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3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35화(135/325)
135. 치트키가 있으니까.
“요리 대회요?”
이 시대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절로 되묻게 되었다.
“아, 마크, 네 놈은 모르겠군. 몇 년 전에도 대회가 있었거든. 그때는 메디치 아가씨 때문이었지만. 향수를 만드는 장인부터 점성가, 목수, 정원사, 요리사까지. 온갖 사람을 다 불러모아서 최고 실력자만 가려내는데, 정말 볼만했지!”
메디치 아가씨라면 아마 카테린 드 메디치를 뜻하는 걸 거다.
퀘스트 시기로부터 3년 전. 카테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실로 시집을 갈 때 다양한 장인들을 대동했다고 전해지니까.
“그때 같이 간 요리사를 대회로 뽑았나요?”
“다는 아니고 한 명만. 무슨 특이한 요리를 만드는 대회였는데, 상금이 무려 300 플로린이나 되었지. 그 정도면 도심에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잖아? 게다가 우승자는 궁전에 일자리도 구했으니 인생 역전한 셈이고.”
“참가 자격에 제한은 없고요?”
“피렌체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는데. 우승자가 루게리라는 놈이었거든? 뭐 하는 놈이었는지 아나?”
“모르죠.”
“닭장수.”
“네?”
“시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닭장수였어. 농부 출신이라고 했던가? 뭐, 지금은 닭장수가 아니라 궁전 요리사지. 가족들은 대저택에 살면서 1층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때 우승한 메뉴 하나만 파는데도 사람이 아직까지 바글바글해.”
메디치 가문의 요리 대회라니.
피렌체를 떠나기 전에 코시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던 참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건물 한 채를 살 정도의 상금을 준다면, 코시모의 고민은 모두 해결될 거다. 게다가 전 우승자가 농부 출신의 닭장수라면 어느 정도 승산도 있을 테고.
“우승했던 메뉴가 뭔지, 혹시 기억나세요?”
“글쎄? 몇 년 전이었으니까. 무슨 마늘 수프인지 부추 수프인지가 하나 있었고, 무슨 고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는데, 딱 하나는 확실히 기억나.”
“뭔데요?”
“젤라또.”
젤라또?
설마, 그 젤라또?
질문하기도 전에 마리오가 스스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놈이 희한하게, 얼음처럼 차가운 크림을 만들더라니까?”
#
“요리 대회?”
“당장 내일이래요.”
“그래서?”
“참가하자고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요리 대회 소식을 전했지만, 코시모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승 상금이 상당하대요.”
“그러겠지.”
“얼만지 안 궁금해요?”
“많겠지.”
“300 플로린이래요.”
“메디치답네.”
“건물 하나를 살 수도 있다던데.”
“거참, 대단하군.”
“욕심 안 나세요?”
“뭐가?”
“코시모가 이길 수도 있잖아요?”
“요즘은 구경꾼에게도 상금을 나눠 주나 보지?”
한길이 다가가서 말을 걸 때마다, 코시모는 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휘둘렀다. 결국 한 시간 넘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대화에 응해주었다.
“쓸데없는 망상은 그만두고 일이나 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놈들치고 잘나가는 놈들을 본 적이 없으니까.”
“망상이 아니라 대회입니다. 우승하면 이 여관을 인수할 수도 있고,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코시모가 원하는 메뉴를 판매할 수도 있어요. 한번 도전해봐도 되잖아요?”
“다 부질없는 짓이라니까?”
“왜 시작도 안 하고 포기하는 건데요?”
“거참, 말 더럽게 많네.”
“안 나갈 이유가 없잖아요? 참가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요.”
코시모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소용없다고. 난 귀족 음식을 모르니까.”
“그런 거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쪽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일개 상인이랑 메디치는 다르지.”
사실은 왕궁에서 일했었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간신히 삼켰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한길의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영국 왕실의 요리사가 피렌체에 있다는 소문이 나서 좋을 것 없다.
“저는 코시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유한 집안에서 일했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냐.”
“그럼 뭐가 문제죠?”
“하아···.”
코시모가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칫하다가는 그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아 한길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코시모는 눈을 질끈 감으며 호흡을 가다듬더니, 손에 힘을 풀었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야.”
“정신이요?”
“만드는 방법을 배워도 나는 귀족들이 먹는 음식을 만들 수 없어. 겉만 번드르르한 요리를 위해 재료를 낭비하는 짓은 죽어도 못 하니까. 천성이 그래.”
“···.”
“귀족은 귀족이고, 메디치는 메디치고, 농부는 농부지. 농부는 농부답게, 내 두 손으로 땅에서 수확한 재료를 정직하게 요리하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나도 그게 더 마음이 편해.”
코시모는 완고했다.
그 말이 맞기도 했고.
코시모의 요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별한 기술도, 기교도 없는 우직한 요리. 재료를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 숨어있는 맛을 버리지 않고 모두 끄집어내는 게 비결이었다.
코시모가 영국 궁전의 백조 구이 같은 걸 만드는 건,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코시모가 만드는 방식 그대로 참가할 수 있다면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귀족들이 이런 요리를 먹겠어?”
“먹을 수도 있죠. 코시모는 이전 우승자인 루게리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나요?”
“···.”
“어떤 요리인지는 아세요?”
“···.”
“한번 먹으러 가보죠. 먹어보고도 싫다고 하시면, 저도 더 억지 부리지 않겠습니다. 싫다는데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잖아요? 코시모가 끌려갈 사람도 아니고.”
“그럴 돈이 어딨어?”
“제가 사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꽤 부유한 집안에서 일해서 돈이 부족한 건 아니거든요.”
코시모는 조용히 한길을 노려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하루 맞춰주고 평온을 얻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어.”
“어딜 가냐고 안 물어?”
“뭐, 숨겨둔 여자라도 있어?”
“있었으면 당신이랑 살고 있겠어?”
“갈 데가 있으니 가는 거겠지. 손님들한테는 한동안 리볼리타만 주문 가능하다고 말해 놓을 테니까 다녀와.”
갑작스러운 외출 통보였지만, 여주인인 안젤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라 뒤에 서 있는 발렌티나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내왔다.
한길이 코시모를 설득하는 동안, 안젤라에게는 발렌티나가 붙어 있었다. 반응을 보니, 코시모의 아내는 찬성하는 모양이었다.
반면, 코시모는 여관을 나서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네놈은 대회에 왜 이리 관심이 많지?”
“참가하고 싶으니까요.”
“그럼 너 혼자 나가.”
“저는 피렌체 시민이 아니라 참가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대신 참가한다 해도 네놈한테 떨어지는 건 없잖아?”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럼?”
“궁금합니다. 메디치의 요리는 어떤 요리인지.”
그것도 사실이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다른 요리사들의 음식도 보고 싶었고, 메디치에서 어떤 평가를 하는 지도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코시모의 고집을 꺾고 싶었다.
요리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신념이 필요하지만, 그게 너무 과하면 쓸데없는 아집이 된다. 그러면 열릴 길도 열리지 않을 거고.
코시모를 보면, 이상하게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의 자신이 생각났다. 홍보는 필요 없다며 이상한 아집을 부리던 그때의 자신이.
“그렇게 궁금하면 구경꾼으로 가도 되잖아?”
“그래선 경험을 얻을 수 없죠.”
“경험?”
“눈으로 보는 것과 주방에서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르니까요.”
“··· 정말 밥만 먹고 오면 되는 거지?”
“네. 먹어보고도 대회는 안 나가겠다 하시면 아무 말 않겠습니다.”
“왜 그리 자신만만하지?”
코시모는 수상한 눈길을 보냈지만, 한길은 여유로운 웃음으로 답했다.
“일단 가서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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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리의 식당은 피렌체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지났음에도 밖에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은, 현대의 맛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당의 손님들은 차림새부터가 남달랐다. 온갖 화려한 보석을 몸에 두르고 있었고, 특이한 가발을 쓴 이들도 있었으니까.
코시모의 여관을 드나드는 손님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였다.
“···화려하네요.”
“피렌체는 부자들이 많으니까. 상인들도 많고.”
“그래도, 저희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요?”
“네놈이랑 똑같은 놈들이겠지.”
“제가 어떤 놈인데요?”
“대회 전에 우승자의 비결을 훔쳐보려고 없는 돈 털어서 오는 놈.”
“돈은 있다니까요.”
“에휴, 나도 모른다. 한번 제대로 털려봐야 정신 차리지.”
코시모는 한순간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묵묵히 들어주며 기다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뭐야, 코시모 아닌가?”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어딘가 늙은 호박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남자는 부자연스럽게 양손을 얼굴에 대며 뺨을 감싸고 있었다. 손가락마다 낀 금은 반지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파올로, 오랜만이군.”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자네가 이런 곳에 다 나타나고. 장사는 잘되나?”
“그럭저럭.”
남자는 눈알만 글리며 코시모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시선이 코시모의 헤진 소매에 닿자, 참지 못하고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자네도 메디치 대회에 참가하는 건가?”
“···.”
“돈이 필요한가? 곤란한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면 될 것을.”
“그런 거 아니네.”
“우리 사이에 무슨 체면을 챙기나?”
“그냥 밥 먹으러 온 거라니까.”
“그래,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고향 친구 둬서 뭣하나, 안 그래?”
“···.”
“뭐, 식사 맛있게 하고. 나도 가서 줄 서야 하니까 나중에 봅세.”
남자가 떠난 후에도 코시모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귀는 아까부터 새빨갛다.
“혹시, 여기 온 게 들키면 곤란한가요?”
“조금.”
“죄송합니다.”
“···.”
“정말,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 네 잘못은 아니지. 운이 없었던 거니까.”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지금껏 거친 소리를 해도 이렇게 분위기가 무거운 적이 없었는데.
한길이 계속 눈치를 보자, 코시모는 인상을 풀었다.
“네놈 탓은 아냐. 그냥 창피해서 그런 거지.”
“친구··· 분 앞이라서요?”
“친구는 무슨. 그냥 예전에 같이 여관을 운영했던 놈이야.”
“사업 파트너였었군요.”
“30년도 더 된 일인데.”
개인적인 얘기인 것 같아 다른 대화 주제를 찾으려 했으나, 코시모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놈은 서민 요리만 만들어서는 답이 없다고 했거든. 빚을 내서라도 향신료를 모아 부자들한테 팔리는 요리를 만들자고 했었고.”
“그렇군요.”
“나는 그렇게 장삿속만 차리면 금방 망할 거라고 했었는데, 뭐, 보다시피 이런 상황이라서.”
코시모는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얼굴에 모든 근육이 힘을 잃으면서 갑자기 주름이 몇 배로 늘어난 듯했다.
“그래도 코시모의 요리가 훨씬 맛있습니다.”
“저놈 요리는 먹어보지도 않았잖아?”
“먹어보지 않아도 압니다. 그리고 코시모의 요리가 더 오래갈 겁니다.”
“글쎄. 벌써 30년이 흘렀는데 이 정도면 승부는 났다고 봐야지.”
마음 같아서는 말해주고 싶었다. 향신료를 과다하게 사용한 요리는 몇십 년 내로 사라진다고.
반면, 코시모가 고집하는 맛은 500년이 지난 후에도 사랑받게 된다. 물론, 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뭐로 할 테요?”
식당 내부로 들어가자, 여주인이 주문부터 재촉했다.
메뉴는 딱 네 개였다.
전채, 첫 번째 메인, 두 번째 메인, 그리고 디저트.
각 요리를 따로 시킬 수도 있었고, 풀코스로 주문할 수도 있었다. 풀코스는 1인분이 평범한 인부의 한 달 치 임금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풀코스로 2인분 주세요.”
한길이 주문하자, 코시모가 눈을 부릅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기로 했으니까요.”
“네놈을 거덜 낼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주머니가 깊다니까요.”
“그래 봤자 요리사가 얼마나 번다고.”
안심을 시키려고 해도, 코시모는 영 불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요리가 나오자, 표정이 변했다.
“어? 이건···.”
“전채, 양파 수프(carabaccia)에요.”
첫 번째로 나온 요리는 짙은 갈색의 수프.
고기 한 점 없이 양파와 빵만 곁들여 나오는 수프였다.
코시모는 보물찾기라도 하듯, 스푼을 들고 수프를 해적이고 있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수프 안에는 양파와 빵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신기하긴 하네.’
한길 역시 조금 놀라긴 했다. 이 시대에 양파는 귀한 재료가 아니었으니까. 그러기는커녕 양파와 마늘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양파만 들어간 수프를 메디치 가문이 인정했다는 게 의외였다.
하지만 맛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양파 소테(saute).
저온에서 장시간 양파를 익히는 조리법을 사용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 터.
양파의 수분을 서서히 제거하면, 양파의 단맛이 절정으로 치솟는다. 서두르지 않고 살살 달래가면서 단맛을 끄집어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조리한 양파는, 고소함과 감칠맛까지 두르게 된다.
어려운 기술은 아니지만,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양파가 타지 않게 몇 분 간격으로 뒤집어 줘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을 약하게 줄여야 하니까. 현대에서도 번거로운데, 화력을 손쉽게 조절할 수 없는 이 시대에서는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그렇게 완성한 양파에 다진 아몬드와 채수를 넣고 끓여낸 수프였다. 프랑스식 양파 수프에 견과류를 넣은 것과도 같은 맛이다.
“피렌체식 크레페(crespelle alla fiorentina)요.”
두 번째 요리는 김밥처럼 생긴 크레페였다.
김 대신 종잇장처럼 얇은 밀가루 반죽을 사용했고, 밥 대신 시금치와 리코타 치즈, 그리고 하얀 소스가 들어가 있었다. 우유와 버터를 졸여낸 듯한 소스가 모든 맛을 풀칠하듯이 엮어주고 있었다.
요리를 맛본 코시모는 놀란 눈을 하더니,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할머니의 옷자락(pezzuole della nonna)’인데.”
“그게 뭐죠?”
“그.. 고향에서도 먹는 요리거든. 반죽을 이렇게 얇게 만들지는 않지만.”
시골에서 먹는 요리를 고급화한 모양이었다.
다음 요리는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오리구이(Papero al melarancio).
껍질은 전기구이를 한 것처럼 반질반질하면서도 바삭했고, 고기는 담백했다. 무엇보다, 오리구이를 덮고 있는 오렌지 소스가 독특했다.
오렌지의 맛이 현대와는 많이 달랐다. 시트론 과일 특유의 신맛도 있었지만, 단맛은 없었다. 오히려 약간 씁쓰레한 맛의 오렌지라고 해야 하나.
굳이 설탕은 사용하지 않았다. 오리고기의 지방에서 단맛이 나고 있었으니까. 어딘가 쓰면서 달고, 기름지면서 담백하고, 새콤하면서 입에 감겼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이상한 맛이 날 텐데.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어딘가 절묘했다.
“젤라또입니다.”
대망의 디저트는 우유를 얼려서 만든 아이스크림이었다. 붉은 열매를 사용했는데,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크리미했다. 현대의 젤라또처럼 쫀득하게 달라붙는 식감은 없었지만, 이 시대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너, 어떤 요리가 나올 줄 알고 있었나?”
“아뇨.”
“정말인가?”
식사를 마치자, 코시모는 한길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정말 몰랐어요. 왜요?”
“이건··· 귀족 요리가 아니잖아?”
“그런 것 같네요.”
“이렇게 섞인 요리라니···.”
서민 요리와 귀족 요리를 혼합한 듯한 요리였다.
코시모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한길도 알고 온 건 아니었다. 젤라또가 우승 메뉴였다는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아마 나랑 비슷한 상황이었겠지.’
한길이 영국 궁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비슷했다. 평범한 재료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 요리.
왕족과 귀족들은 설탕이나 정향, 시나몬 같은 비싼 향신료를 사용하여 부를 과시하려 했지만. 너도나도 모두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향신료만 들어가는 요리는 밋밋해 보였다.
궁중에서 요리는 엔터테인먼트.
놀라움을 주는 게 중요하다.
루게리라는 요리사는, 서민 재료로 예상외의 맛을 끌어내서 놀라움을 주었다. 조합을 달리하거나, 식감을 달리하거나, 온도를 바꾸면서.
이런 요리가 먹힌다면, 코시모의 요리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조금만 손을 댄다면.
코시모에게 대회 참가 의사를 다시 물어보려 했으나, 꺼림칙한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코시모의 옛 파트너가 안내받은 자리가, 하필이면 한길의 바로 옆 테이블이었던 것.
“여기서 또 보는군. 맛은 어떤가?”
“맛있더군. 자네도 잘 먹고 가게.”
코시모는 예의상 짤막한 한 마디만 남기고 등을 돌렸다. 그런데도 남자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코시모,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
“지금 와서 이런 짓을 할 거면 그냥 예전에 하면 좋지 않았나. 그러면 30년이나 고생할 일도 없었을 텐데.”
“···.”
질척이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가는 사람을 붙잡고 저렇게 비아냥댈 필요가 있을까?
아무 말 안 하는 코시모의 모습도 보기 싫었다. 저렇게 말을 아끼는 사람은 아닌데.
무엇보다, 남자의 시선이 불쾌했다.
코시모와 자신의 격차를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저기요.”
결국 한길은 참지 못하고 여주인을 불렀다.
만약 남자가 한길을 무시했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거다. 모르는 사람의 평가에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니까.
하지만 코시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이상하게 속이 끓어 올랐다. 항상 할 말은 다 하는 코시모가 침묵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왜 불렀어요?”
“혹시 포장도 되나요? 풀 코스로 네 개만 포장해 가고 싶은데.”
“돈은 있고?”
여주인은 대놓고 물었다.
코스 하나가 평범한 인부의 한 달 치 임금.
코스 네 개에다가 방금 먹은 2인분까지 더하면, 일반인의 반년 치 임금에 달한다. 적은 금액은 아니니 미리 확인하고 싶은 거다.
“필요하면 계산은 지금 하죠.”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금방 들고 오죠.”
한길이 웃으며 금화를 꺼내자, 여주인은 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남자의 기분 나쁜 시선이 온몸을 더듬거리는 게 느껴졌다.
표정만 봐도 생각이 읽혔다.
‘저런 차림새의 놈이 어떻게 저런 거금을?’ 정도겠지.
“커흠, 그러고 보니 내가 실례가 많았네. 자네는 누군가?”
“저요?”
“그래, 자네.”
“아, 제가 보이는군요. 처음 만날 때부터 코시모 옆에 있었는데.”
“···.”
“제 꿈이 투명 인간이 되는 마법을 배우는 거였는데, 드디어 마법을 익힌 건가 싶었습니다.”
한길은 온몸의 세포를 집중하며 최대한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미안하네. 그래서, 자네가 누구라고?”
“우리 여관 잡일꾼.”
대답한 이는 코시모였다.
어딘가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자네는 무슨 농담을 그리하나.”
“농담해서 뭣하나.”
“정말 잡일꾼 맞습니다.”
“···.”
“모르셨나요? 요즘은 잡일꾼들이 가끔 이렇게 한턱 쏘기도 하는데.”
황당해하던 남자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움직였지만, 헛바람만 나왔다.
“그나저나, 코시모 친구분도 메디치 대회에 나오시는 거죠?”
“그건 왜 묻지?”
“너무 경계하셔서 벌써 대회가 시작되는 줄 알았지 뭡니까.”
“···.”
“제대로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번에 코시모가 만든 요리는, 지금껏 먹어본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역대급이었으니까요. 안 그래요?”
한길이 돌아보자, 코시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대회장에서 보자고, 파올로.”
코시모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지만, 식당을 나오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아씨, 저질러버렸네. 네놈,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약아빠진 놈이네, 이거.”
“제가 뭘요.”
“이러다 망신만 당하면 어쩌냐! 네놈은 떠나지만 난 남아있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도와드린다고 했잖아요.”
“에휴.”
“코시모가 우승할 거라니까요? 이건 장담합니다.”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아는데?”
그야, 치트키가 있으니까.
500년 후 미래에서 온 한길에게는, 이곳의 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요리가 더 익숙했다. 무슨 요리를 만들어야 할지도 이미 생각해 두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