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3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31화(131/325)
131. 아, 이거구나…
“셰프! 지금 바쁘세요?”
한길이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문 앞에 잠복하고 있던 슬아가 다가왔다.
“왜, 무슨 일 있어?”
“전에 말씀하신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거?”
“제가 공부해야 하는 그거요.”
“뭐? 메트르 디?”
“쉿!!!!”
슬아는 혹여나 누가 들었을까 걱정된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동안 그 단어는 꺼내지 말아 주세요! 아직 제가 준비가 덜 된 상태인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괜히 그, 창피하니까요!”
슬아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긴장했는지, 말투도 평소보다 빨랐고.
“제가 조금 공부해 보니까, ‘그 직책’이 단순하게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느끼는 점을 셰프에게 전달하는 부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의견이 있는데요···.”
“뭔데?”
“저희 레스토랑은 조명이 너무 잔혹해요.”
“잔혹?”
“사진발이 너무 안 받아요.”
슬아는 한 손으로 아직 액정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칼집에서 검을 꺼내기 직전의 검사를 떠올리게 했다.
“분위기는 좋은데, 막상 사진을 찍으면 그 느낌이 안 나오거든요. 인물 사진도 잘 안 나오고, 음식 사진도 필터를 써도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제가 예시를 보여드릴게요.”
슬아는 스마트폰을 뽑아 들고 사진첩을 넘기기 시작했다.
준비된 화면 안에는 한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비프 웰링턴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다양한 조명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여럿.
“이게 무필터로 우리 레스토랑에서 촬영한 거고, 이건 요즘 인스타에서 핫한 매시매시랑 포비아에서 촬영한 거거든요.”
“거기도 비프 웰링턴을 팔아?”
“아뇨. 저희 레스토랑 메뉴를 포장으로 들고 가서 찍은 거예요.”
“남의 레스토랑에서?”
“물론 사장님께 양해 구하고 허락받고 찍은 거죠. 밥도 제대로 먹고 왔고요, 그것도 풀코스로!”
“그걸 사비로 했다고? 얼마 나왔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차이가 확 나지 않아요?”
슬아의 말대로.
고르메 키친에서 촬영한 웰링턴은 상대적으로 칙칙해 보였다.
“제가 이 조명 모델명도 받아왔거든요. 혹시 2호점에 아직 조명이 안 정해졌으면 이건 어떨까 싶어서···.”
“조명을 알아보고 다닌 거야?”
“그게, 홀에 있다 보면 손님들의 대화가 들리잖아요. 사진이 잘 안 나온다고 투덜대는 분들도 많아서··· 손님 입장에서는 요리가 맛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맛있는 요리는 주변 사람들한테 공유하는 재미도 있는데 사진이 잘 안 나오면 아쉬우니까···”
슬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근심이 담긴 눈동자가 한길을 올려다봤다.
“제가··· 너무 나서는 걸까요? 이건 그냥 의견이에요! 혹시 이런 건 어떨까 싶어서요. 모르실 것 같아서···.”
한길은 진심을 담아 웃어주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워할 것 없어. 좋은데?”
“정말요?”
자기 일처럼 알아봐 주는데 싫을 리 없다. 한길이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이기도 했고.
조명은 인테리어 업자에게 맡겨두기만 했다. 사진이 잘 나오는 감도까지 꼼꼼히 확인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이런 디테일이 추가되어 나쁠 것 없다.
“홀은 앞으로 너한테 맡기기로 했으니까, 조명도 홀의 영역이고. 일단 업체에 조명은 보류하라고 할 테니까 다음 주까지 제대로 알아볼래?”
“맡겨주세요!”
“알아보면서 들어간 비용은 따로 청구하고. 앞으로 사비 들여서 하지 마.”
“이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청구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한길은 슬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지금까지 슬아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챙겨줘서였다.
하지만 이제부터 이건 슬아의 업무였다. 그렇다면···.
“잘하고 있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
“정말요?”
슬아는 잠시 입술을 오므리다가, 지금껏 본 중 가장 활기찬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둑이 터진 것처럼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는데 말이죠, 겨울이 되면 다들 롱코트를 입잖아요? 그런데 이게 의자에 걸쳐 놓으면 땅에 끌려서 찝찝하거든요.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코트룸도 따로 마련하던데 저희도 해보면 어떨까 해서요. 아, 그리고 식사 중 손님들이 가장 쾌적하다고 여기는 온도가 있다고 하는데요···.”
단기간에 공부를 많이 한 티가 났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들어주다 보니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다.
“제가 내일 중으로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슬아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떠나자, 이번에는 홀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보니, 요리사들이 열심히 테이블을 옮기고 있었다.
“뭐 하는 건데?”
“아, 셰프! 중요한 날이니까 분위기를 만들어야죠!”
“분위기?”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컨테스트니까, 이게 심사위원 자리입니다!”
요리사들은 홀을 작은 재판장처럼 꾸며놨다.
판사가 앉을 자리에 의자가 셋.
심사위원들이 앉을 곳이다.
배심원석에 해당하는 구역에는, 내부 컨테스트에 참여하지 않는 2호점 직원들의 인원수에 맞춰 의자가 세팅되어 있었다.
“이 시간에 요리를···.”
“이미 다 완성되었죠.”
“저희 다 어제 여기서 밤샘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요리사들은 하나같이 눈 밑이 퀭했다.
한길은 은근슬쩍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주방 요리사들은 피로가 쌓일수록 시끄러웠으니까.
1호점 요리사들의 다크서클은 이미 코끝까지 내려가 있었다. 오늘은 조용하긴 글렀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려한 대로,
“모두! 새로 오신 셰프님을 위해, 박수!!!”
“참다 보면 이런 좋은 날이 오는군요”
“와, 드디어 우리에게도 미녀 셰프님이!”
“충성!”
유소희 셰프를 소개할 때도 평소보다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살짝 곁눈질로 보니, 소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미간에 인상을 조금 쓰고 있었다.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지시는 잘 따르고 열성적인 요리사들입니다.”
소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윽고, 또 다른 심사위원인 카키가 도착하자, 소희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굳어왔다.
“저희 사장님이십니다.”
“··· 연예인?”
“연예인은 아니고, 래퍼입니다. 2호점 셰프님?”
“유소희입니다.”
“카키입니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태도를 보니, 이번에는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미안함이 몰려왔다.
중간에 합류하는 사람에게 이 레스토랑의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시설까지 안내하기에, 반나절은 너무 짧았다. 소희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을 거다.
“너무 경황이 없죠? 제대로 설명을 못 드린 부분도 많은데, 이 컨테스트만 끝나면 차분히 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 네.”
원래라면 오늘은 바쁘니 내일부터 출근시키는 게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정신없더라도, 이 자리에 새로운 헤드 셰프를 참여를 시키고 싶었다. 앞으로 한길이 그리는 식당의 방향을 보여줄 자리였으니까.
“그러면 가시죠.”
#
자리에 앉자, 익숙한 요리가 차려졌다.
한길의 미친 모자 장수 수프였다.
얼린 소고기 콩소메를 금박지에 싸서 회중시계 모양으로 만들어 찻주전자에서 우려내고. 별도로 세팅된 찻잔 그릇에 따라서 먹는 요리다.
“이건 얼마 전에 외부 행사로 만든 메뉴였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거든요. 생각지도 못하게 해외 언론까지 타서.”
“해외 언론이요?”
“네, 엔아이 타임스인가 하는 곳에 실렸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1호점 스페셜 메뉴로 올리려고 하는데, 같이 곁들일 메뉴는 내부 컨테스트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더욱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데, 소희는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
묵묵히 수프를 맛본 후에는, 아예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계속 끄덕였다.
그동안 1호점 요리사들은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하아··· 이게 뭐라고 떨리냐.”
“잠깐, 나 청심환 하나만···”
어울리지 않게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긴장하기는 한길도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약간의 그리움도 느껴졌다.
이번 내부 요리 컨테스트는, 아피키우스의 주방을 본떠 만든 시스템이다.
아피키우스의 주방에서는 매일 점심, 아피키우스 앞에서 신메뉴를 선보여야 했다. 반대편에 서 본 적은 있어도, 이 자리에 앉은 건 처음이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며 매일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는 요리사들. 그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끈끈한 소속감과 유대감이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피키우스다.
주방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아피키우스는 직접적으로 요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한마디를 들으면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 역할을 해야 할 건 한길이다.
직접 요리를 하는 것과, 남의 요리를 평가하는 건 다르다. 비판이 아닌 방향을 잡아주는 건 또 다르고. 그래서 한길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어떤 요리가 나올까?’
동시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요리사들은 한길이 만든 메뉴를 충실히 재현하기만 했다. 이 자리는, 그들의 역량을 제대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제가 처음입니다, 셰프!”
첫 번째 요리사는 허기현.
항상 막내를 찾는 요리사로, 최셰프 다음으로 주방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요리사다.
그가 내민 요리는 두 접시였다.
하나는 얇게 썰어낸 오리고기 스테이크.
또 하나는 커다란 쟁반.
쟁반 위에는 색색별로 수많은 재료가 올려져 있었다.
“60가지 방법으로 먹는 오리구이입니다. 저는 방탈출에서 가장 재미를 느낀 부분이 직접 찾아다니는 부분이었거든요. 레스토랑에서는 그렇게 못하지만, 접시 위에서라도 가장 맛있는 조합을 손님들이 찾아가는 재미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다크서클이 이해 갔다.
쟁반 위의 재료는 가로로 열 줄. 세로로 여섯 줄.
60개의 재료 중에는 민트, 로즈메리, 오레가노, 파슬리 등 간단한 허브도 있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재료도 있었다.
레드 와인을 잼 같은 질감으로 졸여 작은 루비처럼 만들기도 했고. 허브 향을 입힌 살구나 수제 요구르트도 있었다.
작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신경 써서 빚어낸 모양이었다. 60개의 부재료 모두.
회심의 작품이라는 게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맛을 보니, 오리 스테이크는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구워져 있었다.
부재료 조합에 따라 오리의 맛이 달라지는 게 재밌었다. 한 요리로 즐길 수 있는 맛이 60가지다. 게다가, 평소에는 잘 시도하지 않는 살구 절임 같은 조합도 의외로 잘 어울려서 놀라웠다.
“어떤가요?”
한길은 일단 옆에 있는 소희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소희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몇 번 뻥긋거리다가, 짧게 한마디만 했다.
“좋지만, 과해요.”
“···.”
“···.”
역시 단답형 대답.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순간, 카키가 말을 이어갔으니까.
“표현이 딱이네요. 맛은 있는데, 부담스러워요. 오리 양에 비해서 부재료가 너무 많기도 하고, 남기자니 아깝고. 이건 너무 갔어요.”
한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시도는 좋은데, 60개의 맛을 다 기억하는데도 피로도가 느껴지니까.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무시 못 하고. 스무 개로 줄이는 건 어떨까?”
“그 말은···?”
하기현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합격인가요?”
“조금 다듬으면.”
“그게 그 말이죠! 니들 봤냐, 이 선배의 위엄을!”
하기현은 승리의 만세를 지으며 요리사들 무리에 섞여 들어갔다.
그 후로 나온 요리들도 나쁘지 않았다.
호박을 아보카도 오일에 튀겨내고 시나몬을 향처럼 꽂은 요리도 있었다. 시나몬을 미각이 아니라 후각으로만 따로 느끼게 한다는 발상이 재밌었다.
물론, 모든 요리가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요리나, 보기에만 화려하고 실망스러운 요리들도 있었으니까.
“애썼네요.”
“심심해요.”
소희는 맛을 볼 때마다 단답형으로 짧게 평을 내렸다. 그녀의 태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카키의 독설에 모두 묻혀버렸으니까.
“이건 표절인데요?”
“사장님, 그건 좀···.”
“왜, 솔직히 말하라면서요?”
“저 상처받는다고요!”
“이런 거로 상처받을 거면 절 부르면 안 되죠.”
그리고···.
“너무 보이는 모습에만 집착하는 느낌이 있는데? 시각적으로 끌어올린 기대감에 비해 맛의 조합이 너무 평범해. 플레이팅은 그대로 살리고 재료 조합을 조금 더 실험해 보는 건 어떨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한길도 의견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제 차례입니다.”
그리고 최셰프의 차례가 다가왔다.
최셰프는 헤드 셰프라는 입장이 있으니 굳이 요리사들과 함께 컨테스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최셰프는 단호하게 똑같이 서겠다고 했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안주하면 금방 추월당합니다, 셰프. 전 현역으로 남고 싶어서요’ 라고 말하며.
혹여나 혹평이 나오면 어떨지 걱정했는데, 그것도 괜한 걱정이었다.
“숲속의 산책이라는 요리입니다.”
최셰프가 내민 접시 위에는 자연 질감이 살아있는 나무토막이 장식으로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숲이 있었다.
흙이 흩뿌려있고, 흙 사이로 버섯이 피어있고.
중간중간 잡초처럼 풀이 돋아나고, 열매도 떨어져 있다.
단, 먹을 수 있는 숲이었다.
“이 흙은 잣을 건조해 믹서기로 다진 겁니다. 이건 버섯 육수에 재워둔 버섯 피클이고···.”
숲을 산책하는 느낌이 드는, 묘한 기억을 불러오는 요리였다. 시각이 불러온 기억은, 바로 미각으로 연결되었다.
최셰프의 프랑스 요리 배경이 돋보이기도 했다.
채소 하나, 가루 하나, 소스 하나하나에 각 재료의 정수가 느껴졌으니까.
“와, 이건 뭔가 먹는 예술 같네요.”
“대단해요.”
그렇게 내부 컨테스트가 끝났다.
합격이 많지 않으면 어떨지 걱정했지만, 그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한길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요리사들은 기발한 발상과 뛰어난 기법을 갖추고 있었다. 자신들도 이걸 해낼지 몰랐다는 듯이, ‘내가 어떻게 이런 걸 만들지?’를 중얼거리는 이들도 많았다.
“저희도 맛봐도 되죠?”
테이스팅이 끝나자, 배심원 자리에 앉아 있던 2호점 요리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시식을 시작했다.
“최셰프 님, 이거 진짜 대박인데요? 어떻게 셰프의 얼굴에서 이런 감성의 요리가 나오지?”
“기현 선배! 60개는 진짜 너무 과했다!”
“맞아, 우리 셰프님 말이 딱 맞네. 과해.”
“언제 만났다고 우리 셰프님이냐.”
“이제부터 우리 셰프님이죠. 그래도 부럽다. 나도 냉미녀의 독설을 한번 받아보고 싶은···.”
“저기요! 본인을 앞에 두고 뭔 소리 하는 거예요!”
거침없이 나오는 요리사들의 발언에 슬아가 당황하더니, 소희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유셰프 님! 저 사람들이 원래 잠을 못 자면 이상한 말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제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 안 그래요.”
“정말, 절대! 도망가면 안 돼요!”
“슬아야, 걱정하지 마.”
슬아가 뒤를 돌아보자, 최셰프가 크게 미소짓고 있었다.
“이미 도장 찍었거든.”
“아, 그래요? 아하하, 난 또.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더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
“그러니까, 1년 내로 호텔로 진출할 수도 있다는 거죠?”
“네. 가게 된다면 입점 형태입니다.”
내부 컨테스트가 끝나고, 한길은 무려 두 시간에 걸쳐 소희에게 식당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소희는 종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몰래카메라가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포자기 심정으로 지원했던 곳이라, 소희는 고르메 키친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유명 연예인이 운영하는 곳이며, 해외 언론까지 탄 식당이란다. 게다가 호텔에 입점해 달라고 재벌이 부탁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섭외한 셰프는 정통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원하는 요리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고···.
자신이 어떤 말을 꺼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식구라고 부르고 있었고···.
‘안돼!’
가슴속에서 무언가 올라와 울컥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일 것 같아 소희는 눈을 부릅떴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뜨고 있으면 안구가 건조되면서 눈물이 말라버린다. 주방에서 남몰래 눈물을 삼킬 때마다 소희가 익힌 비법이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목소리가 울먹이는 것 같아 오늘은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곳은 이상했다.
이상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요리사들은 소란스러운 해적 같았고, 그나마 정상인으로 보이는 최셰프와 슬아는 피로가 과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아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전력을 다해보고 싶었다.
조금 두렵긴 했지만···.
딱 한 번만 더···.
“그래서, 메뉴는 어떻게 할 예정이시죠?”
간신히 목소리의 평온을 찾은 소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유셰프 의견은 어떤가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해요. 어느 나라든 그렇긴 하지만, 그 정도가 정말 심하거든요. 오스피탈리아 이탈리아나 인증을 하는 심사위원들이 이탈리아인들인걸 감안하면, 최대한 전통을 그대로 살린 요리가 잘 먹힐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최대한 원형을 살린 요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인증을 받을 때까지는요.”
“그래서, 메뉴는 어떻게 되죠?”
소희의 말에 한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귓가에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메뉴 개발은 안 한다며?’라고.
“이건 메뉴 개발을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헤드 셰프로 선다면 주방에서 나가는 메뉴를 지휘해야 하니까 묻는 거예요.”
거듭 강조할수록, 한길의 미소가 크게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메뉴는 아직 없습니다.”
“네?”
“아직 없습니다.”
“단 한 개도요?”
“살루미 플라터는 하나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제 만드셨던 판소티도 후보이고요.”
방금전까지 느꼈던 장밋빛 희망에 크게 금이 갔다.
“오픈까지 한 달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미리 레시피 만들고 요리사들 훈련 시키는데도 1주일은 있어야 할 테고, 재료도 배송기간을 고려하면 2-3주는 두는 게 좋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당장 이번 주 내로 메뉴가 정해져야 하는데, 후보가 아직 두 개뿐이라는 건가요?”
“그런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도 여유롭게 웃는 모습에 소희는 어제오늘 감동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걸 느꼈다. 뒷목이 빳빳하게 굳어왔다.
새삼 왜 여기 사람들이 정상이 아닌지 알 것 같았다. ‘이봐요!’라는 말이 바로 올라오려는 걸 간신히 삼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한길은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였다. 이상하게 허공을 집중해서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일단 오늘은 피곤하실 테니 일찍 들어가시고, 내일 얘기 하시죠.”
“저기요, 시간이 어딨다고 내일···.”
중간에 말을 멈췄다.
생각나는 게 있었으니까.
아. 이거구나···.
최셰프의 그 쓴웃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