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0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05화(105/325)
< 105. 내 아이디어 무제한! >
다음 날 아침, 한길은 해가 뜨자마자 수도원으로 향했다.
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고 들었지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버렸다. 그 이유는…..
“괜찮으십니까?”
“네.”
“정말로요?”
“네.”
서둘러 말에서 내리는 한길을 보고 안내역을 맡은 하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한길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말은 한길을 떨어트리려고 작정했는지, 계속 엇박자로 움직이는 바람에 한 시간 내내 몽둥이로 곤장을 맞으며 온 기분이었다.
“정말 괜찮으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걸을수록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한 통증이 꼬리뼈에서 척추로 기어 올라왔지만, 최대한 내색을 안 하며 걸었다.
‘승마를 배워야 하나….’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떨쳐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말 타는 방법까지 배울 시간은 없으니까.
“햄프턴 코트에서 온 마크 맞나요?”
“네, 맞습니다.”
수도원 입구에는 짙은 갈색 로브를 입은 수도승이 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승이라면 조금 더 검소한 차림새일 거로 생각했는데, 입고 있는 로브의 옷감이 한길의 옷보다 좋아 보였다.
“이곳의 키치너(kitchener)인 휴입니다. 그… 일단, 조금 휴식을 취하시겠습니까?”
“아뇨, 바로 시설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수도승은 몰래 눈알만 굴리며 한길의 걸음새를 훔쳐봤지만, 시키는 대로 안내를 시작했다.
한길이 헨리 국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수도원은 얼마 전, 국가에서 진행한 수도원 실태 조사 결과 폐쇄가 결정된 곳이었다.
그 이유는 과도한 사치.
수도원장은 징계를 받았으며, 이곳에 생활하는 수도승들은 다음 주면 다른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긴다고 했다.
그래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원은 아닐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수도원에 수도승보다 하인이 더 많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곳이 허브가든입니다. 이쪽은 생으로 먹을 수 있는 허브, 이쪽은 조리해야 먹을 수 있는 허브죠.”
수도원 한쪽에 마련된 정원은, 왕실 정원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아니, 오히려 궁전보다 허브 종류가 더 많았다.
“이건 몇 년 전에 카탈로니아에서 온 순례자가 선물해 준 허브입니다. 몇 번을 죽어버려서 재배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유용하게 쓰고 있죠. 향이 엄청 강한 편인데 한 번 끓여서 조리하고 말렸다가….”
“설명은 괜찮습니다. 그보다, 하나씩 먹어봐도 될까요?”
“네, 뭐….”
그대로 두면 끝없이 떠들 것 같아서 미리 저지하자, 수도승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굳이 저 사람의 입을 통해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목향(elecampane, 1등급)이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 [피버퓨(feverfew, 2등급)가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 [양지꽃(cinquefoil, 1등급)이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더 빠른 방법이 있었으니까.
남김없이 모든 재료를 시식한 후 찾은 곳은, 수도원의 맥주 창고였다.
이 역시 왕궁과 버금가는 규모였다.
“한 번 드셔보시죠. 이런 맥주는 드셔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마른 과일을 한번 넣어본 건데, 이 달달하면서 꽉 찬 향이 매력적이죠.”
수도자가 건네는 맥주는 그의 말대로, 향이 좋았다. 과일향기가 가득하고 토피 사탕에서 날 법한 달달함이 특징이었는데, 끝 맛이 매캐해서 과하지 않았다.
“이건 뭘 넣어서 만든 거죠?”
“그건 우리 수도원 사람들만 아는 비밀인데…..”
“이제부터는 제 수도원이죠.”
“그건… 그렇죠. 그게 사실은….. 유칼립투스를 조금 넣습니다. 그러면 과일 향이 더 도드라져서….”
“원래 유칼립투스를 쓰나요?”
“아뇨, 이건 저희 비결이죠. 그냥 한번 해봤더니 맛이 좋길래….”
왕궁에서는 이미 알려진 제조법을 사용한다면, 수도자들은 다양한 제조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순례자들과 귀족들이 기부한 식재료로.
“이것도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저희 수도원은 치즈도 유명하죠. 일부러 이걸 먹으러 방문하는 순례객들이 있을 정도거든요.”
치즈 조각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악취가 났다.
몇 년은 빨지 않는 양말과 비료를 섞은 고약한 냄새였지만, 용기 내어 입에 넣자,
“….?”
“맛있죠?”
“네….”
크리미하면서도 톡 쏘는 홉의 향, 풋풋한 잔디 향과 잘 구워진 아몬드 맛이 나는 치즈였다.
향과 맛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마치 청국장처럼.
“저희가 만드는 맥주로 염지한 치즈입니다. 염지를 하면 아무래도 냄새는 더 고약하지만 조금 더 복합적인 맛이 나죠. 그리고 저희는 꼭 당일 짠 젖만 사용합니다. 여기서 한 시간 거리에 저희 목장이 있는데….”
“목장이요?”
“네.”
수도원의 부는 어마어마했다.
소, 양, 염소, 돼지 등 가축만 600 마리를 키우고 있었으며, 이 인근에 보이는 모든 땅이 수도원의 소유라고 했다. 지금은 소작농들에게 세를 놓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과 순례객으로부터 받는 십일조도 상당했고, 템스강에서 잡히는 생선의 일부도 매일 기부된다고 했다.
“물론, 십일조는 수도원이 닫히면 추가로 걷을 수 없지만요.”
단순히 수도원 건물만 얻는 게 아니라 가축 600마리와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부동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모처럼 오셨으니, 식사도 하고 가시겠습니까?”
“아니…. 아, 네, 잠깐 먹고 가겠습니다.”
빨리 궁으로 돌아가는 게 옳지만, 거절을 할 수 없었다.
궁중 주방에서 일하고 있지만, 한길은 이곳의 음식을 많이 먹어보지 못했다.
요리사란 그런 직업이니까.
남이 먹을 요리를 매일같이 차리면서, 막상 당사자는 끼니 한번 제대로 챙기기 힘들다.
하지만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수도원의 한 끼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어차피 왕비의 점심 메뉴에 대한 지시는 주방 요리사들에게 미리 전달해 놨으니 빨리 먹고 가면 되는데….
“아직도 더 있나요?”
“왜, 부족하신가요? 그러면 더 갖다 드려도…”
“아니, 됐습니다.”
수도원의 식사 역시 상상과는 달랐다.
특별한 손님이 왔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코스 요리가 12개나 나왔으니까.
개중 상당수가 육류 요리였고.
아까 시설을 돌아봤을 때 얼핏 순례자들이 먹는 요리를 봤었다. 콩이랑 채소만 넣어서 걸쭉하게 삶은 콩죽과 빵이 전부였는데. 수도자들이 먹는 요리는 전혀 달랐다.
“이 거위는 어떻게 만든 거죠?”
“거위 배 안에 과일을 넣습니다. 모과, 배, 포도를 채워 넣고 구운 후, 다 구워지면 과일만 따로 꺼내서 허브랑 마늘을 넣고 와인 소스를 만들어줍니다.”
왕실에 버금가는 정교한 조리법.
치즈와 계란을 넣은 촉촉한 치즈케이크도 있었고. 다진 돼지고기와 생강, 설탕, 심지어 값비싼 사프란을 사용하는 요리도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렌지?”
“네, 얼마 전 들여왔는데 상하기 전에는 먹어야 해서….”
궁전에서도 비싸서 왕족만 먹는 오렌지를,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수입해서 먹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건 장미를 끓인 물과 오렌지를 끓인 물을 넣어서 달걀과 한번 섞어주고 먹거든요. 동쪽에서 먹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국적인 요리도 많았다.
수도승의 설명에 의하면, 십자군 전쟁 당시 아랍권에서 들여온 식재료나 책을 연구해서 만든 요리라고 했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호화로운 식단.
종교인으로 보면 비난받아야 마땅할 행동이긴 하나…. 요리인으로서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곳은 엄청난 보물창고다.
그리고 이 보물창고는, 한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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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궁으로 왔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주방에 도착하자마자 왕비의 호출이 있었다.
“잘 다녀왔나?”
“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왕비는 생각보다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원래라면 이 시간에 알현실에 있어야 할 텐데, 왕비는 내실에 있었다. 왕비의 주위에는 시녀들은 정신없이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었고.
“어젯밤에 무슨 재밌는 일이 있었나 보지?”
“네?”
“걸음걸이가 이상해서 말이네.”
“전하, 그런 농은 삼가셔야죠.”
왕비의 말에 한길이 어리둥절하자, 주변 시녀들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한길은 익숙지 않은 승마의 영향으로 아직도 절뚝이고 있었다. 그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설마 왕비라는 사람의 입에서 저런 농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한참을 기다려도 시녀들은 시시콜콜한 농담만 주고받고 있었다. 결국, 한길은 단호한 얼굴로 용건을 꺼냈다.
“오늘 저녁 연회 메뉴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녁? 그냥 편하게 해주게, 맛있는 거로. 오늘은 손님이 따로 없으니까.”
“네? 헨리 전하는….”
“오늘은 안 오시네.”
“왜, 무슨 일이 있나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어제만 해도 매일 찾아올 것처럼 굴더니.
역시 헨리 8세의 변덕은 소문대로인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거절했네. 오늘은 건강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볼에 홍조가 가득하고 얼굴은 기름칠한 마냥 빛이 나고 있다. 목소리에도 여느 때보다 힘이 넘치고 있고.
“왕비 전하께 너무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다시 전하를 초청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잊히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한길이 용기 내어 제안을 했지만, 왕비는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렸다.
“역시, 자네는 연애는 한 번도 안 해봤군. 나이가 몇인데.”
“지금은 농을 할 때가 아닙니다. 식사 얘기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언젠가 자네도 어른이 되면 알 걸세.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니, 너무 걱정 말고.”
왕비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말투였다.
지금 상황에서도 저런 소리를 하는지….
왕비의 성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면 저는 가서 저녁을 준비하겠습니다.”
한길은 답답함을 눌러 담고 저녁을 준비했다.
왕비의 저녁은 비타민이 풍부한 소렐 수프와 칼슘이 가득한 생선 위주의 식단을 준비했다.
엘리자베스의 식단은 이번에는 채소를 시도해 봤다. 오이를 정교하게 조각하여 공작새 모양으로 만들었다.
“와! 새! 예뻐!”
엘리자베스는 역시나 눈을 반짝이며 공작새를 소중히 안아 들었지만,
“으엑! ”
입에 넣자마자 인상을 쓰면서 바로 뱉어냈다.
역시, 세 살 아이에게 오이는 무리였나…..
“그래도 제대로 먹어야지.”
“맛이가 없어.”
“녹색은 엄마가 좋아하는 색인데, 먹어주면 안 될까?”
한길은 모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최대한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속에 담아둔 불만이 표면에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아직도 전하를 안 부른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보군.”
“…. 아닙니다.”
“아니긴. 잉글비, 지금 만들고 있는 걸 들고 와 봐.”
왕비가 갑자기 옆에 있는 시녀에게 지시를 하자, 시녀가 바느질하던 천을 들고 왔다.
녹색 벨트였다.
화려한 비단 천에 한쪽에는 HA라는 이니셜이 수놓아져 있는.
“어때?”
“솜씨가 좋으십니다.”
“그게 다인가?”
남자에게 벨트를 보여주면서 무슨 말을 기대하는 건지……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명색이 왕비이니까.
“오늘 내가 몸이 안 좋은 대신에 이걸 헨리 전하에게 보냈거든. 전하의 벨트 하나.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 것도 세 개.”
“……”
“잉글비, 아까 그레이트 홀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다고 했지?”
“아, 지금 궁중에 떠돌고 있는 소문이요?”
시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관총처럼 숨도 쉬지 않으며 말을 쏟아냈다.
“국왕 전하께서 어떤 여인의 손수건을 팔에 묶고 다닌다는 소문이 아침부터 궁 안에 파다하게 퍼졌죠. 색이 화려한 손수건이니 아무리 봐도 그 수녀 같은 시무어는 아닐 테고, 새로운 레이디가 생긴 것 아닐까 한다죠?”
“그리고?”
“아, 오늘따라 국왕 전하가 하급 귀족들을 가까이하고 계시죠. 노리스 남작이나 모튼 남작 같은 사람들이랑. 심지어 모두가 같은 벨트를 하고 있어서 눈에 참 띄더라는 거죠. 그 벨트가 얼마나 아름다운 녹색인지….”
잉글비의 설명이 끝나자, 왕비는 한길에게 보란 듯한 시선을 던졌다.
“어때? 괜찮지 않나?”
“……”
“원래 연애라는 게 너무 쉬우면 재미없거든.”
“생각이 있으시면 일단 알겠습니다.”
“언젠가 자네도 어른이 되고 여인을 만나보면 무슨 뜻인지 알 테지.”
왕비의 말에 시녀들은 또다시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 답답한 여자야..’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한길은 간신히 인내심을 발휘하여 말을 삼켰다.
왕비의 말대로, 국왕이 손수건과 벨트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면,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하루 정도는….
안 와도 괜찮을 수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벨트를 멀리하면, 그 여운이 옅어진다는 표시 아닐까?
눈으로 국왕의 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서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설마…. 그래서 준비한 건 아니겠지?’
한길은 왕비가 있는 쪽을 다시 한번 바라봤지만, 왕비는 여전히 시녀들과 깔깔거리며 농을 주고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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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이번 퀘스트의 수확은 나쁘지 않았다.
로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특이한 허브도 잔뜩 얻어왔다. 게다가, 수도원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온 수제 맥주와 치즈도 서른 종이 넘었다.
특히 영국 수도원의 치즈는, 현대에서 내로라하는 프랑스산 치즈와 버금갈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아 있지 않다.
1536년, 한길의 퀘스트 시점으로부터 몇 달 후, 의회는 소규모 수도원을 대대적으로 폐쇄하는 법안을 통과하니까.
수도원이 닫히면서 이 비법들도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일단은 집에 갈까?’
한길이 정신을 차린 곳은, 고르메 키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각.
하지만…..
집에 갈 수 있을 리 없다.
손이 근질근질하니까.
한길은 바로 자신의 사무실을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냉장고를 뒤적이니, 미리 사둔 닭간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실험 삼아 파테를 만들고 남은 것이었다.
‘제대로 된 고기 사과를 한번 만들어볼까?’
영국에서 헨리 국왕에게 만들어준 메뉴 중 고기 사과가 있었다. 겉은 사과이고 속은 고기인 요리.
하지만 영국에서 만든 건, 완벽한 고기 사과가 아니었다.
저쪽에서는 젤라틴이 없어 마지못해 글레이즈를 만들었지만, 설탕 글레이즈는 식감이 조금 방해가 된다. 조금 더 매끄러운, 젤리 같은 식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보글보글.
한길은 작은 소스팬 안에 와인, 브랜디, 그리고 양파, 마늘, 타임을 넣고 끓였다. 모든 액체가 증발할 때까지, 계속 저으면서. 그러면 진득한 붉은 와인 소스가 완성된다.
닭간은 소금을 살짝 뿌려둔 후 비닐 팩에 넣어주고, 또 별도의 비닐 팩 안에는 방금 만든 와인 소스와 계란을 조금 섞어서 넣어준다. 세 번째 비닐 팩에는 버터를 넣어주고.
세 개의 비닐 팩을 제대로 밀봉한 후, 수비드 기계에서 20분간, 50도 온도로 데워준다.
충분히 데워지면 이 모든 재료들을 믹서기에 넣어 갈아준 후, 체에 걸러낸다. 최대한 부드러운 식감이 되도록, 세 번에 걸쳐 체에 걸러내고 오븐에서 살짝 구워준다.
완성된 파테는 일반 파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와인 소스가 들어갔지만, 소량뿐이라 색은 아직 연한 갈색이고 질감도 크림 같다.
닭간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음 틀 안에 넣어서 얼려둔다. 단단한 모양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동안 젤라틴을 만든다.
‘사과는 없네?’
아쉽게도 식당에 사과는 남아있지 않았지만, 대신에 귤이 넘칠 만큼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귤을 까서 작은 소스 팬에 넣고 물엿과 섞었다. 찬물에 담가둔 젤라틴을 섞어주고 약한 불에서 끓여주면, 밝은 주황색 액체가 완성된다.
얼음틀에 넣어둔 닭간이 충분히 굳으면, 동글동글한 닭간에 이쑤시개를 꽂아준다.
그러면 막대사탕 같은 모양이 된다.
사탕 알에 해당되는 파테를 아까 끓여둔 주황색 젤리 액체에 푹 담가주면, 정말 사탕처럼 주황색 옷이 입혀진다.
역시, 젤라틴을 쓰니 색감도 더 좋고 밀착력도 더 좋다.
냉장고에 넣어서 살짝 굳혀주고, 주황색 물감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닭간에 밀착해서 굳으면, 다시 한번 젤리 옷을 입혀준다.
이 작업을 다섯 번 반복하니…..
“진짜 귤이랑 똑같네?”
겉보기에는 일반적으로 먹는 귤과 똑같은 주황색 덩어리가 완성되었다. 바로 껍질을 까서 먹어야 할 것 같이 생긴.
스윽. 스윽.
작은 칼을 들고 와서 귤을 갈라보니, 그 안에서 연한 갈색의 파테가 나왔다.
반전.
알고 봐도 재밌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이 보면 더 재밌을 거다.
‘역시 설탕보다는 젤라틴이 훨씬 좋네.’
귤 모양의 파테는 발림성이 좋았다.
빵 한 조각을 토스트 해서 올려보니, 덩어리 없는 땅콩 잼처럼 고루 퍼졌다.
새콤달콤한 귤 향과 구수한 파테가 잘 어우러져 든든하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았다.
맛도 좋고.
무엇보다 재미도 있고.
‘혼자서는 이런 건 만들 생각도 안 했겠지?’
영국의 요리는 괴상했다.
음식으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그래서 더 자유로웠다.
새삼 느꼈다.
‘재미’에도 맛이 있다고.
‘판타지’에도 맛이 있고, ‘이야기’에도 맛이 있었다.
혀끝으로 느껴지는 맛은 아니지만, 미식 경험에는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맛이었다.
이건 한길이 지금껏 본 영상, 책이나 레시피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요리로 만들 수 있다.
갑자기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목록이 무한대로 늘어난 기분.
“그러면, 이제 현실에서도 한번 시험해 봐야겠지?”
때마침 좋은 시험 대상도 있고.
온갖 진미를 매일같이 입에 달고 사는, 미슐랭 요리가 일상식이라는 미국의 재벌, 페이튼.
주눅 들어야 정상이겠지만, 이상하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국왕도 만족시켰는데, 현실 재벌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 105. 내 아이디어 무제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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