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68
어느새 두기의 얼굴에는 장난스러움이 사라지고, 엄중함만이 가득했다. 묵직해진 분위기가 서재를 가득 채우자, 승태는 얼굴을 문지르다가 ‘뭐 이런 것까지 속이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매번 저자세로 나와야 해? 내가 남양태수이니 접경한 적을 회유할 수도 있지.’
승태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두기에게 물었다.
“원수는 반드시 베어야 합니까?”
너무도 뜬금없는 물음에 두기는 당황했으나 이내 승태의 뜻을 이해했다.
“지금 자네가 장수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말인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여겨서 그들과 만났고?”
“그렇다고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두기는 승태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딱히 거짓을 말한 것이 없으니 승태는 당당하게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네는 참 어렵군, 어려워. 사공이나 상서령께서 그리 대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군.”
승태가 인상을 쓰자 두기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라 이것이네. 이해가 일관성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야. 어느 때는 숨을 죽이는 것 같다가도 별 이상한 곳에서 과감하고, 과감할 것 같은 곳에서는 소심하게 움직이니 말이네.”
승태는 딱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두기를 보며 머리를 긁었다. 두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상서령이 자네를 믿는 이유를 모르겠군. 뭐가 예측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진정 장수를 회유하겠단 말이지?”
두기는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 하나를 떠올렸다.
“만성(曼成, 이전의 자)을 자네 옆에 붙이도록 하지. 대충 비양현령 정도면 괜찮겠지.”
두기의 말은 대놓고 감시자를 옆에다가 두겠다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감시하는 눈이 많은 승태로서는 짜증이 더욱 올라왔지만, 두기의 다음 말에 의해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명공의 모사들이 자네를 어찌 생각하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라고 말이야.”
“그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어쨌냐고?”
두기는 허벅지를 두들기며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승태의 앞자리에 쭈그려 앉아 자신의 목을 손날로 치며 말했다.
“치우고 싶다는 것이네. 상서(정욱), 좨주(곽가), 시랑(순유) 등등의 인물들이 말이야. 유 사군이나 자네를 똑같이 생각하고 있네. 자신들의 생각과 딴판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두고 쓰는 것은 불안하고, 그렇다고 충심이 가득한 것도 아니고. 욕심이 많냐? 그것도 아니고. 무능한 것도 아닌 것 같고, 회유도 할 수 없고··· 뭐, 하나 걸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승태는 ‘치운다’는 말에 욕지기가 차올랐다. 이렇게나 당당히 당사자의 앞에서 치운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자신이 왜 무엇 때문에 치워져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이 저를 치워야 할 일입니까?”
두기는 껄껄 웃다가 굳어진 얼굴로 승태의 탁자를 두들겼다.
“그럼 당연하지. 자네의 눈에는 과한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네, 모사들은 목숨을 거네. 누구는 문서 하나, 문구 하나 가지고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논다고 하는데··· 그 하나하나의 결정으로 인해 조 사공의 세력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네. 예측하지도, 잡아 두지도, 협박하지도 못할 인물이라면 치우는 것이 맞지. 혹여 잘못이라도 하면 세력 전체가 휘청거리는데 말이야.”
“제가 권력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두기는 알아듣지 못하는 승태가 짜증이 났는지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권력욕이 없고, 힘이 없어? 여포의 남은 장병들은 자네 말이면 들고 일어날 것이네. 그뿐인가? 서주를 자네의 입맛대로 놀려 서주의 법도를 무너트리고, 지금은 그 짓을 남양에도 하고 있지. 그런데도 한사(寒士, 가난한 선비)와 청사(淸士, 청렴한 선비), 소사(少士, 어린 선비)들은 자네에 대해 좋은 말을 쏟아 내고 있고. 대족(大族)인 홍농 양가와 온의 사마가의 인물들과 통교하고 있네. 자네가 원하면 허도에 입김을 넣는 것 정도는 쉽게 되겠지. 아! 영천의 진가도 있군. 왜? 우리 같은 모사들이 모를 것 같은가? 하나둘 자네의 사람들로 채워 넣고 외방의 군사를 다스리면,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그렇지 않은가?”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두 사직(司直).”
“그래, 마지막 말을 바꾸지. 생각했다고 보일 수 있지 않은가.”
“두 사직(司直).”
“그러니 잔말 말고 감시자를 받아들이게. 이는 나의 뜻도 있지만, 아까 말한 모사 대다수가 결정한 일이야.”
승태는 두기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두기가 오히려 당혹하여 눈을 깜박였다.
“······진짜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그냥?”
“그럼 어찌할까요? 저를 치운다는 모사들은 제가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는 곳에 있는 분들 아닙니까? 저야 이리저리 발버둥 치는 인물이라면, 그분들은 원가의 모사들과 바둑을 두듯이 천하를 움직이는 이들인데, 제가 어찌 거스르겠습니까? 저는 죽고 싶은 마음도 없고, 어디 산골짜기에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냥 조가의 이름이나 팔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좋아서 사는데,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이 그리하라 하면 그리해야죠. 아니 그렇습니까?”
두기는 눈을 끔벅이고 나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그래.”
그리고 승태는 떨떠름한 표정의 두기에게 쐐기를 꼽듯이 말했다.
“그리고 저에게 붙이는 감시에 이상한 수를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혹여 돌아가신 여 장군과 원한이 깊은 자를 붙인다든가··· 저도 사람인지라 이미 지금 많이 힘듭니다. 여기서 더 밀어 버리면, 저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승태는 자리에 먼저 일어나 두기에게 예를 취했다.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임지로 빨리 돌아가야 하니, 보내시겠다는 분은 알아서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승태는 서재를 나가는 순간 입에 비릿한 미소를 띠웠다. 승태의 그 미소에 두기는 섬뜩함을 느껴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차라리 잘됐어. 감시자가 붙으면 내 결백이 뚜렷해지겠지? 어차피 내 손은 타지 않게 양수에게 맡겼으니, 잘 처리된다면 접점은 알 수가 없을 거고. 그러면 제아무리 이상하더라도 남양에서 장수를 설득한 나를 그 잘난 모사 분들이 알아서 변호해 주겠지. 정말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겠어. 정말로. 크크··· 흐흐흐······.’
승태는 뒷짐을 지며 다시 짐을 챙기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남양으로 돌아온 승태를 노숙이 마중 나왔다. 그는 이전을 바라보며 승태에게 다가와 물었다.
“처음 뵌 분이 있는 것 같은데, 누구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여기는 비양현에 현령으로 부임할 이만성입니다. 노대리 가 선생에게는 따로 말이 온 것은 없습니까?”
“허도에서 지낸 인물인가 보군요. 예. 온 것이 있습니다.”
양수나 사마의의 경우도 있으니, 노숙은 또 승태가 어떤 인재를 데려왔다는 생각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짚었다.
노숙이 옆에 따라온 관리에게서 죽간을 건네받아 승태에게 올렸다. 승태는 죽간 가운데에 적힌 소삼림(燒森林)에 웃음을 크게 지었다.
“가 선생이 내 말을 들어준 것 같군. 서신을 보내지요.”
승태는 그 죽간을 이전에게 건네주었다. 이전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솔직히 전후를 모르고서 그 장난 같은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숲을 태우겠다니요?”
이전의 무례한 태도에 노숙은 의문을 품었다. ‘이자가 왜 이러느냐’라는 표정으로 그가 바라보자, 승태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조정에서 보낸 분입니다.”
승태가 이전을 높여 부르자, 노숙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승태가 이전에게 물었다.
“내가 말해 줘야 합니까?”
“이는 공적인 일입니다. 혹여 다른 일이 연관되어 있다면······.”
승태는 아미를 찌푸리며 사마의를 불렀다.
“무음현령, 현령께 말씀드려 주겠는가?”
이에 사마의가 예를 취한 뒤 이전을 데리고 사라졌다.
승태는 한숨을 내쉬고 정청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노숙이 옆에 서서 승태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물었다.
“허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조 사공의 입지를 높여 준다고 갔는데, 저기 붙은 혹은 무엇이고.”
승태는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높은 곳의 분들이 저를 감시해야겠다고 하셔서 보낸 인물입니다.”
“미치겠군. 서주를 빼앗은 것으로 성에 못 차겠다던가?”
“형님, 그런 소리 함부로 하다간 위에 보고됩니다. 저자만 왔겠습니까?”
노숙이 과장된 몸짓으로 입을 막자, 그 모습을 본 승태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무엇을 결정했는지 자리에 멈춰 섰다.
“에라, 그냥 집으로 가렵니다. 사마현령에게 이 현령 교육 잘하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가 선생에게 말도 죽간 보내 주고요. 가 선생 재치가 넘치는 것 같네요. 우리도 뭔가 재치 있는 말로 받아치면 좋겠는데.”
“그것은 작문이 좋은 자네가 해야지, 왜 나에게 묻나?”
승태는 조조가 태사자에게 당연히 돌아오라는 의미(當歸)로 당귀를 보냈다는 이야기와 제갈량에게 황제를 보필할 수 있는 자리를 주겠다는 의미를 담아 군주를 알현하는 관리들이 사용한 정향을 다섯 근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형님, 저택에 정향과 당귀가 있습니까?”
“글쎄··· 그건 창 도위나 오노(吳老, 오용)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둘만 보내도 충분히 알아볼 것입니다. 겸사겸사 감사의 표시도 되고요.”
노숙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승태의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웃으며 말했다.
“일단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날짜는 잡아 보지. 그리고 위에 보고도 해야 할 것이니 집에서 쉬게.”
“부탁드립니다.”
승태가 집으로 돌아가자, 집 안에서는 ‘우당탕탕’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도련님!’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태는 놀란 가슴에 빠르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퀭한 표정의 오용과 노육이 승태를 바라보았다.
“아, 돌아오셨습니까?”
“예. 오 아저씨, 우리 단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쿠당탕탕!
그때, 큰 소리와 함께 한쪽에 쌓여 있던 죽간들이 쏟아져 내렸다. 승태는 화들짝 놀라 달려가 보니, 죽간을 위아래로 크게 휘두르고 있는 단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이의 손에 들린 죽간은 반쯤 부수어져 있었는데, 승태는 영문을 몰라 눈만 껌벅거렸다.
“빠빠!”
단이는 승태를 보자마자 소리를 치며 들고 있는 죽간을 던져 버리고 걷는 듯 구르는 듯 빠르게 승태에게 달려왔다. 승태도 빠르게 걸어가 단이를 안아 들었다.
“빠빠!”
승태는 빙그레 웃으며 단이를 흔들며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단이는 새근새근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무슨 일이 많았습니까? 육이랑 아저씨 모습이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그러나 승태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오용은 부러진 죽간을 보면서 눈물을 짓고 있었다. 노육은 그런 오용을 보며 쓰게 웃었다.
“최근 여 부인께서 많이 피곤해하셔서 오 아저씨가 자주 단이와 놀아 주시는데, 잠시 한눈만 팔면 오 아저씨가 집안 물건들을 적어 놓은 죽간을 귀신같이 찾아서 부숴 버리거든요.”
승태는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노육은 머리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그··· 단이가 힘이 좀 센 것 같습니다. 영리하기도 하고요.”
승태는 그 말이 단이가 건강하다는 것처럼 들려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노육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이제 한 살이 좀 넘은 아이가 얇은 죽간 뭉치를 부숴 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승태는 자는 단이를 조심하게 자세를 바꾸어 안아 들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이의 힘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까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여 장군의 뒤를 따를 것 같습니다.”
노육의 말에 승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부인이 싫어할 것 같은데··· 첫째는 무조건 문사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