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1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11화(111/325)
111. 조건이 있습니다
“셰프, 오셨습니까!”
한대훈과 얘기를 마치고 홀로 돌아오자, 모두 지나치게 우렁찬 소리로 한길을 맞이했다.
“왜, 무슨 일 있어?”
“……”
한길이 어리둥절하자, 주방 식구 중 가장 경력직인 허기현이 입을 열었다.
“셰프, 설마 빈손은 아니겠죠?”
한껏 기대하는 표정.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고요함.
누군가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한길은 조용히 웃음을 흘리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하얀 봉투.
얼핏 봐도 일전에 받았던 봉투보다 두툼했다.
“역시!”
“좋았어!”
“쉿! 다들 조용! 경우, 빨리 가서 세어 봐!”
“실례합니다! 셰프!”
허기현이 지휘관처럼 지시를 내리자, 경우가 순식간에 달려와 손안의 봉투를 낚아채 갔다.
“왜 경우에요? 나도 잘 세는데!”
“아니, 저 새끼는 저게 개인기야. 장난 아니라니까!”
그 말대로. 경우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지폐계수기에 견줄 속도로 수많은 신사임당을 넘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귀가 입까지 찢어져 있었다.
“발렌타인 30년산! 인당 한 병씩!”
“우와!!!”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월드컵 대표팀이 우승 골을 넣을 때나 들을법한 환호성. 실제로, 여기저기서 우승 세레나데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근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요리사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갈수록 요란해지고 있었다.
그건 이해하지만….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이 자리에는 식당 식구들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무대를 도와준 미술 감독과 조명감독, 그 스텝들, 그리고 카키까지 있었다.
무릎을 꿇고 양손을 거머쥐며 기도하는 웨이터. 반지에 키스하며 상상의 관객에게 만세를 외치는 주방 요리사들의 모습이 그대로 중계되었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축제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요리사들의 눈에 하나씩 걸쳐진 다크 서클을 보니,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한길이 남몰래 수셰프 쪽을 바라보니, 수셰프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귀까지 새빨갛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슬슬 다들 진정이 되는 기미가 보였을 때, 카키가 기름을 부었다.
“뒤풀이면 나도 가도 되는 거죠?”
“우와!!!!”
“예스, 보스!”
“우리 카사장님은 언제든 환영이죠!”
다시 한 번 소란이 이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의 지휘 하에 모든 식당 식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좋지?”
“일단 레스토랑에 들러야 하니까 이태원이 좋긴 한데, 저번에 간 거기는 어때?”
“우리는 안 받아줄 것 같은데? 지난번 이후로…”
“그건 그렇지. 그런데 이 인원이 다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은데….”
뒤풀이 장소에 대한 활기찬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카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프는 어때?”
“수프? 수프라면 설마?”
“왜, 수프가 뭔데?”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수프는 이태원에서 가장 핫한 클럽 중 하나인 듯했다.
카키가 전화를 들자,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요리사와 웨이터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통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 거기 VIP 룸은 몇 명 들어갔지? …. 언제? 바로 가려고 하는데, 아니, 바로는 아니고 정리하고. 여기 정리하는 데 얼마나 걸리죠?”
“한, 아니, 두 시간 내에 무조건 끝내겠습니다!”
“두 시간 후에.”
카키가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미친 듯이 ‘충성!’만 반복해서 외치는 이들도 있었고.
창피함은 한길의 몫이었다.
“빨리 정리하자. 두 시간 내로 안 끝내면 뒤풀이고 뭐고 없으니까.”
“예스, 셰프!”
한길의 말에 요리사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금껏 본적 없는 속도로 그릇을 씻고, 남은 재료를 포장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레스토랑으로 돌아가는 데에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장님은 집에 스피커 두고 오신다니까. 그 동안 설거지랑 마지막 마무리하고 쉬고 있어.”
“예스, 셰프!”
요리사들이 분주히 움직이자, 한길은 수셰프에게 몰래 고갯짓을 했다.
할 얘기가 있었다.
#
“네?? 총주방장이요????”
소식을 전해 들은 수셰프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입은 턱관절이 망가진 것처럼 벌리고 있었고.
“페이튼 호텔의 총주방장이면, 셰프님 연세에, 아니 나이에, 이런 일이, 아니, 그, 엄청난데, 아니… 그, 축하합니다!”
단어를 잊은 듯, 이말 저말 횡설수설한 수셰프가 다시 진정하는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약 5분이 지나서야 수셰프는 간신히 대화가 가능한 상태로 돌아왔다.
“셰프, 당연히 받아들이실 거죠?”
“고민 중입니다.”
“고민이요?”
“호텔 총주방장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니까요. 안 그래도 그걸 여쭤보고 싶었어요. 수셰프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호텔로 가게 된다면 이 식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어떻게 하다니요. 당연히 저한테 주고 가시는 거죠.”
“진심이세요?”
“저도 농담이라는 걸 합니다. 그런데, 셰프. 기뻐하시는 거로는 보이지 않네요.”
“아니요, 기쁩니다.”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계속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울릴 정도로 기뻤다. 서른셋에 5성급 호텔의 총주방장을 맡게 되다니. 그것도, 일반 5성급 호텔도 아니고, 페이튼은 세계적인 호텔 체인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제가 떠나면 이곳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골목식당을 졸업하고 이곳으로 올 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미련이 남았다.
엄청난 기회이긴 하지만……
동시에 아직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을 졸업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기도 했고. 기껏 자리 잡은 식당을 남의 손에 맡기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요리사들을 내팽개치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리드를 했지만, 총주방장으로 가면 일개 직원이 된다. 주방에서는 가장 높지만, 호텔이라는 기업의 직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어딘가 불안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으니, 수셰프는 턱을 괴며 묵묵히 들어주었다.
“고민하는 게 당연합니다. 아무래도 호텔의 입장과 레스토랑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가요?”
“일단, 셰프가 지금 쓰는 재료를 호텔에서 사용하려면 윗선에 통과를 받을 때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겁니다. 통과될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설마요.”
“기업은 수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셰프님은 수익을 우선시하지 않으시죠. 거기서 오는 갈등도 분명 있을 겁니다. 입장차가 있으니까요.”
“고민 상담을 하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군요.”
한길이 힘없이 웃자, 수셰프가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레스토랑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들어갈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가능성이 조금 희박하지만요.”
“그게 뭐죠?”
“사실은……”
단둘밖에 없는 사무실임에도 수셰프는 음성을 낮춰가며 조고조곤 설명해 주었다.
새삼 수셰프가 이곳에 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길 혼자였다면 절대 생각해내지 못할 아이디어였으니까.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경우가 뛰어 들어왔다.
“셰프! 수셰프! 이런 날 뭐가 그리 심각하십니까! 가시죠, 뒤풀이! 카사장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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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셰프, 춤은 출 수 있어요?”
“야! 기본적인 것부터 물어봐야지! 셰프, 혹시 클럽이 뭔지 아세요?”
“설마 클럽을 모를까!”
“방 탈출도 몰랐는데 클럽도 모르실 수 있지!”
“방탈출 보다 클럽이 역사가 더 무구하잖아?”
클럽까지 걸어가는 도중에도 요리사들은 한시도 조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길을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지난 몇 주, 주방에서 채찍질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클럽은 알아.”
“에이, 진짜요? 뭔데요?”
“음악 들으면서 춤추는 곳이잖아.”
“춤은 출 줄 알아요?”
“글쎄?”
“도착하자마자 확인합니다!”
요리사들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지만, 한길은 조용히 웃으며 묵묵히 모든 걸 받아주었다.
내일부터는 더 철저하게 굴려야 하니까.
하루 정도는 받아줘도 될 터.
하지만 생각보다 클럽에서의 댄스 타임은 길지 않았다.
한길은 춤을 춰본 적이 없어 곁눈질로 남들이 하는 대로 리듬을 타며 고개만 끄덕였다. 의외로, 그 절제된 동작이 반응이 좋았다. 애당초 마스크가 좋았으니까.
클럽에 춤만 추러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큰 키에 깔끔한 외모의 한길은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식당 식구들이 무리를 짓고 있는데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한길에게 접근하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숫자가 스무 명이 넘자, 요리사들은 김이 샌 모양이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룸에 갑시다! 모처럼의 VIP 룸인데!”
방으로 이동한 후에는 또다시 해적 파티였다. 뭐가 그리 많이 쌓였는지, 양주로 병나발을 부는 이들도 몇몇 보였다.
“VIP룸을 오픈한 셰프를 위하여!”
“충성!”
“우리 카사장님을 위하여!”
“충성!”
음악 소리가 시끄럽고 주변에 보는 눈이 없어 다행이었다.
잠시 후, 열심히 병나발을 불던 경우가 한길에게 다가와 꼬인 혀로 말을 걸었다.
“셰프, 셰프 너무 사기캐 아닌가요?”
“뭐가.”
“우씨, 누구는 일부러 머리까지 감고 왔는데 연락처 하나 못 받았는데.”
“머리는 어떻게 감았어? 식당에 샤워기가 없는데.”
“다 방법이 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말입니다! 그런데, 셰프. 정말 방탈출도 안 해본 거 맞아요?”
“처음이었어.”
이번 행사를 기획하면서 말로만 들었던 방탈출 카페를 직접 찾았었다. 물론, 혼자 간 건 아니고. 주방 요리사들과 함께. 입장료를 내겠다고 하자, 주방 전원이 따라오는 바람에 제법 난감했었다.
“그런데 어찌 그리 잘 맞춰요? 셰프가 거의 80%는 다 맞췄잖아요.”
“조금 주변을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풀어가면 되는 건데, 뭐.”
“그게 말처럼 되냐고요.”
“매일 주방에서 너네가 실수 하나 안 하나 관찰하는데, 그 정도는 단련이 되었나 보지.”
“윽! 셰프! 그만! 열등감이 폭발해버려! 욱!”
경우가 헛구역질하며 비틀거리면서 화장실로 향하자,
“에헤헤헤헤!”
옆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주인은 의외로 카키였다. 카키는 처음 보는 헤실헤실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취한 모양이었다.
“에헤헤, 셰프! 진짜 재밌었어요.”
“다행이네요.”
“진짜 셰프에게 투자하길 잘했죠. 수익도 높고, 이런 것도 경험해보고. 안 그래도 요즘 슬럼프였는데, 뭔가 의욕이 생기네요.”
“사장님, 취하셨나요?”
“아니, 그냥 기분만 업됐어요, 에헤헤.”
한길은 잠시 방안을 둘러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미 함께 온 스텝의 절반이 전멸해 있었다. 남은 반은 방 반대편에서 폭탄주 세레머니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대화를 엿들을 사람은 없었다.
“잠시 얘기 좀 괜찮을까요?”
“무슨 얘기요?”
한길이 자못 심각한 태도를 취하자, 카키 역시 얼굴 근육에 다시 힘을 주었다. 어느새 평상시의 얼굴이 돌아온 걸 보니, 정말 취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저에게 투자, 더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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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욱 바빠질 것이라는 한길의 예감은 적중했다.
카키의 별스타 포스트 때문이었다.
카키는 ‘현재 판매 중인 메뉴가 아닙니다’라는 설명문을 넣어 포스트를 수정했지만, 소용없었다.
다섯 가지 맛이 나는 신비한 음료.
안개가 피어나는 버섯 요리.
시계를 녹여 만드는 수프.
여기에 카키의 스타성까지 더해지니, 영상은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SNS상에 퍼졌다.
레스토랑에 문의 전화가 빗발치게 쏟아지는 바람에 전화 코드를 뽑고 인터넷상으로만 예약을 받아야 했다.
한대훈 측에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TG 카드: 이한길 셰프의 이상한 나라’라는 이름으로 갤러리에 미식 다이닝 이벤트를 마련했다.
기한은 한 달.
그동안 수셰프는 레스토랑을 맡고 한길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지휘하기로 했다.
이벤트가 정식 오픈하는 날,
“한길 셰프, 오셨군요. 잠시 대화 가능한가요?”
한길이 갤러리에 도학하자, 입구에서 한대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대훈은 들뜬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발걸음에도, 목소리에도. 흥분이 가득했다.
“벌써부터 시작이 좋습니다. 예약이 꽉 찼거든요. 이전에 열었던 미식 큐레이팅은 처참했는데, 이게 다 셰프님 덕분입니다.”
“아뇨. 저야말로 제 이름을 걸어주셔서 감사하죠.”
“당연한 겁니다.”
당연하지는 않았다.
셰프의 네임밸류가 없는 한, 이런 행사에서 대대적으로 이름을 달아주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한대훈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래서,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당연히 대표님의 호텔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대훈의 눈이 너무 빛나고 있어 다음 말을 꺼내기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한대훈이 순간 멈칫했다. 기분이 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에 당황했다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저 혼자가 아니라 제가 이끄는 사람들 모두 함께 가고 싶습니다.”
“아, 인력 말이군요. 사실 저희도 호텔업은 처음이라 처음부터 다 채용해야 합니다. 데려오고 싶은 인력이 있다면, 환영이죠.”
“아니,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그 뜻이 아닙니다.”
“…..?”
한대훈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이한길이 총주방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고르메 키친>이라는 브랜드로서 입점하고 싶습니다.”
“……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생각 좀 정리해보겠습니다.”
한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에 한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후, 눈을 감았다.
혹시 화가 난 건가 싶었지만 숨소리는 고르고 어딘가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의 말대로, 정말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한대훈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최근 호텔 업계에서는 직접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보다 입점하는 형식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요식업에 새로 도전을 하느니, 이미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외주 업체에게 맡기는 게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죠.”
시작은 긍정적이었지만, 문장 끝에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지만, 그건 이미 기반을 다지고 실력을 입증한 외주 브랜드에 한정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셰프님의 <고르메 키친>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역시 그렇군요.”
“너무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으로서는 데이터와 수치를 통한 안정성 평가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고르메 키친은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매우 뛰어나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게 기업의 입장입니다.”
“기분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해합니다.”
“직원을 채용하는 건 대표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브랜드가 입점하는 건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저 혼자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니까요.”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물론, 저도 고르메 키친이 아직 호텔 입점을 논할 단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 오픈 1년도 안 된 레스토랑인데, 믿음만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는 없죠. 그래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제안이요?”
“호텔 입찰과 리모델링까지, 기간은 얼마나 예상하십니까?”
“글쎄요. 자세한 건 진행해봐야 알겠지만 약 1년에서 1년 반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길은 천천히, 의식적으로 목소리 톤을 조절했다. 최대한 떨리지 않게, 자신감을 실어서 또박또박 발음하도록.
“그 기간 동안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고르메 키친 2호점을 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1년 안에, 지금의 성과가 운이 아니라는 걸 수치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 3호점으로 귀사의 호텔에 입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