닌가? 지체 높은 자제분들이 탁류의 정수인 조가 후예의 옆에 서 있는 것 말이다. 승태의 말대로 자기 스스로 일어난 것도 아니고, 유 사공같이 황가의 핏줄도 아니고. 부나 권세가 큰 것도 아닌데 말이야.”
조조가 양수의 목을 톡톡 치면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모욕적인 상황이었지만, 양수는 아무런 화도 내지 않았다. 승태도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친우와 어찌 그런 것을 따지겠습니까? 그저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일 뿐입니다.”
“하하! 내 참 유 사군이나 승태나 대단해 보여요. 맞다, 승태야. 영웅의 노래를 한다고 했지! 해 보아라!”
조조가 양수를 풀어 주고, 승태의 앞에 서서 술병을 쥐여 주며 말했다.
“그거 다 마시고 시작하는 것이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고 술을 꿀꺽꿀꺽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생의 가장 감명 깊게 본 뮤지컬의 노래인 ‘영웅’을 각색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 광활한 대지 푸르른 하늘 나는 무엇을 하나?
― 잊어야 하나 잊을 수 있나? 나의 그리운 가족.
―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맹세한다.
승태의 노래에 양수는 빠르게 글을 적어 내리기 시작했고, 유비는 ‘허’ 소리와 함께 승태를 바라보았다.
― 하늘에 맹세한 장부의 큰 뜻, 내가 걸어온 이길
― 이 길 끝까지 걸으면 이룰 수 있나, 장부의 뜻.
― 하늘에 맹세한 장부의 길, 하늘 앞에서 무엇이 두렵나?
― 장부이기를 맹세했으니, 두려워하지 말자!
승태는 양수를 바라보며 가슴을 두드렸다.
―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과 꿈 이루도록.
양수는 그런 승태의 노래를 모두 적고 나서 조조에게 올렸다. 조조는 인상을 찌푸리며 승태의 술병을 들고 일어났다. 조조의 눈에 들어 있는 그것은 복잡한 감정이었다. 질투도 있었고, 약간의 안도, 그리고 만족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내 먼저 일어나지. 잘했다.”
유비는 조조의 따라 일어나며 승태에게 예를 취했다.
“조가의 작문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구려. 의제들에게서 자네의 능력을 들었는데, 파격을 넘어 새로운 문을 여는 느낌이오. 나중에··· 나중에 꼭 한 번 봅시다.”
승태가 그들을 보내고 양수에게 걸어가 술을 따랐다. 그러자 양수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 채 승태를 보며 말했다.
“부끄럽군.”
“자네가 이렇게 지내는 줄 몰랐군.”
“이런 일이 많겠는가? 연회에서 나 그런 것이지. 그래도 비굴하지만, 이겨 내어 끝내 우뚝 설 것이네. 내가 똑똑하지 않는가? 눈치는 배우고 있네. 하하!”
양수가 도리어 담담한 모습을 보이자, 승태는 그 모습이 더욱 서글퍼 보였다.
“필요하다면 상서령이나 장문 형님을 찾아가게. 내 이름을 대면 도와줄 것이네.”
승태가 양수의 틀어진 옷들을 다잡아 주고 나자, 양수는 술을 쭉 들이켜고 일어났다.
“아마 좨주가 찾을 것이네. 일어나겠네.”
승태는 아무런 말 없이 양수의 손을 두들겼다.
***
시랑 왕복의 저택의 깊숙한 방 장수교위 충집과 의랑 오석이 앉아 있었다. 왕복은 동승이 내준 의대(衣帶) 안에 있던 헌제의 혈서를 보여 주자, 충집과 오석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내리쳤다.
“어찌 한조의 지존께서 이러한 황망한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조조의 만행을 더는 바라만 볼 수 없습니다.”
왕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어린 헌제 유협을 대신하여 조조가 업무를 대신 보았다. 황제가 업무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음에도 조조는 이를 무시했고,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선을 넘어서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일들을 바라보면서 신하들은 가슴속에 무엇인가 쌓여 나갔다. 그 도중에 황제의 의대에 황제의 혈서가 튀어나오면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결국 젊은이들이 모여 불의한 조조를 물리치고, 황제가 정의를 세우고자 했다.
“조조를 암살하면 국구와 오 장군께서 움직여 황도를 장악할 것이네.”
“하지만 각지의 조조의 수하들이 있는데, 이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다른 장수들은 모르겠지만, 특히 조조의 족인(族人)들의 군대는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자 왕복이 동승의 전서를 보여 주며 말했다.
“좌장군 유비, 남양태수 조제를 대항마로 만들 것이네.”
“하지만 조제도 조조에게 충성하는 인물이 아닙니까?”
왕복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제를 따르는 이들의 가문들이 우리와 함께하는데 그도 일이 벌어지면 우리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네. 제일 중요한 것은 조조를 죽이는 일이지.”
왕복이 칼을 두 개 꺼내어 건넸다.
“한을 위해 일어난 조조는 이제 죽었다. 이제 동적의 망령이 된 조조를 죽여 한을 다시 반석 위에 세우는 것이네. 그러나 자네들은 보지 못하겠지. 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드시 죽을 것이니 말이네.”
왕복의 말에 오석과 충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 칼로 자신의 손을 베어 비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갔다.
“장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어찌 두려워하겠나이까. 역적을 죽이고 한조의 영광을 밝히는 길,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