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1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19화(119/325)
119. 서브 퀘스트
“얼마나 걸릴까?”
“오후에 도착한다고 했잖아?”
“벌써 해가 중천에 떴는데?”
“그럼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하겠지.”
길버트는 한 시간에 한 번 간격으로 질문을 했다.
한길을 비롯한 사절단 일행은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경유지는 포츠머스(Portsmouth). 런던에서 마차로 약 반나절 거리에 있는 항구 도시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에 들어간 후,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의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하는 건 빠르면 1달 후. 잘하면 2달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중간에 또 다른 경유지가 있으니까.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제노아(Genoa)와 피렌체(Florence)에 잠시 머무를 계획이고, 각 도시에서의 체류 기간이 약 일주일이라고 했다.
‘바로 로마로 가면 좋을 텐데.’
조금 더 서둘러서 가고 싶지만, 일개 요리사가 사절단을 재촉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관광하러 들르는 건 아닐 테니.
“안 불편해?”
“뭐가?”
“아니, 더워 보여서. 뭔 옷을 그리 껴입었냐.”
“내가 추위를 좀 많이 타서.”
한길의 답변에 길버트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둘이 타고 있는 하인 전용 마차는 인구 밀도가 높아 공기가 후끈거릴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한길은 겹쳐 입은 옷을 벗지 않았다. 혹여나 옷 아래에 뭐가 있는지 들킬까, 괜히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티는 안 나는 것 같기는 한데.’
지난 이틀간, 한길은 난생처음으로 바느질에 도전해 보았다. 천을 여러 번 덧대 허리띠를 만들고, 그 중간에 불린에게서 받은 보석을 꿰매서 고정했다. 팔목에도, 발목에도. 유사한 띠를 만들어 두었다.
만에 하나 예상치 못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항상 자금을 소지하도록.
먼 길을 떠나는데 중간에 해적이나 도적을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샤푸이 대사의 계략도 알고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두고 싶었다.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대사의 편지에는 어떻게든 한길을 사절단과 떼어놓겠다고 적혀있었다.
순순히 떨어져 줄 생각도 없지만, 설령 최악의 상황이 닥쳐 사절단과 헤어지게 되더라도, 여행 자금만 있으면 어떻게든 다시 합류할 수 있다. 사절단의 경로도, 최종목적지도 알고 있으니까.
“마크.”
“왜?”
“진짜 내가 가도 괜찮은 걸까?”
“싫으면 지금 내릴래?”
“뭐?”
“농담이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이번 사절단에는 한길을 포함하여 세 명의 요리사가 동행한다. 한길이 선택한 요리사는 길버트, 그리고 왕비의 주방에서 함께 일해 온 프레드였다.
타국의 황제를 위한 요리를 만들러 가는 자리다 보니,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했다. 그래서 한길이 길버트를 선택할 때,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고.
“네가 가주는 게 제일 든든해서 선택한 거야.”
“난 별 쓸모도 없는데……”
조리 실력만으로 보면 길버트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궁 안에서 한길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한길을 위해서 샤푸이 대사의 편지를 훔쳐 오기까지 할 정도이니.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괜히 실수만 하면 어쩌지? 발목이나 안 잡으면 좋으련만….”
자신감이 바닥인 길버트를 보니 입이 근질거렸다.
사실은 알려주고 싶었다. 길버트가 갖다준 편지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하지만 이미 편지는 못 읽는척 하고, 위험한 증거는 태워버린 후였다.
라틴어를 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니까.
이 시대에 라틴어는 귀족이나 성직자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즉, 엘리트만 사용하는 언어다. 일개 서민이, ‘요리사 마크’가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이제 슬슬 온 것 같은데요?”
같은 마차에 탄 하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얼마 후, 마차는 항구 앞에 도착했다.
“어때, 불편하지는 않았나?”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하긴, 마차 정도로 힘들어할 거면 당장 돌아가야지. 앞으로는 더 험난하니까.”
마차에 내리자마자 두 명의 남자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녹색 벨트를 두르고 있는 두 명의 귀족.
사절단 대표로 선별된 노리스 남작과 위팅턴 백작이다.
왕비의 만찬에 고정 출연하는 멤버이다 보니, 한길과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둘은 한길은 유난히 챙겨주었다.
“자네도 여행은 처음이지?”
“네. 그런데 생각보다 인원이 적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런가? 오히려 많은 것 같은데?”
“국왕 전하를 대신해서 가는 거라 조금 더 많을 줄 알았거든요.”
사절단은 총 열한 명이다.
남작과 백작. 하인 네 명. 시종 무관 두 명, 그리고 한길을 포함한 요리사 세 명.
생각보다 단출한 구성이다.
“뭐, 결혼식 같은데 참석하는 거면 몇십 명을 데려가겠지만,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일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저녁 식사는 인근 여관에서 먹고 갈까? 마크가 주방에 서주면 좋겠는데···.”
“원하신다면···”
“우와, 마크! 이리 와봐!”
노리스 남작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도중, 등 뒤에서 잔뜩 흥분한 길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작은 씨익 웃으며 고갯짓을 했다.
“이런, 우리가 눈치도 없이 자네를 붙잡아둔 것 아닌가? 자네도 바다는 처음일 텐데 짐 실을 동안은 가서 구경하게.”
한길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길버트에게 다가갔다. 길버트는 손뼉을 치며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옆에서 프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우와, 진짜 배가 물 위에 떠 있어!”
“제발 그런 촌티 날리는 소리는 속으로 해줘라.”
“알 게 뭐야! 와! 진짜 눈에 보이는 이 광경 그대로 그림으로 담아놓고 싶네!”
길버트처럼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한길 역시 카메라가 없어 아쉬웠다.
사절단이 탈 배는 캐러벨.
현대의 여객선과 비교하면 작은 배였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가끔 영화에서 보는 해적선과도 닮은 것 같기도 했고.
끈적한 바닷바람. 배에 부딪히는 너울 소리.
모든 게 새로워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 설렘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배를 처음 탄다는 건, 뱃멀미를 처음 경험한다는 것을 뜻하니까.
배는 너울 하나에도 일렁였다. 잠시 누워 있으려고 해도 배 안에는 침대가 없었다. 여기저기 해먹이 걸려 있을 뿐. 선원들 말로는 고정된 침대보다 해먹이 멀미가 덜하다고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뱃멀미는 하루가 지나니 조금 사그라졌지만, 다음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 맛이 형편없다.
장기간 항해를 해야 하니 보존식이 메뉴의 주를 이뤘다. 식초에 절여둔 피클, 솔트 비프, 마른 콩, 퍼석퍼석한 비스킷. 맛보다는 생존을 위해 연료라고 봐야 했다.
그나마 닭을 키우고 있어 아침마다 달걀을 먹을 수 있었지만, 푹 삶아서만 내주니 퍽퍽하고 목만 막혀왔다.
“혹시 버터는 없나요?”
결국 나흘째 되던 날, 한길이 직접 나섰다.
요리사들이 챙겨온 짐에는 허브도 있었고 양파와 마늘도 있었다. 달걀을 휘휘 저어 풀어준 후, 양파와 허브, 버터를 넣어 간단한 오믈렛을 만드니, 선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와, 이게 궁중 요리라는 건가?”
“달걀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내가 지금껏 먹은 요리 중 최곤데?”
“그딴 소리 하면 담에 프란체스카네 갈 때 이른다. 언제는 프란체스카의 라비올리가 천상의 요리라더니.”
“라비올리가 뭔가요?”
“이탈리아 요리인데 이렇게 반죽이 있고 그 안에 속을 채워 넣는데….”
한길은 틈이 날 때마다 이탈리아의 요리에 대한 질문을 했다.
황제를 위해 요리할 때 알아둬야 하는 정보이기도 하고, 현대에서 유용하게 써 먹힐지도 모르니까.
이 시대에 파스타는 있었다.
피자는 아직 없었다.
그리고 이탈리아라는 나라도 아직 없었다.
이탈리아반도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와 공작령, 교황령으로 이루어진, 정글과도 같은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시대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마크, 불 좀 끄면 안 될까?”
“조금만 있다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책이 읽혀?”
낮에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밤에는 수도원에서 챙겨온 책을 읽으며 최대한 공부해 두었다.
매일 새벽까지 촛불을 켜놓고 독서를 하는 바람에 한길의 바로 옆 해먹을 차지한 길버트가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지만, 최대한 준비된 상태로 이탈리아에 도착하고 싶었다.
‘이 정도면 지금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낸 셈인가?’
마지막 책을 완독한 건 일주일이 지난 시점.
책을 덮자마자 한길은 망설임 없이 상점을 열었다. 준비되었다면, 굳이 이 멀미 지옥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타임 점프 이용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기간을 선택하세요.] [타임 점프 기간은 최소 1주일, 최대 1달 내로 선택 가능합니다.]‘열흘 정도 후에 제노아에 도착한다고 했었나?’
타임 스킵을 한 달 후로 설정하면 로마에는 일찍 도착할 수 있어도, 중간에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을 놓치게 된다.
[10일 후로 타임 점프를 시행합니다.]#
눈을 떠보니 칠흑 같은 어둠.
옆에는 길버트가 큰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따.
‘넘어온 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벌어진 일이니 확실치 않았다. 방금 전까지 켜져 있던 촛불이 꺼져 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시간 경과를 확신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한길은 자는 길버트를 흔들어 깨웠다.
“뭔데?”
“우리 도착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잠이 덜 깼냐? 내일이잖아? 왜?”
“아니야, 다시 자.”
길버트는 눈을 비비적거린 후 다시 돌아누웠지만, 몸을 계속 뒤척였다.
‘잠이 안 오는데….’
한길은 흥분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길이 뒤척일 때마다 길버트도 뒤척이는 게 보여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한길은 해먹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하늘이 완전 까만 건 아니니 얼마 후면 동이 틀 것 같지만, 아직 어두웠다.
“뭐야, 안 자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니, 선원이 있었다. 라비올리 애호가라던 그 선원이었다.
“지금 안 자두면 힘들 텐데요?”
“그건 그렇네요. 그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아침은 뭘 해드릴까요?”
“아침? 먹을 시간이 있겠어?”
남자가 갑자기 말을 놓았다.
말투에 냉기가 서려 있다.
달빛 아래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살벌한 웃음.
갑자기 팔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빨리 쉬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는 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골키퍼가 골 앞에 선 자세로.
“비켜줘야 지나갈 텐데?”
“뭐 그리 일을 크게 만들어? 어차피 들어가도 다시 끌고 나와야 하는데.”
불안감이 적중했다.
“길버트!”
한길이 큰 소리로 길버트를 불러봤지만, 남자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소용없어. 오늘 저녁에 마신 맥주에 조금 다른 걸 섞었거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까까지만 해도 길버트는 깨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길버트는 오히려 술에 취하면 일찍 일어난다. 그걸 핑계로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마다 맥주를 두 배로 마셨던 놈이니까.
“길버트!”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자, 남자가 움직였다.
거구의 남자였지만, 달려오는 모습은 야생 치타처럼 날렵했다.
큰 손이 한길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휙!
한길이 몸을 비틀었다.
갈고리 같은 손은 피했지만,
꽈당!
발밑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갑판에 있는 로프다.
서둘러 일어서려 했지만 로프가 다리에 칭칭 감겨 움직임이 더뎠다.
“성가시게 하네.”
그사이 남자는 등 뒤로 다가와 한길을 포박했다. 불끈거리는 팔근육이 목을 압박했다.
남자는 한길을 갑판의 끝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바다에 빠트릴 계획이다.
잘못하면 빠진다.
‘당황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한길은 잠시 숨을 멈추고 최대한 몸에 힘을 뺐다.
이미 상대에게 등이 잡힌 상황이라면…..
“그래, 얌전히 포기….윽!”
퍽! 퍽!
힘을 있는 대로 실어 팔꿈치로 남자의 명치를 가격하니, 목을 죄어오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몸의 중심을 낮추고. 언젠가 봤던 엎어치기 영상을 떠올리며 남자의 옷을 잡고 어깨 위로 둘러업었다.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가벼워졌다.
‘된 건가?’
남자가 넘어가는 순간,
“어?”
세상이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길은 갑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로프를 붙잡고 있었다. 남자는 한길의 다리를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고.
“너 이 새끼, 올라가기만 하면 넌 죽었…”
퍽! 퍽!
망설임 없는 발길질에 얼굴을 가격당한 남자가 바다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욕설이 들려오고 다시 조용해졌다.
‘살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갑판까지는 대략 1-2미터 거리. 로프를 타고 올라가려 했지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고작이었다.
손에 힘은 빠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청해야 하나? 아니, 배 위에 또 다른 적이 있으면 어쩌지?’
잠시 망설이는 사이,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크? 뭐야!! 이게 뭔 일이야!!”
“길버트. 로프 좀 던져줘.”
길버트가 갑판 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울상인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로프가 묶여있어서 여기까지 안 닿아! 조금만 버텨! 선원을 불러올 테니까!”
“아니.”
샤푸이의 첩자가 또 있다면, 길버트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시간도 없다. 손아귀에 힘이 빠지고 있으니까.
“아까 배럴이 보이던데, 빈 배럴이지?”
“지금 그런 걸 물을 때냐?”
“내가 떨어지면 그걸 바다에 던져줘.”
“뭐?”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달 내로 로마에 도착할 거니까 너도 프레드도, 절대 사절단에게서 떨어지지 말고 기다려.”
길버트는 눈물을 글썽이며 한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치 유언을 듣는 것처럼. 한길은 그런 길버트에게 최대한 여유로운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렇게 보지 마. 마지막은 아니니까. 난 안 죽어.”
아마도.
“으악! 마크!”
손이 풀렸다.
#
살을 에는 축축함이 온몸을 덮쳤다. 그리고 몸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첨벙!
근처에서 무언가 묵직한 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길버트가 던져준 나무 원통.
배럴이다.
‘다행이네.’
배럴은 적당한 부력이 있는지, 수면 위에 떠 있었다. 한길은 다가가 나무통의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다. 튜브 대용이다.
최대한 체력을 아끼기 위해 가만히 손잡이만 잡으면서 기다리자, 해가 떴다. 그리고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한길은 한 손으로 배럴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 개헤엄을 치며 육지로 향했다.
이안류에 휩쓸리고 조류에 휘말리고. 흠뻑 젖은 옷이 미역 줄기처럼 온몸을 얽어매서 쉽지는 않았지만……
‘살았다!’
어떻게든 해안에 도착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모래사장을 걷는 것조차 벅찼지만.
털썩!
간신히 모래사장 끝까지 기어가자, 기력이 빠져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눈이 절로 감겼다.
마지막으로 본 건 새로 뜬 시스템 창.
[새로운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제노아, 이탈리아.] [새로운 언어 패치를 다운로드합니다.] [메인 퀘스트의 주요 경로에서 벗어났습니다.] [새로운 경로를 찾는 중입니다.] [0%… 5%… 10%….]#
“죽은 거 아냐?”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반응이 없잖아?”
찰싹. 찰싹.
뺨이 불타는 감각.
소리는 들렸지만, 눈꺼풀은 여전히 무거웠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눈이 떠졌다.
보이는 건 눈 부신 햇살.
그리고 파란 눈.
짙은 갈색 머리와 대비되는 파란 눈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햇살에 그을린 피부와 고양이 같은 눈매가 눈에 박혔다.
“오빠, 살아있어!”
여자는 한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랐는지,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길의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떴다.
[새로운 경로가 지정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1 – 100인의 손님>.
목표: 100인의 손님을 만족시키세요.
제한 시간: 3 주
보상: 7,000 고르메 포인트
실패 시: 상점에서 10개의 아이템을 무작위 회수합니다.
+
‘퀘스트 실패는 아닌가 보네.’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하긴, 생각해 보면 파이널 퀘스트의 목표는 연회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사절단과 떨어졌다고 해도, 최종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손님은 무슨 뜻이지?’
하지만 더 생각하기도 전에, 아까 본 여자가 남자 둘을 데리고 다가왔다.
배가 산만하고 산적 같은 수염이 나 있는 남자. 그리고 조각상처럼 생긴 미남자.
“정말 안 죽었네?”
“다행이네. 사람 하나 묻고 가면 시간 꽤나 잡아먹었을 텐데.”
“굳이 묻을 필요가 있나? 바다에 던지면 알아서 해결될 텐데.”
도적인가?
다시 온몸에 긴장이 흘렀지만, 아직 힘이 돌아오지 않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딴 농담 하지 말랬지?”
뒤에서 다가온 여자가 두 남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에휴, 오빠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계속 이상한 오해를 하잖아!”
“농담인데.”
“그 얼굴에 칼 들고 그딴 소리를 하면 농담으로 받아들이겠냐?”
산적 같은 남자. 조각 미남, 그리고 고양이 여자. 묘한 조합이다.
여자는 한동안 산적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은 후, 한길에게 다가왔다.
“일어설 수 있어? 옷차림새를 보니까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뭐, 표류라도 당한 거야?”
“그런 모양입니다.”
여자는 제법 선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고 한길을 일으켜 세웠다. 그동안 그녀의 옆에서 미남자가 차가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바다에 빠진다고? 폭풍도 아닌데? 좀 덜떨어진 놈 아닐까?”
“오빠!”
뭔가 정신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신들은··· 누구신가요?”
한길의 질문에 산적 남자가 허리에 찬 무언가를 두드렸다.
잘 보니 칼이었다.
날이 잔뜩 서 있는 식칼.
“보면 모르나, 칼잡이지.”
“걱정 마, 도적 같은 건 아니니까.”
“피를 보긴 하지만.”
“아니, 도적보다는 우리가 훨씬 많이 보지.”
“어휴, 내가 그만하라고 했다?”
여자가 매섭게 노려보자, 두 남자는 입을 잠시 다물더니, 지나칠 정도로 유쾌하게 웃었다.
여자는 피곤한 얼굴로 다시 한길을 돌아보았다.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고, 노치니야.”
“노치니?”
“아, 이곳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나? 이동하는 정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