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1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17화(117/325)
117. 어딜 가라고?
“어떻게 이런 색채가 나올 수 있죠?”
“보기만 해도 황홀하군요.”
옆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찬사에 샤푸이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저들의 목소리 톤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계산하고 읊은 말이 아니다. 입안에 차마 가두지 못해 절로 쏟아나온 감탄사지.
채소는 귀한 재료가 아니다. 연회마다 등장하지만, 너무 서민적인 재료다 보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채소 무지개’ 요리는 익숙한 채소 요리와는 전혀 달랐다. 푹 삶아서 형체가 사라지고 흐물흐물해진 곤죽이 아니었으니까.
파이 페이스트리 안에 곱게 담긴 빨강, 보라, 연두색의 문양은 무지개만큼이나 화려했다. 게다가 얇게 썬 가지와 애호박은 정갈하게 겹쳐 있었고, 누워있는 각도까지 일정했다.
어딘가 나태해 보이는 일반적인 채소 요리와 달리, 한껏 차려입고 각 잡은 요리다.
‘반응이 너무 좋아.’
곁눈질로 살짝 살펴보니, 자신의 주변에 앉은 이들 모두 홀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샤푸이가 미리 준비해둔 두 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선물로 보낸 토마토를 사용했고, 안전한 방식으로 조리했으니까.
채소 요리가 너무 많다고 비꼬듯이 불평이라도 해야 하나?
세련된 공격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불린이 입을 열었다.
“이 재료는 신대륙과 아랍에서 넘어온 작물이라고 하더군요. 귀한 작물인데, 정말 감사하게도, 샤푸이 대사가 선물로 한가득 보내주셨죠. 모두 한 번 맛보시죠.”
이쯤 되면 샤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냥 다음 기회를 노리자.’
이미 상황이 이렇게까지 기울어졌는데, 억지로 일을 진행해서 좋을 것 없다.
샤푸이는 체념하고 하인이 덜어준 채소 무지개를 들었다. 곱게 포개진 채소를 손에 들고 입에 넣자, 토마토의 향이 입안에 화악하고 퍼져나갔다. 샤푸이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토마토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평소에 먹던 새콤달콤하면서 상큼한 맛과는 다르다.
농익은 맛.
강렬한 천연 향이 용솟음치듯 콧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이상하게 와인이 생각났다.
와인은 어디서 자란 포도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포도로 빚은 와인은, 생명의 근원이 느껴지는 중후한 맛이 난다.
신기하게도, 토마토소스에서 그런 중후함이 느껴졌다. 햇살에 푹 절인 열매의 윤택한 맛이 바질과 타임의 향긋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애호박과 가지는 얇게 썰어서인지, 흐드러지듯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그 자체만으로는 삼삼할 정도로 연한 맛이지만, 토마토소스의 윤택함이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속이 든든했다.
결코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어? 저건 뭐 하는 거지?”
“저것도 먹는 거였어요? 그냥 장식품인 줄 알았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눈이 떠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고 있던 것.
샤푸이는 다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정신을 차리고, 모두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회장 한가운데에 진열된 테이블에 하인들이 몰려 있었다. 눈을 가늘게 좁히고 보니, 하인들은 테이블 위의 노르스름한 성벽을 해체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성벽의 일부가 샤푸이 앞에 도착했다.
“설탕물을 입힌 고구마입니다.”
고구마는 단단한 유리 갑옷을 입고 있었다.
오도독하게 씹히는 연한 갈색의 유리 갑옷과 달리, 안에 있는 고구마는 부드럽게 혀 위에서 으깨졌다. 박력 넘치는 유리의 단맛과 상냥한 고구마의 단맛이 대조되어 입체적인 맛이 났다.
“아랍식 가지요리입니다.”
다음은 허물어진 성벽 안에 진열된 요리.
아까 먹은 무지개 요리에도 가지가 있었지만, 얇게 저며 썬 가지와 통으로 구운 가지는 맛이 또 달랐다.
통통한 가지는 껍질의 팽팽함이 아직 살아있었다. 그 속에는 토마토소스가 질퍽할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었고.
가지의 과육은 꼬들꼬들과 녹녹함 사이의 질감. 그 조직 사이로 토마토소스의 농밀한 맛이 요동치며 촉촉함을 더했다.
랍스타를 먹을 때 황금빛 내장이 질퍽하게 곁들여 나오면 깊이를 더하듯이, 가지 안에 있는 토마토소스가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퍼주고 퍼줘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풍족함이 느껴지는 요리였다.
“어머? 상자도 비어있는 건 아닌가 본데요?”
어수선한 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리니, 이번에는 하인들이 테이블 위의 보석 상자를 열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아랍인들의 땅에 들어가서 성벽을 허물고. 그 안에 있는 맛의 보고와 보석까지 앗아오고 있었으니까.
상자 안에 있던 전리품은 작은 보석이었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으로 빛나고 있는 네모난 보석.
“’터키쉬 딜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설탕으로 만든 사탕입니다.”
사탕은 ‘당도’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맛이었다. 미친 듯이 달았지만, 설탕만 진득하게 우려낸 단맛이 아니다. 장미수의 고급스러운 향이 어우러져 품격있는 단맛이었다.
무엇보다.
쫀득했다.
기분 좋게 이빨에 저항해 오는 탄력은 중독성이 있었다.
설탕으로 이런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수많은 설탕공예를 봐온 샤푸이도 처음 접하는 맛이었다. 설탕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맛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이른 판단이었다.
마지막 테이블의 커튼이 떨어졌으니까.
‘에덴’을 형상화한 테이블.
설탕으로 만든 하얀 구름 사이사이를, 설탕 옷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에덴의 과실이 수놓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몽롱해지는 상차림이다.
‘이번에는 졌네.’
완패다.
이럴 때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게 좋다.
‘오늘을 계기로 불린의 입지는 제대로 다져질 테니까···.’
당도가 혈액을 타고 흐르면서 생각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아갔다.
불린은 프랑스파다.
불린의 권력이 돌아오면, 헨리 국왕이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려 할 터.
그래서는 곤란하다.
최근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는 밀란의 영지를 두고 갈등 중이었으니까.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황제는 무조건 영국과 동맹을 맺으라는 명을 내렸다.
거의 다 넘어왔는데···.
불린의 입김이 불면, 지금껏 순항이던 협상이 무로 돌아간다. 영국이 프랑스와 같은 편에 서게 되면 큰일이다.
“엄청난 연회였습니다.”
“이런 연회는 본 적이 없는데, 제가 꿈이라도 꾼 건 아닌지, 몇 번이나 팔을 꼬집었는지 모릅니다.”
귀족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불린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헨리 국왕의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왔다.
“전부 샤푸이 대사 덕분이죠.”
불린의 뜻밖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샤푸이는 순간 당황했다.
무슨 꿍꿍이지?
불린은, 항상 자신에게 보여주던 비틀어진 웃음이 아닌, 태양처럼 환하고 눈부신 웃음을 짓고 있다.
샤푸이 역시 서둘러 웃음 가면을 썼다.
외교의 기본. 뒤에서 찌르려면,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 최대한 방심을 유도해야 하니까.
“구하기도 어려운 귀한 재료를 아낌없이 건네주셨답니다. 친구는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한다면서요.”
“레이디 앤도 제 위치에 있었다면 같은 일을 했을 텐데요.”
“그래서 보답을 해드렸는데, 마음에 드시는지요?”
“보답이요?”
“사라센을 물리친 영웅의 모습은, 샤푸이 대사를 위해 만들었는걸요.”
불린의 말에 귀족들이 갑자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그 모습은 찰스 황제의 영웅담 이야기였군요!”
“전율이 흐를 정도로 멋있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찰스 5세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스를 함락시켰다. 지중해에서 약탈을 일삼는, 전설의 해적 바바로사를 물리치면서. 그 전투는, 모든 기독교 국가의 찬양을 받기도 했다.
‘저 여자는 무슨 속셈이지?’
이 자리에서 저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은 이제 프랑스의 편이 아니라는 건가?
“다 샤푸이 대사가 나눠준 작물 덕분이죠.”
“저희는 원석만 주었죠. 아름다운 보석이 탄생하려면 원석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장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토마토로 이런 맛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황제 폐하께도 알려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시간을 끌어야 한다. 샤푸이는 찬사를 늘여놓으며 불린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그런데.
불린의 눈이 반짝였다.
입가에는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왜….?
“그런 부탁이라면 어렵지 않죠.”
“네?”
“때마침 이 요리를 만든 이가 제 전속 요리사랍니다. 황제 폐하께서 맛보실 수 있도록, 기꺼이 한 상을 차려드리죠.”
샤푸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실수다.
너무 멀리 가버렸다.
의도치 않게 초대장을 보내버렸다.
그것도 ‘영국’이 아닌 ‘불린’에게.
일개 국민이 황제로부터 초대를 받을 수는 없다. 이 초대가 성사되면, 불린을 왕비로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샤푸이는 간신히 표정을 가다듬고 수습을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죠. 레이디와 국왕 전하께서 총애하는 요리사라는 소문이 자자한걸요.”
“한 달 두 달 안 먹는다고 큰일 나는 거도 아니고, 조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되죠. 좋은 크리스천은 나눔을 실천한다고, 샤푸이 대사가 직접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받은 게 있으면 돌려줘야죠. 안 그래요, 전하?”
왕비의 시선이 헨리 국왕에게로 향했다. 꿀을 바른 것처럼 진득한 시선에 국왕의 얼굴에 소년과도 같은 밝은 웃음이 퍼졌다.
“전하, 전하의 국민인 마크를 찰스 황제 폐하께 잠시만 보내도 될까요?”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사절단을 준비하도록 하지. 안 그래도 전달할 말이 있었으니.”
샤푸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국왕의 허가가 떨어졌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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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토마토로 이런 맛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황제 폐하께도 알려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샤푸이 대사의 말에 한길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저 사람까지 저런 발언을 할 정도면, 이번 연회는 성공이라도 봐도 되겠지. 지난 이틀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왕비는 ‘이겼다’는 표정으로 샤푸이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혹시 과한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수위(?)를 지키고 있었다. 처음 볼 때의 까칠한 모습과 달리, 왕비는 최근 들어 많이 차분해졌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네.’
왕비는 도박꾼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위험한 도박을 계속하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저 추진력과 결단력, 용기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스테이지는 너무 피곤했어.’
안정적이고 의지가 되는 아피키우스와 달리, 한길의 입장에서는 피곤한 상대였다.
떠난다니 후련하면서도···.
시원섭섭했다.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나름 잘 풀렸네.’
영국에서 얻은 건 생각보다 많았다.
괴식의 나라라 걱정을 했었지만, 최고의 육류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수도원에서는, 로마에서 미처 보지 못한 열매나 허브도 있었고.
무엇보다.
요리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맛은 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고, 주방을 벗어나 조금 더 사람들과 어울려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전하, 전하의 국민인 마크를 찰스 황제 폐하께 잠시만 보내도 될까요?”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한길의 사고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동시에, 눈앞에 반투명 창이 떴다.
[파이널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정해졌습니다.]+
<파이널 퀘스트 – 왕비의 연회>.
목표: 왕비의 연회를 성공리에 치르세요.
제한 시간: 2 달
체류 기간: 4주 (잔여 1일)
보상: 300,000 고르메 포인트
실패 시: 상점의 아이템 10개를 무작위로 회수합니다.
+
일전에 도착했던 퀘스트 창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전에는 물음표로 표시되었던 제한 시간이 2달로 바뀌었다는 정도.
‘잠깐, 오늘 연회가 왕비의 연회가 아니라고?’
아무래도 퀘스트가 말하는 ‘왕비의 연회’는 오늘의 연회가 아닌 듯 했다.
지금 대화의 흐름으로 보면, 로마신성제국 황제를 위해 여는 연회가 파이널 퀘스트다. 사절단을 따라 황제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연회를 무사히 열어야 퀘스트를 마친다.
즉, 영국 스테이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번 퀘스트만 끝나면 바로 다음 스테이지인 줄 알았는데···.’
실망감이 컸다.
현실로 돌아가면, 당장 고르메 키친 2호점의 준비를 해야 한다. 오픈은 1달 후지만, 그동안 레시피도 미리 만들어놔야 하고. 어떤 요리를 만드느냐에 따라 인테리어도 달라진다.
호텔 입점에 유리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스테이지를 고대하고 있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셋 중 하나가 나오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는데··· 기다림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어디더라?’
한길은 간신히 실망감을 억누르고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영국만 열심히 공부해왔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찰스 5세.
스페인을 비롯한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페인 소유의 미대륙까지. 모두 그의 영토다.
그런데 수도는 기억에 없다.
사절단으로 간다면, 어디로 가지?
한길의 궁금증에 답해주듯, 왕비가 대신하여 샤푸이에게 질문을 했다.
“샤푸이 대사, 황제 폐하는 어디에 계시죠?”
“튀니스 정복 이후에는 팔레르모, 메시나, 나폴리, 피렌체 등을 방문하신다고 하셨는데. 사절단이 도착할 즈음에는 아마도···.”
샤푸이 대사의 대답에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로마에 계실 겁니다.”
다음 목적지.
이탈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