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75
암살(暗殺).
몰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일컫는 말로 삼국지의 많은 인물이 암살로 죽었지만, 손책이 지금 겪고 있는 암살은 특이하기 그지없었다. 암살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암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당당한 암살자들이 동원되었으니, 이는 암살이라 보다는 혈투라는 것이 맞을 터였다.
피슈우우웅!
화살들이 기병들을 노리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병들이 말에 오르기도 전에 하나둘 쓰러져 나가자, 손책은 이를 악물고 말의 사체를 들어 올려 몸을 가렸다. 그러고는 활이 날아오는 곳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이윽고 손책이 곁눈질로 궁수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 말을 그쪽으로 던지자, 잠시 화살이 멈추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살아 있는 말 중 하나가 달려왔다. 손책은 말에 빠르게 올라타 다른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암살자들은 손책을 쫓아 달렸고, 기병들 몇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한창 말달리고 있던 손책의 머리 옆으로 화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제길··· 여기도······.”
그때, 기병 둘이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며 화살을 몸으로 막아내었다. 수십 발의 화살을 맞은 기병은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들을 살짝 바라본 손책은 이를 갈면서 더욱 빠르게 말을 몰았다.
으드득.
숲의 중간마다 계속 궁수들이 손책에게 화살을 쏟아 내었고, 그때마다 뒤따르는 기병들이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손책은 기병들이 쓰러질 때마다 화살을 쏜 궁수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그들을 기억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누구의 짓인지 모르겠지만, 네놈들을 찾아내 죽일 것이다.”
이윽고 숲의 끝이 보이자, 손책은 포효하듯이 외쳤다. 그의 외침은 숲 전체를 뒤덮었다.
손책은 빠르게 숲을 벗어나며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창으로 튕겨냈다.
“내 너희를 기억하마!”
숲을 넘어 밝은 불빛들이 손책의 눈에 들어왔고 손책은 웃음을 지었다.
“살았구나!”
그러자 앞서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손책을 가리켰다.
“쯧쯧, 무슨 영웅기를 보는 것처럼 재수가 없군. 아직 애도 아니고.”
손책은 병사들의 화살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흰 수염의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으며 외쳤다.
“쏴라!”
손책은 타고 있던 말을 들어 올려 그들의 화살 세례를 일단 막아내었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몇 발의 화살이 손책의 몸에 박혔으나 참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갑주 덕분에 깊게 박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손책은 아까와 달리 말을 그대로 던져 버리고 품에서 수극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말이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지팡이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손책의 신형은 엄청난 속도로 궁수들에게로 날아갔다. 이에 궁수들이 그를 쏘려 했으나, 그 순간 그들의 위로 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화들짝 놀란 궁수들이 몇 발을 물러나려 하자, 손책의 신형이 빠르게 그들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수확을 하듯이 손책의 수극이 궁수들을 헤집으며 빠르게 목숨을 취했다.
그들의 뒤에서 노인이 칼을 뽑아 손책의 뒤를 찔렀지만, 이미 그가 눈치챈 뒤였다. 손책은 빠르게 궁수의 시체를 던져 길을 막았고, 노인은 이를 피하려고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손책의 수극이 그를 노리고 들어왔다. 노인은 빠르게 수극을 튕겨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노인네, 이름이 뭐냐?”
“염라에게 물어보지 그러느냐?”
“흥! 한 번 부딪쳐봤으니 알겠지만, 나는 네 상대가 아니다. 허리 나가기 전에 병사들 물리고 도망가라.”
“흐흐흐, 말도 안 되는 소리. 널 죽이기 위해 받은 돈이 얼마인데 물러나겠느냐? 이 업계에서는 돈을 몇 배로 물어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면 포기하지 않지.”
“내가 내어 줄 것이니 물러나!”
그때였다. 노인의 몸이 쭉 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시야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 이제 약이 도는가 보군? 자네는 참으로 대단해. 술에 그렇게 많은 약을 쳤는데, 이제 반응이 오다니 말이야. 하아, 이름을 물었는가? 낭야의 우길이네. 이 업계에선 좀 유명하지. 목표를 놓쳐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이 나이 되도록 이 업계에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능력이니 말이네.”
우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손책의 주변을 돌면서 계속 주절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책의 신형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우길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나이가 드는데 궁금증이 죽지 않고 오히려 많아지더군.”
우길이 손으로 검을 휘휘 저으며 손책의 옆에 섰다. 그런데도 손책은 침을 흘리면서 우길을 빤히 올려다볼 뿐이었다.
“누군가는 약에 취해 내가 번개를 내리치고 칠공(七空)에서 피를 뿜게 한다는데. 애송아, 너는 무엇이 보이느냐?”
그때였다.
손책이 눈을 크게 뜨면서 괴물과 같은 포효를 지른 것이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파고들어 우길의 목을 잡고 꺾어 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우길도 상대가 약에 취했다 생각해 방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포!”
손책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궁수들을 베어 넘겼다.
그의 눈에는 병사들이 여포로 보였다. 자신의 얼굴에 커다란 흉터를 남긴 그자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이는데, 심지어 한둘이 아니었으니. 손책은 반쯤 맛이 간 상태로 전투를, 아니, 살육을 벌이기 시작했다.
중간에는 수극도 손에서 놓고 맨손으로 병사들의 팔을 잡아 찢거나 목을 물어뜯기까지 했다. 전신이 누구의 피일지 모를 피로 물들었다. 겉보기만으로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여포오오오오!”
괴물과도 같은 손책의 모습에 겁을 먹은 병사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손책의 눈에는 수많은 여포가 검을 들고 자신을 노리는 것 같았다.
“여포, 네놈은 죽지도 않느냐!”
손책이 다시 달려오자, 병사 몇이 겁에 질려 눈을 감은 채 검을 찔러 넣었다. 이에 손책은 창을 잡고 빠르게 당기면서 웃었다.
“막았다.”
그러나 그 순간, 하늘에서 화살의 비가 내렸다. 창이 잡힌 병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해서든 저 괴물을 죽여야 한다는 의지만이 가득해 보였다.
손책은 비처럼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과거 여포가 보여 주던 화려한 무예의 환영이 떠올랐다.
“내가 또 당할 것 같으냐!”
손책은 자신이 들고 있는 시체를 방패 삼아 화살들을 막아내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팔다리에 화살을 빼곡히 맞게 되었다.
“막았어! 흐흐흐. 막았다고, 여포! 내가 너를··· 쿨럭.”
손책이 피를 게워내며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손책의 목을 베기 위해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그저 서로 눈치를 볼 뿐. 누구 한 명은 가서 목을 베어야 하는데, 낭야의 고수인 우길과 수십의 궁수를 맨손으로 처리한 손책에게 다가가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목을 가져가야 돈을 받을 것 아니냐! 막내 누구야!”
“죽었어.”
“미치겠다······.”
그때, 멀리서 기병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에 궁수들은 이를 갈면서 빠르게 산을 흩어져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병들 사이에는 봉두난발에 신발도 한쪽만 신은 주유가 섞여 있었다. 주유는 학살이 펼쳐진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도착한 그는 빠르게 말에서 내려 손책을 불렀다.
“백부! 백부! 어디 있나, 백부!”
이내 그는 엎드려 있는 손책을 찾아내고 그곳을 향하여 빠르게 뛰어갔다. 신발이 없어 바닥에 깔린 부러진 화살에 발을 베였음에도 아랑곳 않고 손책을 안아 들었다. 피가 많이 빠졌는지 꽤 가벼운 느낌에 주유는 눈물이 났다.
“하하, 주랑(주유)인가? 내가 여포를 꺾었네! 여포의 화극을 꺾었어.”
그런데도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주유에게 말을 하는 손책의 모습에 주유는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랬는가?”
“그래! 내가 여포를 꺾어 물리쳤네! 이제! 이제··· 쿨럭. 이런··· 여포를 꺾느라 많이 다쳤나 보군. 하아, 앞이 잘 안 보여. 눈이 감기는데, 감으면 안 되겠지?”
“이를 말인가? 막사로 돌아가서 치료할 때까지 버텨야 하지.”
“그렇군.”
주유는 손책을 끈에 묶어 말에 같이 올라탔다. 말이 출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지 손책이 신음을 내뱉자 주유가 물었다.
“애송이처럼 아픈가?”
“여포와 싸워 본 적이 없는 자네는 모르겠지. 게다가 술에다가 약을 탔다고 하더군. 불효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니, 참으로 병주의 인심을 알 것 같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 남방의 인심 좋은 강동으로 와서 말이야.”
“터전은 잘 세웠지.”
“맞아. 아버지가 그립군. 아들이 여포를 꺾은 것을 봐야 하는데······.”
“그러한가?”
손책은 꿈을 꾸었다. 손견이 낙양에서 옥새를 찾던 그때의 모습이었다. 불타는 낙양. 불을 끄는 손견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손책을 바라보았다.
― 왔느냐?
“아버지, 죄송합니다.”
― 무엇이 말이냐?
“모든 것이 죄송합니다.”
― 그러하더냐?
“질책하지 않으십니까?”
― 무엇을 말이냐?
손책은 말이 없이 손견을 바라보자 손견은 웃음을 지었다.
― 내가 네게 무엇을 질책하겠느냐? 너는 잘했다. 단지 그 길이 급하고 빨랐을 뿐이다.
“한조(漢朝)를 위한다고 했는데, 한조는 저를 버렸습니다.”
― 그렇구나.
“억울하지 않습니까?”
― 너는 억울하냐?
“한 치의 억울함도 없습니다. 단지 그 일을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만들어 낸 것에 참담함을 느낄 뿐입니다. 제가 아버지처럼 강했다면, 제가 아버지처럼 현명했다면, 제가 아버지보다 인후(仁厚)했다면······.”
손견은 고개를 저었다.
― 잘하였다. 네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여기까지 왔겠느냐? 충의와 효로써 달려왔으나 결과를 아쉬워하지 말아라.
“아쉽습니다. 제 반쪽과 같은 친우가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저는 이곳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손견은 웃음을 지으며 손책을 안았다.
― 네가 나보다 한 발 더 앞서 갔으니, 다음은 한발을 더 나아가 한조의 무궁함을 이룰 것이다.
“아버지의 칭찬이 너무 듣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계속해서 들려오던 손책의 중얼거림이 끝이 났다. 주유는 마지막 한마디 이후에 손책의 호흡이 멈춘 것을 느꼈다. 주유는 입으로는 웃으며, 눈으로는 눈물을 쏟아 내며 물었다.
“백부, 너무 아파서 숨을 참는가? 애송이가 따로 없군. 응? 이렇게 놀릴 거리가 또 생겼으니 막사에 가면 한껏······.”
주유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주유가 말을 멈추고 자신의 허리에 감싸져 있는 손을 꼭 쥐었는데도 손책은 말이 없었다.
“수고했네··· 수고했어······.”
건안 5년, 손책이 죽음을 맞이했다.
***
진등은 바다와 같은 장강을 바라보며 구운 물고기 한 점을 먹으며 술잔을 들고 있었다. 그 뒤를 진교가 자리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이제는 회는 안 먹습니까?”
진등은 고개를 돌려 진교를 바라보고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건네었다.
“마실 텐가?”
“아닙니다. 혹 계책이 잘못되면 손책이 밀고 올 텐데, 저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준비··· 맞지, 맞아. 유비무환이니 말이야.”
“그런데 회는 안 드시냐는 말에 답을 안 하셨습니다.”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 있어서 말이네. 아마 내가 회를 먹으면 만나자마자 한 시진은 잔소리를 할 걸세.”
“아, 태수께서 매번 말하는 지금 조 남양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잔소리가 좀 많은 분이었군요.”
“좀 많다 뿐인가? 약도 매일 보내는데, 그것을 검사할 인물까지 딸려 보내는 것을 보면 내 부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지.”
“그분을 따르는 진 노사와는 완전히 다른 것 같습니다.”
진등은 술을 마시고 바닥에 털어 낸 뒤, 다시 가득 따랐다. 진교는 다시 꽉 찬 잔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 쌀쌀맞은 분은 어려웠는가?”
“그럼요. 그리고 무슨 일을 보고할 때마다 왜 이렇게 했는지 묻는 통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좀 그런 분이지.”
“그런데 진 노사 말대로 손책이 죽겠습니까? 혹 자기 계책을 책임도 안 지고 도망간 것 아닙니까?”
진등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어. 죽은 뒤가 문제라서 그렇지.”
“예?”
진등은 품에서 죽간 뭉텅이를 던졌다.
“이게 무엇입니까?”
“손책 암살을 교사한 범인과 세력들.”
진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자, 진등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 노사가 판을 괜히 키운 게 아니야. 손가가 차지한 반쪽짜리 강동은 다시 미쳐 날뛸 것이네.”
“그것이랑 제가 이 죽간을 받은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자네가 처리하라는 의미이지.”
“태수는요?”
“그리운 사람이 근처에 온다고 하니 모시러 갈 것이네. 노사를 먼저 보냈고 바쁜 일을 마무리 지었으니, 이제 나도 움직여야지.”
진등이 남은 술이 들어 있는 술병을 장강에 던져 버리며 외쳤다.
“작은 패왕이여, 참으로 아쉽소! 내 그 무예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오! 그러게 왜 여 장군을 죽이셨소? 뭐, 다행이라 생각하시오. 핏줄들과 가신들, 그리고 강동의 호족이 미친놈처럼 서로 칼을 꼽는 꼴은 안 볼 테니. 흐흐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