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1화(11/325)
< 11. 새로운 메뉴, 새로운 단골 >
샐러드와 어울리는 신메뉴가 필요했다.
최대한 빨리.
지금 한스키친은 개업 이래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물론, 전국적 유명세를 자랑하는 다른 맛집들만큼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지난 2년간, 한길이 가장 많이 들어온 소리는 ‘아는 사람만 안다’였다.
컴컴한 어둠 속에 있다가 가로등이 켜진 것 같은 그런 기분.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스키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겠지.’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온 기회지만, 기대감보다는 긴장감이 더했다.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
처음 오는 손님을 볼 때마다, ‘일단 한번 먹어보고 계속 올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한길은 스마트폰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가게를 검색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한스키친’에 대한 별스타그램 게시물은 수십 개로 늘어나 있었다.
혹시 자신이 안 읽은 글은 없는지.
새로 올라온 글은 없는지.
대충 읽고 넘어간 글은 없는지.
한길은 꼼꼼히, 복습하듯이 게시물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처음에 슬아가 게시물을 보여줬을 때만 해도, 이 게시물들을 홍보 효과나. 입소문의 척도로만 봤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또 다른 게 보였다.
.
.
.
샐러드 엄청 맛있음. 그런데…… 배는 부른데 뭔가 허전함. 뜯는 맛이 부족해 ㅠㅠ
┗ 그럼 그렇지. 너가 풀떼기나 뜯고 다니는 인간이냐.
┗ 그러게. 역시 나는 육식주의자로 죽을 운명인가벼!
┗ 그런 애가 샐러드는 왜 먹으러 간 거냐?
.
.
이태원 요즘 뜨고 있는 샐러드 맛집. 기다리는데 여자들만 바글바글해서 남자 둘이 줄 서 있는데 민망하더라.
┗ ㅋㅋ 남자 둘이 가서 샐러드 뜯고 왔냐
┗ 미쳤냐. 돈가스도 있어. 근데 그냥 가게가 온통 꽃밭이라ㅎㅎ 다음에는 여친 생겨야 갈 수 있을 듯?
┗ 평생 못 가겠네.
.
.
줄 서고 있는 샐러드 집 한번 가봄. 존맛! 돈가스도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람!
┗ 돈가스는 평범해 보이네?
┗ 그래도 맛있음. 혜화동에 우리 갔었던 집이랑 비슷함.
.
.
자신의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한, 손님들의 솔직한 감상이 담겨 있었다.
샐러드는 호평 일색이었다.
그에 반해, 다른 메뉴들은 상대적으로 평가가 박했다.
‘맛있긴 맛있는데……’ 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맛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망하는 뉘앙스.
실제로, 주문을 할 때도 손님들은 메뉴 앞에서 망설였다.
‘우선 샐러드 하나 시키고…… 또 뭐 먹을까?’
‘그나마 돈가스가 나눠 먹기 좋지 않을까?’
그런 대화도 자주 들려왔다.
손님들 대부분이 앉자마자 샐러드를 주문했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지만 곁들일 요리를 정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샐러드 다음으로 가장 잘나가는 메뉴는 돈가스와 새우 볶음밥.
하지만 이 메뉴들은 샐러드와 따로 노는 느낌을 주었다.
맛도 그렇고 시각적으로도.
그래서 샐러드와 세트로 엮을만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어차피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요리로 시험을 받고 싶었으니까.
#
한길은 주방 한쪽에 꺼내둔 분홍빛 살덩이에 손을 갖다 댔다. 상온에 맞추기 위해 미리 냉장고에서 꺼내둔 닭고기였다.
치킨.
이번에 한길이 도전하려는 메뉴였다.
치킨은 샐러드와도 잘 어울렸고,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외식 메뉴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녀노소, 국적 불문.
치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특색있는 치킨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
치킨만큼 다양한 실험의 대상이 되는 요리도 없을 거다.
치즈를 찍어 먹는 정도는 새롭다고 볼 수도 없다. 귤, 크림, 참깨 드레싱, 초콜릿까지.
수많은 조합의 이색 치킨이 탄생하고, 또 잊힌다.
한길은 그렇게까지 요란한 치킨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샐러드와 어울리는 게 가장 중요하지.’
한스키친은 이미 샐러드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러니, 치킨은 샐러드와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싶었다.
게다가, 유행을 타는 게 아닌, 오랫동안 유지되는 메뉴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답은 하나.
프라이드치킨밖에 없다.
강산이 몇 번이나 흘러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프라이드치킨을 만들되, 샐러드에 밀리지 않을 만큼 특별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과제이지만, 한길은 자신 있었다.
‘좋은 기름도 있으니까.’
비싼 가격 때문에 차마 치킨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고급 생참기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길은 로마에서 맛보았던 채소튀김을 떠올렸다. 그 담백하면서도 바삭한 맛이 치킨에 적용될 때는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물론, 단순히 기름에만 의존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 시작해 볼까?’
한길은 우선 프라이팬을 꺼내고 그 위에 병아리콩을 볶았다. 겉이 살짝 그을리며 고소한 향이 올라오자, 탄 껍질을 제거하고 믹서기에 넣고 갈아주었다. 갈아진 입자를 세 번에 걸쳐 채에 내려 걸러내자, 연한 베이지색의 콩가루가 남았다.
‘다행히 쓴맛은 없네.’
부드럽고 고운 입자의 가루는 구운 아몬드 같은 맛이 났다. 연한 단맛이 섞인 고소함.
이 가루로 튀김옷을 만들 생각이었다.
바삭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콩가루에 탄산수를 넣고 살살 개어내자, 크림처럼 걸쭉한 반죽이 완성되었다.
그 안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은 닭고기를 빠트리고, 생참기름을 불에 올렸다.
적당한 온도에 다다랐을 때, 두툼한 반죽 옷을 입은 닭고기를 기름 안으로 퐁당 떨어트렸다.
챠그르르르!
닭은 기름 안으로 입수하자마자 군침을 자극하는 소리를 터트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치킨 특유의 담백하고 기름진 향이 피어올랐다.
‘미치겠네.’
조리하는 한길조차도 아찔해지는 향.
생참기름 특유의 아련한 참깨 향과 치킨의 향이 공기 중에 엉겨서 침샘을 자극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닭튀김 조각을 건져내고 거름망에 올려서 기름이 자연스레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고소한 향이 악마의 유혹처럼 한길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었지만, 간신히 자제력을 발휘하고 치킨을 관찰했다.
‘조금 특이하게 생겼네.’
병아리콩 반죽을 사용하는 건 한길도 처음이었는데, 튀김옷의 모양새가 조금 신기했다.
맛깔스러운 황금빛을 띠고 있었지만, 흔히 보는 치킨보다는 어딘가 탕수육을 떠올리게 했다.
얇게, 실루엣을 따라 덮어지는 튀김옷이 아니라 폭삭한 패딩을 입은 것 같은 비주얼.
‘튀김옷이 너무 두꺼운가?’
한길은 아직 열기가 덜 식은 치킨을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반으로 갈랐다.
바사삭!
예상과 달리, 손끝에 닿은 도톰한 옷은 가볍게 흩어졌다.
옷이 너무 두꺼우면 눅눅한 경우가 많아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밀가루와 달리, 병아리콩으로 만든 가루는 글루텐이 없다. 즉, 두꺼워도 빵처럼 폭신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밀가루보다 기름을 덜 흡수해서 무게도 더 가볍다.
튀김옷 안에 있는 치킨의 속살은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담백한 치킨의 풍미가 코끝을 간질였다.
인내심의 한계.
한길은 들고 있는 치킨 조각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와사삭!
일전에 맛본 튀김과는 소리부터 달랐다.
박력 있다고 느껴질 정도의 우렁찬 소리.
입에 씹히는 질감 또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소리만 들으면 제법 딱딱할 것 같았는데, 튀김옷은 섬세한 유리알처럼 이가 닿자마자 쪼개졌다.
‘엄청 촉촉하네!’
튀김옷 안에 숨겨진 닭고기는 촉촉하다 못해 혀끝으로도 포동포동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튀김은 반죽 옷 안에 재료를 가두고 수증기로 쪄내는 요리다.
두툼한 반죽은 빈틈없이 열기를 가둬두고 닭고기의 육향과 수분을 단 한 방울도 내보내지 않은 듯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병아리콩 치킨
완성도: 85%
매력: 9
재료: 8
식감: 9
비주얼: 9
+
완성도가 80%를 넘으면 판매할 수 있다.
필요한 점수는 얻었지만, 한길은 만족하지 않았다.
‘이 맛이 90%도 안 된다고? 왜?’
혀끝에서 느껴지는 만족감과 점수 사이의 괴리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한길은 또 한 조각 치킨을 먹었다.
그리고 세 번째 조각을 씹기 시작할 무렵,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간 텁텁하네?’
튀김옷과 생참기름의 고소함은 누린내를 잡아주고 있었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땅콩을 많이 먹었을 때 느껴지는, 그런 목막힘이 느껴졌다. 약간의 갈증.
하지만 한길 역시 첫 시도에 완벽한 메뉴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역시, 그걸 해봐야 하나?’
이번에는 주방에 미리 준비해둔 지퍼백을 열자, 투명한 물 안에 재워둔 닭고기가 보였다.
브라인(brine)이라는 조리법인데, 소금과 레몬, 허브를 넣고 끓인 용액을 식혀서 그 안에 닭고기를 재워둔 것이었다.
소금물에 재워두면 삼투압 작용으로 인해 육질에 수분이 채워진다. 단순히 겉으로만 촉촉한 게 아니라, 세포 단위로 수분을 전달하는 조리법이다.
차그르르르!
재워둔 닭을 튀기자, 미미하게 로즈메리의 향이 풍겨왔다.
또다시 기다림을 감수한 후에 치킨을 반으로 갈라보니,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새하얀 치킨 속살 위에 투명한 육즙의 강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
이번에는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의 맛이었다.
병아리콩과 참기름의 고소함, 닭의 육즙, 청량감을 주는 허브 향.
이 모든 요소가 너무 과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밀당을 하고 있었다.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맛.
‘이건 참을 수가 없네.’
이 정도로 많이 튀기면 튀김 냄새에 질려서 식욕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더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
이름: 병아리콩 치킨
완성도: 99%
매력: 9
재료: 9
식감: 9
비주얼: 9
+
점수도 최상.
한길은 남은 닭 조각들을 튀겨낸 후, 노릇한 튀김 조각 위에 신선한 파슬리를 다져서 올렸다. 푸릇한 허브의 색감이 대조되어 더욱 맛있어 보였다.
샐러드도 만들어 두 요리를 상에 올려보니, 눈으로 보기에도 찰떡궁합이었다.
맛은 굳이 설명이 필요도 없었다.
치킨을 먹다가 샐러드를 먹으면 입안이 상쾌하게 헹궈지면서 다시 치킨이 생각났다.
그렇게 치킨을 먹으면, 또다시 샐러드의 청량감이 그리워졌다.
‘진짜 내가 이걸 만들어냈다고?’
요리를 만든 한길이 가장 놀랄 지경.
왠지 모를 고양감에 휩싸였다.
동시에, 또 다른 시도도 해보고 싶어졌다.
‘샌드위치도 한번 만들어 볼까?’
이 두 맛을 합치면 어떨까.
치킨에도 올리브 향을 첨가해서 조금 더 통일성을 주면 어떨까.
카라멜라이징한 양파와 토마토를 곁들어 버거로 만들면 또 무슨 맛일까.
갑자기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한길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요리에만 집중했다.
‘내일 슬아가 오면 한번 골라보라고 하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려 열 개의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중 추리고 추려서 다섯 개까지는 줄였지만, 그 이상 탈락시킬 수 있는 메뉴가 없었다.
‘이 정도면 분명!’
반응이 없을 리 없다.
지금 당장 내일이 왔으면!
들뜬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던 한길은, 갑자기 찬물 끼얹듯 기분이 차게 식는 걸 느꼈다.
‘토요일이구나.’
어느덧 새벽을 넘어가며 화면에 띄어진 날짜가 바뀌었다.
내일은 주말이다.
한스키친은 주말에 한가한 편이었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숨이 턱 막히는 먹먹함이 찾아왔다.
물론, 이번 주말은 샐러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오늘 다녀간 이상한 손님의 말이 생각났다.
‘사장님의 고객이 누군지 잘 생각해보라고요.’
지금의 단골들은 대개 인근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이태원은, 그것도 한스키친이 자리한 녹사평역 인근은 사무실이 많은 지역이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보면, 한길의 메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외식을 하는 사람들이 가진, 맛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없었으니.
하지만.
이 샐러드와 치킨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알려지기만 하면……
먹어보기만 하면……
‘일단 집에 가자.’
한길은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골목길을 벗어나서 큰길로 나오자, 평소의 퇴근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녹사평역 사거리는 이태원역과는 달리, 밤에 한적한 편이다.
대부분의 식당들은 문을 닫고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다. 바쁜 걸음으로 이태원역으로 향하는 사람이 몇몇 있을 뿐.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사람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한가롭게 레일에 기대며 바람을 쐬는 사람들.
“여기는 다 좋은데 너무 좁아. 진짜 미어터지겠더라.”
“카일리가 세 시였나?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지 않았어? 뭐 좀 먹고 들어가자.”
한껏 멋을 부린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두둥하고 울리는 베이스의 진동이 들려왔다.
‘클럽이 있었나?’
대부분의 대형 클럽은 이태원역 쪽에 있었다. 물론, 생활에 쫓기듯 살아온 한길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건물을 보니,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그냥 이색적인 가게 간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클럽 같았다.
“또 맥도날드냐?”
“아니면 이태원역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갔다가 다시 오기는 조금 힘들잖아?”
한길의 옆에 있던 무리는 우르르 몰려서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길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상하게 자신의 발길을 붙잡는 호기심.
다섯 명의 무리는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갔다.
패스트푸드점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주문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시간에.
그때, 한길의 옆에서 누군가의 대화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야, 진짜 맥도날드는 질린다 질려.”
“어쩔 수 없잖아? 이 시간엔 이 근처에 먹을 게 없는데. 이태원역까지 갔다 오던가.”
“어차피 다시 와야 하는데, 너무 멀잖아?”
< 11. 새로운 메뉴, 새로운 단골 > 끝
ⓒ 글망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