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2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24화(124/325)
124. 법인이니까
“어, 형?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일이세요?”
“우리가 연락하고 봐야 하는 사이인가?”
“그게 아니라 바쁘실 텐데···. 카키까지···.”
“전 그냥 와도 되죠. 사장 특권.”
갤러리 행사를 마치고 <고르메 키친>으로 돌아온 첫날. 오전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노셰프와 카키였다.
“이런 데서 노닥거리지 말고 보러 가자!”
“아, 지하실 보러 오셨어요?”
“당연하지. 어떻게 빠졌는지 궁금해 죽겠다, 빨리!”
노셰프의 부추김에 한길은 수셰프에게 주방을 맡기고 바로 식당을 나섰다.
목적지는 레스토랑 입구 바로 옆,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지하실. 유럽 시골에서 볼법한 낡은 회색 석고로 칠해진 벽 사이로 작은 매장 입구가 보였다.
나무 간판에 적힌 이름은 “Salumeria.”
살루미 매장 겸 저장고다.
이곳에 식당에서 사용할 살루미를 보관하고, 별도로 구매를 희망하는 손님들에게 판매도 할 계획이었다.
“나중에 살루미도 걸어놓을 생각이에요.”
매장은 작은 구멍가게 정도의 크기. 별다른 인테리어는 없지만, 오픈하면 여기저기 살루미를 진열해서 유럽 시장 같은 분위기를 낼 생각이었다.
텅 빈 카운터를 지나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살루미 저장고가 나왔다.
도서관에 책장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듯, 책장 대신 드라이에이징 냉장고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이야, 이걸 진짜 샀네? 몇 대나 산 거야?”
노셰프는 들어가자마자 냉장고를 향해 달려갔다. 다양한 각도로 기웃거리며 살피고, 여러 버튼을 눌러보고, 쓰다듬기까지.
카키는 그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드라이에이징 냉장고 중 최상품이지. 온도랑 습도를 0 1 단위로 조절할 수 있거든.”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그야, 내가 추천했으니까.”
살루미를 직접 만들기로 결정을 내린 후, 한길은 노셰프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일전에 화이트 파크 소고기 요리를 할 때 노셰프가 보여줬던 드라이에이징 저장고와 유사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셰프가 추천한 냉장고는 진열 냉장고처럼 투명한 유리문으로 되어 있어 내용물을 확인하기 좋았다. 무엇보다, 온도와 습도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고, 공기 순환 기능까지 있었다.
“뭐야, 냉장고마다 설정이 다르네? 이건 왜 습도를 85%까지 설정해놨냐? 지벨로? 이게 뭔데?”
노셰프는 냉장고 표면에 붙은 스티커를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반적으로 건식 숙성은 온도 12-18도 사이, 습도는 60-70% 사이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주에 지벨로(Zibello)라는 마을이 있거든요.”
“그런데?”
“강가에 있어 습한 지역인데 거기 살루미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습기가 많아 최소 3년간 숙성시켜야 하지만.”
지벨로는 이번 퀘스트에서 잠시 거쳐간 마을이다.
발효 향 대신 독특한 단 향이 섞인 살루미가 특징이었는데, 고급스러운 실크 같은 식감이 매력적이었다.
현대에서도 지벨로 살루미를 옛 방식 그대로 만드는 장인들이 있었지만, 가격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쌌다. 1 파운드에 $100이 넘는 데다가, 일 년에 5,000개밖에 생산되지 않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한번 만들어볼 계획이다.
“3년 후에나 먹을 수 있다는 건가?”
“네.”
“그때 잊지 말고 불러라.”
“물론이죠.”
“그나저나, 냉장고마다 다른 지역 설정을 해둔 거야?”
“네.”
따악!
갑자기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기분 나쁜 타격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쓰다듬으려다가 쑥스러워져서 중간에 힘을 준 것 같은···.
“이놈, 이거 아이디어 하나는 진짜 기발하다니까.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뭘요?”
“이 저장고에 몇 개 도시를 넣으려는 거냐?”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인위적으로 각 지역의 기후를 담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길은 이 저장고에 이탈리아에서 방문한 모든 마을의 기후를 담을 예정이었다. 각 마을의 평균 온도와 습도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냉장고는 아직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몇몇 냉장고는 가득 차 있었다. 노셰프는 미술관에 온 듯, 진열장을 하나하나 살피다가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뭐야? 제주도는 여기 왜 있어?”
“아, 이건 지금 맛볼 수 있는데, 한번 시식하시겠어요?”
냉장고 안에 걸려있는 기다란 소시지.
살라미(salami)다.
살라미는 다진 고기를 이용한다. 즉, 통돼지를 구할 필요 없이 바로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냉장고 안에 있는 건, 축산시장을 간 날 저녁에 만든 제주 흑돼지 살라미였다.
한길은 살라미를 꺼내 얇게 썰었다. 새빨간 동그라미 안에 하얀 지방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거 독특한데? 무슨 와인 썼어?”
“복분자요.”
“뭐? 복분자?”
“제주 흑돼지랑 제주 복분자를 한번 섞어봤어요.”
“흠···.조금 다듬어야겠지만 나쁘진 않은데?”
노셰프의 말대로.
살라미는 미완성이었다.
파프리카 대신 한국식 고춧가루를 써서 익숙한 매캐함이 느껴졌고. 복분자가 주는 과일 향의 단맛도 좋았지만. 아직은 모든 맛이 따로 놀고 있었다.
다음에는 고춧가루를 처음부터 복분자에 녹인 후 체에 걸러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고···.
“그래도, 제주도 재료만 쓴다··· 재밌네. 하여간, 이 새끼는 아이디어는 끝내준다니까!”
노셰프는 칭찬을 했지만, 사실은 아이디어보다는 경험에 가까웠다.
마리오 일행은 새로운 마을에 들릴 때마다, 꼭 그 지역의 돼지를 사용하고, 그 지역에서 빚은 와인을 사용했으니까. 그 지역에서 유명한 허브가 있으면 같이 갈아 넣었고.
‘같은 땅에서 나는 건 같이 먹어야지!’라는 설명도 덧붙였었다. 그게 바로 이탈리아식 테루아르, 대지의 맛이었다.
제주 흑돼지 살라미는, 이탈리아의 테루아르 정신과 한국의 식재료를 접목한 시도다.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그런데···.”
노셰프가 갑자기 자못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이건 2호점에 판매하긴 그렇지 않나? 컨셉이 너무 흐려지는데.”
“판매용은 아니에요.”
“판매도 안 하는데 왜 만들어? 그렇게 하면 식당 운영이 되나? 카사장, 알고 있었어?”
“아니, 이건 제 사비로 만든 거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설마. 여기 있는 거 다 사비로 만든 거야?”
“완성되면 판매용으로 만들어야죠.”
“아니, 그건 알겠는데, 왜 개인 돈을 쓰는데? 어이, 카사장! 이런 건 비용 부담 같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 이놈 파산하면 어쩌려고?”
노셰프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실려 있었지만, 카키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첫 번째 부분은 맞고, 두 번째는 틀려요. 셰프가 파산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뭐?”
“여기 지분도 있고, 월급도 따로 받고 있고, 한스키친도 있으니까요.”
“뭐, 한스키친? 그거 아직도 하고 있었어?”
“여전히 줄 서는 식당이죠.”
“카키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단골이니까.”
이태원에 있는 한스키친은 <베스트 고르메> 소유가 아닌, 한길 개인 소유의 매장이었다.
모든 조리법을 매뉴얼화한 데다가, 애초에 버거와 샌드위치, 샐러드 등 간편한 요리만 만드는 매장이라 크게 손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제법 듬직한 매장 매니저가 있어 2주에 한 번, 쉬는 날마다 가서 확인만 해도 되었다.
“이놈, 이거 인생 살 줄 모르네. 돈 좀 벌었으면 좋은 차도 한 대 뽑고, 여행도 다니고, 어?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그래야지!”
“먹는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형, 점심에 약속 있어요?”
“약속은 없는데 자리 있어? 너네 가게는 예약 꽉 찼잖아.”
“밖에서 먹게요. 어차피 물어볼 것도 있고. 카키도 시간 되면 같이 가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한길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와! 대선배님!”
“너희 밥은 먹고 일하냐?”
“그럼요! 여기 다른 건 몰라도 스태프 밀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밥 먹였으면 일 해야지, 어디서 손 놀리고 있어! 빨리 일해!”
“네!”
떠나기 전 잠시 주방에 들리자, 요리사들이 노셰프를 격하게 환영했다. 그동안 한길은 수셰프와 짧게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점심 먹고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주방 잘 부탁드려요.”
따악!
“야, 아무리 그래도 그러지, 이 시간에 퇴근한다고? 벌써 그리 머리만 크면 어쩌냐?”
이번에는 조금 감정이 실린 타격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수셰프는 놀랐는지, 곤란한 얼굴로 한길의 변호에 나섰다.
“셰프가 그럴 리 없잖습니까. 오늘은 이사 때문에 그런 건데.”
“뭐? 이사?”
노셰프의 목소리에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졌다. 열심히 칼질하고 부스럭대던 요리사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기 때문이다.
“너, 이사 가냐?”
“아, 네.”
“오늘?”
“네.”
“집들이는 언젠데?”
“집들이요?”
따끔따끔할 정도로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집들이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이윽고 주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야, 가서 셰프에게 집들이 문화 좀 설명해 드려라!”
“너, 진짜 집들이도 모르냐?”
“아니, 당연히 알죠.”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희 셰프가 아직 지구 문화가 익숙치지 않으셔서···.”
여기저기서 장난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겹쳐서 들려왔다. 그리고 멋대로 결정이 내려졌다.
“내일 오프니까, 집들이는 내일로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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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이게 단가요?”
“네.”
“정말 이게 다예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용달 트럭 기사는 굳이 여러 번 확인을 했다. 이삿짐치고는 꽤 단출했으니까.
그래 봐야 열다섯 상자.
그마저도 대부분 주방 도구와 요리책이다.
덕분에 이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사를 보내고 새집으로 들어온 한길은, 새삼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이사 온 집은 작은 주택이었다. 식당 뒤에 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단독주택으로, 원래는 식당으로 운영되던 가정집이었다.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오랫동안 방치하듯이 버려진 건물. 시설이 노후하고 교통도 불편해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간단한 리모델링을 했지만, 1층은 식당으로 운영되던 당시의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덕분에 일반 가정집보다 주방이 커서 요리를 하기 좋았다. 식당 홀로 사용되던 공간은 커다란 식탁을 두어 다이닝 룸 겸 거실로 꾸몄다.
‘진짜 내 집이네.’
이사는 처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질릴 정도로 많이 했다.
제대한 후에는 숙식 제공을 하는 공장에서 일했었고, 그 후로는 야근이 많아 일터를 옮길 때마다 근처의 고시원이나 반지하 원룸을 구해 들어갔었다. 이태원에 가게를 낸 이후로는, 해방촌 꼭대기에 있는 옥탑방에 살았었고.
‘왜 이러지?’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가구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지금껏 한길에게 ‘집’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지붕이 있고 벽 네 개가 있는 실내.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이상하게 감성적인 기분에 빠진 것 같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집들이.
식당 직원들이 모두 온다. 수셰프는 아내와 딸을 데려와도 되냐고 물었고. 거기에 노셰프와 카키까지···.
손님만 서른 명이 넘는다.
“어떻게 준비하지?”
한길은 서둘러 집들이를 검색했다. 지금껏 이사는 자주 했어도, 집들이는 처음이었으니까. 단어로만 접했지, 집들이에서 무얼 해야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검색 결과는 집들이 상차림에 관한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요리는 특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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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준비 엄청 많이 하셨네요!”
“오랜만입니다.”
“네, 셰프님도요. 고생 정말 많으셨겠어요.”
수셰프의 아내는 한길이 준비한 상차림을 보며 순수히 감탄하고 있었다. 반면, 다른 직원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우와,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셰프, 무슨 뷔페 차려요?”
“막내야! 집들이 제대로 가르쳐 드린 것 맞냐?”
한편, 노셰프는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허리를 구부리고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도 못 꺼낼 정도로.
‘너무 과했나?’
상 위에는 서른다섯 개의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아스파라거스 돼지고기 말이, 수욕, 밀푀유 나베, 구절판, 탕수육, 전복찜, 수육, 포르케타, 무화과 샐러드···.
간신히 폭소를 멈춘 노셰프는 한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걸쳤다.
“크크, 너, 집들이 처음이지?”
“아니에요, 어제는 시간이 조금 많이 남아서···”
“됐어, 인마. 이 새끼, 이거 귀여운 구석도 있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제 검색할 때 보니, 대부분의 집들이 상차림은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길은 손님이 많았다.
같은 요리를 반복해서 내기도 뭐하고. 이왕이면 다양하게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메뉴를 늘린 건데···.
“이야, 이거 전복찜 예술인데? 뭐가 이리 부드러워?”
“셰프! 아스파라거스 더 없어요? 와,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그래도 모두가 흡입하듯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해졌다. 식당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조금 달랐지만.
“그런데, 제일 중요한 인물이 없네?”
“그러게? 카사장 어디 갔어? 조금 남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접시가 거의 비어갈 무렵에야 모두가 카키의 부재를 눈치챘다. 그 모습을 보고 슬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카키 사장님은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다고 했어요. 그리고 음식은 아까 덜어놨고요.”
“아까? 언제?”
“진짜 다들 먹느라 정신없었나? 못 봤어요?”
슬아는 고갯짓으로 저 멀리 있는 아일랜드 식탁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정말로 여러 요리를 정갈하게 담아둔 접시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어? 온 것 같은데?”
“소리 들리지 않아?”
“무슨 소리가···.”
모두 잠시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자, 밖에서 요란한 배기음이 들려왔다. 스포츠카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 카키의 시그니처다.
하지만 시동을 끈 후에도 카키는 들어오지 않았다.
띠리리!
대신 한길의 전화기가 울렸다.
“도착했어요? 문 열려있으니까 그냥 들어와도 되는데··· 네? 왜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화를 끊은 한길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잠깐 밖에 좀 갔다 올게요.”
“왜?”
“글쎄요? 나와보라는데요?”
한길이 밖으로 향하자, 호기심 가득한 요리사 몇 명과 노셰프, 수셰프까지 우르르 따라왔다.
대문을 열자, 문밖에는 처음 보는 노란 차량이 있었다. 카키는 차에 기대며 서 있었고.
“우와, 이거 새 차에요? 사장님, 람보르기니 안 타잖아요?”
“크! 때깔 죽인다!”
몇몇 직원들은 카키 옆으로 달려가 차를 감상하기 시작했지만, 노셰프는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잔소리부터 했다.
“야, 왜 이리 늦게 오냐?”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니까요.”
“네가 왜 주인공인데?”
“아, 저 말고, 이놈이요.”
카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차체를 탕탕 쳤다. 그리고 한길에게 다가가 고개를 까닥였다.
“셰프, 손.”
“네?”
“손 내밀라고요.”
한길이 손을 펼치자, 그 위로 열쇠가 떨어졌다. 동시에, 주변에서 지켜본 모든 사람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설마···..
“집들이 선물.”
“······”
너무나 황당한 말에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몇몇 직원들은 턱관절이 망가진 것처럼 보였고.
“뭐야, 농담도 못 해요?”
“그럼 이건 뭐예요?”
“법인 차량이라고 해두죠. 셰프가 타고 다녀요.”
“미친!”
“우와, 진심?”
“우리 사장님 스케일 실화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직원들이 반응하자, 카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우리 법인 문화, 아시죠? 무조건 스웨그. 앞으로 이거 타고 다녀요. 그리고 셰프, 손!”
한길의 손에 또 다른 물건이 떨어졌다.
네모난··· 카드?
“한도 2억.”
“네?”
“이건 법인카드라고 해야 하나? 아, 아무 때나 쓰는 건 아니고. 연구 개발비에요.”
“연구 개발비요?”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모든 연구 비용을··· 아씨, 뭐라고 했더라? 어쨌든. 자세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세금 대신 연구비래요. 사비 쓰지 말고 이걸로 써요.”
카키는 지나치게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 칭찬해달라고 올려다보는 강아지 같았다.
“고.. 고맙습니다.”
“법.인.이니까요. 식당일은 모르지만, 그래도 사업은 해봤거든요. 이런 일 있으면 미리 알려주시고요.”
그러고 보니. 한길도, 수셰프도. 일반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처럼 레스토랑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처리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나저나, 시승식 안 하나요? 나, 1빠!”
직원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차체를 에워쌌다. 수셰프는 카키를 다이닝룸으로 안내해 주고 있었고. 그 사이, 한길은 노셰프에게로 다가갔다.
노셰프는 마치 자신이 선물을 받은 것처럼 어깨를 펴고 웃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인복은 타고났네.”
“그건 그래요.”
한길은 주변을 잠시 살폈지만, 둘의 대화를 신경 써서 들을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 어제 물어보려다 갑자기 정신이 없어서 깜빡한 게 있는데.”
“뭔데?”
“혹시 주변에 이탈리안 전문 셰프, 추천할 만한 사람 없나요?”
“셰프? 어떤 놈으로?”
“그게···. 이탈리아에서 요리학교를 졸업했거나 이탈리아 본토 레스토랑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필요해서요.”
“뭔 조건이 그런···. 아! 너, 설마?”
처음에는 어이없어 코웃음 치던 노셰프가 뒤늦게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한길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한번 노려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