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1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13화(113/325)
113. 고작 요리사 한 명인데!
“두 번째 코스 나왔습니다.”
“이 멍청한 것! 지금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나?”
한길의 목소리는 손님의 우렁찬 고함에 가볍게 묻혀버렸다.
험악한 분위기다.
손님은 머리에 김이 나올 정도로 씩씩거렸지만, 불린 왕비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음식을 음미하고 있었다.
“일단 먹고 나서 얘기하시죠.”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짓을 했냐고 묻지 않느냐!”
“정말 안 드세요? 다른 요리를 내오라고 할까요?”
일관적인 불린의 태도에 손님은 마지못해 식탁으로 눈을 돌렸지만, 잠시 깨작대다 곧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의 숨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었다.
‘저 사람이 노포크 공작인가?’
노포크 공작은 불린의 외삼촌. 비교적 영향력 있는 귀족이다.
“자네는 왜 아직 남아있지?”
대화를 더 듣고 싶었지만, 공작은 싸늘한 눈빛으로 한길을 쏘아보았다.
공작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 이곳은 계급사회이고, 한길은 일개 요리사에 불과하니까.
한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후 주방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이동했지만, 층계 중간 즈음에 잠시 멈춰 섰다. 이곳에서라면 들키지 않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무엇 하러 일부러 적을 만드냐고 묻지 않았느냐!”
“없는 적을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적을 찌른 거겠죠.”
“공개적으로 크롬웰을 공격하다니, 지금 네가 제정신이냐!”
잠시 엿들어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한길은 퀘스트 시작 전에 이 시기에 일어난 역사를 공부해 두었다. 특히 왕비와 관련된 일은 최대한 상세하게 알아보았고.
크롬웰은 토머스 크롬웰을 뜻한다. 영국의 수석 장관이자 재무장관. 헨리 8세의 오른팔이다.
크롬웰은 헨리 8세와 불린 왕비의 결혼을 가능케 한 인물이다. 초반에는 불린의 조력자로 활약하며 일종의 동맹 관계를 맺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는 틀어진다.
그 발단 중 하나가 수도원 폐쇄 사건.
불린은 수도원을 해체하며 생긴 수익을 국민의 교육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롬웰은 수도원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려 했고.
그러던 와중, 불린이 공개적으로 크롬웰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궁 안의 귀족들이 모두 모인 예배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불린과 친분이 있는 사제가 설교하던 중, 종교를 팔아치우는 악인을 비난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있었다.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까.
예배가 끝나고 귀족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왕비가 크롬웰을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신앙까지 팔아치우는 탐욕스러운 악인’으로 몰아세웠다고.
‘하지만 너무 빠른데?’
한길의 기억이 맞다면, 이 사건이 벌어지는 건 4월 2일.
그리고 4월 말, 불린 왕비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 체포당한다. 왕비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죄명으로.
그때, 왕비의 죄를 입증할 증인을 데려온 자가 다름 아닌 크롬웰이었다.
한길은 서둘러 주방으로 내려와 생각을 정리했다.
한길의 개입으로 왕비와 국왕의 사이가 회복되면서 오히려 왕비가 너무 빨리 움직여 버렸다. 자칫하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한길의 심장이 세차게 뛰던 그때, 시녀장이 주방으로 내려왔다.
“마크, 전하께서 일전의 그 라벤더 약수를 가져다 달라고 하시네.”
라벤더 차를 말하는 거다.
한길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서둘러 차를 우려냈다. 제발 왕비가 진정하기를 바라며.
하지만 내실 분위기는 오히려 더 살벌하게 변해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태연하던 왕비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삼촌에게 대들고 있었으니까.
“주인을 무는 개를 가만히 놔두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서 상의 없이 혼자 일을 저지른 거냐?”
“캐서린처럼 뒷방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데, 마냥 기다릴 순 없죠.”
“내가 항상 신중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삼촌 말대로 했으면 저는 이미 헨리의 노리개가 되다 버려졌을 텐데요. 메리 언니처럼요.”
“뭣이라?”
“제 방식대로 해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이번에도 제 방식대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계획 없이 움직일 정도로 바보도 아니고, 어차피 실패해도 버려지는 건 저잖아요?”
불린의 말에 노포크 공작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더니, 결국 성을 내며 퇴장했다.
한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노포크 공작은 왕비의 심판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인물 중 한 명이다.
“왜 굳이 적을 만드시는 거죠?”
단둘이 남게 되자, 한길은 참지 못하고 속에 있는 말을 뱉어냈다. 일개 요리사가 할 말은 아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어리석다.
게다가, 왕비와 한배에 탄 한길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불린은 당당했다.
“선제공격.”
“네?”
“내 손에 칼이 있고 상대가 빈손이면 바로 찔러야지. 기다리는 게 어리석은 것 아닌가?”
“…. 그러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내 목을 노리고 있는걸 빤히 아는데, 얌전히 기다리는 건 성미에 안 맞아. 검이 내 손에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면서 나를 지켜달라는 것도 우습고. 어차피 목숨을 잃을 거라면,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반격이라도 해야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아는 걸까, 아니면 저 말은 단순한 비유인 걸까.
“특히 내 유일한 무기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이라면, 녹기 전에 움직이는 게 빠르고.”
불린은 어딘가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 아마 자신이 지금 대화하는 상대가 한길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불린은 고개를 숙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듣는 것만으로 고단함이 느껴지는 한숨을.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특유의 장난기가 묻어있는 화사한 웃음을 입가에 걸치고 있었다.
“일개 요리사까지 나를 이렇게 걱정하다니, 내 신세가 언제 이렇게 처량해졌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게. 나도 지는 싸움은 절대 안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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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크롬웰은 넘치는 분노를 가두지 못하고 책상에 주먹을 힘차게 내려쳤다.
“그 미친년!”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치고 들어온 왕비의 공격. 무방비하게 당한 것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돌변한 국왕의 태도였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국왕은 왕비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내가 홀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야’라는 말도 했었고.
하지만 오늘 일을 따져 들자, 국왕은 대수롭지 않게 껄껄 웃었다. ‘원래 열정이 많은 여인인 것을 어떻게 하냐’라면서.
국왕의 그 몽롱한 눈. 그건 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이다.
국왕이 저런 눈빛을 할 때는, 그 어떤 말도 먹히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왕비의 험담을 할수록 그 화살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옆에서 봐온 세월이 몇 년인데. 크롬웰은 국왕의 변덕이 언제 어떻게 바뀌는지,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
“젠장!”
다시 화가 복받쳐와 책상을 내려치니, 책상 위의 잉크병이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산산이 조각난 유리 조각을 보니, 괜히 더 불안해졌다.
왕비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모욕한 사제는 벌할 수 있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며 웃어넘긴 귀족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녹색 벨트를 하고 있었다.
‘너무 방심했어.’
왕비의 만찬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때 움직였어야 했다.
한심한 여자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사도를 동경하는 국왕의 로망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눈에 띄려고 하는, 바보 같은 여인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설마 이렇게 순식간에 자신의 측근들을 국왕의 근처에 심어놓을지는 몰랐다.
게다가……
녹색 기사단의 멤버들.
그들은 하나같이 의회에서 발언권이 센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움직였던 건가?’
정신이 아찔해졌다.
수도원을 폐쇄하고 그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법안. 헨리 국왕의 권위만으로도 그 법안을 입법화할 수 있지만, 크롬웰은 일부러 이 사안을 의회에 넘겼다.
국내의 수도원이 한꺼번에 폐쇄되는데, 신앙심이 깊은 이들은 반드시 누군가를 원망할 거다. 국왕이 홀로 독단적으로 내리는 결정보다는, 의회가 함께 내린 결정으로 보이는 게 좋다. 적어도, 비난을 받을 법안이라면.
그런데 지금 이 상태라면…. 자칫하면…..
왕비의 뜻대로 된다. 수도원의 수익을 전부 기부하게 되면……
그 생각만으로 온몸의 피가 씻겨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이 법안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었으니까.
헨리 국왕은 씀씀이가 헤프다. 전대 국왕에서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은 이미 탕진한 상태다.
게다가 현실 감각도 없다.
여기저기 금을 뿌리고 다니면서, 그 금이 바닥났다고 하면 아랫사람의 무능력을 탓한다.
지금의 재무장관은 자신이다.
빨리 국고를 채우지 못하면 자신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는 뻔하다.
사형.
‘분명 처음에 이 얘기를 할 때는 달갑게 받아들였는데, 갑자기 왜…..?’
분명 저번 달까지만 해도, 국왕은 크롬웰의 제안을 환영했다. 역시 유능한 인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2주 사이에 반응이 싸늘하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쥐여준다는데.
갑자기 왜?
그놈의 녹색 기사단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걸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크롬웰은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몸을 잘게 떨었다.
‘아니, 설마…..?’
녹색 기사단.
아서왕의 설화.
아서왕의 설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사용한 성배를 되찾는 모험담이다. 즉, 아서왕과 녹색 기사단은 성유물을 지키는 기사들인 셈이다.
국왕이 이 설화에 빠져있다면……
수도원의 성유물을 녹여서 국고를 채우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리 없다. 그게 아무리 가짜 성유물이라고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설마, 여기까지 생각한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
그렇게까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단 2주 안에 실행했다면, 진짜 마녀나 다름없으니까.
운이 좋은 거다.
젠장.
똑똑!
“뭐야!”
“저…. 전갈이 있습니다.”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이는, 크롬웰이 국왕의 방에 심어둔 심복이었다. 그가 들고 온 소식은 다시 크롬웰의 분노를 부추겼다.
“국왕 전하께서 이번 연회는 왕비의 요리사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꽝!
크롬웰이 다시 책상을 내려치자, 심복은 도망치듯 방을 떠났다. 크롬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녹색 기사단은 어디까지나 궁 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대사들이 참석하는 공식 행사를 왕비의 요리사가 지휘한다면?
국제적으로 왕비의 입지를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된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요리사!”
고작 하찮은 요리사 한 명 때문에 저울이 이렇게까지 기울어지다니! 더 늦기 전에 빨리 싹수를 잘라내야 한다.
“밖에 누구 없느냐! 당장 제프리를 끌고 와!”
크롬웰은 으르렁대며 지시를 내렸고, 잠시 후, 왕비의 내실에 심어둔 심복이 나타났다.
“그 요리사, 왕비의 요리사가 지내는 기숙사는 어디지?”
요리사들은 일반적으로 주방 위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조명도 거의 없고, 당연히 경비병도 없다. ‘작은 사고’를 위장하는 건 일도 아니다.
“왕비 전하의 내실 건물입니다.”
“뭐? 일개 요리사가 어떻게 그곳에?”
“요즘 왕비 전하께서 밤에 야식이 생각나신다고 해서, 요리사의 거처를 가까운 곳으로 옮기셨습니다.”
“왜 보고를 안 했지?”
“저번 주에 말씀 드렸는데….”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찮은 기사 놀이나 하고 야식이나 챙겨 먹는 왕비가 어리석다고 비웃던 기억까지 난다.
‘이런 속셈이었나?’
왕비의 내실은 건물은 경비병이 상시로 지키고 있다. ‘사고’가 불가능하다.
“그 요리사, 외출은 안 하나?”
“격일로 합니다.”
“어디로?”
“국왕 전하께 하사받은 수도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수도원이라…
재물에 관심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매수를 시도해 볼까?
아니, 매수보다 손이나 다리 하나 부러트리는 게 더 확실하다. 빠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심복은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외출 할 때마다 동행하는 하인이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요리사가 외출하는 날에는 항상 경비병 케빈이 자리를 비웁니다.”
높은 확률로 경비병을 하인으로 위장 시켜 호위를 붙이고 있다는 말이다.
호위가 붙어있다면 사고로 위장할 수가 없다. 증거가 어설프게 남아버리니까.
소름 끼치는 여인이다.
“연회라……”
국왕의 귀는 닫혀있다.
왕비를 직접 공격할 수도 없다.
요리사의 사고를 유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연회를 노리는 것.
연회가 성공리에 끝나면 왕비의 승리지만, 연회를 망친다면? 유럽의 모든 대사가 보는 앞에서 망신스러운 요리가 나온다면?
국왕은 변덕이 심하다. 지금도 왕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왕비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걸 테고.
자신의 위신에 흠집이 가면, 비난의 화살이 왕비에게 쏟아질 거다.
연회를 망쳐야 한다.
똑똑!
“뭐야!”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던 와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자, 크롬웰의 신경질이 폭발했다. 문밖에서 하인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십니다.”
“지금 바쁘다고 해!”
“그게… 그…. 샤푸이 대사입니다.”
샤푸이 대사.
유스타스 샤푸이.
신성로마제국의 대사다.
전대 왕비인 캐서린을 존경하고, 메리 공주의 계승권을 되찾는 걸 사명으로 여기는 인물. 불린을 ‘첩’이라고 부르는 불린의 천적.
“들어오시라고 해.”
크롬웰은 최대한 숨을 가다듬었다. 샤푸이도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 앞에서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잠시 후, 우아하고 당찬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몸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괜찮으신가요? 제가 안 좋은 시간에 찾아온 건 아닌지 괜히 걱정되네요.”
“아니, 샤푸이 대사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다행이네요. 몸이 안 좋을수록 친구를 원하는 사람도,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샤푸이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모든 대사에 자신의 의도를 이중, 삼중으로 꽁꽁 숨겨둔다.
방금의 말은 자신과 손을 잡을지 말지, 크롬웰에게 결정권을 넘기겠다는 말이겠지.
“아니, 때마침 친구가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다행이군요. 한창 바쁘실 시기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성 마티아스의 연회가 있으니 말입니다. 기대되더군요.”
“제가 할 일은 없죠. 연회를 준비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으니까요.”
“올해는 특이하게도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특이하게 샤푸이가 본론부터 꺼냈다.
그 역시 요리사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궁금해 죽겠습니다. 영국인이라고 들은 것 같던데, 다른 나라에서 섭외해온 인물인가요?”
“아닙니다. 궁에 온 지 고작 한 달 된, 영국 시골뜨기 출신이죠.”
“나이도 젊다고 들은 것 같은데, 재능이 많은 인물인가 보군요.”
샤푸이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주방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20대 초반의 청년이라.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경험이 없으면 힘든 일도 있을 텐데. 예상치 못하는 상황에 흔들리지는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샤푸이는 갑자기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기침이다.
“그나저나, 산책이라도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렇게 방안에만 계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저건 또 무슨 의미일까.
“걱정입니다. 요즘 궁의 공기가 조금 탁한 것 같아서요. 저만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궁전 안은 항상 건조한 편이긴 하죠.”
“건조한 것과 탁한 건 다르죠. 햄프턴 코트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공기가 더 탁해지면 괜히 건강을 더 해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만.”
“….!”
샤푸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았다.
크롬웰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이기도 했고.
“안 그래도 저도 궁의 공기가 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미리 짐을 싸두면 좋을 것 같군요. 조만간 이사를 할 것 같으니까요.”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용건을 마친 샤푸이가 흐뭇하게 웃으며 바로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