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92
곽도는 자신이 흘린 모함을 이용하여 장합이 항의를 하거나 그저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다. 장합이 그리 행동을 한다면, 오히려 모함을 확정하여 장합을 전풍과 함께 실각시키고자 했다. 이는 장합이 원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장합은 그 생각을 제대로 뒤집어엎어 버렸다.
어두운 밤, 장합의 부곡들과 고람의 부곡들 중 십장 이상의 인물들이 장합의 막사 안에 모여 있었다.
“장군, 정말로 망루와 남은 곡식들을 모두 불태워 버립니까?”
걱정스러운 표정이 부곡들의 얼굴에 떠올랐다. 장합은 그런 말을 꺼낸 부곡에게 다가가 죽간을 내밀며 말했다.
“못 하겠느냐? 자, 여기 각자 맡은 위치이다. 이것을 가져가 곽도에게 나를 고발하거라. 덕분에 너는 살겠지만, 너와 전장뿐만 아니라 동향의 친우들까지 모두 죽겠구나.”
병사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저··· 같이 싸운 이들이 다칠 것 같아서······.”
“그럼 일을 하고 나서 네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을 구해서 오면 된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가 할 수 있다면.”
장합의 명이 떨어지자, 십장들은 각자의 위치로 사라졌고 고람은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할까?”
고람의 약한 소리에 장합은 투구를 고쳐 매며 대답했다.
“이미 강은 건넜습니다. 발각당하면 죽음뿐이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고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에 매인 활과 검을 확인하였다.
***
‘불이야’하는 소리와 함께 원소군의 혼돈이 시작되었다.
원소의 병사들은 그저 멍하니 불타오르며 넘어오는 망루를, 재앙이 찾아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불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불은 여기저기로 옮겨 붙었다. 마구간까지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꼬리에 불붙은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렇게 불은 또다시 말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히이잉!
망루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원소군의 모든 지역을 불태우고 말았다. 그것을 대강 예상한 장합의 부하들은 이리저리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과 독전관을 베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 누구도 장합의 배반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솔직히 장합 본인도 이렇게 크게 원소의 진형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큰 피해를 남기려고 했지만, 남은 군량에 불을 지르고 자신의 부곡들과 함께 도망갈 수 있도록, 딱 그 정도의 혼란을 원했다.
“어마어마하게 일이 커져 버렸군.”
고람과 장합의 앞에 놓인 혼란은 단순히 불바다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명과 공포가 난무하였다. 여기저기에 고통스럽게 불타며 악다구니를 쓰는 이들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람과 장합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난장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급히 부곡들을 챙겨 둔영을 빠져 나갔다.
고람은 엉망이 되어 버린 진영을 뒤돌아보며 장합에게 말했다.
“이게 맞는 짓인지 모르겠군.”
장합은 불씨가 옮겨 붙어 무너지는 망루와 그로 인하여 번지는 화마를 잡지도 못하는 병사들, 그리고 도망가는 원가의 인물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들 중 원담이 남아 어떻게든 발악은 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이미 오소 패전 소식으로 인한 패배감과 무력감이 있었고 시각적으로 거대한 재앙이 보이기까지 하자,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 보였다.
“형님, 부곡들은 다 챙겼습니까?”
“그래. 그리고 따라가고 싶어 하는 애들까지 다 챙겼다.”
장합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이제 진짜 원가와 척을 져 버린 것입니다.”
고람은 장합의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우,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 혹여 화마가 잡힌다면 분명······.”
그때, 미세한 땅울림을 감지한 장합이 고람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손동작으로 고람과 부곡들에게 명을 내리며 함께 둔영에 연결된 대로에서 벗어나 해자로 조심히 내려갔다.
장합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서는 흙먼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저건 기마병들 같은데··· 순우 도독을 구원하러 간 경기병들은 궤멸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 조조에게 대패하여 어디로 흩어졌는지도 모른다고 보고 받았죠.”
“그럼 저건······.”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고람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철기(鐵騎)이지 않는가?”
장합은 해자에서 기어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에게 효시를 날린 인물이 저기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이나 다름없던 서편을 말하는 것이냐?”
고람도 어느새 해자에서 기어 나와 진흙을 털어 내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갑주 사이에 손을 넣었다. 이에 장합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형님, 뭐 합니까?”
“그··· 뭐냐. 저들이 잘못 알고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니 옷가지라도 들고 우리를 알아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장합도 고람의 말에 설득이 되어 잠시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으음, 그냥 관도 옆에 서 있으면 될 겁니다. 적대하지만 않고 그냥 둔영에서 멀어지면 아마 잔병(殘兵, 패잔병)으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달리 그들이 둔영에서 멀어지기 위해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기와 상산병들이 그들의 뒤를 잡았다. 자신들을 포위한 기병들을 보며 고람은 침을 삼켰고 장합과 부곡들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때, 장료가 화극을 그들에게 겨누며 물었다.
“원소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놈 있는가?”
그때, 승태가 뒤에서 나와 말했다.
“장 장군, 말을 그리하지 말라니까요. 그럼 알고 있어도 다른 곳으로 알려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혹여 여기 장합이나 고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장료는 잠시 멀리서 아직도 불타고 있는 원소군의 둔영을 바라보다가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원소를 저런 불바다에 빠트린 인물이 이런 꼴을 하고 나온다? 이미 어디 빠져나와 이 광경을 감상하고 있을 듯싶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때, 제 이름을 들은 고람이 뛰쳐나와 고개를 박았다.
“소인이 고람이옵니다.”
정말로 나올 줄 모른 승태는 깜짝 놀란 눈으로 장료를 바라보았다. 장료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진짜가 아닐지 모르지 않습니까. 장합도 없는데.”
그때, 장합이 걸어 나오며 예를 표했다.
“그때의 서신은 잘 보았습니다. 소인이 장준예이옵니다.”
승태는 말에서 내려 고람을 일으키고 장합의 손을 잡았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조승태입니다. 이렇게 원 공의 몰락을 보니, 공들의 귀부는 한신이 한나라에 귀부한 것과 같아 보입니다. 조 사공께 이는 참으로 홍복이옵니다.”
승태의 행동에 둘은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항장에 진흙 범벅인 자신들을 말에서 내려 직접 반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승태는 고개를 돌려 원소군 둔영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고작 장합의 배반으로 오소의 군량이 털려 수습할 시간도 없이 붕괴했다는 이야기에 과장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저건 정말로 수습할 시간도 없기는 했겠네.’
장료는 그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원소를 잡거나 죽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장료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
“원소는 어디로 갔는지 아시오?”
장합은 장료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마를 이끌고 여양으로 향했을 겁니다. 가장 가까운 곳을 생각하면 연진을 생각하겠지만, 원 공도 지금의 상황의 크기를 보고 아마 조조가 치고 들어올 것이라 생각해 재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장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고삐를 당겼다. 승태가 그에게 말했다.
“곽도나 원담을 보면, 살려 두시는 게 좋을 같습니다.”
장료는 승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는 자신의 공이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승태의 말은 약간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입니까?”
“무능한 인물이 계속 군을 담당해 줘야 아직 남은 잔당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료는 승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말을 돌려 사라졌다. 장합은 승태의 말에 놀란 마음이 들었다. 승태가 마치 원소의 군영을 훤히 아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말에 타시지요.”
승태가 손짓하자, 뒤에 있던 병사와 조운이 남은 말을 끌고 다가왔다.
“상산에서 구한 좋은 말입니다. 마음에 들 겁니다.”
조운의 말에 장합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좋아 보이는구려. 혹, 그대가 중원에 백마의종(白馬義從)을 부활시켰다는 그 장수인가 보구려. 내 듣기로는 유 사군의 두 의형 옆에서 보좌한다고 들었는데.”
“아군의 진영을 꽤 잘 아시나 봅니다.”
“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니 말이요. 원 대장군의 눈이 꽤 조 사공의 가까이 많이 붙어 있으니 말입니다. 두 의제는 유 사군을 찾아갔나 봅니다?”
조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합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남을 흔들겠다고 유 사군이 갔는데, 아직 아무런 소문이 없는 것을 보면 다른 짓을 하러 간 것 같군요.”
승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여남에는 고 도독이 군을 이끌고 있고, 허도는 순 상서령이 버티고 있는데, 어디 쉽겠습니까? 아마 유 사군도 최대한 방법을 찾겠지만, 이미 관도에서 대패에 힘이 많이 빠졌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군요.”
“이만 말에 빨리 타시지요. 아마 장 장군께서 잔병들을 미친 듯이 쫓고 있을 것이니, 저희는 저 화마를 정리해야지요.”
***
원소 본대의 대패 소식이 오소에 들려오자, 조조는 급한 마음에 바로 조인에게 달려가 말했다.
“빨리 원소를 쫓아야 한다. 황하를 건너기 전에 말이다.”
그 말에 조인은 빠르게 멀쩡한 기병들을 모았고, 그렇게 모인 기병들은 오소의 밖에 진열하였다.
“빨리 움직여야 하니 조인과 서황은 먼저 선봉으로 가장 날랜 기병 팔백을 이끌고 가라. 나는 장수, 우금, 악진, 가후와 함께 움직이겠다. 나머지를 이끌고 움직이겠다.”
조인과 서황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탄 채 바로 앞에 늘어선 기병 중 눈에 띄는 이들을 모조리 발탁하여 사라졌다.
조조는 하후돈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군이 적을 쫓으면, 이곳에 남은 포로들은 모두 묻어 버리게.”
하후돈은 화들짝 놀란 눈으로 조조를 바라보았다.
“자네, 미쳤나! 갱살을 하자, 이 말이야!”
“원가의 포로이네! 아직 원가가 건재하니, 분명 화근이 될 수도 있어. 남은 병사의 숫자보다 수배는 많은 이들인데, 어찌 관리하려 그러는가.”
“아만!”
“원양! 잘 생각하게! 저들은 적이야!”
“적이라니! 포로 아닌가!”
“명령이네.”
조조의 말에 하후돈은 주먹을 꾸욱 쥐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만··· 자네, 진정······.”
“명령이라 말했네.”
“······알았네. 자네의 결정이니 아주 그른 것은 아니겠지.”
“허유도 이를 참관하게 하게.”
“경고인가?”
“뭐, 비슷한 것이지.”
하후돈은 한숨을 내뱉으며 돌아 나갔다. 조조는 포로들과 전투 이후 부상병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자마자 바로 병력을 모아 연진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숨어 있던 장비의 군사들도 산조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