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3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32화(132/325)
132. 요리사는 다 똑같아
퇴근하라는 말을 듣고도 소희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브레인스토밍 정도는 같이 해줄 수 있어요. 메뉴를 만들겠다는 건 아니고, 그, 아이디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까요.”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 아침에 얘기하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면 되잖아요?”
“아직 1호점 일도 마무리해야 할 게 있어서요.”
“지금 1호점이··· 하아···”
소희는 눈을 질끈 감더니, 거친 숨결을 정리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얘기해요. 내일은 이 일을 우선적으로.”
“네.”
“미뤄도 소용없어요. 집이 어딘지도 알고 있으니까.”
갑자기 의욕이 생긴 건 좋은 일이지만, 어딘가 숙제를 내는 선생님 같은 눈초리다.
달칵.
소희가 나가자마자, 한길은 조심스레 사무실 문을 잠갔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무실 안으로 느닷없이 돌진해 들어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한길은,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책을 꺼냈다.
<이탈리아 요리의 역사>.
이것이 문을 잠근 이유다.
메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사나운 얼굴인데, 이런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
‘다섯 시간밖에 안 남았나?’
한길은 카운트다운 시계를 확인하고, 책을 펼쳤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퀘스트에 앞서 현대에서 공부해 갈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둬야 한다. 이탈리안 요리는 한길의 특기가 아니니까 더더욱.
오래전, 동네 파스타 집에 일할 당시의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적어도 정통 이탈리아 요리에 한해서는.
알고 보니 그때 자주 만들었던 알프레도 피자는 미국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요리였다. 파스타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게티 볼로네즈(Spaghetti Bolognese)도, 실제 볼로냐(Bologna)에서는 스파게티 면이 아닌 납작한 면을 사용한다고 한다.
변형된 요리가 너무 많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배우는 게 빠르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역시도 쉽지는 않았다.
‘복잡하네’
이름을 외우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팠으니까.
넓적한 면 파스타인 페투치네(fettucine)는 지역에 따라 타글리아텔레(tagliatelli)라고도 불렸다. 만두처럼 속을 채워넣는 파스타는 기본적으로 라비올리라고 불렀지만, 볼로냐에서는 토텔리니라고 하기도 했고, 제노아에서는 판소티라고 불렀고, 모데나에서는 카펠레티···
지역에 따라 이름이 제각각이었다. 다 방언이었으니까. 기름에 지진 음식을 강원도에서는 지짐, 경북에서는 빈대떡이나 지지미, 함남에서는 부침개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탈리아는 1871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통일을 해서 지역 방언이 유난히 심했다. 그리고 아직도 요리명을 통일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 책도 별 내용이 없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몇 문장이 나오기는 한다.
‘1600년대 이전에는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가 유럽 식문화의 중심지였다’라든지. ‘카테린 드 메디치에 의해 이탈리아 식문화가 퍼지며 프랑스 요리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라든지. ‘유럽 대부분이 맨손으로 밥을 먹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포크를 쓰는 문화가 있었다’라든지.
‘이탈리아 요리가 뛰어나다’면서 어떻게 뛰어난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왜 하필 르네상스 시대인 걸까?’
퀘스트는 한길에게 필요한 경험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우리가 지금 아는 이탈리아의 대표 레시피가 탄생하기 전의 시점이다. 아직 토마토도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미트 소스인 라구(ragu)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조리법을 배우러 가는 건 아닐 거다. 조리법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건데···.
‘대체 뭘까?’
그것만 파악해도 퀘스트 진행이 훨씬 빨라질 텐데.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
[서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2 – 500인의 손님>.
목표: 500인의 손님을 만족시키세요.
제한 시간: 1주
보상: 20,000 고르메 포인트
실패 시: 상점에서 10개의 아이템을 무작위로 회수합니다.
+
눈을 뜨자마자 한길을 맞이한 건, 언제나처럼 퀘스트 창이었다.
‘이번에도 기초 퀘스트네.’
작은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스테이지 초반에는 항상 손님만 받는 기초 퀘스트가 나왔었다. 기초를 몇 번 통과하면 심화 퀘스트가 주어졌는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서두르지 말자. 마음만 급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한길은 실망감을 감추며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우선 500명의 손님을 받아야 하고. 2호점 메뉴에 올릴 요리도 배워야 한다. 메인 퀘스트를 위해 로마로 이동해야 하고.
[퀘스트 진행 상황입니다.]+
<파이널 퀘스트 – 왕비의 연회>.
– 진행률: 10%
– 영국에서 놀라운 업적을 세웠습니다.
– 이탈리아 스테이지에 진입했습니다.
+
메인 퀘스트 창을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진행률이 낮았다.
저번에 왔을 때는, 이탈리아의 리구리아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를 돌아다녔었다. 살루미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이동 거리도 상당히 되는데··· 그 경험은 파이널 퀘스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듯했다.
“뭘 그리 멍 때리고 있어?”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발렌티나가 들어왔다.
“일어났으면 빨리 나와! 오빠 잔소리 듣기 싫으면.”
오랜만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어색할 거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까.
서둘러 얼마 없는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니, 프란체스코와 마리오는 이미 당나귀 수레에 타고 있었다.
“왜 이리 굼떠? 빨리 타! 발렌티나, 너도!”
“밥 먹고 가는 건··· 안 되겠지?”
“그러다 해 떨어져서 재수 없게 도적이라도 만나면?”
“에휴, 알았어.”
발렌티나는 아쉬운 눈으로 여관을 바라본 후, 수레에 올라탔다.
“배고프면 여기, 밥!”
“하아··· 또 이거네.”
마리오가 곡물 빵을 건네주자, 발렌티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동 중에 먹는 빵은 맛이 형편없었으니까.
시골 마을의 빵은 제대로 발효도 되지 않아 꾸덕꾸덕한 데다가, 만든 지 오래된 것처럼 딱딱하고 퍼석퍼석했다.
“여관에서 죽이라도 먹었으면 좋았을걸.”
“네가 투정 부릴 나이냐?”
“제대로 먹어야 힘이 나지. 사흘 내내 이것만 먹으면 힘이 어디서 나?”
“오늘 저녁은 도시니까 조금 참아.”
“이러니까 내가 삐쩍 말라서 뼈밖에 없지!”
발렌티나가 투덜대자, 마리오는 마지못해 꾸러미에서 또 다른 덩어리를 꺼냈다. 말은 거칠게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마리오는 항상 발렌티나에게 져주고 있었다.
“오늘만이다.”
“이런 게 남아있으면 미리 좀 달라고!”
마리오가 선심 쓰듯 건네준 건, 파르메산 치즈와 살루미였다.
연한 핑크색의 살루미에는 하얀 지방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모타델라(mortadella)다.
생고기를 발효시키는 살루미와 달리, 모타델라는 열조리를 한 살루미다. 돼지고기를 곱게 다져서 돼지 지방, 피스타치오, 후추를 넣고 살짝 쪄낸다.
조금 질긴 감이 있는 다른 살루미와 달리, 모타델라는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연하게 퍼지는 돼지고기의 향에 피스타치오의 견과 향이 더해졌고. 거기에 파르메산 치즈 특유의 꼬릿한 향까지 합세하니, 그렇게 맛이 없던 빵도 제법 먹을만했다.
발렌티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먹었고, 마리오는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얼굴 위에 천을 덮고 드러누웠다. 그 옆에 프란체스코는 벌써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었다.
둘은 이동 중에는 대개 이렇게 낮잠을 잤다. 그동안 호기심 많은 발렌티나는 한길과 대화를 나누었고.
“마크, 피렌체는 가본 적 있어?”
“아뇨.”
“그래? 피렌체에도 영국 상인들이 많던데··· 하긴, 베네치아만큼은 아니려나?”
발렌티나는 신이 나 있었다. 한길 역시 기대하고 있었고.
다음 목적지는 피렌체.
현대에서도 제법 알려진 미식 도시다. 일전에 소고기 만찬에서 만들었던 티본 스테이크도 피렌체 요리였으니까.
“피렌체 요리는 어떤가요?”
“당연히 여기보다는 훨 낫지!”
“여기 말고 제노아랑 비교하면요?”
“흠··· 글쎄? 너무 달라서. 난 둘 다 맛있던데.”
“그러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있는 도시는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모르지. 다들 페라라 공작령 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건 귀족들 요리니까. 우리가 먹는 요리는 오히려 피렌체나 로마가 더 맛있던걸.”
“페라라 공작령은 여기서 멀어요?”
“베네치아로 가는 길목에 있어. 가보려고? 로마로 가는 거 아니었어?”
페라라 공작령의 요리는 영국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가까우면 잠시 들러도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로마와는 반대 방향에 있었다. 메인 퀘스트를 포기하면서까지 갈 엄두는 나지 않았고.
그러고 보니, 2호점 메뉴에 20개 주의 지역 요리를 담고 싶었지만, 퀘스트 속에서도 거리의 시간의 제약이 있어 모든 주를 직접 찾아가기는 어려웠다. 뭔가 방법이···.
“그런데 마크, 피렌체 가서도 오빠들 일 도와줄 거야? 어차피 배울 건 다 배운 거 아니었어?”
“그래도 도와드려야죠.”
“그럴 의리는 없잖아? 어차피 오빠들이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의리 때문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피렌체를 누비며 로컬 요리를 배우고 싶지만, 퀘스트 수행을 위해서는 ‘손님’을 받아야 한다.
“그러지 말고···.”
발렌티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잠든 마리오와 프란체스코를 툭툭 친 후,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여관에서 일하는 건 어때?”
“여관이요?”
“피렌체같이 바쁜 도시에서는 그날그날 일손을 구하기도 하거든. 마크는 요리할 줄 아니까 주방에서 일할 수 있잖아?”
“단기간 일하는 사람들도 받아요?”
“그런 곳도 있긴 하니까.”
어차피 ‘손님’을 받을 거라면,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여관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무슨 속셈이죠?”
“뭐가?”
“시치미 떼지 말고요. 얼굴에 꿍꿍이 가득하다고 적혀있으니까.”
“헤헤, 그게··· 사실은 나도 여관 일 좀 배울 겸 취직하고 싶거든. 혼자 간다고 하면 절대 안된다고 하겠지만, 마크랑 같이 일한다고 하면 허락하지 않을까?”
“글쎄요···”
마리오는 거의 모든 일에서 발렌티나에게 져주었지만,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따로 떨어져서 행동하는 것.
“마크, 제발! 응?”
발렌티나는 두 손을 모으며 처량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올려다보는 저 각도··· 왠지 아기 고양이 같아서 쓰다듬어주고 싶어졌지만···
속으면 안 된다. 저건, 계산된 각도니까.
원하는 게 있을 때,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발렌티나가 사용하는 애교였다. 그 대상은 주로 마리오지만.
“마크는 내가 왜 이러고 싶은지는 알잖아, 응?”
발렌티나는 언젠가 고향에 여관이나 식당을 열어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어 했다. 사냥 철이나 돼지 잡는 철에만 일감이 몰리는 정육점보다는, 매일 일정한 손님이 찾아오는 여관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마냥 떼를 쓰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대신, 허락은 발렌티나가 받아요. 설득하는 것까지 도와줄 수는 없으니까.”
“역시! 마크는 착해!”
갑자기 발렌티나가 한길을 덮쳤다. 기쁨을 가두지 못하고 껴안은 거지만, 가벼운 포옹이 아니라 지나치게 세게 안고 있었다. 한길은 발렌티나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선에서 조심스레 그녀를 떼어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신, 약속 하나 해줘요.”
“뭐를?”
“여관에서 일하는 동안 다른 남자와는 일체 신체적 접촉을 하지 말 것.”
“요리 내주면서 손이 닿을 수도 있잖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되죠. 닿을 때마다 10 데나리온.”
“윽, 너무 비싸.”
“안 닿으면 되죠.”
“뭐, 내가 일부러 그러나?”
한길이 계속 쳐다봐도 발렌티나는 딴청을 피웠다.
마리오가 발렌티나를 항상 옆에 두는 이유 중 하나. 발렌티나는 스킨십이 잦았다.
특히 자신의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남자가 있으면, 가볍게 손을 잡으며 정신을 분산시키고 가격을 평소보다 높게 불렀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세배까지 부르는 것도 봤다.
그 차액은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마리오 몰래 발렌티나가 여관 차릴 자금을 모으는 방법이었다.
“어? 마크! 봐봐, 도착했어!”
“딴소리하지 말고 약속해줘요.”
“아니, 진짜 도착했다니까?”
“약속은?”
“알았어, 조심할게.”
“조심할게가 아니라 닿으면 10 데나리온입니다.”
“알겠다니까!”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한길은 발렌티나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저 멀리에 주황빛에 가까운 벽돌 성벽에 보였다. 성벽으로 차마 가려지지 않는 화려한 건물도.
“봐! 피렌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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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 도착해 여관을 잡은 후, 발렌티나와 마리오는 몇 시간에 걸친 샤우팅 매치를 벌였다. 승자는 발렌티나였다.
“대신, 정육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알겠어!”
“너 말고 마크한테 말하는 거야. 내일 아침에는 우리랑 같이 가서 정육점 위치 확인하고.”
“네.”
다음날, 일행은 해가 뜨자마자 여관을 나와 정육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길은 처음으로 밝은 햇빛 아래의 피렌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대단하지?”
“···네.”
“아마 전 대륙을 찾아봐도 피렌체 같은 곳은 없을걸?”
도시 자체가 활기가 넘쳤다.
월드컵 거리 응원 현장처럼, 공기 중에 풍기는 열기가 있었고.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이자, 이 시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국가 중 하나다. 이 작은 도시가 대륙 전체의 은행 역할을 했으니까. 피렌체에서 찍어내는 금화, 플로린(florin)은 유럽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이기도 했고.
‘같은 시대지만 영국이랑은 너무 다른데?’
피렌체에 비교하면 영국은 확실히 중세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피렌체의 모든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었고, 거리마다 하수구도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밤에 거리를 밝히기 위한 램프도 있었고, 램프 아래에 성자와 성녀의 모습을 그려 장식까지 했다.
상점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가며 열린 문 사이를 기웃거려 보니, 미술학원처럼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상을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이 시대 예술, 문화, 경제 중심지다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정육점도 범상치 않았다.
“이런 건 처음이지?”
“네.”
“이게 ‘정육사의 다리’야.”
마리오의 목적지는 피렌체 한가운데를 흐르는 아르노강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강 위에 있는 다리. 현대에도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다리다.
단순히 강을 건너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가장자리에는 상점이 길게 줄지어 있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소리 지르는 호객꾼들, 가격 흥정을 하는 상인들, 수많은 마차와 수레를 헤치고 마리오가 간 곳은, 다리의 중간쯤에 있는 정육점이었다.
“여, 프란체스코! 마리오! 벌써 왔나?”
“여, 조반니! 몇 달이 지났는데 벌써라니.”
“이번에는 더 북쪽까지 안 갔나 보지?”
“롬바르디는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서 제노아까지만 갔다 왔어. 일감은 좀 있나?”
“자네랑 프란체스코라면 언제든 있지. 저번에 만들어준 코파는 한 달 만에 다 팔렸거든.”
“말 나온 김에 오늘부터 일하려고 하는데, 괜찮나?”
“그럼, 언제든지!”
얘기가 끝나자마자 마리오는 한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솥뚜껑 같은 손을 올렸다.
“무슨 일 생기면 이곳으로 오고, 발렌티나 잘 지켜보고.”
“언제는 마크를 조심하라더니.”
“시끄럽고, 너도 말썽 피우지 마!”
마리오는 어깨동무하면서 한길의 몸 전체를 조여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쟤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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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여관 주인은 한길과 발렌티나를 번갈아 가며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윽고 발렌티나에게 다가가며 보석 감정하듯, 얼굴을 다양한 각도로 돌리며 살폈다.
“반반하게 생겼네. 너 같은 애들이 있어 주면 손님이 갑자기 늘긴 하지. 주문은 잘 받아?”
“계산은 더 잘 받아요.”
“합격.”
여관 주인은 발렌티나의 답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길을 돌아보면서는 작은 인상을 썼다.
“주방은 남편 관할인데, 남편이 워낙 까다로워서 어떨지 모르겠네.”
“주방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경력은 있고?”
“네.”
“어디서?”
“영국 상인의 요리사입니다.”
“영국이라··· 그런 시골에서 왔는데 쓸모는 있으려나 몰라. 그쪽은 채소도 제대로 안 먹는다며?”
“베네치아를 자주 드나드는 상인 집안이라 이것저것 잘합니다. 배우는 것도 빠르고요.”
“요즘 애들은 워낙 끈기가 없어서. 하루만 일하다 사고치고 나가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도 일당은 줘야 하니까 주는데, 이게 푼돈 같아도 상당하거든.”
“그러면 하루만 공짜로 일해 드리죠.”
“공짜?”
“오늘 한번 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고용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이지?”
이곳은 근방 상인들과 주민들이 가장 강력히 추천하는 여관이었다. 어차피 한길의 복대 안에는 불린 왕비가 준 보석과 금화도 많이 남아 있었고. 푼돈 아낀다고 이 주방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코시모!!!”
“왜!!!”
“주방 보조 필요해?”
여관 주인은 직접 들어가지 않고 굳이 입구에서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불렀다. 그러자, 건물 안에서 거구의 남자가 나왔다.
“뭐야, 이놈이야?”
“공짜라니까 하루만 써.”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잖아?”
한길보다 머리 한 통은 더 큰 남자는,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쳐도 책임 안 진다?”
“다칠 일은 없을 겁니다.”
“크큭, 난 경고 했다. 따라와.”
한길이 주방으로 향하자, 뒤에서 발렌티나가 소매를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마크, 정말 괜찮겠어?”
“뭐가요?”
“그냥 다른 여관 찾아봐도 되는데. 저건 딱 봐도 하루만 굴려 먹고 쫓아내겠다는 심본데?”
“그럴 일은 없어요.”
“어디서 그런 자신이 나오는데?”
“그야, 요리사니까요.”
“하지만 여긴 영국도 아니잖아?”
한길은 걱정이 가득한 발렌티나를 보며 여유롭게 웃어주었다.
“그건 상관없어요. 나라가 달라도, 시대가 달라도, 주방에 선 요리사는 다 똑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