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83
“자네가 말하지 않았는가? 자네는 덕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말이야.”
“소인은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습니다.”
유비는 한숨을 내뱉었다. 조운의 눈빛이 일체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눈빛 사이로 부채감이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살 수 있겠구나.’
유비는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부곡들과 저 물건들을 하북으로 보내 주겠는가?”
그러자 진도와 부곡들이 놀란 눈으로 유비를 바라보았다.
“주공!”
“그만 들 하게. 내 목숨 하나로 이곳을 벗어나면 다행 아닌가? 차라리 잘되었네. 이 모든 것이 내가 못나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나를 따르는 이들이 모두 죽는다면, 저기 있는 보화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숙지.”
“예, 주공!”
“자네가 저것을 잘 챙기고 먼저 떠나간 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진도는 눈물을 흘리며 유비의 앞에 섰다.
“주공! 아니 될 말입니다. 어찌 호사가 주공보다 나중에 죽겠습니까? 이는 충이 아니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습니다.”
‘이 멍청한 새끼가! 말하면 들을 것이지. 딱 봐도 지금 분위기는 나를 잡아 죽이려는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냥 보화들 좀 옮겨!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다시 일어날 기반이 된다고!’
그런 속내와 달리 유비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숙지, 자네가 이끌어야 내가 걱정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내 마지막까지 걱정하게 만들 것인가?”
“주공!”
진도는 자신이 유비를 의심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휘몰아치는 여러 감정들을 느끼고 눈물을 쏟아내었다.
유비는 담담한 표정으로 조운의 앞에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조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동공이 약간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목 잘리는 것은 아니겠지?’
유비는 그런 생각을 하며 팔에 묶인 두꺼운 굉갑(肱甲) 꾸욱 쥐었다. 혹시 진짜 목을 향해 무기가 휘둘러지면 곧바로 막기 위해서였다.
조운은 그런 유비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명공, 단지 명공과 다른 길 위에 섰다고 생각해 주십쇼.”
유비는 그 소리에 팔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그보다 빠른 조운의 창이 횡으로 지나갔다.
툭―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유비는 서둘러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하지만 그의 목은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조운은 미련 없이 뒤돌아 걸으며 말했다.
“공손 장군 휘하에서의 연은 이제 없는 것입니다.”
유비는 멀어져 가는 조운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리에서 떨어진 상투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웃음을 한껏 지으며 상투를 주워 진도에게 주며 말했다.
“이곳에서 나의 목숨을 잃은 것이네. 계규(공손찬) 형님 밑에서 얻은 모든 인연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야.”
진도는 슬퍼하며 상투를 품에 간직하였지만, 유비는 마차에 실려 있는 물건들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다 가져갈 수 있겠네.’
조운은 이미 유비의 부곡들을 모두 정리한 장패와 합류하였다. 그 뒤 원담을 습격하는 곳으로 향했을 때, 원담의 군사들은 마치 단단한 철벽과 같이 다시 군기를 찾아내고 여건의 기마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여건은 분통한 마음으로 진을 빙빙 돌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장패는 멀리 보이는 원담의 군을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내었다.
“실로 놀라운 운용력이군. 마치 손발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가?”
조운도 장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과 달리 군사를 운용하는 원담의 능력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들의 수하들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이 정도면 어째서 그런 줄 알겠다.”
여건의 기병들이 몇 번 방패병들의 돌파를 시도했으나 순식간에 후방의 창병들이 기병들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 때문에 손해만 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건의 기병들이 진지 밖으로 밀려나자, 뒤에서 궁병들이 열을 맞추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건의 기마들은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나갔다.
장패는 그 모습에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아, 몰래 기습을 하겠다고 발이 빠른 애들만 데리고 오다 보니 여건을 도와서 저 진형을 밀어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진 노사 말대로 크게 격파하는 것은 어렵겠군. 더는 의미가 없겠어.”
“그래도 역성현의 나루를 태웠으니 크게 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 노사의 목표도 그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래 그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원담의 군량하고 군수 정예 병사들을 어느 정도 처리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이 정도면 남는 장사지, 남는 장사. 아니, 그래도 저런 정도의 능력이면 알려 줘야지. 무슨 무능하다고만 알려진 인물이 저런 식으로 싸워?”
마지막까지 오와 열을 맞추어 움직이는 원담의 군대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무리하게 기마를 쫓지 않고 주변을 정리한 뒤 진지를 고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장패는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짜증이 올라왔는지 근처의 나무를 한 번 발로 차고 그 자리를 떠났다.
조운이 돌아왔을 때, 소패를 공격하는 승태와 왕충, 그리고 유대의 부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진지의 군문 앞에 왕충과 유대의 목이 걸려 있었고, 그들의 머리에는 ‘도관물(盜官物)’이라 적힌 문신이 있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머리가 걸려 있었다.
병사들은 저마다 그 머리에 침을 뱉으며 욕을 해 댔다.
“무슨 일인가?”
효수된 머리에 돌을 던지려던 병사가 조운을 바라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이전에 길을 물어보신 장군 아닙니까?”
조운은 그가 누구인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군으로 들어왔나 보군?”
“아닙니다. 잡혀 왔습니다. 죽기 싫으면 군에 들어오라 해서요.”
“그건 그렇고,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저 쌀 도둑놈들을 우리 장군님이 잡아서 저리 처리하셨습니다. 크으··· 그때를 생각하면 대단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가? 알았네.”
조운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장비가 두 팔을 들어 올려 그를 맞이했다.
“어, 자룡이!”
승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조운에게 건넸다.
“하아, 수고하셨습니다. 물이라도 한잔하시지요.”
조운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물을 건네받았다. 그는 한 모금 마신 뒤에 승태에게 물음을 던졌다.
“꽤 많은 군관이 죽었는데, 괜찮겠습니까?”
승태는 품에서 가절을 꺼내며 말했다.
“가절은 이천석 이하의 인물들만 처벌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둘은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둘은.”
그때, 장비가 찰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승태의 뒤에 서자, 조운은 빠르게 승태를 자신의 뒤로 옮겼다. 그러고는 장비의 팔을 묶은 수갑을 잡으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익덕 공.”
“전말을 이야기해 주려 하는 거지.”
“주공께 들으면 될 일입니다.”
“그럼 거래가 안 되겠구먼. 쯧.”
승태가 머리를 긁적이며 바라보자, 조운이 말했다.
“위험한 사람입니다. 옥에 넣어 두시지요.”
“알죠. 그런데 옥에 넣었더니 식사를 거부하는 통에 저렇게 두었습니다.”
“그럼 움직임이 어렵게 가(枷, 목에 채우는 계구)라도 해 놓는 것이 맞습니다. 저렇게 가볍게 보여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인물이니 말입니다.”
그 말에 장비는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조운은 그것을 무시했다. 승태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조운에게 말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뭐··· 두 사람이 곡물을 많이 빼돌린 것을 제가 병사들에게 좀 알려 줬더니 분노한 병사들이 그 둘을 처리했습니다.”
“그들은 어찌했습니까?”
“소패성 전투에 최전선에 세울 예정입니다.”
“모두 죽겠군요.”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들하고 싸우면······.”
“내가 항복을 요청할 것이다.”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장비가 입을 열자, 조운은 그제야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장비는 그런 조운을 보고 웃음을 보였다.
“설득되겠습니까?”
장비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소패의 서주병들이 조조에게 원한이 많아서. 확답은 못 하겠군.”
이에 어이가 없다는 듯 승태가 물었다.
“확답을 못 하는데, 어떻게 설득을 한다는 말입니까?”
장비는 가만히 승태를 바라보다가 이내 턱을 긁었다.
“그건 내 문제이지, 네 문제가 아니군.”
“설득을 핑계로 소패로 들어가 군을 점령하고 도망가는 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닙니까?”
승태도 조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며칠 전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승태는 그런 장비의 말에 의심하며 눈을 찌푸렸다. 유비도 의제들을 두고 도망갔는데 장비라고 관우를 두고 도망가지 못하리라는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비의 말에 의문을 가진 조운에게 승태가 이유를 말해 주었다.
“관 장군이 하비에서 패하고 유 사군의 가족과 함께 잡혔습니다.”
조운은 놀란 눈으로 승태를 보았다.
“관 장군이 항복을 한 것입니까?”
“그건 아니고······.”
“내 잘못이지. 내가 차주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였으니 말이야. 부곡들이 진정 차주를 따랐으면 원한이 깊었을 텐데.”
장비는 한숨을 내뱉었다.
“차주의 부곡이 성문을 열었다. 거기다 차주 부곡들이 큰형님 가족들 공격하는 것을 막으려다가 둘째 형님이 다쳤다고.”
조운은 관우가 다쳤다는 이야기에 매우 놀랐다. 무인으로 거대하게 느껴지던 관우가 다쳤다니. 작게 다친 것으로는 이렇게 이야기가 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조 사공의 분노가 하늘을 찔러 진중이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부곡들을 끝까지 찾아 죽이겠다며 하비를 뒤집어엎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도망을 못 간다는 말입니까? 너무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만.”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우리 큰형님 행방과 소패성하고.”
장비의 말에 조운은 장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모릅니다.”
“진정 모르는가?”
“원담이 나와 있는 동안 목표는 역성현의 부두를 태워 버리는 것이었지, 유 사군을 잡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비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승태를 바라보았다.
“형님이 종적을 찾을 수 없다는 소리로군.”
“원소에게 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래야겠지”
장비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승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식객으로 데리고 있다는 명의가 있지 않은가?”
“예. 화원화를 말씀하시는 것이면 지금 허도로 올라와 제 저택에 있을 것입니다.”
“내 작은형님을 봐 주게.”
승태는 그런 장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와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는가?”
승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은 딱히요. 저 소패성도 원한다면 천천히 말려 죽이면 되는 일이고, 장 중랑장에게 뭐 얻을 게 있다고 달라 하겠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장 중랑장의 능력일 텐데, 제가 원한다면 원가와 싸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 유 사군이 거기 있다면 곤란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냥 도와주겠다는 말인가?”
“아뇨. 언제가 장 중랑장이 저를 구해 주거나 도와주셔야죠. 딱히 그 형태와 시간을 정해 두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장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가 나의 생명과도 같은 형님을 살려 주면, 내 반드시 자네를 살릴 수 있도록 하지. 무슨 상황이라도 말이야.”
“큰형님이나 작은형님이 저를 죽이려 해도 말입니까?”
승태의 말에 장비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먼저 목이 베이지 않으면 도와주겠네. 형님들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장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승태에게 다가가자, 조운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자리에 앉아 하십쇼, 중랑장.”
“허··· 뭐, 그래. 좋아. 우선 소패의 병사들을 내가 설득해 보겠네.”
“그건 제가 원하지 않는다고 말을 드린 것 같은데요?”
“내가 저놈들이 필요해서 그래. 빌어먹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