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0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07화(107/325)
107. 요리? 조리?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설명을 듣고, 한대훈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이머시브(immersive) 다이닝이군요!”
“네?”
“좋네요. 단 두 명만을 위한 이머시브라…. 어떻게 보면 최고의 호사이기도 하고, 이쪽의 성의를 보여주기에는 그만한 게 없죠.”
“…..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커서요.”
“그렇죠. 허술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죠. 견적은 어느 정도 예상합니까?”
“그건 조금 더 디테일이 나온 후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세요. 일단 금액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작업해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금액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동공이 있는 대로 확장된 상태였다.
“대표님! 비용처리는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안되면 사비로 해야지.”
“아니, 왜 그렇게까지!!!”
비서실장은 길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지만, 한대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이 빌 페이튼과의 세 번째 만남이다.
그리고 페이튼은 모든 사람을 단 세 번만 만나보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디선가 만난 스님으로부터 ‘인연이 있다면 단 세 번만 만나도 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그리 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
두 번의 만남에서 별다른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차라리 강렬한 기억을 각인시키는 게 좋을지도.
#
전화를 끊자마자, 한길은 바로 검색부터 했다.
방금 한대훈으로부터 들은 생소한 단어.
이머시브 다이닝.
해당 키워드로는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연관 검색어로 ‘이머시브 공연’이 떴다.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형식을 넘어서 자유로운 공간적 형태를 띠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몰입형 공연’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관객이 극 안에, 또는 각 장면 안에 들어가는 진기한 체험을 하는 공연을 뜻했다. 2000년도 초중반부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예술 문화였다.
이머시브 공연은 연극계의 새로운 바람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한길에게는 익숙한 문화였다. 흔히 패션도 돌고 돈다고 하는데, 예술도 돌고 도는 모양이었다.
‘영어로 찾아볼까?’
영어로는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읽어보니….
신기하게도, 퀘스트 속에서 본 드라마를 곁들인 다이닝은 2020년에도 존재했다.
재밌는 점은, 이런 드라마화된 식사 문화가 영국에서 가장 발달해 있다는 것. 새삼 ‘이게 민족성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머시브 다이닝은 형태가 다양했다.
중세 왕족의 식탁을 그대로 재현한 식당도 있었다. 손님들이 중세 의상을 입고, 광대가 재주를 부리는 식탁에서 식사를 즐기는 ‘중세 연회’에 참여하는 컨셉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배경인 곳도 있었다. 기차의 식사 칸 안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사건이 일어나는 추리 다이닝 쇼였다.
‘미식 물리학자와 셰프의 실험실’이라는 주제로, 손님이 셰프의 실험용 쥐가 되는 곳도 있었다. 향, 질감, 색, 소리를 달리하는 실험을 통해 오감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코스요리가 제공된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재밌었다.
물론, 이걸 한길의 레스토랑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문화니까.
하지만.
빌 페이튼은 외국인이다. 그것도 왕년에 배우를 꿈꾸고 로키호러픽쳐쇼를 좋아하는 외국인. 드라마를 곁들인 식탁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길의 입장에서도, 도전해 보려면 지금뿐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현실에서는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수셰프에게 설명했지만,
“네? 이머시브 다이닝이요?”
수셰프는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이 뒷목으로 향하고 있었고.
“페이튼 식사는 다다음주 아니었습니까?”
“그렇죠.”
“셰프, 이머시브 다이닝 레스토랑은 대개 시즌제로 운영합니다.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걸 2주 만에 한다고요? 그것도 레스토랑을 정상 운영하면서요?”
“시간이 빠듯하죠?”
수셰프의 눈에 초점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니, 물리적인 시간도 그렇지만, 이런 컨셉을 다이닝에 적용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시작점은 있습니다.”
“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한길의 말에 수셰프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계산이나 일 처리를 할 때마다 수셰프의 눈에 비추는 그 빛이었다.
“그건 할 만하군요. 그러면 내일 중으로 메뉴를 결정하고 전체 연출을 확정 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필요한 소품과 세트를 제작하는 시간도 있으니까요.”
수셰프는 디테일에 강했다. 할 일이 명확하게 보이면, 순식간에 처리하는 효율도 뛰어났고.
하루아침에 한길이 요구하는 수많은 희귀재료의 공급처를 찾고, 재고 관리, 직원 관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 실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지는 모르겠군요.”
“수셰프도 모르세요?”
“셰프가 소품이나 무대를 다룰 일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셰프는 말이죠.”
“…..”
“…..”
둘 다 처음 시도하는 영역이었다.
결국, 한길과 수셰프는 브레이크 타임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조사에 나섰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무빙 LED 8개, 무빙 빔 8개, 딤머, 조명 컨트롤러, 포그머신 다 포함한 세트가 80만 원입니다.”
“딤머는 뭐죠?”
“조명의 조도를 조절하는 기기입니다. 저희 제품은 최신형이라 10개의 채널을 조절할 수 있죠.”
“그냥 간단하게 스포트라이트처럼 내려오는 조명이 필요한데요.”
“서스펜션 스포트라이트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프런트사이드 스포트라이트인가요?”
조명이나 장비를 대여하는 업체는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한국어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분의 통화 후,
“고객 님, 저희는 장비 대여와 설치만 해드립니다.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고객님이 결정하시면 되고요. 모델명을 말해주시면 재고와 견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상담원의 목소리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한길 역시 미안함을 느꼈다. 이들 입장에서는 한길이 난감한 손님일 테니까.
만석으로 바쁜 레스토랑에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 ‘예전에 영화에서 본 음식이 있는데, 까만 샌드위치 점박이 빵에 갈색으로 튀겨진 햄과 동글동글한 빨간 구슬이 올라간 요리를 달라’고 주문한다면, 아마 자신의 웨이터들도 똑같이 대응할 거다. ‘손님, 메뉴에 있는 걸 골라주세요’라고.
한길이 전화를 끊자, 다른 업체와 연락하던 수셰프도 통화를 마친 상태였다.
“이건 조금 더 공부하고 알아봐야겠네요.”
“네, 그것도 그렇지만. 조명이나 기기는 그렇다고 치고, 가장 큰 문제가 소품입니다. 소품이나 무대 제작 업체는 아직 찾지 못했거든요.”
한 발을 내디뎠는데, 이상하게 갈 길이 더 멀어졌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죠. 아, 말 나온 김에 와인도 같이 곁들이면 좋을 것 같은데.”
“저번에 온 데니 신, 그 친구도 괜찮지 않았나요?”
“페어링으로 보면 최고였죠..”
“그러면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
“오랜만이네요.”
다음 날 아침, 익숙한 남자가 고르메 키친을 찾았다. 데니 신이었다.
수셰프의 말에 의하면, 데니 신은 연락을 받고 뜬금없이 ‘한 시간 내로 찾아가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말릴 새도 없이.
“직접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아직 확정된 메뉴가 없어서요.”
“괜찮아요. 어차피 지나가던 중이었으니까요.”
메뉴가 없는데 와인 페어링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어쩔 수 없이 전체 컨셉에 대해 설명만 하자,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와, 형! 진짜 재밌겠는데요?”
‘형’이라는 단어에 한길도 수셰프도 움찔거렸지만, 데니 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데니는 특유의 과장된 움직임으로 홀을 둘러보면서 손가락으로 각도를 재는 듯한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장소는 여기에서 하시게요? 테이블이 너무 많아서 동선이 꼬일 것 같은데. 그렇다고 테이블을 다 치울 수도 없고.”
“혹시 데니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있나요?”
“말 놓으세요, 형. 그리고 다이닝 경험은 없지만, 무대 경험은 있어요.”
“역시.”
“역시?”
절로 납득이 가는 순간이었다.
모든 배우가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데니 신은 무대 느낌이 성격에도, 몸짓에도, 말투에도 배어 나오는 사람이었다.
“소품은 안 만들어요? 누구한테 부탁했어요?”
“아직 알아보는 중이에요.”
“말 놓으라니까요. 주변에 세트 디자인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한번 물어볼까요?”
순간, 허공에서 한길과 수셰프의 눈이 마주쳤다.
“안개를 내는 기계도 있어?”
“아, 그거 재밌죠. 저도 몇 번 빌려 썼는데 그거 틀어놓고 공포 영화 보면 죽이거든요. 이 친구는 없지만, 조명이나 무대 장치 세팅하는 친구도 있어요.”
“…..”
데니 신은 말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분주하게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된데요.”
“어?”
“앞으로 한 달간은 쉬는 기간이라 알바는 환영이라는데요? 이 친구, 실력은 확실해요. 내일 오라고 할까요?”
“그러면 감사하지.”
“그러면 전 이만! 근처에 또 다른 친구가 있어서 들러야 하거든요. 메뉴 나오면 연락주세요!”
데니 신은 등장만큼이나 갑자기 사라졌다.
돌풍 같은 사람이었다.
“그… 그래도 어찌어찌 해결은 됐네요?”
“그러게요?”
얼떨결에 그 돌풍을 정통으로 맞은 수셰프와 한길은 어이없이 웃기만 했다. 가장 우려했던 세트 제작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이런 경우도 있군요.”
“그러니까요. 가끔 살다 보면 그렇더라고요. 세상이란 게 의외로 좁고 사람은 다 연결되어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걸림돌이 생기기도, 동아줄이 내려오기도 하죠.”
“일단 가장 큰 고민거리는 해결되었으니까, 저녁에 다시 컨셉 얘기를 하죠.”
“예스, 셰프.”
#
하지만 저녁에도 회의할 시간은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방문객 때문이었다.
“뭐 그리 바빠 보여?”
마감 시간에 맞춰서 찾아온 이는 노셰프였다.
노셰프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었다.
“너네는 항상 마감하고 스태프 밀 한다며? 오늘은 내가 특식을 해주려고.”
“선배가요?”
‘선배’라는 단어에 노셰프가 따끔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 형이 왜요?”
“왜긴, 받았으면 돌려줘야지.”
노셰프는 들고 있던 짐 더미를 풀어 내용물을 조금 보여주었다. 냉장고 사용 대가로 한길이 건네준 드라이에이징 비프였다.
“우리 애들은 돌아가면서 다 한 점씩 먹였는데, 이쪽도 먹여야지 않을까 싶어서. 보나 마나 네놈은 바빠서 애들 챙길 생각도 안 했을 것 같고. 애들은 몇 명 남아있지?”
“주방에 열 명, 홀에 여섯 명이요.”
“딱 좋네! 주방 좀 쓸게.”
노셰프가 주방에 들어가자, 요리사들이 홀린 듯이 입을 떡 벌리기 시작했다. 대선배이자 스타 셰프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야식을 만들어 줄 거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
“선배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필요한 건 뭐든 말해 주십시오!”
“아, 선배님! 저도요!”
경우를 비롯한 욕심이 많은 몇 명의 요리사들은 노셰프의 보조 역할을 자처했다. 그동안 남은 스텝들은 홀에서 자리를 세팅하고 있었고.
“자리가 하나 모자란데? 2인석 테이블을 하나 더 붙일까요?”
“아니, 그냥 내가 모서리에 앉을게.”
얼떨결에 온 손님 덕분에 홀이 분주해지던 그때,
“뭐 하는 거예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아, 사장님! 해외에 계신 거 아니었나요?”
“어제 귀국했어요.”
“매니저에게 따로 연락은 못 받았는데, 혹시 무슨 일 있나요?”
갑작스런 카키의 방문에 수셰프는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고, 카키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냥 2층에 볼일이 있어서 온 김에 들린 거예요.”
“2층이요?”
“2층 피자집 있잖아요. 조만간 나가거든요. 그쪽 사장님이랑 얘기하려고 영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왔거든요. 인사만 하고 가려 했는데.”
카키의 시선이 뒤에 세팅된 테이블로 향했다.
“타이밍 죽이네요.”
“준비 됐다! 어? 카키! 오랜만!”
오늘은 정말 어수선한 하루였다.
“테이블 하나 더 붙일까요?”
“뭘 그렇게 번거롭게 해? 어른들끼리 얘기할 테니까 니들은 니들끼리 먹고 있어!”
결국 주방 식구들은 기다란 테이블에. 그리고 4인석 테이블에는 한길과 수셰프, 노셰프와 카키만 따로 앉게 되었다.
노셰프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야식으로 먹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섯 가지의 소스를 곁들여 먹는 형식이었는데, 소스 하나하나에 재료의 정수가 느껴지는, 깔끔하면서도 강렬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와, 대박. 무슨 고기가 이리 맛있어요?”
“뭐야, 카키, 이걸 아직도 안 먹어봤어? 니들, 안 친하냐?”
“뭐,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니까요. 친근하게 대하고 망하느니, 할 일 하고 수익을 내는 게 좋아요.”
“돈도 많으면서 무슨 돈독이 그리 올랐는지.”
“돈은 많을수록 좋죠. 아, 셰프님, 혹시 확장할 생각은 없어요? 2층도 몇 달 후에 자리 나는데.”
“없습니다.”
“저거 또 비워두면 귀찮아지는데. 왜요?”
“지금도 벅차요.”
한길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카키가 대놓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길에게 지금 식당을 확장하는 건 의미 없었다. 단순히 매출을 올리려면 2층까지 확장하는 편이 좋지만, 식당이 너무 커지면 운영하는데 그만큼 에너지를 빼앗긴다.
그보다는, 이런 외부 행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양적 확장은 의미가 없다.
양보다는 질.
식당이 커봤자 판매량만 신경 써야 한다.
지금 이 스테이크처럼.
“이 스테이크 가격을 10만 원으로 올려도 팔릴까요?”
“뭔지 알면 팔리긴 하겠지. 뭔지 알리는 게 문제긴 하지만.”
“일단 기사가 하나 나가긴 했는데…”
“뭐야, 이거 빨리 팔아야 하는 거예요?”
한길이 노셰프에게 가격에 대한 상담을 하자, 카키는 느릿하면서도 여유 넘치는 동작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양한 각도로 스테이크를 촬영하던 카키는,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을 담았다. 손으로 이상한 표시를 하고 나지막하게 한 마디만 던지면서.
“프랙싱.”
?
“….. 뭐 하는 거예요?”
“별스타 올렸는데요? 아마 2-300명은 건지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카키는 팔로워가 100만 명이 넘었다.
대부분이 충성도 높은 팬들.
“말했잖아요, 홍보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하라고.”
“그러네요.”
왜 카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안 했는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한길은 자신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가게가 자리를 잡는 기간 동안에는 ‘연예인 카키’의 식당이 아닌, ‘셰프 이한길’의 식당으로 알려지고 싶어 카키를 통한 과한 홍보는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자리를 잡았다. 혼자 고민하느니 미리 연락했으면 좋았을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식당이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뭐 해요?”
“사실은 조만간 특별한 손님이 찾아올 예정인데요….”
간략하게 현 상황을 설명해 주자, 생각보다 카키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재밌겠는데요? 원테이크 무대는 어때요?”
“원테이크 무대요?”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예전에 찍은 뮤비에서 이런 게 있었거든요. 방마다 컨셉이 다르고 이렇게 걸어가면 카메라가 원테이크로 따라가는 건데···”
카키는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였다.
‘내가 너무 주방에만 있었구나.’
오늘따라 그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한길은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냈다. 그게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조리를 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었다.
조리와 요리는 달랐다.
조리가 그릇 위에 차려진 음식이라면, 요리는 그릇 밖, 먹는 사람과 먹는 장소, 그 시간까지 다 포함한 먹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리할 때는 주방에 오래 있을수록 좋다. 들이는 시간과 비례하여 기술이 향상되니까.
하지만 요리를 위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나도 참여하면 안 돼요?”
카키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참여라면…. 저녁 식사요? 단 두 명이 예약한 식사라 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
“아니, 무대 세팅이요.”
“무대 세팅? 카키가요?”
“음향 효과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필요 없어요?”
그러고 보니. 음향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있으면 좋다. 아니, 있어야 한다.
눈코입을 다 채워주는데 귀만 허전하면 이상하다.
“그런데… 그… 힙합 음악은 밥 먹으면서 듣기에 그렇게 식욕이 돋는 음악은 아닌 것 같아서요.”
“크크.”
“왜요?”
“스테이크 구울 줄 안다고 된장국 못 끓여요?”
“….?”
한길이 잠깐 머뭇하자, 카키가 느릿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갔다.
“효과음이요. 비트 만들 때도 사용하는데, 인디효과는 하나당 10~20불 정도 하는데 프로 퀄리티는 50불 정도 해요. 이게, 돈을 얼마 들이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전혀 다른데…”
“아, 네….”
여기서도 외국어 같은 한국어가 나왔다.
“제가 돈을 헤프게 쓰는 거로 알려져 있는데.”
카키는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면서 자신감이 가득한, 동시에 장난스러운 웃음이다.
“차랑 옷에도 몇 억씩 쓰는데, 제 본업에는 얼마나 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