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3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33화(133/325)
133. 농부의 요리
“어디서 왔다고?”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코시모라는 남자의 눈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불만이 가득한 눈동자가 한길을 위아래로 훑었다.
“영국에서 왔습니다.”
“이놈의 여편네, 이젠 하다못해 외국인까지 끌어들이네. 거기서는 뭘 했는데?”
“뭘 하다니요?”
“빵집을 했든, 술집을 했든, 심부름꾼을 했든, 뭐든 했을 거 아냐?”
“베네치아를 오가는 상인 집안의 요리사였습니다.”
“흥, 재료가 남아도는 곳에서 일했구먼.”
질문이라기보다는 심문에 가까웠다.
왕비의 요리사였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둘러댔는데, ‘상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코시모는 반사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짙은 경멸이 담긴 코웃음이었다.
“여기는 네놈이 섰던 주방이랑 다르니까 쓸데없이 이것저것 건드리지 말고. 저 여편네 눈에 안 보이게 얌전히 구석에 가서 쭈그려 있어.”
발렌티나가 우려했던 대로. 남자는 한길을 고용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나마 여주인은 공짜 인력이라는 말에 혹하는 듯했지만, 남자는 한길의 존재 자체가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뭐랄까.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다른 수컷을 경계하는 맹수처럼.
‘이러면 안 되는데.’
태도가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공짜로 마구 부려먹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코시모는 아예 요리에 손을 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한길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곤란하다.
일단 스테이지에 진입한 이상, 퀘스트는 클리어해야 하니까.
이번 퀘스트는 일주일 안에 500인분의 요리를 만드는 것.
이미 피렌체까지 이동하는 데 하루를 날려버렸고, 오늘도 반나절이나 지났다. 앞으로 남은 5일 동안, 하루에 100인분의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구석에 서서 구경이나 할 여유는 없다.
‘다른 여관을 찾아봐야 하나?’
퀘스트 수행만을 생각하면 그게 나을 수도 있지만···.
‘다들 여기를 추천했으니까.’
이곳은 인근 주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손꼽은 맛집이었다. 현실에서 활용할 요리를 생각한다면, 정말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가야 한다. 어떻게 하든지.
‘그것도 토스카나 요리니까.’
피렌체는 토스카나주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토스카나는, 유럽의 그림 같은 전원 풍경을 대표하는 대명사다.
한길은 2호점 메뉴에 이탈리아 20개 주의 요리를 모두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이탈리아 20개 주의 이름도 모를 거다. 이름도 생소한 지역의 요리보다는, 들어본 지역의 요리를 주문할 테고.
즉, 토스카나 요리는 다른 지역의 요리보다 많이 팔릴 거다. 더더욱 신경 써야 하는 메뉴다.
“코시모, 뭐해?”
갑자기 주방 안으로 들이닥친 여주인은. 한눈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당신, 내가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라고 했지? 대체 몇 명이나 쫓아내야 속이 편해?”
“오는 놈들마다 없느니만 못하니까 그러지!”
“한 명이라도 더 써야 단체 손님을 받을 거 아냐! 어제도 한꺼번에 스무 명이 나간 꼴 못 봤어? 돈은 돈대로 못 받고, 재료는 재료대로 떨어지고. 이러다 문 닫을 일 있어?”
“사내놈들이 고작 그 몇 분을 못 기다려! 그런 손님은 내 쪽에서 사양이야!”
“손님을 가려서 받을 거면 장사를 하면 안 되지! 자네도! 이름이 뭐라고 했지?”
“마크입니다.”
“그래, 마크! 굼벵이처럼 그렇게 있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쓸데없는 짓 말고 가만히 있어!”
한쪽에서는 일하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부부싸움의 한가운데 끼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여주인과 코시모는 매서운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았지만, 결국 눈싸움은 아내의 승리였다. 코시모는 갑자기 바닥으로 눈을 깔더니, 한길을 보지도 않고 지시를 내렸다.
“저쪽 가서 설거지나 해!”
“에휴, 못 살아, 정말.”
여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을 나갔고, 코시모는 혼자 구시렁대며 주방 한쪽에 있는 벽난로로 향했다.
한길은 그제야 주방의 시설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인근 주민들이 추천하는 여관이라 조금 더 규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주방은 지금껏 봐온 농가 주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다란 작업대 같은 테이블이 하나.
그 작업대 위에 작은 숯 통과 그릴이 세팅되어 있었다.
그릴은 고작 세 개.
‘프라이팬 요리는 이쪽에서 조리하고, 냄비는 저쪽인가?’
냄비 요리는 벽난로에서 조리하는 듯했다. 벽난로에 네 개의 냄비가 걸려 있었으니까.
코시모는 걸어둔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장작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뭐 도와드릴 건 없나요?”
“설거지하라는 말 못 들었어?”
아직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설거지를 하라는 건, 결국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다.
‘일단은 지켜볼까?’
한길은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코시모의 행동을 관찰하기로 했다.
이곳은 코시모의 주방이다.
이곳의 헤드 셰프는 코시모고.
최대한 유심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그의 방식에 맞춰서 행동하는 게 맞다.
화르륵!
벽난로의 불길이 거세지자, 코시모는 이상한 돌을 들고 왔다.
사람 얼굴 크기의 동그란 돌. 납작한 모양이 흡사 돌로 만든 접시처럼 보였다.
그런 돌 접시가 대략 열 장.
코시모는 그 돌 접시를 불 위에 올리며 달구고 있었다.
이윽고 코시모는 다른 재료들을 들고 왔다.
커다란 통에 담긴 베이지색 반죽.
그리고 바구니에 담긴 커다란 이파리.
‘대체 뭘 하는 거지?’
달궈진 돌 접시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이파리를 돗자리처럼 펼쳤다. 돗자리 위에는 반죽을 듬뿍 부어주고, 그 위에 다른 이파리를 이불처럼 덮었다.
‘크레페나 인도식 난 같은 건가?’
돌 접시의 열기로 반죽을 익히는 요리. 아마 완성된 모양은 팬케이크나 크레페와 유사할 거다. 어딘가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조리법이 궁금했지만, 코시모의 등만 봐도 질문을 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돌 접시.
이파리.
반죽.
이파리.
돌 접시.
···
코시모가 그렇게 특이한 돌탑을 쌓아 올리는 동안, 한길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코시모가 뒤를 돌아볼 때, 한길은 여전히 턱을 괴고 있었다.
“뭐야, 네치(necci)는 처음 보나?”
“이걸 네치라고 부르나요?”
“영국에는 없나 보지?”
“네, 처음 봅니다. 하지만··· 기발하네요.”
한길의 말에 코시모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하면 반죽을 뒤집으면서 모양이 망가질 일은 없겠네요? 위아래에서 열을 제공하니까 골고루 익힐 수도 있고요.”
팬케이크나 크레페를 만들 때,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뒤집개로 뒤집으려다가 모양을 망가트린다. 하지만 위아래에서 뜨거운 돌로 눌러서 익힌다면, 굳이 반죽을 뒤집을 필요가 없어 모양이 예쁘게 유지된다.
“모양까지 누가 생각해?”
“그것 때문에 만든 조리법이 아닌가요?”
“우리 마을에서는 이렇게 먹어. 모든 집에 프라이팬이 있는 건 아니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조리도구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크레페를 먹기 위해 만든 조리법이라니···.
곁눈질로 살짝 보니, 잔뜩 꼬여있던 코시모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한길은 조심스레 코시모 옆에 있는 바구니에서 이파리 한 장을 집어서 들어 올렸다. 이파리는 축축했다.
“밤나무 이파리지. 가을에 주워서 말려두었거든. 그걸 하룻밤 적셔놓으면 이렇게 되는 거고.”
코시모는 설명까지 해주었다.
이파리를 사용하다니··· 뭔가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이파리를 비슷하게 쓰니까.
연잎밥.
향이 강한 연잎에 밥을 넣고 쪄내는 요리가 있다. 한국에서 연잎으로 밥에 향을 입히는 것처럼, 코시모는 밤나무 잎으로 반죽에 향을 입히고 있었다.
이파리를 코에 가까이 대고 향을 맡아보니, 비 오는 날 숲에서 날 법한 자연의 향이 났다.
“향이 좋네요.”
“여름에는 생잎을 사용하는데, 그때는 향이 더 좋아.”
코시모는 중간중간 웃음을 짓다가, 한길의 시선을 눈치채고 억지로 얼굴을 굳혔다.
그래도 자신의 조리법을 알아본 게 기뻐서였을까.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특이한 가루를 들고 와 한길에게 내밀었다.
“네치를 모르면 이것도 모르려나?”
두 손가락으로 한 꼬집 집어 들고 혓바닥 위에 가루를 올리자, 연한 단맛이 느껴졌다.
[군밤 가루(1등급)가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이탈리아에서도 군밤을 먹었나?
그보다, 군밤으로 가루도 만들었나?
“기가 막히지? 가르파나냐(Garfagnana)에 있는 친척이 보내준 건데, 거기는 밤나무가 정말 좋거든. 이건 밤을 주워서 밤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40일간 구워낸 밤으로 만든 가루란 말이지.”
정성이 엄청나다.
가루를 다시 혀에 올려보니, 정말 군밤에서 날법한 달달한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시대에 설탕은 비싸지.’
설탕은 귀족이나 왕족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고급 재료다. 서민은 엄두도 못 낼 재료다.
그래서 대체품으로 군밤 가루를 사용한다. 숲에서 주운 밤으로 만들 수 있으니 공짜이고, 맛도 밀가루에 설탕을 섞은 맛이니까.
“다 되었으려나?”
코시모는 돌탑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건조한 느낌의 크레페보다는, 메밀전처럼 쫀득한 느낌이 드는 크레페였다.
꿀꺽.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크레페를 보며 한길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자, 코시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하나 먹어봐.”
“그래도 되나요?”
“공짜 인력인데 밥은 줘야지. 그 정도까지 악독하진 않다고.”
코시모의 얼굴은, 직원을 챙겨주고 싶은 고용주의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 요리를 먹이고 싶어 하는 요리사의 얼굴이지.
코시모는 작은 단지를 꺼내고 그 안에서 몽글몽글한 하얀 크림을 꺼내 크레페 위에 올렸다. 그리고 김밥처럼 돌돌 말아서 한길에게 건네주었다.
‘이러니까 메밀전병 같네.’
메밀 대신 군밤 가루로 만든 전병. 양념된 소 대신 크림이 들어간 모양새다. 한길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바로 이탈리아식 메밀전병을 입안에 넣었다.
‘리코타 치즈였구나.’
크림의 정체는 리코타 치즈였다.
짭조름한 여타 치즈와 달리, 신선하면서 달콤한 맛이 났으니까.
군밤 크레페는 쫀득하면서도 꾸덕꾸덕했다. 밀가루보다 밀도 높은 맛이다. 군밤 특유의 구수함과 단맛이 더해져 든든하기도 했지만, 조금 무거운 느낌이었다.
리코타 치즈의 가벼우면서 산뜻한 맛이, 무게를 덜어주며 균형을 맞춰주고 있었다.
“맛있네요!”
“그래?”
“주인님 집에서 먹은 디저트보다도 맛있는데요?”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영국 궁전에서 먹은 여느 디저트보다 훨씬 섬세하면서 절묘한 맛이었으니까.
궁전에서는 설탕이 부의 상징이었다. 맛보다는 과시를 위해, 과할 정도로 단맛이 많이 느껴지는 디저트를 먹었다.
반면, 코시모의 요리는 소박한 재료를 이용했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군밤 가루를 만드는 데에도 밤나무 장작을 이용했고, 반죽을 구울 때도 밤나무 잎을 사용하여 여러 겹으로 밤의 향을 입히고 있었다.
“그래도 보는 눈은 있네?”
“네?”
“커흠, 놀지 말고 그쪽 냄비 좀 들어오라고. 그것도 못 알아듣다니, 벙어리인가?”
코시모는 성을 내듯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에 가시는 없었다.
무엇보다, 일을 시키고 있다.
“냄비 지켜보는 것 정도는 네 놈도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눌어붙지 않게 젓고 있어.”
코시모가 한길에게 맡긴 냄비 안에는 야채 스튜가 들어 있었다. 콩이랑 당근, 케일 같은 녹색 이파리가 잔뜩 들어간 스튜인데···
솔직히,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각종 자투리 재료를 섞어 넣은 꿀꿀이 죽 같았으니까.
“콩 모양이 짓눌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네.”
“여기 냄비 가장자리에 전분이 눌어붙지 않게 제대로 저어주고! 대충대충 하지 마!”
코시모는 꿀꿀이죽을 보물 대하듯이 했다.
‘할머니 같네.’
어릴 적, 외갓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는 코시모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 밥공기 안에 쌀은 남기지 말고! 농부 아저씨가 얼마나 고생해서 지은 쌀인데, 이걸 왜 안 먹어!
쌀 한 톨도 버리지 않게 했었다. 밥을 다 먹으면 밥공기 안에 물을 부어서 전분까지 싹싹 긁어서 먹게 했었고.
코시모의 태도와 말투는 할머니와 똑같았다.
“다 됐으면 들고 와!”
스튜가 데워지자, 코시모는 다른 냄비에 스튜를 옮겼다.
냄비 바닥에 오래된 빵을 찢어 넣고, 데워진 스튜를 한 국자 올리고. 또 빵을 찢어 넣고, 또 스튜를 올리고. 그렇게 층층이 빵과 스튜를 겹친 후에 냄비 뚜껑을 닫았다.
“뭐야, 리볼리타(Ribollita)도 모르나?”
자동번역 때문인지, 단어를 듣자마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리볼리타. ‘다시 끓인다’라는 뜻이다.
전날 먹은 요리를 재활용하는 요리다.
“리볼리타는 오래된 걸수록 맛있거든. 이틀째에는 이렇게 빵을 넣어서 먹고, 사흘째에는 전으로 부쳐 먹어.”
“전으로요?”
“전은 내일 먹어볼 수 있으니까 그때 먹고.”
코시모는 또다시 한길을 방치하고 혼자서 주방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갑자기 한길을 불러서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먹어봐!”
아까 만든, 재활용한 꿀꿀이 죽이었다. 먹음직스러운 모양새는 아니지만···
“어?”
“맛있지?”
“네, 생각 외로···.”
“눈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사골을 우려내듯, 여러 번 졸여서 만든 스튜에서는 깊은 맛이 났다. 양파가 제대로 캐러멜라이징 되었을 때 느껴지는 달달함. 파슬리와 셀러리의 쌉싸래한 향. 타임의 향긋한 허브향. 그리고 겨자잎처럼 톡 쏘는 녹색 이파리까지.
어딘가 든든하면서도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맛이었다.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가난한 건 아니니까! 배가 불러야 영혼도 맑아지거든!”
코시모는 어느새 껄껄 웃고 있었다.
한길은 새삼, 왜 주민들이 이 집을 그렇게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손맛이 느껴지는 요리.
소박한 재료지만, 말로 할 수 없는 든든함과 따뜻함이 있는 그런 요리.
내공이 가득한 국밥집 같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리볼리타는 그릇에 담아서 내고. 네치는 치즈 올려서 말아서 내면 되는 거고.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한길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여주인의 고함이 들려왔다.
“코시모! 손님! 프리타타 하나, 리볼리타 하나!”
“프리타타 두개! 폴렌타 하나!”
“판자넬라 하나! 멧돼지 소스 피치 하나! 리볼리타 셋!”
슬슬 식사 시간이 되었는지, 주문이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복잡한 요리는 모두 코시모가 맡고 한길은 죽을 퍼서 나르기만 했다. 가끔 네치를 돌돌 말기도 했고.
한길은 굳이 코시모에게 다른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다. 바쁜 와중 그렇게 조르는 건 투정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뭐야, 마크!”
주방과 홀을 오가는 발렌티나는,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뭐 그리 노닥거리고 있어? 요리 배운다면서?”
“배우고 있는데요?”
“그냥 죽이나 담고 있잖아?”
한가한 모습의 한길이 얄미운 모양이었다. 한길은 그에 대고 해맑게 웃어 주었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내일부터는 제대로 요리도 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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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모는 기본적으로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음식 아까운 줄 몰라.’
가난한 소작농 출신의 코시모에게, 도시 사람들의 식재료 낭비는 천벌 받을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굶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돈만 있으면 하늘에서 재료가 뚝 하고 떨어지는 줄 아는 사람들이다.
코시모는 가난한 농부였지만, 그럼에도 식사는 항상 제대로 챙겨 먹었었다. 밭에서, 땅에서, 개울에서 난 재료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어머니가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알뜰하고 정성스레 맛을 빚어내는, 최고의 요리사였다. 코시모는 그 모습을 보며 요리를 배웠었고.
그래서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이 함부로 채소 꼬투리를 버리거나, 한눈을 팔아서 냄비를 태워 먹는 걸 보면 혈압이 올라 미칠 것 같았다. 결국 하루도 못 참고 모두 쫓아내고 말았고.
‘뭐, 쓰레기는 아니네.’
이번에 들어온 영국 놈은, 적어도 재료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요리하는 걸 지켜보길래, 자기도 모르게 두 개의 요리를 가르쳐 주기도 했고.
‘그래도 주방일을 맡길 수는 없지.’
음식을 함부로 여기는 놈들에게 주방을 맡겨두고 편하게 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간 천벌을 받을 거다. 문제는,
“프리타타 세 개! 리볼리타 다섯 개!”
“판자넬라 네 개!”
“네치 두 개, 튀김 세 개!”
요즘 들어 주문이 너무 많다.
얼마 전부터 이 인근의 성당에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관 손님 중에는 공사장 인부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대게 우르르 몰려와서 우르르 주문했다.
혼자서 감당이 안 되기는 하다.
이제는 제법 나이도 들어서 몸이 천근만근일 때도 있고. 기억력도 많이 나빠져서 들은 주문을 깜빡하기도 한다. 그래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화를 내며 나가는 손님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프리타타가 몇 개라고 했더라?”
지금도 요리 하나를 완성하고 작업대로 돌아가는 사이, 다음 요리를 잊고 말았다.
“안젤라···”
아내를 부르려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잔소리를 듣기 싫으니까.
우선 하나만 만들고 부족하다고 하면 하나를 더 만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지?”
“프리타타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해 드렸습니다.”
어느새 작업대에는 2인분의 프리타타 재료가 마련되어 있었다. 채소는 모두 썰어둔 채로. 계란은 네 개.
“쓸데없는 짓을! 누구 마음대로 내 재료를 건드리라고 했나?”
“죄송합니다.”
“다시는!”
“네치 네 개! 피치 세 개!”
하지만 성질을 낼 시간은 없다. 코시모는 일단 급한 대로 팬을 달구고 계란을 올려 구웠다.
요리를 건네주고 다시 작업대로 향하니, 작업대 위에는 길쭉길쭉한 밀가루 면이 3인분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 옆에 빵가루도 마련되어 있었고.
다음 주문은 피치였나?
“튀김 세 개! 리볼리타 두 개!”
따질 시간도 없이 주문이 또 들어왔고, 영국인 녀석은 번개처럼 달려가 리볼리타를 그릇에 담고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코시모가 완성된 파스타를 아내에게 건네주고 작업대로 돌아오니, 튀김에 사용될 재료가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다.
다음 주문은 튀김이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무슨 요정처럼 필요한 걸 뚝딱 내오는 놈이었다.
일을 마치면 함부로 남의 재료 건드리지 말라고 윽박지를 생각이었지만··· 막상 주방을 마감할 때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단 한 명의 손님도 돌아가지 않고 모든 주문을 소화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