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3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37화(137/325)
137. 팡!
요리로 놀라움을 주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
그래서 한길은 유럽인들에게 아직 생소한 토마토와 옥수수를 준비했다.
또 하나는 새로운 조리법을 쓰는 것.
익숙한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 참신함을 주는 방법이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굳이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지.’
한길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시도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전채와 디저트, 두 가지 메뉴를 더 만들어야 했으니까.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전채로는, 이곳에서 가장 흔한 재료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계란.
계란은 서민도, 귀족도 즐겨 먹는 재료다. 주로 삶은 계란을 먹지만, 계란물을 풀어서 계란 전 같은 프리타타를 만들거나 계란 프라이를 만들기도 했다. 왕궁에서는 계란을 풀어서 커스터드처럼 먹기도 했고.
하지만 이건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탁! 탁!
한길은 계란을 깨트리고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했다. 노른자는 동그란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별도의 작은 접시에 담아두었다. 반면, 흰자는 커다란 보올에 한데 넣고 소금간을 한 후, 나무 빗자루처럼 생긴 거품기로 휘저어 주었다.
촤륵! 촤륵!
머랭을 만들 때와 같은 방법이다. 설탕은 들어가지 않지만.
이렇게 거품기로 흰자를 저어주면, 흰자의 단백질 사이사이에 공기가 주입되며 부풀어 오른다. 시간이 갈수록 흰자는 서서히 투명도를 잃고 하얀 생크림처럼 변했다.
이대로 구우면, 폭신한 하얀 구름이 된다.
현대에서는 이 요리를 클라우드 에그(cloud egg)라고 부른다.
설탕을 넣은 머랭은 열기가 더해지면 설탕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하지만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머랭은, 폭신폭신하게 부풀어 오른다.
한길은 완성된 흰자 거품을 주먹만 한 크기로 덜어서 오븐용 용기에 올렸다. 숟가락으로 구름 한가운데를 꾹꾹 눌러주어 작은 우물을 만들었고.
이대로 5분간 구워줘서 흰자를 굳히고. 미리 만들어놓은 우물에 노른자를 가둬놓고 다시 5분간 구워내면 완성이다.
“어떤가요?”
한길은 구름 계란을 코시모 앞에 내밀며 일부로 큰 소리로 확인을 받았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요리사는 코시모고, 한길은 어디까지나 주방보조일 뿐이니까.
구름 계란을 본 코시모는 놀란 눈을 떴다. 어제 시간이 부족하여 사전에 연습해보지 못한 메뉴라 코시모도 처음 보는 요리이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음, 잘 구워졌군.”
“코시모가 말한 대로 거품을 제대로 만들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래, 잘했어.”
“이런 메뉴를 개발한 코시모가 대단한 거죠.”
한길이 큰소리로 비행기를 태우자 코시모는 어색하게 껄껄 웃었지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아마 듣는 사람이 없다면, 어쭙잖은 연극을 시킨다며 화를 냈을 거다.
“모두 나갈 준비를 하도록!”
마지막 점호를 듣고 한길과 코시모는 플레이팅을 시작했다.
전채로 나갈 요리는 구름 계란.
이것으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멧돼지 고기 파스타와 막창 샌드위치.
코시모의 손맛에 토마토의 감칠맛까지 더해져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메뉴다.
마지막 디저트는 옥수수.
즉석에서 조리할 예정이라 말린 옥수수 알갱이, 소금, 버터와 조리도구를 챙겼다.
“뭐야, 이제 사료까지 들고 오나?”
옥수수를 본 파올로가 한껏 비웃었지만, 코시모는 어딘가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자신 있게 맞섰다.
“기대하라고. 같은 재료도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가 되니까.”
#
‘따분하네.’
알레산드로 드 메디치 공작은 간신히 하품을 참고 있었다. 3년 만에 여는 요리대회이건만, 눈여겨볼 참가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탓이다.
‘카테린이 너무 많이 데려갔어.’
메디치 가문의 위신을 위해, 피렌체에서 내로라 하는 요리사들을 카테린과 함께 프랑스로 보내버렸다. 그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새로운 요리사를 찾으면 그만이니까.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창의적인 도시다.
프랑스 국왕이 그렇게 탐내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신의 예술가(Il Divino)로 불리는 미켈란젤로도. 모두 피렌체 출신이다.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루미 어미와 새끼를 한 번에 구운 요리입니다.”
“붉은 숭어와 나이팅게일이 담긴 파이입니다.”
“황금 사프란 소스를 두른 양고기입니다.”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는 전부 나쁘지 않았지만, 유럽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해빠진 요리였다. 특징이 없다.
‘다른 지역에서 요리사를 데려와야 하나?’
메디치 공작은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연회가 중요한 시기다.
튜니지 전쟁을 마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탈리아의 모든 귀족이 앞다퉈 황제를 접대하고 있고.
황제의 영토는 어마어마하다.
독일과 스페인, 네덜랜드, 이탈리아반도···.
이 넓은 땅덩어리를 모두 직접 통치할 수 없어, 대리인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그 자리를 노리고 있고.
‘절대 놓칠 수 없지.’
그리고 메디치 공작도 그 자리를 노리는 이 중 하나였다.
황제는 알레산드로를 좋아했다. 알레산드로에게 피렌체의 공작 작위를 하사할 정도로. 알레산드로는 메디치 가문에서 최초로 세습되는 작위를 받은 인물이었다.
그뿐 아니라, 황제의 딸과 혼담까지 오가고 있다. 공주가 아닌 사생아이지만, 알레산드로 역시 사생아 출신이기에 이 정도도 과분하다.
황제를 대신하여 이탈리아를 다스릴 사람으로, 사위보다 나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결혼식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사방에 적이 너무 많으니까.
몇 달 내내 화려한 연회를 즐기던 황제가, 알레산드로의 접대를 받고 실망하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어야 한다.
“다음!”
평이하기 그지없는 닭고기를 몇 번 씹다가 뱉은 메디치 공작은, 윽박지르듯 다음 요리를 재촉했다. 그러자 배가 산만한 뚱뚱한 늙은이가 나왔다.
“저는 특별히 무어인들의 요리를 준비해 봤습니다. 무어식 케밥과 사프란 소스를 뿌린 미트볼, 시트론 샐러드와 아몬드 크림 커스터드입니다.”
남자가 내놓는 요리는, 별미로 귀족들이 즐겨 먹는 요리였다. 향신료를 듬뿍 넣은 이국적인 아랍풍 요리로, 한때는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네는 어디 사람이지?”
“물론 피렌체 시민입니다. ‘황금 마차’라는 여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셨으련지 모르겠습니다만, 공작 전하 지인분들도 자주 찾으시는 곳이지요.”
“내가 일반 귀족으로 보이나?”
남자는 대놓고 아부하는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비볐지만, 공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자 얼굴을 굳혔다.
“아,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지인분들도 즐기는 요리이니 공작 전하의 입맛에도 맞지 않을까 하여···.”
“공작령을 다스리는 공작이, 외국인의 요리를 먹는다면 어떤 소문이 돌지는 생각도 안 해봤고?”
“그, 그게 ···.”
외국의 재료가 적당히 들어간 요리라면 몰라도, 외국의 요리를 즐겨 먹는 건 어떻게 해석될지 모른다.
특히나 ‘무어인’의 요리는 조심해야 한다.
다른 이탈리아인들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알레산드로를 두고, ‘어머니가 아랍 계통 노예’라는 헛소문을 퍼트리는 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 일부러 저러는 건가?’
일반 시민이라면 이런 속사정을 모를 거다. 하지만, 자신의 적들이 일부러 보낸 자일수도 있다. 공개적으로 메디치 공작이 아랍 요리를 좋아하는 아랍인이라는 소문을 퍼트리기 위한 수작일 가능성도 있다.
“다음!”
“저··· 한 입 드셔보시지도 않으시고.”
“내가 꼭 이걸 먹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공작이 다시 쏘아보자, 남자는 조용히 꽁지를 내리고 도망을 갔다.
‘혹시 모르니 저놈에게는 꼬리를 붙여놔야겠군.’
그냥 멍청한 놈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확인하는 게 좋다.
머리가 지끈거려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자,
“어떻게 저런 모양이?”
“놀랍군요.”
“이런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웅성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기심에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요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구름 계란입니다.”
하늘에 있는 구름을 그대로 따서 접시에 올려놓은 듯한 모양새. 구름 한가운데에는 노란 태양이 담겨 있었다.
계란이다.
계란인데···.
이런 계란은 본 적이 없다.
“제가 시식해 보겠습니다.”
독의 유무를 확인하는 기미 하인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다가와 구름 한 점을 떼어내자, 공작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칼날이 스쳐도 하얀 구름은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꿀꺽.
하인의 입안으로 구름이 들어가자, 저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맛을 음미하는 모습이, 저게 심상치 않은 맛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드셔도 됩니다.”
하인이 원하던 말을 해주자, 공작은 서둘러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푹!
노른자에 칼날이 닿자, 태양이 터지며 황금빛 강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공작은 붉은 고기 조각이 올라간 구름을 포크로 콕 집은 후, 노른자를 듬뿍 묻혀서 입안에 넣었다.
“···!”
신기한 맛이었다.
구름은 어딘가 꼬들꼬들하면서도 탱글탱글하고. 섬세하면서도 가벼운 식감이었다. 거기에 돼지고기의 뱃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름진 향과 노른자가 엉겨 붙어 무게를 더해주었다.
계란과 판체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의미도 좋은걸?’
그 흔한 계란 하나도, 메디치의 손을 거치면 태양과 구름이 된다. 너무 애쓰는 것 같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피렌체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요리였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멧돼지 고기 파스타입니다.”
다음으로 나온 요리는, 피렌체에서는 자주 먹는 평범한 파스타였다. 너무 평이해서 약간의 실망을 느꼈지만, 시식하는 하인의 표정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계란을 먹을 때 보다 눈을 감는 시간이 두 배로 길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쩝쩝거리는 소리도 거슬렸고.
“드셔도 됩니다.”
기다리던 말이 떨어지자, 공작은 포크를 들고 넓적한 국수를 돌돌 말아 소스를 듬뿍 묻히고 입안에 넣었다.
가장 먼저 익숙한 맛이 느껴졌다.
멧돼지와 와인.
멧돼지는 돼지고기보다 향이 강한 편이지만, 레드 와인이 날카로운 맛을 모두 덮어주고 있었다.
풍부하고 윤택한 육향.
절로 눈이 감기고 뱃속이 따뜻해지는 그런 맛이었다.
향이 진하다.
하기만 과하지는 않다.
기름지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기름은 아니다.
‘뭐지?’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평소에 먹는 멧돼지 파스타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삼키고 나면 이상하게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무언가가 입안에 착착 감겨왔다.
‘다시 한 입만 더.’
한 번 더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안에 욱여넣고 흡입하니, 면발이 탄력 있게 입안으로 들어왔다.
신기할 정도로 푸근한 맛이었다.
잔뜩 곤두선 마음을 절로 누그러트리는 신비한 맛.
그 푸근함에 몸을 맡기니, 앗하는 사이에 접시가 깨끗해졌다.
접시 바닥에 남은 소스만 번들거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접시에 코를 박고 혓바닥으로 남은 소스를 핥아 먹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럴 수는 없다.
“람프레도토 샌드위치입니다. 양손으로 들고 빵을 꾹 눌러서 드셔야 합니다.”
다음에는 빵 사이에 고기가 듬뿍 들어간 요리가 나왔다. 빵과 요리를 함께 먹기는 하지만, 이렇게 사이에 끼워 넣고 먹는 음식은 또 처음이다.
기미 하인은 헤벌헤벌 웃으며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파스타의 두 배는 족히 걸리는 시간 동안 씹고 있다.
“드셔도 됩니다.”
하인이 입을 열자마자 공작은 손을 뻗었다.
빵을 들고 손에 살짝 힘을 주니, 빵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으로 뚝 쪼개지는 게 아니라, 표면에 있는 부스러기가 조금 떨어져 나간 정도다.
바사삭!
이빨이 닿자마자 빵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놀랄 만큼 깊은 향이 휘몰아쳤다. 아무래도 빵의 한쪽 면에 소고기 육수를 조금 묻힌 모양이었다.
빵의 바로 아래에는 고기가 있었다.
고기는 쫄깃하고도 탄력 있게 씹혔다. 씹을 때마다 이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육즙을 삼키니, 거나하게 취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육즙의 깊이가 다르다.
절로 표정이 축축해지는, 저항할 수 없는 만족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함께 곁들어 나온 녹색 소스가 약간의 새콤함을 더하며 입맛을 돋웠다.
고기의 부드러운 온화함에 몸을 맡기고. 새콤함에 이끌려 다시 한 입을 먹고. 다시 온화함에 빠져들고.
정신없이 먹고 눈을 떠 보니, 샌드위치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직까지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무슨 고기지?”
“소의 네 번째 위장인 막창입니다.”
“이게 내장이라고?”
람프레데토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당연히 칠성장어(lamprey eel)를 이용한 요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칠성장어는, 귀족들이 애용하는 재료다. 고기와 견줄 정도로 진한 맛이 나는 생선이기 때문에 생선 먹는 날에 자주 먹는다. 값이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그런데 고작 소의 내장으로 그 맛에 견줄, 아니 뛰어넘는 맛이 나오다니.
‘이것도 쓸만하네!’
메디치의 손을 거치면, 소의 내장으로 칠성장어를 아득히 뛰어넘는 맛을 빚어낼 수 있다.
‘다음은 뭐지?’
공작은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입가를 닦고, 하인이 가져온 대야에서 손을 씻으며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계속 두 명의 요리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 둘은, 숯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무슨 곡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뚜껑을 닫고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팡!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다.
대포를 쏘는 소리다.
“무슨 짓이냐!”
“공작 전하!”
폭발음에 놀란 경비들이 우르르 달려와 공작을 호위했다. 매 같은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출처를 찾는 경비대장의 시선이 이윽고 냄비에 꽂혔다.
냄비 앞에 선 요리사 둘은 숨길 게 없다는 듯이 양손을 하늘로 들고 있었다.
“조금 소란스럽지만 위험한 요리는 아닙니다.”
팡! 파팡!
폭발음은 계속 들려왔지만, 쓰러지는 사람은 없었다. 냄비의 뚜껑이 열리지도 않았고.
팡···. 팡···.
소리의 간격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완전히 사그러 들자, 요리사가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이건 무슨?”
“분명 아까는 곡물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홀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탄성을 터트렸다. 들어갈 때는 평범한 말린 곡식이었는데, 냄비에 나온 것은 하얀 보푸라기였으니까.
“팝콘입니다.”
“팝콘?”
“옥수수를 구름처럼 튀긴 요리죠.”
처음 먹었던 주먹만 한 크기의 구름과는 달리, 이번에는 손톱 크기의 작은 구름이었다.
“제가 먹어보겠습니다.”
기미 하인은 신이 나서 작은 구름 하나를 쥐고 입안에 넣었다.
“음··· 아무래도 너무 작아서 조금 더 먹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인은 구름 아예 한손 가득, 한 줌을 쥐어서 입안에 털어 넣고 와삭와삭 씹기 시작했다. 히죽이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목숨 걸고 독약의 유무를 확인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안전합니다.”
공작은 한 줌 밖에 남지 않은 그릇 속 구름을 보며 하인을 노려보았지만, 하인은 태연하게 변명을 했다.
“그 무엇보다 공작 전하의 안전이 우선이니까요.”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먹는 시간이 지연된다.
공작은 작은 구름을 들어 올렸다. 하얀 구름은 군데군데 노란 버터 이불을 덮고 있었다.
파삭!
또 신기한 식감이다.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부드럽지도 않고 입안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파사삭!
씹을 때마다 구름 쪼가리가 입안에서 장난스레 뒹굴었다. 버터 향과 짭조름한 소금이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와사삭!
세계 최고의 별미라고 할 수 있는 없지만. 신기하게도, 멈출 수 없는 중독성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이 너무 적었다.
처음부터 그릇에 담긴 팝콘은 고작 두 줌이었는데, 기미하는 하인이 무작스럽게 한 줌이나 시식했으니까.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빈 그릇을 바라본 공작은, 잠시의 망설임 후 입을 열었다.
“한 그릇 더 주겠나?”
#
‘다행이네.’
클라우드 에그를 게걸스럽게 탐하는 메디치 공작을 보며 한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겼다!’
코시모의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먹는 공작의 얼굴을 보고는 우승을 확신했다. 공작은 오랜 목욕을 즐기고 나온 사람처럼, 노곤하게 풀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밤샌 보람이 있네.’
팝콘의 포로가 된 공작을 보니, 쌓인 피로가 절로 녹아내렸다.
팝콘은 준비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요리였다. 조리는 간편하지만, 재료가 까다로우니까.
모든 옥수수가 팝콘이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팝콘용 옥수수라고 해도, 무조건 터지는 건 아니다. 알갱이의 수분 함유량이 13-14% 사이가 되어야, 익숙한 구름 모양으로 터진다.
팝콘은 옥수수에 강한 열을 가해서 만드는 요리다. 열이 가해지면, 옥수수의 씨앗 부위에 있는 수분이 수증기로 변하면서 팽창한다. 그리고 내부의 전분이 젤리처럼 변한다.
수증기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껍질이 갈라지는 순간. 젤리가 된 전분이 쏟아져 나오고 공기에 닿으며 폭신폭신한 구름 모양이 된다.
옥수수에 수분이 부족하면 내부 압력이 부족해 알갱이가 터지지 않는다. 반대로, 수분이 너무 많으면 압력이 과해서 전분이 젤리화되기 전에 옥수수가 반으로 갈라져 버린다.
현대에서는 이미 수분량이 적절한 옥수수를 판매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팝콘으로 터지지 않는 알갱이들이 많다.
그것을, 일일이 시험하며 확인하는 작업을 했으니···.
수확한지 1주일 된 알갱이부터 3달 된 것까지. 하나하나 온도를 바꿔가며 실험해야 ?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무슨 개고생이냐’며 불평하던 코시모도, 막상 팝콘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지금도 어딘가 촉촉한 눈으로 한길을 보고 있고.
“이제 우승자 발표군.”
모든 식사를 마친 메디치 공작이 입을 열자, 코시모는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여기서 우승하면, 지금껏 몇십 년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코시모의 요리가 메디치 가문의 인정을 받게 되는 거니까. 상금도 상금이지만, 코시모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굳이 우승자가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모두 알겠지?”
잠시의 침묵 후,
“무화과나무의 코시모.”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코시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메디치 공작이 코시모와 한길을 똑바로 쳐다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자네들은 잠시 내 접견실로 오도록.”
“전하···? 원래는 여기서 우승자 발표를 하고 상금만 주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모르는 이를 접견실까지 데려가는 건···.”
옆에 있던 집사가 살짝 당황하자, 공작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 저들에게 따로 할 말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