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0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08화(108/325)
108. 내 식대로
“무리에요.”
“비용은 댈 수 있습니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은 한길이 건네준 샘플 사진을 보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광 핑크 스타킹과 해골 머리띠를 한 여자와 번뜩이는 가죽옷을 입고 온몸에 피어싱을 한 남자.
데니 신이 소개해준 미술 감독과 조명 감독은, 한눈에 봐도 어딘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사람들이었다.
‘맥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조명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술 감독인 연희는 한길의 스마트폰을 낚아채며 사진을 확대하고 있었다.
“여기 벽돌이 한 땀 한 땀 그려 넣은 게 아니거든요. 이건 멀리 있는 무대를 찍은 거니까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이런 퀄리티가 되거든요? 물론, 시트지를 사서 붙이는 방법도 있긴 한데… 문제는 이런 세트가 한두 개도 아니고. 크기도 스케일도 장난 아닌데 2주 후라면서요? 시간이 부족해요.”
한길이 보여준 사진은, 밤새 검색해서 찾은 외국의 이머시브 다이닝 세트 사진이었다. 밤잠을 포기하며 찾은 게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린 셈이다.
연희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더니, 다른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현실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이 시간 내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에요.”
“…..”
“안 하는 게 낫죠?”
“그러네요.”
미술 감독이 보여준 사진은, 한길의 성에 차지 않았다.
한길의 눈에도 그런데. 브로드웨이의 본고장, 미국에 사는 페이튼의 눈에는 학예회 수준으로 보일 터. 안 하느니만 못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한길에게 조명 감독이 다가왔다.
“그런데 장소는 진짜 여기서 하시게요?”
“가능하다면요.”
“레스토랑은 쉬어요?”
“아니, 장사는 계속할 겁니다.”
레스토랑을 닫아서는 안 된다.
어떤 외부 행사를 진행하든, 레스토랑에 지장이 가서는 안 되니까.
“흠, 일단 공간 자체가 장비를 들여놓기도 힘든데. 테이블 다 빼고, 세트 넣고, 조명 넣고. 하루 안에 설치하고 해체까지 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여기는 전부 통유리라 블랙 천으로 덧대서 일단 빛부터 차단해야 할 것 같고….”
기대와 달리,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은 부정적이었다. 강행할 수는 있지만, 솔직히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루만 더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뇨. 일인데요, 뭘.”
두 명의 감독을 보내자, 수셰프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쩌죠? 이제라도 컨셉을 바꿀까요?”
“그건 안 됩니다. 이미 손님에게 말해두었거든요.”
한대훈에게 이미 이머시브 다이닝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것도 바로 어제. 하루 아침 만에 말을 바꾸면 너무 무능해 보인다.
주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홀에 있는 손님이 알아서는 안 된다.
그것도 있지만….
한길은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영국에서 봤던, 이야기 안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흡입력 있는 식탁. 그걸 현대에서 재현해 보고 싶었다.
하루만 깔짝대고 던질 만큼 가벼운 호기심도 아니었고.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었다.
“뭐, 원래 뭐든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요. 어떻게든 해결안을 찾아야죠. 내일까지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볼게요.”
“하지만 시간이···.”
“서두르기만 해서 될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틀 자체를 바꿔보려 합니다.”
어디서 본 무대를 토대로 구상을 했었는데, 그게 잘못된 걸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서 하듯이 몇 달에 걸쳐 세트를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웨이터들에게 정교한 의상을 입히고 서빙을 시킬 수도 없다. 영어 소통도 안 되고.
무엇보다. ‘자신의 컨셉’이 아니었다. 억지로, 무리해서 남을 따라 하고 모방하는 느낌이었다. 시대에 어울리지도 않고, 남의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했다.
“일단 오늘 저녁 중으로 원작을 다시 읽어볼까 합니다. 내일 다시 얘기하죠.”
“저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장사하면서도 틈틈이 아이디어 교환도 하고요.”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으니까.
“테이블 5 화이트 파크 티본 다섯!”
“예스, 셰프!”
“테이블 7, 화이트 파크 채끝살 셋!”
“예스, 셰프!”
카키의 홍보는 화력이 달랐다.
아침부터 매장에는 예약 전화가 쉴새 없이 걸려왔고, 예약 없이 무작정 방문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문제는, 레스토랑이 그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
평일은 손님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닌 데다가, 화이트 파크 세트의 판매량은 잘 해봐야 전체 매출의 30% 정도로 예상했었다. 그래서 준비된 재료 수량도 많지 않았는데, 갑자기 폭탄이 떨어져 버렸다.
“토마토랑 애호박 구해왔습니다!”
“빨리 서둘러!”
“예스, 셰프!”
소스를 만들 재료조차 부족하여 조리 도중 장을 봐오는 사태도 벌어졌다.
“…. 셰프, 다음부터 카키 사장님 홍보는 3일 전에 사전 통보할 것을 건의합니다.”
“그게 좋겠네요.”
“그나저나, 이게 팬심인가요? 대단하네요. 언뜻 웨이터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카키가 올리는 맛집 포스트를 수집하듯이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손님들은 한 접시에 10만 원이 넘는 요리를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있었다. 단순히 좋아하는 연예인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이런 것도 ‘몰입’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하지만 자세히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로 디너타임이 찾아왔으니까. 정신없이 밀려오는 주문을 간신히 처리하고 마감을 할 즈음에는, 모두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오늘 스테프 밀은 배달이다. 이의 있는 사람?”
“아뇨…..”
“없습니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처음으로 배달음식을 시켰다.
요리사들도, 홀 웨이터들도.
온몸이 축 늘어진 모습이 패잔병 같았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치른 만찬의 피로도 채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바빠지니, 모두 체력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누가 다 대신 씹어서 입에 넣어줬으면 좋겠다…..”
“이걸 내일 또 해야 하나.”
“아···. 탈출하고 싶다.”
“뭐라고?”
“아니, 방···탈출하고 싶다고요.”
“그건 뭔데?”
패잔병들의 시선이 한길에게로 쏠렸지만, 이내 모두가 납득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막내! 우리 셰프님에게 지구인 문화 좀 전파하고 와라!”
며칠 전 있었던 오해(?) 이후로, 한길과 주방의 요리사들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졌다.
그전에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웃고 떠들고 화목한 분위기임에도 어딘가 조심스럽고 선을 긋고 있었다.
한길은 요리사들을 함께 일하는 주방 인력으로만 대해왔고, 그 이상의 깊이 있는 관계를 갖는 걸 꺼려왔다. 그래서 항상 조금은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한번 허물어진 벽은 다시 세우기 어려웠다.
“셰프, 오늘도 퇴근 안 하세요?”
“조금만 있다가 갈 거야.”
“누가 우리 셰프님 배터리 좀 갈아 끼워 드려라!”
“왜, 감정도 배우는데 설마 자체 충전 기능이 없을까.”“내일은 홀 대청소도 할까?”
“아닙니다! 셰프!”
가끔 선을 넘는 경우나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어 다스려야 했지만. 이상하게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딘가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면, 그때 이후로 누군가를 허물없이 대한 기억이 없다.
“수셰프도 들어가세요.”
“아니, 저도 남아있겠습니다.”
“어차피 책만 읽다 갈 겁니다. 그건 수셰프도 집에서 할 수 있잖아요?”
“네, 그럼 이만….”
비틀거리는 발걸음의 수셰프까지 보낸 후, 한길은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구비해둔 책을 펼쳤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과연 읽힐까 싶었지만….
생각 외로 이야기 속으로 금방 빠져들게 되었다.
엘리스의 모험담은 어린 시절에 애니메이션이나 그림 동화책으로 접한 기억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어보니 또 달랐다.
‘이거, 완전 푸드 판타지잖아?’
요리사의 눈으로 읽어서 그런가.
엘리스의 모험은 요리로 시작해서 요리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토끼 굴로 떨어지자마자 몸이 줄어드는 마법 음료를 마시고, 몸이 커지는 케이크를 먹는다. 공작부인의 집을 찾아갈 때 후추를 잔뜩 넣은 수프로 인해 소동이 벌어지고. 그곳을 탈출하면 모자 장수의 티파티가 있다. 가짜 거북이 수프의 주인공인 가짜 거북이를 만나며 랍스터들의 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은 여왕의 타르트를 훔쳐 간 기사가 재판받는 법정에 선다.
읽으면 읽을수록, 페이튼이 왜 이 소설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모든 규범을 깨는 등장인물과 주인공.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
이런 컨셉이라면…..
세트가 조금 수수해도. 배우가 없어도.
드라마를 더할 방법이 있긴 했다.
요리로.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
다음날, 한길은 레스토랑을 수셰프에게 맡기고 강남으로 향했다.
노문배 셰프가 운영하는 또 다른 식당, 노스랩으로. 노스랩은 노셰프가 처음 오픈한 레스토랑으로, 분자 요리를 접목한 모던 퀴진을 선보이는 곳이었다.
“여, 왔냐!”
식당 밖에서 기다리던 노셰프는, 한길을 보자마자 한 손을 한길의 어깨에 둘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싱글벙글한 모습이었고.
“웬일이냐? 네 입으로 먼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전에도 형이 도와주셨잖아요.”
“그건 니가 고민 있다고 말하면 내가 오지랖 부린 거고. 이번에는 니 입으로 도와달라고 한 거잖아.”
“차이가 있나요?”
“니가 감히 이 대선배님을 대놓고 부려먹을 정도로 간땡이가 부었다는 거지.”
노셰프는 한길을 그대로 옭아맨 채로 주방으로 안내했다.
널찍한 주방을 통과하면, 가장 안쪽에 작은 방이 있었다. 각종 재료와 기구가 진열된 선반, 그리고 작은 조리 공간이 있는 방이었다.
“여기가 내 연구실. 뭐, 연구실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이런 건 갑자기 왜 가르쳐달라고 하는 건데? 네 요리는 이쪽 분야가 아니잖아?”
“분자 요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기술을 몇 가지 배우고 싶어서요.”
‘분자 요리’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노셰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무래도 그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떤 게 하고 싶은데?”
“그, 동그랗게 만드는 기술도 궁금하고 그 캐비어 만드는 것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분자 요리는 과학 기법을 이용해서 재료를 변형시키는 요리. 즉, 과학을 이용해서 재료에 반전을 주는 요리였다.
요컨대, 당근은 당연히 누구나 딱딱한 식감을 떠올리지만, 분자요리에서는 당근으로 거품을 만들어 쓴다. 치즈를 젤리로 변형 시켜 스파게티 면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스의 모험과 가장 어울리면서도 반전을 주기 좋은 요리였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한길도 직접 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분자요리 키트를 구매해서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구체화 기법 말하는 건가? 캐비어 말이지?”
노셰프는 오늘따라 유난히 신이 난 모양이었다. 시범을 보여주는 손길조차 신명이 깃들어 있었다.
“별로 어려운 건 아닌데 우선 사과 주스로 시범을 보여줄게. 사과 주스 안에 알긴산염(sodium alginate)을 섞어줘. 이 알긴산염이라는 게 미역 같은 해초류에서 나오는 성분이거든. 쉽게 말하면 젤라틴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건 특정 조건이 있어야지만 변신하는 젤라틴이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고, 스위치가 필요한 젤리라고 생각하면 돼.”
노셰프는 노란 사과 주스에 무언가를 넣고 휘휘 저어 섞어준 후, 조금 특이한 주사기를 사용하여 사과 주스를 모두 빨아들였다.
그리고 별도의 유리병에 투명한 액체를 가득 부어 담았다.
“그리고 이게 스위치, 칼슘이거든. 젤라틴이 칼슘을 만나는 순간, 비닐 같은 투명한 껍질이 생겨. 그 껍질 안에 사과 주스를 가둬두는 거고. 뭐, 그냥 사과 풍선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튼, 봐봐.”
노셰프가 주사기에 있는 액체를 떨구자, 작은 사과 방울이 비커 안으로 떨어졌다. 투명한 액체로 잠수하는 순간, 주스는 비닐백 안에 담긴 구슬이 되었다.
모양만 보면 성게알 같지만, 특유의 주황색 대신 사과 주스의 노란색이었다.
맛을 보니, 씹는 순간 비닐이 터지면서 사과 주스가 그대로 터졌다.
젤리와는 달랐다. 젤리는 내부가 전체적으로 탱글탱글하지만, 사과 캐비어의 내부는 액체였으니까.
성게알과도 달랐다. 맛도 물론 다르지만, 식감이 조금 달랐다. 껍질의 두께, 내부의 액체 점도 등의 미묘한 차이지만.
“…. 이런 거군요.”
“재밌지? 물론, 이것도 그냥 하는 건 아니고 산도를 잘 조절을 해야 해. 여기 pH 종이로 대략적인 수치를 확인하고. 시트로산삼나트륨을 넣어주면 점도가 낮아져서 더 화악 하고 입에서 터지고…… 아, 참고로 유제품은 모양이 안정적이지 않아. 왜인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칼슘이 들어가서요?”
“맞아. 결국 칼슘이 스위치니까. 스위치가 겹치지 않게 조절하면서 산도를 맞추면 돼.”
“책으로 읽을 땐 뭔가 머리 아프고 복잡했는데, 형이 설명하니까 쉬워 보이네요?”
교과서보다 훨씬 알기 쉬웠다. 바로 그 원리가 연상되는 설명이었으니까.
그냥 솔직한 감상을 말한 것이었는데, 노셰프는 더욱 신이 난 모양이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귀까지 걸려있고 말을 더욱 빨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게, 다 만든 후에도 구체 외부에 있는 칼슘이 언젠가는 비늘을 통과하고 내부로 스며들거든. 그래서 표면을 씻어내도 길어야 10분, 보통은 5분 정도까지만 지속해. 아, 그리고 또 뭐, 더 보고 싶은 거 있나?”
“다 보여주시게요?”
“뭐, 나야 남는 게 시간인데.”
#
그 후로 2주.
한길은 매일같이 아침에는 노셰프의 연구실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고르메 키친으로 복귀했다. 수셰프에게 믿고 주방을 맡길 수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한편, 본 식사의 무대는 일전에 사내 만찬으로 사용했던 갤러리로 변경했다. 덕분에 식당 영업에 지장 없이, 세트 제작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세트와 조명은 사용하기로 했다. 초반의 따라 하기 식 거대한 스케일의 세트가 아닌, 한길이 직접 디자인한 세트였다.
가벽을 이용하여 다섯 개의 방을 만든 공간.
벽은 기본적인 채색만 하고, 대신 소품에 신경을 더 썼다.
“셰프님, 금 열쇠도 구해왔어요! 이 정도 크기면 될까요?”
“좋네요.”
“그리고 이거! 완전 귀엽지 않아요? 미쳐, 정말!!!”
미술 감독은 오늘 저녁을 위해 빌려온 애완용 토끼를 안고 있었다. 토끼는 애완용 강아지에게 입히듯, 양복 의상을 입고 목줄을 하고 있었고.
“어, 셰프! 일찍 왔네요?”
“카키야말로…. 그보다 저건 뭡니까?”
사운드를 담당한 카키는 등장했지만, 홀로 오지 않았다. 우락부락한 짐꾼들이 카키 뒤에서 커다란 상자를 조심스레 옮기고 있었다.
“뭐긴 뭐에요, 스피커지.”
“스피커가···.”
저렇게 생겼었나?
처음 보는 스피커였다.
보통 크기도 아닌 데다가, 한두 개도 아니었고.
“이건 진짜 아끼는 건데 잠깐만 빌려주는 거예요. 소리가 진짜 죽이는데, 귀를 거치지 않고 뇌를 바로 때리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녹음의 느낌이 하나도 안 나고 리얼하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대신 망가트리면 안 돼요. 하나에 3억 하는 거니까.”
“…..정말요?”
“아니요.”
순간 진짜인 줄 알고 심장이 철렁했지만,
“3억 8천만 원이에요.”
“…..”
“일단 들어봐요, 레벨이 다르니까. 숲 소리 먼저 틀게요.”
너무 비싼 소품을 쓰다 망가지면 괜히 일만 커질 것 같아 돌려보내려 했지만……
정말 소리의 차원이 달랐다.
매미가 우는 소리, 나뭇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람이 이파리 사이로 스치는 소리.
눈만 감고 있으면 숲에 서 있는 것처럼, 입체적이면서도 생생한 소리가 났다.
“그런데 셰프, 이건 예상도 못 했는데요?”
그동안 카키는 신기한 듯이, 이미 완성된 세트를 둘러보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소품을 이것저것 만지면서.
“이게 그, 요즘 흔히 말하는 그건가요? 뭐였더라? 그….. 방탈출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