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y Beloved, I Present You My Ecstatic Nightmare RAW novel - Chapter (201)
사랑하는 당신에게, 나의 황홀한 악몽을 드립니다 [외전] 10화. 은방울꽃이 하는 말 (10)(201/202)
[외전] 10화. 은방울꽃이 하는 말 (10)2024.06.20.
클로버를 꺾던 알리네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머니가 여기를 알아요?”
남자가 말했다.
“네 어머니가 여기를 발견했지.”
그는 푸르게 자라난 풀밭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화관을 만들곤 했단다. 너만 한 나이였지.”
“전 화관을 만들 줄 몰라요.”
알리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클로버를 꺾어 다발을 만들었다가, 마치 종이로 만든 꽃가루를 뿌리듯 머리 위로 홱 던졌다. 크고 작은 클로버들이 빠르게 혹은 천천히, 펼쳐진 보닛처럼 떨어졌다.
“좀 더 자라면 네 어머니가 화관을 만드는 걸 가르쳐 줄 테니 기다리거라.”
“아저씨가 가르쳐 주시면 안 되나요?”
남자가 웃었다.
“나는 화관을 만들 수가 없다.”
그는 허리를 숙이더니 손끝으로 풀밭을 한 번 쓸었다. 그의 손이 닿은 자리가 칙칙한 잿빛으로 물들더니, 생생하던 클로버가 순식간에 시들어 땅으로 돌아갔다.
알리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손을 댄 곳만 초록색이 없어져, 마치 누군가가 그 부분만 꽃삽으로 푹 떠낸 것처럼 보였다.
“클로버들은 어디로 간 거예요?’
“일찍 겨울을 맞았지.”
“내년 봄에는 다시 피어요?”
남자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글쎄.”
그는 알리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년이 될 수도, 혹은 내후년이 될 수도. 어쩌면 십 년 후일 수도 있단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려요?”
“허무하게 삶을 잃었을 때 의욕이 꺾이는 건 인간만이 아니니까.”
알리네는 아기 새처럼 뾰족 내민 입술을 오물거렸다.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따금 어머니가 들려주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웠다.
“클로버들은 슬픈 건가요?” 알리네가 물었다.
“글쎄, 지금은 그저 당황스럽겠지. 놀랐을 테고. 슬픔은 그 후에 찾아온단다. 깜짝 놀라 두근거리던 심장이 제 속도를 찾으면, 그제야 비로소 인사를 하며 문을 두드리는 게 바로 슬픔이지.”
“아저씨도 놀라고 슬펐던 적이 있어요?”
남자의 눈이 깜빡였다. 알리네는 어머니와 똑같은 그의 붉은 눈동자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본 적 있던 어머니의 티아라에 박힌 루비와 꼭 같은 색이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
남자가 대답했다.
“이제는 놀랍지도 슬프지도 않아.”
“난 놀라는 게 싫어요. 누가 날 깜짝 놀라게 하면 화가 날 것 같아요. 슬픈 것도 싫어요.”
알리네의 말에 남자는 빙긋이 웃으며 조그만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 그러나 어떤 인간도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슬픔을 느끼지 않고 살 수는 없나요?”
“그렇게 되면 너는 괴물이 되고 말 거야.”
알리네는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다가 발치의 은방울꽃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꺾었다.
앞으로 나아가며 또 한 송이, 그리고 또 한 송이를. 남자는 아이가 꽃을 꺾으며 계속해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안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그래. 다음에 또 만나. 너무 놀라지 마. 응?”
내버려 두면 해가 질 때까지 꽃을 꺾으며 놀 수도 있을 만큼 집중한 태도였다.
그는 웅크리고 앉아 꽃을 따는 알리네의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그가 사랑했던 여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먼 후손이었던 다른 아이도.
라일라 크리스라드.
그 아이가 왜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영매일 뿐이라서? 아니다. 영매였던 마녀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그들 모두가 고통 속에 살았고 자식을 낳은 뒤에는 일찍 죽었다. 혼자 남겨진 아이들은 미치거나 혹은 미치고 싶어 했고 바딘은 그럴 때마다 고통을 느꼈다. 인간이 아님에도 그러했다.
하지만 라일라를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외롭고 고독한 삶을 지켜보았지만 너무나 막연한, 소리 내어 말하기는커녕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운 허무맹랑한 희망들이 자꾸만 고개를 들려 했다.
그리고 하이언모리크의 자손이 나타나 그 아이를 데려갔을 때, 그는 비로소 라일라가 영구히 지속되는 고독의 샘에서 자신을 구해 줄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 이것 봐요. 어머니가 좋아할까요?”
알리네가 조그만 손안에 가득한 은방울꽃을 내밀었다. 남자는 그렇다는 듯 싱긋 웃고는 알리네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제 돌아가야 하겠구나.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를 찾아 세상의 끝에 있는 절벽까지 달려가기 전에.”
“세상의 끝에는 절벽이 있나요?”
“아주 까마득한 절벽이 있지.”
“그 아래에는 누가 살아요?”
남자의 붉은 눈동자가 한순간 이채를 띠었다.
“아무도.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단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아주 조용한 곳이지. 이 말을 네 어머니에게 전해 주겠니, 알리네?”
“어떤 말을요? 세상의 절벽요?”
고개를 저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이번에는 알리네를 품에 안은 채였다.
“이렇게 말하렴. ‘너는 틀림없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네가 인생에서 감내하여야 했던 고통은 끝났고, 릴리트 역시 너를 축복하였으니 너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는 삶을 살 것이다’라고.”
기억할 수 있겠니? 남자가 물었지만 알리네는 대답이 없었다. 양손에 은방울꽃 한 아름을 꼭 쥔 채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
라일라와 유스타르가 광장의 꽃을 모조리 사서 왕성으로 돌아왔을 때, 성안은 발칵 뒤집어진 후였다. 놀이방에 있던 알리네 왕녀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알리네!”
라일라는 울다 기절한 유모를 걱정할 새도 없이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자신의 방, 알리네를 위한 서재, 놀이방, 곳곳을 다 뒤졌지만 아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찾았어요?”
다른 복도를 통해 빙 돌아온 유스타르가 온통 흐트러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으며 물었다. 라일라가 고개를 젓자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안 보여요. 유스타르, 알리네가…….”
“진정해요, 라일라. 걱정하지 말아요. 알리네는 왕성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숨바꼭질이라도 하다가 어딘가에서 잠들었을지 몰라요.”
“혼자서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라일라의 언성이 높아지려는 순간, 유스타르가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진정해요, 라일라. 괜찮아요. 알리네는 괜찮을 거예요. 당신이 너무 놀라면 배 속의 아기들도 엄마에게 큰일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랄 거예요.”
“알리네를 찾아야 해요.”
라일라가 숨을 들이켜며 흐느꼈다.
“그 애가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찾아야 해요.”
유스타르가 말했다.
“찾을 수 있어요. 반드시 찾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시종들은 왕성 구석구석을 뒤지며 알리네를 찾아다녔다. 드나들던 귀족과 관료들의 귀까지 알리네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자 소란은 더욱 심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휘장 뒤를, 어떤 사람은 방 안의 모든 옷장 안을, 또 어떤 사람은 선반까지 열어 보며 어린 왕녀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라일라 역시 이성적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성 곳곳을 누볐다. 멜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고 유스타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오로지 딸을 찾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알리네를 잃어버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문득 밀리아의 얼굴이 떠오르자 등줄기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알리네가 영영 돌아올 곳을 찾지 못한다면? 그래서 살았을 때의 추억과 생각이 모두 흐릿해질 때까지, 수십 번의 겨울과 수십 번의 달밤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지내야 한다면…….
“알리네!”
라일라의 목소리가 소란한 복도를 쨍! 하고 울렸다. 하녀들은 임신한 그녀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연신 전전긍긍하면서 뒤를 따라다녔다.
“알리네, 어디 있니? 대답하렴!”
아무 소리도,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놀이방에 있던 아이가 어디로 간 걸까? 왕성을 나갔을까? 그렇다 해도 그 어린아이의 걸음으로 정원을 다 가로지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곳곳에 사람이 있는 왕성에서는 더욱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알리네, 어머니가 왔어. 숨지 말고 어서…….”
“왕후 마마, 찾았습니다!”
멜이 멀리서 달려오며 외치는 소리에 라일라가 몸을 홱 돌렸다. 그녀를 따라다니던 하녀들은 기겁을 하며 라일라를 따라 보속을 바짝 높였다.
“어디에? 멜, 알리네가 어디 있어?”
“놀이방에 계세요. 정말 이상해요. 아무리 찾아도 안 계셨는데 꼭 처음부터 거기 계셨던 것처럼…….”
라일라는 멜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놀이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드레스 자락을 휘감아 쥔 채 곧장 계단을 뛰어올랐다. 두 칸, 세 칸씩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보며 모두들 기겁하며 길을 비켰다.
“알리네!”
놀이방의 문을 밀치고 들어간 라일라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알리네는 멜의 말대로 놀이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동화책을 펼친 채, 은방울꽃이 활짝 핀 초원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앉아 있는 알리네의 주위에도 아직 싱싱한 은방울꽃들이 흐드러지게 널려 있었다.
“알리네, 이게 무슨 일이니? 대체 어디를 갔던 거야? 어머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그제야 책에서 눈을 뗀 알리네가 라일라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그만 손으로 눈가를 문질러 주었다. 라일라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알리네, 너 대체 어디에…….”
“은방울꽃을 꺾으러 갔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