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3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30화(130/325)
130. 내일 얘기하시죠
‘재료에 대한 이해도는 있네.’
단답형으로 필요한 말만 하던 소희는, 재료를 보자마자 10년 치 생일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길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박식하다. 무엇보다, 저렇게 흥분할 정도로 재료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한길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은 갖췄다는 뜻이다.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 다시 한번 얘기해 줄래요?”
하지만 역시 커뮤니케이션이 문제다.
와이파이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것처럼, 약간의 지연이 있다.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세 번이나 반복해 말해주자, 소희의 표정이 돌변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눈을 가늘게 좁히며 다소 위협적인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한 것.
‘왜 그러지?’
말실수했나 싶어 다시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 보아도, 저런 표정이 나올 정도의 말은 아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소희는 이내 사나운 표정을 거두고 조리대에 재료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길은 그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레스토랑에서도 자리를 마련하여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굳이 이곳으로 오자고 한 이유.
이곳에는 레스토랑 메뉴에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재료를 갖추고 있기도 했고. 주변의 방해 없이, 그녀의 작업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 다음으로 볼 건 순발력과 계획성.’
한길은 요리사가 아닌, 헤드 셰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요리는 기본이고, 주방을 지휘할 능력을 봐야 한다.
레스토랑의 요리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간다. 즉, 조리 단계에 따라 나누고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길이 소희에게 만들라고 한 메뉴는 카폰 마그로, 판소티, 파리나타.
어려운 요리는 아니지만, 부품이 많고 조립에 손이 많이 가는 메뉴다. 이걸 어떻게 대처할지 보고 싶었다.
“우선은 먼저~”
소희는 긴장은커녕 콧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리고 있었다. 본인이 인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파리나타 반죽 만들기. 병아리콩 가루에 미지근한 물을 섞어서 잘 개어주었다. 이 반죽은 미리 만들어 놓고 약 두 시간 동안 뚜껑을 덮어놓고 상온에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비트에 올리브유를 뿌려 오븐에 넣었다. 비트는 약 40분은 구워야 하니까.
작업대에 밀가루를 부어 작은 화산을 만들고, 화산의 분화구에 계란 두 개를 깨트려 파스타 반죽을 만들었다. 반죽은 30분간의 상온 숙성이 필요하다.
미지근한 물에 케이퍼를 담가놔 염분을 제거하고, 필요한 채소를 데치고. 필요한 해물을 삶고.
동시에 수많은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단 한 순간도 버벅거림이 없었다. 여섯 개의 화구에 번갈아 가며 다양한 채소를 데치면서, 그 어느 하나 너무 삶아지지도 않았고.
갑자기 만들어야 하는 메뉴를, 마치 몇 년 간 해왔던 것처럼 여유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계획성이랑 멀티태스킹 능력은 뛰어나네.’
아직 어린 편인 데다가, 헤드 셰프 직을 맡은 적이 없어 어느 정도 실수는 눈감고 넘어가려 했는데. 예상외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이 정도면 급하게 구하는 헤드 셰프치고는 훌륭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볼 것은 조리 실력.
‘어떻게 만들까?’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한길이 경험한 요리들은 500년 전의 이탈리아 요리니까.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요리도 있는가 하면,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바뀐 요리도 있었다.
현실로 돌아와 번역기를 두드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지만, 인터넷 창으로 본 요리와 현지에서 요리했던 사람이 직접 눈앞에서 조리하는 건 다르다. 기대될 수 밖에.
‘우선은 카폰 마그로인가?’
카폰 마그로(cappon magro)는 제노아에서 먹은 해물 샐러드로, 살짝 데친 채소와 해물을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아 올린 요리다.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주로 먹는다고 들었다.
스윽. 스윽.
소희는 가장 먼저 사우어도우 빵을 얇게 썰어 레드와인 식초에 재워두었다. 그리고 붉게 물든 빵을 손으로 짜서 물기를 제거했다.
접시의 바닥에 데친 당근, 그린빈, 양상추, 그리고 레드와인 식초에 적신 빵을 차례로 올렸다. 중간중간 오븐에 구운 비트와 애호박도 넣어주고.
한길이 본 요리와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퀘스트 속에서는 최소 다섯 명이 먹을 수 있도록 거대한 탑을 만들었지만, 소희는 한 명이 먹을 크기의 아담한 탑을 쌓았다. 그리고,
‘저건 없었는데.’
녹색 소스를 사용했다.
염분을 제거한 케이퍼, 안초비, 잣, 마늘, 화이트 와인, 파슬리, 삶은 계란, 그리고 올리브유를 믹서기에 갈아서 만든 소스를.
채소 한층, 녹색 소스 한층, 빵 한 층을 반복해 쌓아 올리고. 마지막은 해물.
탑의 꼭대기에 살짝 구운 도미와 껍질을 깐 새우를 올려 보기 좋게 장식하고. 탑 옆에는 잘 삶아진 랍스터를 올렸다. 붉은 갑옷의 랍스타가 알을 지키듯 탑을 지키는 모양으로.
“랍스타나 새우 샐러드는 본 적 있어도, 생선 샐러드는 처음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저렇게 먹어요?”
궁금한지, 옆에서 슬아가 질문을 했다. 직접 설명해줄 수 있지만, 소희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한길은 가만히 기다렸다.
“제노아에서만 그렇게 먹어요. ‘카폰’은 원래 거세한 수탉인데, 옛날에는 비싼 재료라 귀족들만 먹을 수 있었거든요. 가난한 어부들은 닭 대신에 저렴한 해물을 올려서 먹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고요.”
“헉, 랍스타가 닭고기보다 저렴하다니···.”
“옛날 어부들한테는 그랬죠. 이탈리아는 옛날 요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게 많아서 재밌어요.”
한길은 소희의 답변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레시피를 외우는 게 아니라, 요리의 기원까지 알고 있다.
탕탕탕탕!
그 사이, 소희는 다음 메뉴인 판소티(pansotti)로 넘어갔다.
판소티는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의 일종으로,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게 특징이다.
데친 채소를 다지면서 소희는 모처럼 한길에게 말을 걸었다.
“설마 프레보죤(preboggion) 까지 갖추고 있을 줄 몰랐어요.”
“프레보죤이요?”
“뭐야, 리구리아 안 가봤어요?”
역시 말끝이 뾰족하다.
“이탈리아는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일단은.
“뭐에요, 생소한 지역 요리를 말하길래 가본 줄 알았잖아요. 안 가봤으면 모를 수도 있죠. 프레보죤은 이탈리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요. 한국에서 봄만 되면 아주머니들이 비닐봉지 들고 나가서 봄나물 뜯듯이, 리구리아 시골 아주머니들도 허브를 뜯거든요. 그걸 프레보죤이라고 해요.”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제노아에서는 여관 주인이 조리하는 과정만 봤으니까.
소희가 고른 허브는 근대, 시금치, 파슬리, 민들레, 치커리, 루꼴라, 그리고 보라지(borage)였다.
“일곱 종류를 쓰는 건가요?”
“최소 일곱 종류인데, 사실 정해진 건 없어요. 왜, 한국에도 봄나물이라고 하면 꼭 정해진 나물이 있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포함되잖아요?”
“이탈리아에도 근대가 있어요?”
“국내랑 같은 맛은 아니지만, 있긴 있어요. 근대는 들어가도, 안 들어가도 되는 재료지만, 사실 보라지는 꼭 들어가야 하거든요. 이게 있어서 놀랐어요. 이건 호텔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한번 건의했다가···”
“했다가?”
“··· 아니에요.”
“흠, 그렇게 치면 이건 이탈리아의 봄나물 만두인 셈이네요. 재밌네요.”
“이게··· 재밌다고요?”
“네.”
“정말?”
“네.”
“···.”
한길은 웃으며 답했지만, 소희는 다시 눈을 길게 찢으며 사나운 얼굴로 칼을 꽉 쥐었다.
탕탕탕탕!
그리고 무서운 기세로 허브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다졌을 텐데···.
또 무슨 말을 잘못한 건지···.
난타하듯 도마에 모든 감정을 쏟아낸 소희는, 후련한 얼굴로 허브 믹스에 파르메산 치즈와 계란을 넣어 채소 소를 만들었다.
다음은 만두피를 만들 차례.
숙성시킨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내고 정사각형 모양의 만두피를 만들자, 옆에서 슬아가 또 호기심을 보였다.
“파스타 직접 만드는 것도 처음 보는데! 만두랑 너무 똑같은데요? 노란색인 것만 빼면.”
“노란색은 계란이 들어가서 그래요.”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쉬워요.”
“저도 한번 만들어봐도 돼요?”
“당연히··· 아, 아니.. 그건 면접관에게 확인해야죠.”
슬아와 허물없이 대화하던 소희의 얼굴이, 한길을 보자마자 다시 굳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슬아는 신이 나서 소희 옆으로 달려가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정사각형 만두피 위에 적당량의 만두소를 올려주고, 대각선으로 접어 삼각형을 만든다. 내용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가장자리를 꾹꾹 눌러준 후, 삼각형의 두 꼭짓점을 모아서 붙여주면,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양의 만두가 완성된다.
“우와! 이게 되네! 집에서 만두 만들 때마다 제대로 못 해서 혼나는데!”
“동양식 만두는 모양이 정교하니까요. 저도 잘 못 해요.”
“볼록한게 완전 귀요민데!”
“판소티가 이탈리아어로 ‘배불뚝이’라는 뜻이거든요. 올챙이 배처럼 튀어나와서 완전 귀엽죠!”
“배불뚝이 만두! 어떻게! 이름도 귀여워!”
면접을 보는 걸 잊은 건지, 소희와 슬아는 자매처럼 깔깔거렸다. 그렇게 완성된 만두는 밀가루를 흩뿌린 쟁반 위에 올리고,
위이이잉!
소스를 만들었다.
호두, 파르메산 치즈, 마늘, 올리브유, 레몬즙. 그리고 우유에 적신 식빵만 갈아 넣는, 간단한 호두소스다.
“그러면 마지막은!”
파리나타 (farinata).
병아리콩 팬케이크다.
아까 개어둔 반죽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열자, 반죽 위에 라떼처럼 폭신폭신한 거품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병아리콩 가루에서 나온 이물질로, 이대로 사용하면 텁텁한 맛이 올라온다. 소희는 정성스레 거품을 일일이 걷어내 주었다.
동그란 케이크 조리용 팬을 오븐에 넣어서 예열해주고, 가열된 팬을 꺼낸 후에는 올리브유를 아낌없이 듬뿍 부어준다.
그 위에 반죽을 부어주면, 올리브유가 순식간에 반죽 위를 덮어 위아래로 올리브유 코팅이 된다.
이대로 20분만 구우면 완성.
시간이 되자, 주방에는 참을 수 없는 고소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꼬르륵.
꼬륵.
그리고 여기저기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원래··· 브레이크 타임이 밥때라···.”
“이 냄새를 맡았는데 안 울리는 게 이상하잖아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슬아와 데니가 서둘러 한 마디씩 변명했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파리나타 먼저 먹을래요?”
소희는 지금껏 본 중 가장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오븐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가둬진 구수한 향이 야생말처럼 뛰쳐나와 공기를 마구 헤집었다.
“드셔 보세요.”
접시 위에 올려진 갈색 팬케이크.
일반적으로 브런치 집에서 먹는 팬케이크보다는 얇고, 크레프보다는 두꺼운 정도.
“잘 먹겠습니다!”
“데니, 잠깐!”
“왜요?”
“일단 면접이잖아? 셰프 먼저!”
“뭐 어때요, 다 먹는 것도 아니고 형이 먹을 것도 충분한데.”
“그래도! 에휴···.”
데니는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고, 슬아는 파리나타 한 조각을 한길에게 건네주었다. 맛을 보자,
“···!”
쾌감이 온몸을 관통했다.
윗부분은 약간의 바삭함이 느껴졌고, 아랫부분은 촉촉했다. 병아리콩 특유의 담백하면서 구수한 향이 퍼졌다. 밀가루 팬케이크보다는 헤이즐넛 같은 달달한 구수함이 묻어있는 팬케이크 맛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반죽만 넣고 뚝딱 만들었는데 이런 맛이 나지?”
옆에서 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감탄만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는 기술이 별로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네?”
“프랑스 요리처럼 지지고 볶··· 아니지, 그, 복잡한 기법이 거의 없고, 재료만 잘 이해하면 되니까요.”
소희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파리나타도 당연히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 반죽의 두께가 조금만 달라도 너무 퍽퍽하거나 너무 눅눅한 식감이 된다. 올리브유가 반죽과 잘못 섞이면 느끼하기도 하고.
“왜 말이 없어요?”
소희가 다소 긴장한 얼굴로 한길을 바라봤다.
“맛있네요.”
“정말요?”
“하지만 만약에 메뉴에 올린다면 훈향을 조금 입혀줘도 좋을 것 같군요.”
“훈향이요?”
한길이 퀘스트 속에서 먹은 파리나타는 장작을 이용하는 오븐에서 구워냈다. 장작 특유의 훈향이 희미하게 덮어지는 편이 더 맛있었다.
“흠… 그것도 괜찮긴 하겠네요. 오븐 내에 칩 하나 넣어서 살짝만 연기를 입혀주면, 너무 과하지는 않으면서···.”
소희는 턱을 괴며 혼잣말을 하다가, 한길의 미소를 보자마자 고개를 휙 돌렸다.
“다음은 샐러드 먼저 드세요. 그동안 판소티 마무리할 테니까.”
해물 샐러드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살짝 데친 채소는, 불을 한번 거쳤음에도 아삭함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신선한 채소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쓴맛은 전혀 없었고.
케이퍼와 파슬리가 들어간 녹색 소스는 입맛을 돋울 정도로 짭조름하면서도 독특했다. 레드와인 식초에 적신 빵이 새콤함을 더해주었고.
“이 새우 예술이다!”
“아니, 이 도미가 미쳤는데!”
해물은 완벽했다.
오동통한 새우는 오도독거릴 정도로 탄력 있게 씹히며 상큼한 바다 향을 터트렸다. 비린 향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도미는, 촉촉하고 생기 넘치게 입안에서 무너졌다. 활어를 바로 잡아 구운 것 같은 신선함이 담긴 식감이었다.
여섯 개의 화구로 열다섯 종류의 채소와 해물을 한꺼번에 데치면서 이렇게 완벽한 굽기를 유지했다는 건,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 갑자기 일이 몰렸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이 정도 완성도로 조리했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다.
“마지막, 판소티입니다.”
샐러드가 사라지자마자 이탈리아 나물 만두가 나왔다. 볼록볼록 귀여운 형태의 만두 위에는 하얀 소스가 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와! 이거! 너무 싱그러워!”
“대박! 이건 그냥 대박!”
옆에 있는 두 명은 접시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입안으로 만두를 밀어 넣고 있었다.
판소티는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맛이었다.
야들야들한 만두피를 씹으면, 얇은 막이 터지면서 안에 가둬진 허브 향이 입안을 휘감았다.
파나 부추가 들어간 만두와는 다르다. 봄나물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긋함과 싱그러움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향이 너무 과할 수 있으나, 크리미한 호두 소스가 더해지면 달랐다.
호두의 견과 향과 치즈의 구수함이 담긴 소스가 눅진하게 허브를 감싸 안으며 채소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가려주었다.
“와, 이탈리아 요리가 이런 것도 있구나! 전 토마토소스나 봉골레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진짜 존맛이에요! 한 그릇 더!”
슬아와 데니의 반응만 봐도, 한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두도, 나물도. 한국인에게 친숙한 요리니까.
“어때요?”
소희는 다시 매서운 눈으로 한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딘가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 같은 모습이다.
“이대로 매장에 내도 될 것 같은데요?”
“이런 건 안 팔려요.”
“팔아본 적이 있나요?”
“··· 아뇨. 하지만 여긴 이탈리아가 아니니까요.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이탈리안 요리는 안 먹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생소한 요리를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한길의 레스토랑은 달랐다. 이래 봬도 동업자가 일반인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그 얘기를 했던가?
“약속했듯이, 메뉴 개발은 안 해요. 그래서, 합격인가요?”
계획성, 순발력, 지식, 재료와 요리에 대한 이해도. 모두 한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말투가 조금 날카로운 감이 있긴 했지만, 한길의 주방에 있는 요리사들은 이 정도로 문제를 삼을 녀석들은 아니었다.
“합격입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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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넓네요.”
다음날, 공사 중인 2호점을 안내하자, 소희는 몽롱한 표정으로 숨을 불규칙하게 내쉬었다.
그리고 살루미 저장고를 소개하자, 다시 아이 같은 활력이 돌아왔다.
“콜라텔로! 이것도 직접 만들었어요?
“네. 이쪽은 제주 흑돼지로 만든 라르도인데···”
“라르도? 설마 이 대리석······”
“네, 직접 콜리나타에서 수입해 왔습니다.”
“당신 대체···.”
“뭐요?”
“아니에요.”
간단한 시설 투어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니, 문 앞에서 최셰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인수인계가 있네요.”
“인수인계요?”
“지금까지는 최셰프가 2호점 준비도 도와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최셰프도 1호점에 집중해야죠. 두 분이 편하게 얘기하실 수 있게 자리를 비워드릴까요?”
한길의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최셰프가 질문을 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먼저 작성하신 후에 얘기하죠. 순서가 있으니까.”
최셰프는 소희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동안, 사무실 구석에서 웅크리며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약서를 한 부씩 나누자마자, 어딘가 비장한 눈빛으로 한길을 바라봤다.
“셰프는 잠시 자리 좀 비워주세요.”
“네. 그러면 전 주방 좀 살피고 있겠습니다.”
한길이 나가자마자, 최셰프가 소희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왜, 무슨 일 있나요?”
“일은 무슨요.”
“표정이 달라져서.”
“원래 손님 앞에서 하는 얼굴과 식구 앞에서 하는 얼굴은 다른 법이니까요.”
웃음은 웃음이되, 마냥 기쁜 웃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동료를 맞이하는 웃음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상당한 피로가 담긴··· 그리고 약간의··· 동정심?
“저 셰프, 무슨 사람이에요?”
소희는 단둘이 있는 김에 아까부터 든 의문을 해소하려 했다.
“아니, 살루미 만드는 데 천연기념물 흑돼지를 쓰지 않나, 콜로나타 대리석을 구해오지 않나. 대체 정체가 뭐예요?”
“뭐긴요, 셰프죠. 그리고 그 정도로 놀라시면 안 되죠. 앞으로 유소희 셰프가 직접 할 일인데요.”
“네? 제가요?”
“그래도 멸종 위기 소고기를 구해오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설마, 그런 일을 두 번이나 시키진 않겠죠.”
“네? 멸종 위기요?”
“아니, 이건 못 들은 거로 하시죠. 언젠가 차근차근 얘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재료를 주문하신다면, 이게 도움이 될 겁니다.”
최셰프는 언제 준비해뒀는지, 두툼한 파일을 건넸다. 그 안에는 각종 농장, 재료상, 재료 수입 업체의 연락처가 들어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이미 연락함’이라든지, 한번 문의한 재료의 가격에 대한 메모도 적혀 있었다. 종이에는 여백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 그리고 이것도 알아두면 쓸모있는 키워드인데요. 셰프가 ‘내일 얘기하시죠’라는 말을 하면, 그날은 최대한 일찍 퇴근하고 무조건 수면을 취하는 게 좋습니다.”
“내일 얘기하시죠?”
최셰프는 매우 진지한 눈빛이었다.
”가끔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문제가 있는데 묘하게 여유를 부리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내일 얘기 하자’는 말을 한 후에, 다음날 일이 터집니다.”
“일이 터져요?”
“뭐, 그냥 바빠진다는 거죠. 이건 천재와 범재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편해요. 아니면 괜히 수면 시간만 줄어드니까요. 뭐, 하하하. 그렇습니다, 하하···.”
웃고는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느낌적인 느낌.
“아, 그렇다고 너무 겁먹진 마시고요! 이미 도장 꽝 찍으셨는데요. 뭐, 요리는 순발력이죠! 네, 순발력을 키우기에는 참 좋습니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 못 하던 경험을 할 수 있고요. 아, 그래서 말인데요, 오늘 저희 1호점에서 메뉴 선발 컨테스트가 있거든요. 셰프님도 심사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