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79
유비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유협으로 시작하였지만,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앉았으며, 조조와 다르게 충신으로 살고자 한다 말했으나 황제에 오른 인물이었다. 파격적이면서도 명분과 정통을 따라가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이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인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간교한 사람이기도 했다.
유비는 많은 패전을 겪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와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 정도 패배가 과연 패배인지 의문을 가질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열악한 물자, 열악한 숫자, 강대한 적, 체계화된 적들의 움직임들. 작은 돌로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는 일이지만 언제나 소득을 얻어 내는 것이 바로 유비였다.
그러나 그 소득을 내려면 언제나 희생이 필요한 법이었다. 유비는 이를 언제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여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왕충과 유대가 소패로 행군하는 도중, 유비는 기습하여 군의 허리를 끊었다. 그는 자신의 호군들과 함께 후방의 군량을 탈취하였다.
후방을 맡은 유대는 유비의 깃이 보이자마자 도망갔고, 왕충은 중군에서 버티려고 하다가 유대의 깃이 사라지자 자신의 부곡들만 데리고 후퇴했다. 대장이 사라지자 독전관들이나 부장들도 전열을 이탈했고 적들의 진형이 빠르게 무너졌다.
이에 서주병들이 빠르게 적들을 추격하고자 했으나 유비가 그들을 막았다.
“되었다. 추격할 필요 없다. 군량과 말, 그리고 무기만 챙겨라.”
유비는 명령을 내리고 직접 화살과 검들을 주웠다. 그때, 진도가 말을 몰고 나타나 유비 근처에 와 예를 취했다.
“참 바쁘군.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급히 오는가? 혹 익덕이 조조의 조카라도 잡았는가?”
“아닙니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급한 일?”
유비가 손을 까닥이자 진도가 다가가 말을 전하였다.
“조운이 지금 북상 중이라고 합니다.”
유비는 숨을 크게 내뱉으며 물었다.
“하아, 병력은?”
“오백이 넘지 않아 보였습니다.”
“오백?”
유비는 머리로 무엇인가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부곡들만 챙겨서 여길 떠야겠네.”
“주공, 겨우 오백입니다.”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도망가는 병사만 해도 일만이 되었네. 조운이 그들을 규합하여 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공, 아무리 조운이라지만 오합지졸들을 모아 지휘해 봐야 오합지졸입니다.”
이에 유비는 진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생각하는 것은 좋은데, 전투만 생각하지 말라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서주를 최대한 털고 도망치는 것이네. 손이 줄어들면 물건 못 옮긴단 말일세.”
“주공!”
“잘 생각하게. 원소가 미적지근하게 나오면 조조가 군을 밀어붙이기 전에 우리는 서주를 벗어나야 하네. 그전에 털 수 있는 것은 다 털어서 하북으로 날라야지.”
“주공, 그리하면 관 장군과 장 장군은······.”
“의제들은 알아서 잘 할 거야. 그리 약한 사람들이 아니거든.”
“그러면 어찌하실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부곡만 데리고 간다고.”
“서주병은 어찌하시려 하십니까?”
“서주 사람들이지 않은가? 고향으로 보내 줘야지. 하북은 먼 길이지 않은가?”
진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취하였다. 유비는 아까 주운 칼을 나무에 후려치며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
조운은 기병들만 이끌고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다.
“장군! 장군! 말 죽어요!”
그 말에 조운은 푸르릉거리면서 침을 마구 뱉어내는 말을 내려다보고 손을 들어 병사들을 멈춰 세웠다.
“장군, 아니, 자룡아··· 이러다 말들 다 죽는다. 좀만 천천히 가자. 그리고 우리만 가려고 그러냐?”
“일단은? 일단은 우리만 가는 것이 맞다.”
그러자 상산병들이 겁을 먹었다.
“그냥 가면 죽어, 인마! 현덕 공이 군사 지휘하는 거 얼마나 대단한지 알잖아.”
조운은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유비의 곁에서 그의 지휘를 겪어 본 상산병으로서는 걱정이 될 만한 일이지만, 만일 진짜 유비와 싸우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겁을 먹는단 말인가?
“현덕 공이랑 부딪칠 일 없다.”
“다행이네.”
“다행?”
“그렇지 않냐? 그 인간이랑 부딪치면 확실하게 죽는 애들 나올 거 아니야.”
“뭐, 그건 맞지. 소득 없는 전투는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사람? 이야, 우리 자룡이 많이 바뀌었다. 현덕 공 대할 때 존칭 없으면 난리를 치는 사람이었는데. 아니냐?”
“난리는 무슨··· 나는 그냥······.”
“그냥은 무슨. 그냥 지금 따르는 분이 좋다고 해라.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는 것 보니 좋아할 만한 분이더라.”
조운은 약간 뻘쭘한지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타고 있던 말을 쓰다듬으면서 진궁의 말을 떠올렸다.
― 유비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죽일 수 있겠습니까?
조운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왜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을까’라고 말이다.
얼마나 쉬었을까, 말들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조운은 다시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현덕 공이랑 싸우지도 않을 건데 뭐 이렇게 빨리 달리냐? 조조군이랑 합류해서 네가 지휘라도 하게?”
“그들이 받아 주겠냐? 가절을 받은 주공께서도 무시 받는데 말이야.”
조운은 이를 갈았다. 그 빌어먹을 인간들은 승태가 협조를 요청했음에도 도리어 수성과 화병만 겪어 본 승태의 지휘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협조를 거부했다. 그뿐인가. 도리어 그가 군을 잘 모른다며 병서를 보내며 승태를 조롱했다.
“뭐? 무시해? 어휴, 진짜 죽일 놈들이네. 아, 아니지. 이미 죽었을 수도 있겠네. 현덕 공이랑 붙었으면 말이야.”
조운은 다시 속도를 붙여 말을 달렸다.
얼마 정도 지나자, 패전으로 흩어지는 잔병들을 볼 수 있었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잔병들을 향해 조운이 다가갔다. 병사는 기마를 타고 있는 조운을 보고 두려워했으나 도망갈 수 없음을 알고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였다.
“지금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 그것이······.”
병사가 두려움에 눌려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하자 조운이 말했다.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니 말을 해도 되네.”
“그··· 풍현으로 이동하다가 당했습니다. 유비군이 오자마자 대장이란 인물들은 다 도망가고 병사들도 다 흩어졌습니다.”
“그런가? 꽤 멀리 왔군.”
“혹여나 따라서 올까 쉬지 않고 왔습니다.”
조운은 그 말에 병사의 발을 바라보았다. 가죽신은 이미 다 헤져서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알았네. 혹여 방향을 바꾸거나 하지 않았고?”
“예. 그냥 미친 듯이 달려오기만 했습니다.”
병사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자, 조운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가 보게. 혹 사람들 모아 민가 약탈할 생각하지 말고.”
병사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이윽고 병사가 예를 취하며 사라졌다. 조운은 볼을 긁으며 생각에 빠졌다.
“무슨 고민을 하는데?”
“현덕 공이 어디로 움직였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소패로 돌아갔겠지.”
“아니라면?”
“아니라니? 소패로 돌아가야 군을 정비하고 준비할 것 아니야. 장 중랑장도 잡혔다면 구해 내기 위해 뭔가 하겠지.”
“글쎄······.”
“글쎄? 의제라고 하지 않았어?”
조운은 끙 소리를 내며 말했다.
“잘 모르겠다. 이번에 둘러보면 알겠지.”
***
유비군은 두 개의 군으로 나누어졌다. 유비는 소패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대다수의 서주병들을 소패로 회군시키고, 자신의 부곡들과 유비 본인은 군을 이끌고 태산으로 향하고자 했다.
떠나는 길, 병사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유비를 바라보았다. 서주병을 이끄는 호족 중 하나가 나와 유비의 손을 잡으며 슬픈 눈을 보였다.
“유 사군, 이제 떨어지면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천하가 하나 되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천하가 하나가 되면 이라··· 너무나 먼 길이겠군요.”
“언젠가는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술을 들고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유비는 그의 손을 두들기며 말했다.
“오래 버티지 마십쇼. 그리고 제가 협박했다고 하시면 조조가 크게 책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책망하면 또 어떻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조조를 죽이고 싶은데요.”
“그러지 마십시오. 살아 계셔야 복수도 하는 것입니다.”
유비의 따뜻한 말에 호족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유 사군, 잠시나마 꿈을 꾸게 해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유비는 그런 호족을 안고 나서 말했다.
“반드시 다음에 볼 날이 있을 겁니다. 잠시나마의 꿈이 아니라 이루어질 꿈일 것입니다.”
“부디 무탈하십시오.”
유비는 이들을 두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서주병 모두가 유비에게 예를 취하였다. 유비는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슬픈 눈으로 그들에게 예를 취하고 말에 올랐다.
유비가 멀어질 때쯤 멀리서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부디 꿈을 이루소서!”
유비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징징거리는 소리는 이제 안 들어도 되겠군.”
진도는 그런 유비에게 물었다.
“그냥 이렇게 가도 되겠습니까?”
“그럼 어찌한단 말인가?”
“전투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유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너무 싸우라는 것 같지 않은가.”
“허나··· 저들이 잘 싸워야 시간을 벌지 않겠습니까?”
“하지 않았는가? 가장 시간을 오래 끌 수 있도록.”
진도가 모르는 것 같이 바라보자, 유비는 하품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차피 저치들에게 어떤 식으로 수성을 하고 야전에 서 어떻게 하라고 하는 말은 소용이 없네. 필요도 없고.”
유비는 품에서 사과를 꺼내어 잘 닦아 낸 뒤 입안에 넣으며 웃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웅얼거렸다.
‘저런 이들은 그냥 마음만 좀 북돋아 주면 자신들이 뭐가 된 것이라도 된 것마냥 끝까지 싸우게 될 테지. 공포가 다시 마음을 장악하기 직전까지 말이야.’
***
장비는 무엇인가 불안한지 막사 안에서 계속 걸어 다녔다. 장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신경이 쓰여 승태가 그쪽을 바라보면 장비는 멈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행동을 했다.
“장 중랑장.”
“엉?”
“제가 유 사군을 공격하는 것이 그렇게 불안하십니까?”
“어? 그런 거 아닌데?”
“그런 것이 아니면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돌아다닙니까? 정신 사납습니다.”
“으음, 그냥 뭐가 좀 마시고 싶어서.”
딱 금연하기 시작한 사람이 담배가 계속 생각나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술 좀 조금 드세요. 그러다 훅 갑니다.”
“내가 훅 간다고? 솔직히 전장에 서면 내가 너보다는 오래 살아 있을 것이다.”
“예예, 그리하시지요.”
장비와 승태가 투덕거리고 있을 때, 밖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유비가 유대와 왕충의 군대를 대파했다고 합니다. 하여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승태는 하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비는 승태의 한숨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조가 아니고서야 우리 큰형님을 막는 건 어렵지. 그런 놈들 백 명이 있어 봐야 이기겠냐? 자룡이가 그놈들 도와주기도 전에 우리 형님 저 멀리 떠나가겠네.”
“맞는 말이네요. 그리고 자룡 형님은 그쪽으로 간 거 아니라까요. 뭐,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진 노사의 판 위에 있는 건 그대로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