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90
관도대전의 방점을 찍는, 오소의 군량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허소의 말에 좌중은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다.
우선 허소의 항복 자체도 이유가 허황하여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량이 쌓여 있다는 이야기부터 그 군량을 수송하는 부대가 움직이는 정확한 날짜까지. 거기에 자세한 군사의 배치, 군량을 지키기 위한 순우경과 그의 휘하 장수들의 능력과 군사의 상태까지 꺼내 놓자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하여 모사들은 그 허실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허유는 그런 모사들을 쭉 둘러보면서 물었다.
“왜? 못 미더운가?”
조조도 입 안에 가시가 난 것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허유를 바라보자, 승태가 먼저 나서 말했다.
“사공! 이는 전황을 획기적으로 바꿀 기회입니다. 이러한 기회도 놓친다면, 결국 원소에게 말려 죽을 것이 빤하옵니다. 소장이라도 보내 주신다면 공을 세우고 돌아오겠습니다.”
조조는 승태가 나서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뒤이어 순유와 가후가 나서 조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공, 허유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소군의 남은 군량을 모조리 태울 수 있으니 원소의 부대는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맞습니다. 공은 명철함에서도, 용맹에서도, 용인에서도 원소를 이기고, 기회를 보아 결단하는 데서도 원소를 이깁니다. 이 네 가지 승리 조건을 가지고도 반년 동안 적을 평정하지 못한 것은 단지 내부의 안전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의 천재일우의 기회를 의심으로 놓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조조는 의자에 앉아 순유와 가후, 그리고 허유를 빤히 바라본 뒤에 말했다.
“좋네. 조인을 대장으로 삼아 휘하의 정예의 기병과 오천을 내리겠네. 그리고 이번 오소를 습격할 인원을 정하여 고하여라. 회는 이만할 것이니, 나가 보라. 아, 자원은 나와 이야기 좀 하지.”
조조가 모두를 내보내고 나서 허유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허유는 조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직접 챙기지 않아도 되는가?”
“아직 그렇게까지 위태롭지는 않네.”
“호오, 그런가? 내 듣기로는 순욱에게 우는소리까지 했다던데?”
조조는 그런 말을 하는 허유를 찡그리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허유가 물었다.
“그런데도 내 제안을 받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승태라는 아이가 엄청 싫은가 보네?”
“자원, 내 속을 그만 긁는 것이 어떤가? 내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자네까지 그래야 하겠는가?”
“왜, 그 애를 죽이고 싶은가?”
“흥, 내 조카를 죽이라고 종용하는 것인가?”
허유는 살짝 웃음을 흘리며 수염을 쓸고 잠시 뒤로 물러나 말했다.
“아니면 아니라는 말을 하지 그런가. 그럼 자네가 이곳을 지키게.”
조조가 재차 인상을 쓰며 바라보자, 허유는 웃음을 지었다.
“오소가 습격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원소는 이곳을 공격할 것이네.”
허유는 입술 한쪽을 올리며 말했다.
“본초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인정 못 하는 인간이지. 마치 그것이 자신의 계책이라는 듯 본진으로 달려올 것이네.”
조조는 그 소리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본초가 그렇지. 그러나 본진이 무너지면 나 또한 위태로운 것은 같지 않은가.”
“아. 그건 뭐, 이곳을 지킬 인물의 능력에 달려 있겠지.”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아만(阿滿), 자네의 용인은 본초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는가.”
“거짓은 아닌가 보군. 알았네.”
조조는 곧바로 조인을 불러 자신의 친정을 알렸고 조홍과 승태로 하여금 조조군의 본진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날, 조조는 정예기병과 하후돈, 조인, 서황과 같은 맹장들과 자신을 꺾은 적이 있는 가후, 그리고 이번 일의 판을 짠 허유를 선발하여 본진을 빠져나왔다.
***
승태는 한숨을 내쉬며 순유에게 물었다.
“원소의 본대가 어찌 움직일 것 같습니까?”
“직접 우리를 치기 위해 움직이겠지. 자네도 대충은 예상해서 자네의 부곡들과 휘하에 따르는 이들에게 준비를 시키는 것 아닌가.”
승태가 말없이 웃자, 순유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자네 휘하의 장수들이 다시 모인 것인데.”
“다행입니까? 대놓고 편을 가르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이번 일이 위험한 것을 알아서 자네의 휘하에서 일하던 이들을 모아 주지 않았는가.”
“뭐, 알겠습니다. 하면 종숙께서는 어찌하신다고 합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군. 그런데 자네는 순우경이 얼마나 버틸 것 같은가?”
“빨리 무너져야겠지요?”
“빨리 무너져야 우리도 살 구멍이 생기는 것이지.”
미래를 아는 승태이지만, 순우경을 공격하는 인선도 바뀐 상황에서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조가의 천장이라 불리는 조인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기에 승태는 확신하였다.
“조 사공과 조 장군, 그리고 쟁쟁한 장수들이 능력이라면, 우리가 힘들어하기도 전에 끝날 겁니다.”
***
장합은 어이가 없어서 곽도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본진을 치라는 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맞네. 순우 도독의 군은 효무(驍武)하고 무거우니, 조조는 그들을 격파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이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조조는 이번의 한 수를 최후의 수로서 직접 군을 이끌었는데··· 대장군, 부디 순우 도독을 도와 그들을 물리기만 한다면, 승기는 빠르게 넘어올 것입니다.”
장합의 말은 굉장히 논리적이었고 옳은 소리였다. 원소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쉽게 승리를 얻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원소는 느리게 가는 결과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원소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살은 빠지고, 움직이기에는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가끔 각혈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또한 어리석지 않기 때문에 전풍과 저수가 제시한 계책과 절충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몸은 더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여기서 더 지체된다면 전투 중에 변고를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소는 지금까지 해 온 그런 전투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는 전투가 필요하다는 생각했다. 조조가 더는 버티게 하지 못하는 전투, 그런 전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의도치 않게 들어온 것이었다.
“내 생각도 같다. 조조의 본대를 밀어붙여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대장군!”
원소는 짜증이 한껏 올라온 얼굴로 장합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조조군의 둔영에 아무리 정예한 기병들이 없다고 하지만, 둔영이 두텁고 견고하니 쉽게 함락하기 어렵습니다.”
“흥! 이는 순우 도독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이만의 병사와 효무한 장수들이 휘하에 있습니다. 또한, 저번의 일처럼 아군의 병사들을 끌어내기 위한 계책일 수도 있습니다.”
“좋다. 기병으로 인한 습격이 걱정된다면, 경기(輕騎)로 하여금 순우 도독을 돕도록 하겠다. 중병들은 진지를 격파하고 조조의 본대를 무너트려 무릎을 꿇게 하겠다.”
곽도는 앞으로 나서 원소를 향해 말했다.
“현명하신 처사이십니다.”
장합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자신의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투구를 던지며 악을 썼다.
“젠장! 전 선생도 이리 홀대하더니, 기주인들을 모두 이렇게 홀대할 생각인가!”
그때, 고람이 장합의 막사에 들어왔다. 장합은 흠칫하였으나 이내 고람의 얼굴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 놀랐습니다. 혹여 다른 사람이었으면 칼을 뽑았을 것입니다.”
“그럼 감정대로 그리 움직이지 않았어야지.”
“그것이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곽도 그 빌어먹을 놈이 대장군 옆에서 쉽게 이기는 길을 어렵게 가도록 만들지 않습니까? 대장군도 너무하십니다. 예? 아니, 언제는 하북을 떠받드는 네 명의 장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홀대한단 말입니까?”
“자네가 전 선생을 감싸고도니까 그런 것이네. 그리고 이건 소문인데······.”
고람이 우물쭈물하자, 장합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형님, 뭐 그렇게 신경을 씁니까? 그렇게까지 말한 거면, 그거 말하러 온 것 아닙니까?”
“중한 일이니 한 번 더 생각한 것이지.”
“무슨 일인데 그렇습니까?”
“대장군이 몹시 아프다는 소문일세.”
장합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가 이내 전풍이 감옥에 가두어지고 지금까지 급하게 달려온 것이 이해가 되었다.
“하, 그거 돌아 버리겠네요.”
“그래, 심 감군(심배)도 그것을 먼저 알고 있던 것 같아. 그래서 전 선생을 버린 것이고.”
“대장군께서 그 빌어먹을, 억세고 모질어 주군을 거역할 것이라는 말을 믿으시는 것 같네요.”
“저 선생이나 전 선생이 기주 내에서는 세력이 좀 있지 않은가. 두 분 모두 올곧은 분이다 보니, 혹시 장자 계승을 들어 원담을 지지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지.”
“그럼 우린 어떻게 합니까?”
장합의 물음에 고람은 입술을 깨물었다. 원소의 측근에서 가장 신뢰를 받던 문추와 안량이 있었을 때는 장수들의 입지는 꽤 높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죽은 후 장수들의 말을 대변할 사람이 없어진 지금, 두 사람은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았다. 문관들에게 밀려 그저 병사들이나 지휘하는 인물처럼 보고 있었다.
“순우 도독을 기다리는 것이 맞을 것 같네. 혹여 순우 장군이 패하면 안 되는 일이겠지만.”
고람의 말을 장합이 바로 받아서 말했다.
“귀부해야죠. 답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
다음 날이 되자마자 원소의 본대는 관도에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기계나 신기와 같은 진형의 움직임으로 전황을 뒤집어엎는 것은 소용이 없는 전투였다. 사면에서 원소군의 사다리와 공성탑이 사방에서 밀려 들어왔다.
승태는 직접 군을 이끌며 성벽에 달라붙은 병사들을 쓰러트리거나 기름병을 공성탑에 맞추어 태워 버리는 등,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군! 동쪽 벽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승태는 자신의 뒤에 있는 단양병에게 말했다.
“화살 넉넉히 챙기고서 삼단중노 가져가세요. 성벽이 무너진 곳으로 밀려들면 삼 열로 집중적으로 쏘세요. 그럼 다시 넘어올 생각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단양병이 놀라 승태에게 말했다.
“하면 주공의 호위는 누가 합니까?”
그 말에 승태는 성위로 겨우 올라온 병사를 다른 병사들보다 기다란 극으로 사다리 채로 넘겨버리는 조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 장군이 여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그리고 어차피 이곳이 저들에게 넘어가면, 목숨은 자연적으로 위태로울 테니 적을 막는 것이 더 중합니다.”
“충!”
단양병들이 달려 나가자, 승태는 바로 옆에 놓인 활을 다시 들고 기름병이 터진 곳에 불화살을 쏘았다.
***
장합의 진지에는 꽤 좋은 보고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피곤에 쌓인 조조의 병사들이 약간 무너지며 일부 성벽이 점령했었다는 보고였다. 아마 성내의 원군이 밀어내지 않았다면 성벽을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합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기병으로 무너진 곳을 노리면서 반대쪽으로 군을 집중시키게. 정문은 저항이 심하니 병사를 밀어 넣기보다는 천천히 압박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후방의 보급은 절대 못 들어오게끔 예비 기병은 계속 척후를 돌릴 수 있도록 하게.”
장합의 휘하 병사들과 고람의 병사들이 명을 받자마자 바로 막사를 나갔고 장합은 웃음을 지었다.
“잘하면 관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네가 전담하니 뭔가 다르긴 하군. 하루 만에 이리도 쉽게 넘어가니 말이야.”
“그만큼 내부에 장수들이 모두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빨리 관도를 넘어가면 충분하겠으나······.”
그때, 전령이 급하게 뛰어왔다. 장합은 후방의 원소군 본대에서 후퇴 나팔이 불어지는 것을 들었다. 장합은 잠시 멍하니 생각을 하다가 전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소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예, 장군. 순우 도독을 구원하기 위해 간 경기병까지 패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후퇴하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장합은 인상을 찌푸리며 투구를 던졌다.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하루만! 하루만 더하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