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2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25화(125/325)
125. 롤모델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Ospitalita Italiana).
이는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연합(Unioncamere)에서 시행하는 프로젝트로, 이탈리아 국립관광연구원의 기준에 부합하는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인증서를 발행하는 프로젝트다.
쉽게 말하면, 이탈리아 본연의 맛을 전파하는 해외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슐랭만큼의 위상도 없다.
대신, 다른 장점이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승인한 정통 이탈리안 요리.
이력서에 올리기 좋다.
“국내에서 시작한 지 이제 십 년 정도 되지 않았나? 이걸 받은 데가 열 군데는 되려나 모르겠네.”
“작년 부로 21군데 있어요.”
“그러니까. 전국에 이탈리아 음식점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 21곳만 인정해줬다는 거 아냐.”
노셰프의 말대로, 자격요건이 꽤 까다로웠다.
그중 하나가 주방장의 자격.
이탈리아 소재의 요리학교에서 요리를 배웠거나, 이탈리아 본토의 레스토랑에서 최소 2년간 근무한 셰프가 주방을 이끌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즉, 한길에게는 지원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조건에 맞는 헤드 셰프를 데려온다?”
“그렇죠.”
“너는 그 위에 서고?”
“그렇게 되겠죠?”
필요한 이력을 갖춘 헤드 셰프에게 2호점을 맡길 생각이었다. 이참에 수셰프 역시 1호점의 헤드 셰프로 승격시키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한길은 여러 명의 헤드 셰프를 거느리는 총주방장, 즉 이그제큐티브 셰프(executive chef)가 된다.
“혹시 주변에 아는 사람은 없나요?”
“뭐, 내가 아는 놈 중에는 없지만 조금 물어보면 쓸만한 놈이 나오겠지. 이 업계가 생각보다 좁으니까.”
“부탁드려요, 형.”
“그건 문제없는데···.”
아까까지 뿌듯해하던 노셰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찼다.
“이그제큐티브 셰프라···. 너무 빠르지 않나? 너 나이가 몇이지?”
“서른셋이요.”
“미친, 서른셋에 총주방장이라니···. 헤드 셰프로 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거랑 이그제큐티브 셰프로 운영하는 건 또 다르거든. 요리나 레스토랑 외적으로도 일이 많기도 하고, 수셰프를 다루는 거랑 헤드셰프를 다루는 건 또 다른데···.”
한길을 무시해서 하는 걱정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보면 한길은 겨우 하나의 레스토랑을 운영한 경험밖에 없고, 그것도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점이니까.
“보통은 어깨 너머로 선배들이 하는 거 보면서 터득하는데, 넌 총주방장이 있는 식당에 일해본 적도 없잖아?”
“그렇죠.”
“이건 벼락치기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나? 너, 일주일만이라도 내 식당에 와 볼래? 아니지, 2호점 준비만 해도 시간이 없으려나?”
자기 일처럼 고민하는 노셰프가 고맙긴 했지만, 도움은 필요 없었다.
“괜찮아요. 비슷한 경험은 있거든요.”
“뭐? 언제 어디서?”
“아니···. 평소에 공부도 많이 하고 연구도 많이 해두었으니까요. 직접 한번 부딪혀보려고요.”
“공부랑 실전이랑 같냐? 이건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블로그 몇 개 읽었다고 셰프 된다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노셰프는 바로 잔소리를 시작했지만,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한길이 결심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 어깨 너머로 이그제큐티브 셰프가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방의 일상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항상 방향성을 제시해 주던 사람. 미식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타고난 결단력으로 모두를 이끌어가던 리더.
“저에게도 롤모델은 있거든요.”
“그래?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글쎄요.”
아마 모를 거다.
2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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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집들이 후에도 직원들은 집에 가기를 거부(?)했다. 여기저기 엎어져 기절하듯 잠든 직원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와, 셰프!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어요?”
“이야, 서비스 죽이네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먹어. 다 먹고 할 말 있으니까.”
“예스, 셰프!”
아침 메뉴는 황태해장국.
직원들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가면서 게걸스러울 정도로 국물을 탐했다. 여기저기서 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마셔 호로록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기름을 두르고 달달 볶은 황태. 무를 넣어 우려낸 담백한 육수. 아삭함이 아직 살아있는 콩나물과 수란까지. 해장국은 부글부글 요동치는 위장을 달래주었다.
“으으으··· 시원하다!”
“셰프, 우리 국밥집 하나 오픈해도 대박 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국물 맛이 왜 이리 깊지? 하루종일 우려낸 것 같은 맛이 나는데?”
그야, 이 사태를 예상하고 어제부터 육수를 준비해 두었으니까···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발, 조금만 조용히! 머리가 울려요···.”
한편, 시끄럽게 떠드는 요리사들과 달리, 슬아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는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고.
“핸드폰부터 내려놔야지. 너, 그거 중독이야, 중독.”
“노는 것도 아니고, 신문 읽는 거거든요?”
“잘도 그러겠다.”
“정말이라니까.”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던 슬아는 다시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헐? 대박 사건!”
“왜?”
“기사 떴어요!”
“기사야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고르메 키친이 매체를 타는 일은 일상에 가까웠다. 이제는 기사 한두 개로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엔아이 타임스인데요?”
슬아가 들고 있는 화면 속에는 온통 영어뿐.
해외 기사였다. 그것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 매체.
“진짜?”
“말도 안 돼!”
“잠깐! 잠깐! 번역기!”
모두 후다닥거리며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기 바빴다.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요리 탑10>이라는 제목의 기사. 여덟 번째 순위에 한국의 ‘미친 모자 장수’ 수프가 실려 있었다.
「한국의 TG 모던 아트 갤러리에서 선보인 이색 메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요리를 재해석··· 기발한 아이디어와 절묘한 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식가, 빌 페이튼의 혀도 사로잡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페이튼은 “먹는 순간 바로 판타지 랜드를 열어주는 초월적인 요리’라며 극찬··· 이한길 셰프의 앞날이 기대돼···」
번역기의 깨진 문장만 읽어도, 기사가 나온 이유는 짐작이 갔다.
TG 갤러리, 빌 페이튼.
둘 중 한쪽에서 홍보를 한 것이겠지.
“이거 얼굴책이랑 별스타에도 난리인데요?”
“그거야 당연하지! 엔아이 타임스잖아?”
“벌써 댓글 장난 아닌데요!”
한길은 떨리는 마음으로 슬아가 내미는 화면을 봤다. 이번 기사의 파급력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댓글 반응도.
┗ 한국계도 아니고 순수 한국인 요리사가 엔아이 타임스에 실린 적이 있었나?
┗ 이거 행사하는 거 보고 너무 비싸서 망설이다 안 갔었는데 ㅠㅠ 이미 끝났겠죠? 그냥 갈 걸 ㅠㅠ 아, 아까워 ㅠㅠ
┗ 자랑스러운 코리안!
┗ 근데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8위는 좀 아니지 않나? 아무리 봐도 1위 감인데?
┗ 이거 카키 레스토랑 아닌가? 오늘 당장 예약한다!!
다시 기사의 원문을 읽어보니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이 실려있었다.
“Chef Han Kil Lee.”
심장이 가파르게 뛰고 심장 고동이 귓가에 생생히 들려왔다.
전 세계가 읽는 신문에 이름이 실려있다. 예전부터 가슴속에 간직한 꿈··· 세계적인 셰프가 되고 싶다는 그 꿈을 향해 가는 첫 번째 계단을 오른 셈이다.
“할 말 있으니까 이제 그만 핸드폰 내려두고.”
하지만 한길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들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으니까.
“우리 2호점으로 확장하는 거, 다들 알고 있지?”
그 한 마디에 웅성거리던 모든 직원이 한꺼번에 입을 다물었다.
공사가 진행 중이니 모두 2호점의 존재는 알고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호점은 공사가 끝나는 대로, 다음 달이나 다다음 달 즈음에 오픈할 예정이고, 지금 여기 있는 멤버 중 반은 1호점, 반은 2호점으로 배치할 계획인데, 각자 선택권을 주고 싶어서.”
“···.”
“···.”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요리사들이 이렇게 얌전히 듣기만 하는 건 처음이다.
“1호점은 기사에 나온 것처럼, 창의성 위주의 현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될 예정이고, 2호점은 정통 이탈리안 요리가 될 거고.”
“우와!”
“이탈리안!!”
이탈리안이라는 말에 몇몇 요리사가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앞으로 수셰프는 1호점의 헤드 셰프니까 오늘부로는 수셰프 대신 최셰프라고 불러. 1호점의 수셰프는 최셰프가 직접 뽑을 거니까 잘 보이고.”
“우와! 축하드립니다!”
오늘부로 수셰프를 졸업한 최셰프 역시 모처럼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의 엄격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얼굴 근육이 꿈틀거려 기묘하게 씰룩이는 모양새가 되었다.
“자, 서두르자. 1호점 가고 싶은 사람들은 왼쪽으로, 2호점 가고 싶은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자리 잡고 앉아. 오늘 쉬는 날 아니잖아? 빨리하고 가서 재료 손질해야지!”
“예스! 최셰프!”
생각보다 요리사들은 큰 망설임 없이 가고 싶은 자리를 금방 골랐다. 다행히도, 대략 반반으로 나뉘었다.
“다음 주부터 1호점에서는 ‘미친 모자 장수 수프’ 판매할 예정이다. 셰프의 테이스팅 메뉴로 올라갈 거고, 2달간 판매한다.”
“네? 고정 메뉴가 아니에요?”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아깝게···.”
“인기가 계속 가진 않을 테니까.”
모자 장수 수프의 셀링 포인트는 처음 먹을 때의 그 신기함. 금박지에 쌓인 콘피가 녹아내리는 마법 같은 놀라움이 맛의 절반이다. 그리고 신기한 요리는, 다시 먹을 때는 그 놀라움의 효과가 반감된다. 즉, 오래 판매할 메뉴는 아니다.
“그런데 테이스팅 메뉴면, 다른 메뉴는 뭔가요?”
“그건 너네가 정해야지.”
“네?”
한길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몇 달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이 순간을.
언젠가 봤었던, 미치도록 탐났던 그 주방. 새로운 요리를 탐구하는 요리사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모두가 단결된 그곳.
이제는 자신도 그런 주방을 만들 차례였다. 현실에서.
“숙제다. 모자 장수 수프와 어울릴 만한 요리를 각자 만들어 올 것. 사흘 후에 심사하고, 통과한 요리는 메뉴에 올릴 거니까.”
“저희가 만든 요리를요?
“그래.”
여기저기서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테이스팅 메뉴를 만들 거고, 메뉴는 내부 콘테스트로 결정한다. 스태프 밀처럼 설렁설렁 만들면 다 탈락이니까 제대로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주길 바란다. 필수 참여는 아니지만,”
“당연히 참가해야죠!”
“우와! 우리 메뉴가? 정말?”
여기서 통과되면, 해외 언론에 실린 레스토랑에 자신의 메뉴를 올리게 되는 것. 그 의미를 아는 요리사들은 들떠 있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흘렀다.
“지금도 바빠 죽겠는데 니들 다 죽어가겠네.”
“심사 할 때 저희도 물론 맛봐도 되겠죠?”
“고생 많이 해라!”
한편, 2호점을 선택한 사람들은 심술궂게 1호점 직원들을 놀리고 있었다. 부러움과 안도가 반반 담긴 시선으로.
“무슨 말이야? 너네도 할 일은 있는데.”
“저희요? 2호점은 아직 오픈 전인데···.”
“오픈 전에는 오픈 전의 준비가 있으니까.”
한길이 말을 마치자마자, 잠시 밖에서 통화하던 수셰프가 다시 돌아왔다.
“셰프, 30분 후면 도착이라는데요?”
“그럼 먼저 가 있을게요. 1호점 스태프 미팅은, 오늘은 여기서 해주세요. 잠시 주방을 사용해야 해서.”
“네, 알겠습니다.”
“너네는 나랑 같이 가고.”
“어디를요?”
“도착했다잖아?”
“뭐가요?”
재료가.
지금까지는 새벽에 몰래 혼자 작업하느라 힘들던 참이었는데. 이제는 일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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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설마···.”
“아니, 반 마리가 통으로···.”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물건이 들어왔다. 해외에서 어렵게 구해온 통돼지 두 마리다.
“2호점에서는 수제 살루미를 만들 생각이라서.”
“수제요?”
“발골부터 다 손으로 할 거니까.”
다들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얘졌다. 통돼지를 직접 손질해서 작업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금방 적응해야 한다.
한길은 수업하듯이, 요리사들 앞에서 이탈리아식 정형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막막해하던 요리사들은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고, 곧 호기심까지 보였다.
“그런데 거의 소고기인데요?”
“그러게, 뭔 돼지고기 색이 이렇게 진해요?”
“그보다 이 마블링, 미쳤고요!”
탄탄한 붉은 살코기 사이에는 거미줄처럼 하얀 마블링이 새겨져 있었다. 잠시 손만 대도 녹아내리는 듯한 지방. 누가 어떻게 봐도 소고기처럼 보이지만,
“이건 무슨 돼지예요?”
“망가리짜 (Mangalica).”
“망···?그건 어디 거에요?”
망가리짜는 헝가리의 명물이다. 19세기 초, 합스부르크 황제가 세르비아의 왕자로부터 선물 받은 돼지를 현재 로마니아 인근의 돼지와 교배해서 만들어진 품종이다. 생긴 것도 독특한데, 돼지 품종 중 유일하게 양털 같은 몽글몽글한 털을 갖고 있다.
망가리짜는 전 세계적으로 살루미와 샤퀴테리 장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돼지품종이다.
그 이유는 바로 지방.
일반 돼지는 지방이 몸 전체의 50% 미만을 차지하지만, 망가리짜는 지방이 전체 무게의 60%를 차지한다.
단순히 비율만 높은 것도 아니다.
일반 돼지 지방은 55-65도에서 녹는다. 그에 비해, 망가리짜의 지방은 32도에서 녹는다.
사람의 체온에 녹아내리는 지방이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덕분에 입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관능적인 맛으로 유명하고, 일부에서는 “고베 돼지”라고 불리고 있다.
“노닥거리지 말고. 오픈 전까지 해야 하니까 서두르자. 빨리, 무게 재.”
“예스, 셰프.”
“1키로에 하루로 계산해서 적어두고.”
“예스, 셰프.”
여덟 개의 부위는 소금을 표면에 잔뜩 묻혀서 비닐 팩 안에 넣는다. 그리고 무게를 잰 후, 1차 염지 시간을 계산한다. 각 고기에는 염지가 마무리되는 날짜와 시간을 적어두고, 수시로 확인하며 염지가 마무리된 순서대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부위마다 무게가 다르니, 꺼내는 날짜도 다르다. 그래서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내일은 경우, 동일이가 먼저 담당하자. 염지 된 걸 와인으로 씻어내고 양념을 더 해서 드라이에이징 냉장고에 넣어야 하거든.”
“예스, 셰프.”
염지를 마치고는 전체 무게의 30%가 증발할 때까지 숙성시킨다. 이것도 수시로 무게를 재며 확인할 담당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셰프는 왜 이리 능숙해요?”
“그냥 공부했으니까.”
“아니, 공부한다고 되냐고요? 역시 재능충···.”
“인간이 아니잖아. 뭔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게 틀림없어.”
능숙한 게 당연하다.
퀘스트 속에서 100마리나 손질해 봤으니까.
마리오는 냄새만 맡아도 고기가 염지가 되었는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었지만, 한길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퀘스트 속으로부터 500년이 흐른 사이, 수많은 살루미 장인들에 의해 염지와 숙성에 필요한 공식이 만들어졌으니까. 한길은 과거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셰프, 이제 들어와도 되겠습니까?”
마무리하자, 1호점 식구들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길은 무심코 시계를 봤다.
“비행기 시간은 괜찮으신가요?”
“이제 바로 출발해야겠네요. 오늘, 잘 부탁합니다.”
“물론이죠.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셰프, 어디 가세요?”
“어, 출장.”
“출장이요? 어디로?”
“제주도.”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이 역시 익숙해져야 한다. 앞으로는 종종 출장도 가게 될 터.
주방을 두고 떠나야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최셰프가 실수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충분히 이 주방을 잘 이끌어 갈 거다.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두 명이 붙어서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한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아피키우스는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일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숲을 봤으니까.
이제부터는 한길도 숲을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