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2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23화(123/325)
123. 이력서가 좋아야
“정통 이탈리안 요리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이쪽은 전문분야가 아니라···.”
수셰프는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요리 경력 20년 차에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머쓱하다는 듯이. 하지만 이해는 갔다.
“정통이라는 단어가 조금 모호하긴 하죠.”
가장 익숙한 한식만 하더라도, ‘정통 한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사람마다 해석도 다를 거고.
“당장 떠오르는 건 파스타, 라비올리, 리조또 정도인데 이걸 정통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죠? 뭔가 프랜차이즈스럽기도 하고요.”
이탈리아 요리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봉골레’나 ‘까르보나라’만 해도, 굳이 파스타의 일종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많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고급화가 힘든 요리이기도 했다. 동네 파스타 집만 가도 봉골레는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 요리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이번 퀘스트 내내 한길이 한 고민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의 본질을 살리면서 차별화가 가능한 요리, 그것도 고급화가 가능한 요리가 대체 무엇일지.
그리고 마리오네 일행과 함께 다니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테루아르입니다.”
“테루아르요? 와인처럼 말입니까?”
테루아르(terroir)는 불어로 ‘대지’라는 뜻이다. 마리오 일행이 자주 입에 담았던 단어이기도 하다. 자동번역 기능 때문에 한길에게 익숙한 단어로 번역되는 건지, 아니면 이탈리아에서도 그 단어가 사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테루아르는 주로 와인에 사용되는 용어다.
같은 품종의 포도를 사용해도, 지역마다 와인의 풍미가 다르다. 토양, 기후, 그리고 문화도 맛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와 비슷하게, 한길이 경험한 이탈리아는 지역마다 요리의 맛이 달랐다.
리구리아 주는 올리브가 명물이었다. 그래서 고품질 올리브유로 만든 제노아의 포카치아와 페스토가 유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요리를 만들지만, 맛이 다르다.
살루미 역시. 이탈리아 전역에서 먹고 있었지만, 카라라의 라르도는 맛이 달랐다. 그 지역에서만 나는 하얀 대리석에 넣고 숙성시켰기 때문이다.
“전국 팔도 밥상처럼, 이탈리아의 20개 주 밥상을 만들어보려고요. 20개 주를 전부 다룰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아, 이탈리아 향토 요리 같은 거군요? 그런 컨셉이면 확실히 차별성은 있어 보이네요. 재료 수급도 나쁘지 않고요.”
“그런가요?”
“아직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장인들이 많으니 찾기도 쉽죠! 고가 재료라는 인식이 있으니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거부감이 없을 테고···”
재료 얘기가 나오자, 수셰프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지금까지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밝은 표정을 본 적이 없었는데···.
“게다가! 유럽 쪽은 이미 뚫어놓은 식재료상도 많거든요.”
입이 귀까지 걸쳐진 수셰프를 보니 입을 열기가 힘들어졌다. 저렇게 좋아하면 말을 꺼내기가 미안해지는데···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혹시 식재료 말고 다른 장비나 도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카라라라는 지역의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상자를 갖고 싶거든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예상외로 수셰프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까의 환한 웃음과는 조금 다른, ‘이 정도쯤이야’하는 안도의 웃음이긴 했지만.
“네,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죠.”
“어딜 가시려고요? 아직 갤러리 오픈 시간도 아닌데···”
한길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일어서자, 수셰프가 놀란 눈을 떴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동안 현대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즉, 이곳에서는 아직 ‘이상한 나라 앨리스’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한길은 매일 오전 11시까지 갤러리로 출근했다.
아직 출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은 먼저 들릴 곳이 있었다.
“생각난 김에 축산시장 좀 다녀오려고요.”
“축산시장이요?”
수셰프의 말투에 물음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제야 한길은 자기 머릿속의 계획을 모두 공유하지 못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살루미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살루미를요?”
“네.”
“수제로요?”
“네.”
“직접 만든다는 건, 도축한 고기로 직접 숙성을 한다는 말씀이신···.”
수셰프가 말꼬리를 흐렸다.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
뇌가 다시 풀가동하는 소리가 한길에게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분명 앞으로 레스토랑에서 감당해야 할 작업량을 계산하는 거겠지.
“셰프,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네.”
“파스타도 수제로 만들 계획인가요?”
“네, 필요하다면요.”
“하하···. 그렇군요··· 하하하···.”
이번 웃음은 어딘가 영혼이 빠진 웃음이었다.
“그럼 부탁합니다!’
한길은 괜히 미안해져 도망치듯 식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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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발골해 달라고요?”
“네.”
“여기 꺼내놓은 것도 오늘 새벽에 한 건데, 신선해요!”
“아니,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정형을 하고 싶어서요.”
“지금은 바빠서 안 되는데···”
축산시장에 도착하자마자 한길은 상인들에게 물어 통돼지를 직접 발골하고 정형 하는 매장을 찾아다녔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퀘스트 속에서 배운 비법으로 살루미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탈리아식으로 도축한 고기가 필요했고. 하지만,
‘또 거절이네··· ’
요청을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여섯 번의 거절 끝에야 간신히 사람 좋아 보이는 상인 한 명이 응해주었다.
“요리사신가? 요즘 사람답지 않게 열정 있네! 뭐, 까짓거 한번 해 보죠. 어떻게 하면 되요?”
“여덟 개 부위로 나누시면 됩니다.”
“금방 하겠네! 원래는 원래 최소 25개 부위로 나누거든요. 그렇게 하는데도 한 마리에 15분 걸리고!”
사장은 호언장담했지만, 생각보다 과정은 수월치 않았다. 가장 먼저 통돼지를 앞다리, 몸통, 뒷다리. 세 부위로 나누는 것부터 덜커덩거렸으니까.
“앞다리는 6번째 갈비뼈와 7번째 갈비뼈 사이를 잘라주세요.”
“그건 너무 큰데? 원래는 3번째 갈빗대에서 자르는데.”
“조금 다르게 해보려고요.”
“아니, 여기 앞다리 이 부분에 항정살이 있는데 따로 정형 안 해도 돼요? 이건 특수부위인데···”
“네, 이대로 쓸 겁니다.”
한국에서 발골하는 방식과 다르다 보니, 여러 번 되묻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심지어,
“앗! 그러시면 안 되는데!”
“왜요?”
사장은 돼지 몸통에 커다랗게 칼집을 내어 ‘임시 손잡이’를 만들어 옮기고 있었다.
칼집이 난 부위는 등 지방.
라르도에 사용되는 부위다.
“걱정 마요, 가브리살은 안 건드렸으니까.”
“아니, 그 등 지방을 쓸 거거든요.”
“이거 다 비곗덩어리인데요?”
그뿐이 아니었다.
직접 살을 발라내고 비계를 확인해 보자, 퀘스트 속에서 본 비계와는 달랐다. 이탈리아에서는 7-8센치 정도 되는 두께였는데, 5센치도 되지 않았다.
“등 지방이 원래 이 두께인가요?”
“이 정도면 평균이죠.”
“다른 품종도 이래요?”
“걱정 마세요, 다 잘라낼 거니까.”
“아니, 두꺼울수록 좋은데요?”
“이것보다 두꺼운 거? 제주 흑돼지가 아니고서야 없을 텐데요?”
안타깝게도 제주 흑돼지는 현지에서 작업을 거친 후 들여오기 때문에 통으로 발골할 수 없었다.
“뭐야, 한 시간 가까이 걸렸네? 배송은 이쪽 주소로 하면 되죠?”
“네. 혹시 이렇게 정형해서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하하, 난 머리가 나빠서 이런 거 일일이 기억 못 하거든요.”
사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정중히 거절했다.
‘역시 직접 해야 하나?’
이왕이면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발골도 직접 맡아야 할 것 같았다.
‘등 비계가 조금 더 두꺼운 품종도 알아보고···.’
한길은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바로 검색을 시작했지만, 의외로 적당한 품종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지방이 두꺼운 돼지는 현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가 아니었다. 지방이 적을수록 건강하다는 인식이 있어 갈수록 지방이 적은 품종으로 개량되고 있었으니까.
살루미는 지방과 살코기의 비율이 중요하다. 즉, 과거의 조리법 그대로 만들어도,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돼지고기로는 같은 맛을 낼 수 없다.
외국도 상황은 비슷했지만 다행히, 이 사실을 이미 깨달은 샤퀴테리와 살루미 장인들이 있어 최대한 유사한 맛을 내는 품종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대부분의 장인은, 옛 방식대로 방목해서 키우는 헤리티지 품종을 선호했다.
“어? 셰프? 바로 갤러리로 가신다더니 어쩐 일로?”
한길이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자, 수셰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할 말이 있어서요. 나중에 오후에 이쪽으로 돼지고기 반 마리가 배송될 겁니다. 받아서 따로 보관해 주셨으면 해서요.”
“전화나 깨톡으로 해도 되는데, 그 말 전하러 직접 오신 거예요?”
전화나 톡으로 말해도 되기는 하다. 그렇게 원격으로 폭탄을 던지기 미안해서 그러지.
“그리고 일전에 화이트 파크 소고기를 구매했던 업자 말인데요. 아직 연락되나요?”
“이번엔 뭔가요?”
아침과 달리, 수셰프의 얼굴은 평온했다.
저걸 평온이라고 해야하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반쯤 체념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한길은 아까 검색했던 돼지 품종의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탬워스(Tamworth)나 망가릿사(Mangalitsa) 품종의 돼지도 알아봐 주시겠어요? 도축된 것 말고 통으로 구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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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는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일전에 찾았던 화이트 파크 소고기는 셰프들에게도 생소한 재료였지만, 옛 돼지 품종은 수요가 많았으니까.
멸종 위기에서 살려낸 이탈리아의 고대 품종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탈리아산 돼지고기는 국내에 수입할 수 없었다. 대신, 영국이나 미국에서 샤퀴테리 장인들이 애용하는 돼지는 수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비로 구입하시려고요?”
“일단 한 마리만 더 사비로 처리할게요.”
“아무리 그래도 개인 돈을 계속 쓰시는 건 반대입니다.”
비용 처리의 문제가 까다로웠다.
지금 주문하는 돼지고기는, 판매용이 아닌 한길의 연습용 고기였다. 하지만 완성된 살루미가 매장에 내도 될 정도의 퀄리티라면 판매할 예정이다.
그래서 사비로 구매를 하겠다고 했지만, 수셰프는 반대했다.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게 좋다며. 한길을 위해서도, 레스토랑을 위해서도.
‘상점에서 가져오면 좋을 텐데···.’
고르메 상점을 이용하면 바로 다음날 고기를 구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레스토랑에서 판매할 수 없다.
돼지고기는 원산지 표기가 필수인 항목인 데다가. 살루미는 날고기를 숙성시킨 요리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기를 식당에 냈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이번 한 번만 더 부탁합니다.”
“정말 이번뿐입니다.”
“네, 그리고 또 뭐가 있죠?”
“오늘 지하실에 장비가 들어오는데, 오후 브레이크 타임쯤에 올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확인하고, 셰프는 내일 보고···. 문제가 있을 시에는 금요일까지 담당자에게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오늘이 갤러리 마지막 날이군요!”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2호점의 주요 시설은 거의 다 갖추었고, 인테리어 공사도 한 달 내로 마무리된다.
틈틈이 2호점 준비를 했지만, 한길은 갤러리 행사로, 수셰프는 1호점 운영으로 바빠 진행이 더딘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오늘만 지나면 온전히 2호점에 집중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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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렁각시 생활 끝!”
“빨리 레스토랑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부터는 주방 바쁜 거로 절대 불평 안 해야지.”
마지막 손님이 갤러리를 퇴장하자마자, 백스테이지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요리사들은 또 보기에도 민망한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고.
“무대 해체도 해야 하니까, 벌써 풀어지면 안 되지.”
“잠시 이 여운을 즐기게 해주십쇼.”
“그러다 언제 퇴근하려고?”
우는 소리를 내는 요리사들을 채찍질하는 사이,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셰프, 잠시 괜찮습니까?”
한대훈이었다.
“네, 잠시만요.”
한길은 일단 요리사들에게 지시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식기부터 정리하고, 감독님들 도와드리고 있어. 소품은 내일 반납하기로 했으니까 따로 챙기고.”
“······”
그런데 요리사들이 답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입은 움직이고 있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들이 뻥긋대는 입 모양을 읽으니···.
······ 봉투?
손으로 허공에 네모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있었다.
“스텝이랑 더 얘기가 필요하시면 저는 먼저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한길은 서둘러 한대훈을 향해 달려갔다. 최대한 요리사들이 보이지 않게 동선을 조절하면서. 저런 모습을 들키면 민망하니까.
‘못 봤겠지?’
힐끔거리며 살폈지만, 한대훈은 기분이 상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발걸음은 깡충깡충 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는 것에 가까웠고, 목소리 톤도 고양되어 있었다.
“이번 갤러리 행사는 대성공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과가 좋은 건가요? 솔직히 수익은 나지 않았을 것 같아서···”
장비와 세팅에 들어간 비용이 워낙 높아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한길이야 일당으로 받으니 손해 볼 건 없지만,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차피 사비로 기획했던 건데 덕분에 마케팅 비용까지 굳었으니 이 정도면 엄청나죠! 이색 요리라고 SNS에서 난리던데, 못 보셨나요?”
“아니, 봤습니다.”
“몇억을 들여서 광고를 찍어도 이 정도 화제성은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건 소소하지만···.”
한대훈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봉투를 꺼낸 후, 기다리지도 않고 한길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사실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또 있습니다.”
이번에는 말투가 지나치게 들떠 있다. 콧노래를 부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건 대외비긴 하지만, 페이튼과의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호텔 입찰도 되었고 이제 리모델링만 남았죠. 그것도, 페이튼 브랜드가 아니라 빌 페이튼이 운영하는 럭셔리 브랜드인 ‘페이튼 힐’의 첫 해외 지점이 될 겁니다.”
그제야 한대훈의 하회탈 같은 웃음이 이해되었다.
새 호텔은 오픈과 동시에 엄청난 주목을 받을 거다. 그런 호텔에 입점한다면···.
“그래서 말인데요. 2호점 오픈은 날짜가 잡혔나요?”
“예상보다 공사가 길어져서 아마 다음 달이 지나야 오픈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희 쪽이 생각보다 진행이 빨라서 최대한 빨리해주셨으면 했는데···.”
“중간에 계획이 조금 바뀌어서요.”
한대훈은 다시 표정을 가다듬더니, 이번에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입점 심사를 할 때는 제 표도 그저 하나의 표입니다. 원하면 심사에 유리하게 손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셰프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네, 정정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저도 셰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도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필요한 건 아니지만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왜 저를 그렇게 밀어주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잠시의 공백 후, 한대훈이 답했다.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해관계요?”
“페이튼 힐은 숙박업소가 아닌, 호텔 자체가 관광지가 되는 그런 곳이죠. 그런 호텔에 들어가는 식당도 비슷한 퀄리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길 셰프는 제가 그린 그림에 가장 가까웠을 뿐이죠.”
“그렇군요.”
“너무 계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계산하는 게 업인 사람인지라.”
“아니, 오히려 더 안심 됩니다.”
알 수 없는 호의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게 더 든든했다. 각자 최선을 다 하면 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조금 오지랖을 부리자면,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셰프의 요리는 의미도, 화제성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사를 하는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업이죠. 그리고 기업은 기업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
“숫자가 중요하죠. 매출, SNS 해시태그 카운트, 방송 출연 횟수. 무엇이든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좋습니다. 테이스팅도 물론 할 테지만, 이력서가 통과되어야 면접을 보는 거니까요.”
한대훈의 태도는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자신의 말이 한길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길은 그런 걱정을 모두 날려버릴 정도의, 자신 있는 웃음을 지어주었다.
“이미 그럴 생각으로 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받으신 이력서 중에 가장 눈에 띌 겁니다.”
“그런가요?”
“네, 저희도 나름의 계획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