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89
허유. 청류파의 명사였으며 원소, 조조와 친했다. 재주는 빼어났으나 사람됨이 경박하고 오만하다는 평이 있었으며, 무척이나 탐욕스러워 돈 모으기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 사이에 금전적으로 어려운 인물이 끼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같이 놀기 위해서는 무리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나름 스스로 큰 노력을 한 인물이었다. 물론 그 노력이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원소의 옆에 앉아 문관의 상좌에서 그들을 감시하고 감독하였으며 취합하고 결정하였다. 가장 어려운 시기, 허유는 스스로 손에 많은 더러움을 묻혀 가며 원소를 대신하여 악역을 담당하였다.
이처럼 어려운 시절, 원소는 허유를 자신의 대리로 세워 자신이 하기 힘든 일들을 담당하게 했다. 하지만 하북을 얻자마자 원소는 그가 점점 거북해졌는지, 아니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허유를 멀리했고, 결국 지금에 이른 것이다.
허유는 자리에 주저앉아 관모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죽간과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서도와 붓을 보며 생각했다.
‘본초여, 내가 여기 놓인 죽간 하나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모르는구나. 본초여, 나의 친우여. 부디부디 나를 잡아 주게.’
허유는 정성스럽게 여러 죽간에 자신의 이름과 짧게 무엇인가를 적고는 시종을 불러 건네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인 주머니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이것을 전한 뒤에 알아서 살아라. 하북은 이제 전쟁터가 될 것이니, 차라리 서주나 예주에 가서 살든지 해라.”
“주인님.”
“에헤이! 얼마 안 된다.”
“주인님······.”
“자네도 내 밑에서 이 일, 저 일 하면서 못 볼 꼴 많이 보지 않았는가. 나이도 먹었고 돈이면 충분하니, 자네 밑에 애들이랑 조용히 살기에는 충분할 것이야.”
“주인님의 가족분들을 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에헤이! 오지 말라니까······. 그래, 마음대로 하게. 나중에 찾을 수 있으면 나도 반갑게 자네들을 맞이하지.”
허유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상황에서 원소를 보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조군이 쏘아 올린 투석의 여파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먼지구름이 올라오고 있었고 바위에 깔린 병사들이 소리치는 것 또한 일상이었다.
물론 고개를 돌려 바라본 조조군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 보였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성에 걸려 있는 시체들이나 방금 쏘아 올린 투석기가 무너지면서 떨어지거나 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새 원소군의 군막에 들어가자, 올 줄 알았다는 듯한 원소와 다른 모사들이 보였다. 마치 더러운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그들의 표정을 감내하며 허유는 원소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자 원소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왔는가? 자네 가족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네. 전쟁 중이기도 하고 군량에 관련된 일이니, 어찌 자네의 일임에도 가볍지 못하게 처리했네.”
“군법은 엄중해야 하는 법이니, 제가 어찌 대장군의 결정을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허유의 말에 원소는 인상을 찡그렸다. 책망할 만한 결정이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알았으니 저기에 자리하지. 지금 여남에 파견한 병력과 조조의 휘하의 이들과 각 지역을 어찌할지 결정하고자 하니 말이야.”
원소가 가리킨 자리는 가장 말석이었다. 허유는 그것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허유가 아무런 말 없이 말석으로 걸음을 옮기자, 모사들이 웃음을 지었다. 원소도 그들과 같이 약간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곽도는 허유를 대신하여 원소의 왼편에 서서 회의를 주관하였고, 허유는 그런 그들의 회의를 조용히 들으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허유가 나가려는 순간, 원소가 그를 불러 세웠다.
“걱정하지 말게. 내 자네의 공이 있는데, 내가 자네를 버리겠는가?”
높은 자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원소를 보며 허유가 물었다.
“전 별가에게도 그런 말을 했는가?”
“원호는 너무 옳은 소리를 하지 않는가? 자네처럼 독한 마음을 가지지도 못하였고 말이야.”
“독심(毒心)이 없는 책사는 대계를 꾸릴 수 없다는 것인가.”
원소는 허유의 언행에 인상을 찌푸렸다.
“예의를 옷과 같이 놓고 온 것인가?”
허유는 원소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으로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떠나기 전에 친구처럼 대해도 되지 않겠는가.”
“굳이 떠나가려는가? 그대는 환관들을 처리하자는 대업부터 같이한 동지 아닌가?”
허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네. 물러날 때는 알아야지. 내 그간의 공을 생각하고 가족들만 풀어 주면 하야하여 고향으로 가겠네.”
“법은 법이라 자네가 그리 하지 않았는가? 내 나중에 그대의 공을 생각하여 큰 벌을 내리지 않겠네.”
허유는 원소의 말에 예를 표하고 막사로 나와 웃음을 지었다.
‘결정하도록 만들어 주는구나. 본초야, 네가 꾸는 꿈에서 내 몫은 내가 알아서 빼내 가마.’
***
허유는 그 길로 원담을 찾아갔다. 원담이 허유를 보고 예를 표하자,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물었다.
“공자,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자리에 앉은 허유는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원담이 허유에게 먼저 물었다.
“허 공, 원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원하는 바··· 있지요. 혈족을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원담은 수염을 쓸며 고개를 저었다.
“비리에 관계된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는 일이고요.”
“지금 본가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지하는 한 사람이라도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원담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허유를 바라보았다. 마치 마음을 굳히라는 표정의 원담은 허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충분하였다.
허유는 뭐라도 점수를 얻어 내기 위해 원소의 상태에 대하여 말을 하려는 순간, 원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공, 저는 아버님에게 실망을 끼쳐 드리면서까지 권력을 탐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원 청주, 하지만······.”
“그만! 허 공은 아버님의 신하입니다. 저를 도와준다는 것도 아버지의 의지 안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무슨 아버지입니까? 이미 폐출되어 원가의 후계로 인정도 못 받는 실정 아닙니까!”
“내가! 장자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유일한 장자라 이 말입니다!”
“허어, 적자도 아닌 그대가 그리 이야기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허유의 말에 원담은 도리어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가 거두어 준 비렁뱅이가 감히 누구를 평하는가.”
“······비렁뱅이?”
과거부터 조조와 원소와 가까이 지내며 가문의 후원이 없던 허유는 언제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숨기듯이 언제나 필요한 상황에는 도리어 먼저 나서 금전을 채워 주었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내었다.
그랬기에 원술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를 탐욕스럽고 더럽다고 평했다. 그러나 환관들을 처리하기 위해 합비후를 내세워 영제를 폐제 시키려 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과거 면모를 아는 인물들은 손에 직접 흙을 뭍일 수 있는 선비라 칭했다.
그런데도 언제나 금력이 부족하여 성공할 일을 못 했다고 생각하는 허유에게 돈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신경을 자극하기 딱 좋았다.
“흐음, 돈을 챙기기 위해서 비리나 저지르는 게 비렁뱅이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아, 그것보다 더한 인간인가?”
“현사!”
“나가세요. 당신이 없어도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허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흘렸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담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밀쳤다. 원담은 당황하여 물러나며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넘어져 허유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원가의 장남께서는 중간(仲簡)을 믿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니지! 아니지, 그래. 예주파를 믿는 것인가? 하여튼 뭘 믿든 상관은 없는데 말이지, 너는 아비랑 사람을 잘못 건드린 거야. 뭐, 이런 말을 해 봐야 네 아비나 너나 나를 막지는 않을 것이고. 더럽잖아? 안 그런가? 안 그래도 조조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허유! 이 빌어먹을 놈이! 네놈! 선을 넘었다.”
“아, 선? 선! 선은 원가 부자 네놈들이 넘었다. 뭐, 아들과 혈족들이 비리에 연루됐는데 안전할 것이라고?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계속 기회를 줬다. 원소가 원하는 원가의 천하, 네놈이 원하는 천하 원가의 후계, 그리고 나를 욕보인 놈들 모두 말이야.”
허유는 원담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듬직했는데, 커서는 이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해서야. 곽도가 네 옆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가 보마. 담아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할 말을 마치고 막사를 떠나는 허유를 보며 원담은 정신을 되찾자마자 분노에 휩싸였다. 다짜고짜 검을 뽑아 허유를 쫓으려 했으나 이미 말을 타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검을 내리쳤다.
***
조조군에 들어온 허유는 조조의 막사에 앉아 좌중을 바라보았다. 허겁지겁 뛰어온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 허유는 고개를 돌려 다시 조조를 바라보았다.
“다들 급하게 왔나 보군.”
“자네가 항복하겠다 하여 그런 것 아닌가?”
“그래서 갑자기 왜 항복하겠다는 것인가?”
허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만,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것이면 실망인데··· 곽 좨주가 죽었다고 하던데, 그것이 원인인가?”
조조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때 순유가 나와 예를 차리며 말했다.
“명공께서는 정확한 이유를 여쭙는 것입니다. 겨우 비리로 원소를 버리고 오시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허소는 순유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도 영천 놈들이 있군? 참 대단해. 그렇지 않은가? 하여튼 대충은 알고 있나 보군. 그리고 그게 다일세. 다른 의미 따위는 없네.”
“비리에 연관된 자네의 가문··· 하긴 뭐, 가문이랄 것도 없으니. 친족 사람들을 잡아갔다는 게 문제라고?”
“그래. 뭐, 잘못되었나? 그게 다일 뿐이네. 더 필요하나? 그럴듯한··· 흠, ‘원소가 나를 팽하여 어쩌고저쩌고’, 아니면 ‘한조의 충심이’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한껏 가벼운 허유의 모습을 바라보던 조조는 약간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유가 옷을 털어 내며 말했다.
“사실 원소에게 받아먹을 것보다는 자네에게서 받아먹을 것이 많아 보이니 여기 온 것이네. 하북을 모두 얻을 수 있도록 도우면, 못해도 자네 밑에서 삼공에 오를 수 있지 않겠는가?”
허유의 직설적인 말에 다른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조도 웃지 못하는 것이 허유의 말은 조조가 언제고 공이나 왕에 오를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넘기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첫 거래는 화끈한 것이 좋겠지?”
허유는 일어나 한쪽에 세워져 있는 지도에 다가갔다. 오소를 가리키며 톡톡 두드렸다. 좌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 허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소의 숨통과 팔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