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0화(140/325)
140. 특훈
스테이지 형식으로 진화하는 레스토랑.
이는 <베스트 고르메>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토스카나 가정식으로 단골을 확보하고, 포인트나 스탬프 제도로 무료 식사권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생각 중입니다.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릴 때마다 다시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 주려고요.”
“카페에서 나눠주는 포인트 카드 같은 거군요? 도장 열 개 모으면 커피 한 잔 무료 같은?”
“그렇게 되겠네요.”
“흐음··· 장단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한길의 계획을 듣고 소희는 잠시 턱을 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손님을 끌어모으기는 좋지만 이런 할인은, 음, 저렴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네요.”
“처음에는 접근하기 편한 레스토랑으로 만들까 합니다. 파인 다이닝만으로는 순수익이 좋지 않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오로지 파인 다이닝만 다루고 싶지만, 현실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호텔 입점 심사에서 당연히 수익도 볼 테니까. 손해를 보는 레스토랑은 제아무리 독특하고 의미 있어도 반려될 확률이 높았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만족스러운 수익을 내는 건, 스타 셰프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길은 다른 전략을 택했다.
“일반 메뉴는 2-5만 원 대의 가정식으로 하되, 1호점처럼 주기적으로 테이스팅 메뉴를 만들려고 합니다. 테이스팅 메뉴는 조금 더 다듬어진 정찬이 될 거고요.”
“평상시에는 가정식이고, 테이스팅 메뉴가 나올 때만 파인 다이닝이 되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기에 어떨지, 궁금하네요.”
소희는 요리학교와 레스토랑 근무까지, 7년 동안 이탈리아의 요리를 현지에서 경험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현지인의 생각을 물어보기에 가장 좋은 상대였고.
“괜찮을 것 같네요. 아니, 오히려 좋아요. 사실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을 제일 싫어하는 게 이탈리아 사람이니까요.”
“파인 다이닝을 싫어한다고요?”
“싫어한다기보다는 거부감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왜, 마시모 보투라 같은 천재 셰프도 초반에는 어려웠다고 하잖아요. ‘너네가 감히 신성한 이탈리아 요리를 망쳐?’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횃불 들고 달려오는 분위기였다고 하거든요.”
파인 다이닝은 셰프의 해석에 따라 재구성하는 만큼, 전통 요리와는 모습이 다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런 해석에 반발하는 경우가 많았고.
“게다가··· 셰프도, 저도 외국인이니까요.”
“역시 그것도 영향이 있겠죠?”
“우리도 그렇잖아요? 금발에 푸른 눈 요리사가 와서 된장 묻힌 스테이크를 구우면, 한국 요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외국인이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면 어쩔 수 없이 편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요리도 만들면서 재구성한 요리도 만들면, 적어도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따졌을 때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네요. 요리를 머리로 먹는 사람들은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싫어할 테니까요.”
“요리를 머리로 먹는 사람들이요?”
“맛보다는 가격표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꼭 있으니까요.”
“아, 뭐, 그건 상관없습니다.”
“왜요?”
“트집을 잡을 수 없게 완벽한 요리를 만들면 되니까요.”
“뭐··· 그렇긴 하죠?”
그 후로 사흘.
한길과 소희는 레스토랑으로 출근하는 대신, 한길의 집에서 메뉴 다듬기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시간은 대체 재료를 찾는데 보내야 했다. 수입이 가능한 재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재료도 있었으니까.
토스카나의 카볼로 네로 양배추가 그랬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업체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부재료인 채소를 몇십만 원 들여 수입해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다른 재료로 최대한 유사한 맛을 내는 실험을 해야 했다. 같은 메뉴를 수십번 반복해 만들면서.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흘간, 한길은 새삼 소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재능이 엄청나네.’
레시피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연에서 난 재료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이 나오지 않으니까.
돼지고기도 돼지마다 지방 분포도가 다르고 살코기의 탄력이 다르다. 과일도 사과마다 똑같은 당도를 가진 게 아니며, 양파도 수분이 많은 양파, 매운맛이 강한 양파가 있다.
요리사는 주어진 레시피를 따르되, 각 재료의 특성에 따라 조리법을 세세하게 조정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손으로 만져보며. 오감을 사용해서 재료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소희의 실력은 놀라웠다. 세포 단위로 재료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뿐 아니라, 멀티태스킹 능력도 뛰어났다. 동시에 다섯 개의 요리를 만들면서 실수 하나 없었다.
“아, 이번에 만니 올리브유도 구할 수 있었어요. 할인가에 한 달에 30병, 정기 납품 받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밤을 새며 메뉴를 다듬으면서. 재료 납품처도 알아보고 있었다. 최셰프에 버금갈 정도로 수월하게.
이탈리아 요리 경력 때문에 급하게 뽑은 셰프였지만, 어느 모로 보나 훌륭했다.
“괴물이네요.”
“네?”
“아니, 대체 납품처는 언제 알아본 겁니까?”
“이건 비밀병기가 있어서요.”
소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사실 재료는 최셰프로부터 받은 리스트 덕분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말할 타이밍을 놓쳤었는데, 한길이 ‘비밀병기가 뭔지’를 물으면, 이 기회에 최셰프의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을 참이었다.
하지만 한길의 질문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 비밀 병기, 얼마나 쓸만한가요?”
“네? 쓸 만···하다니요?”
“3월에 만든 페코리노 치즈도 구할 수 있는지 해서요. 페코리노 마졸리노라고 불리던데···.”
소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후우··· 괴물이 누군데.”
“뭐라고요?”
“아뇨. 한 번···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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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작되었군요···.”
“정말 미치고 팔딱 뛰겠어요. 시키는데 안 할 수는 없고, 해오면 또 ‘이게 되네?’ 하면서 더한 걸 시키고.”
“그냥 마음을 비워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아, 명상도 의외로 도움이 되더라고요.”
“명상이요?”
오랜만에 레스토랑으로 출근하자, 홀에서 은밀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얘기 중이신가요?”
한길이 나타나자, 목소리의 주인공인 최셰프와 소희가 벌떡 일어섰다.
“아, 셰프! 아니, 그, 오늘부터 주방 특훈이니까 열심히 하시라고요.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셰프, 고생하세요!”
“네, 최셰프님도여.”
최셰프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났고, 홀에 덩그러니 남겨진 소희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두 분이 생각보다 친해 보이네요? 얘기할 기회도 거의 없었을 텐데.”
“헤드 셰프는 저희 둘 뿐이니까요. 서로의 고충에 대한 얘기도 하고, 팁도 나누고 그런 거죠.”
“고충이라면 저에게도 알려주셔도 됩니다.”
“그, 그럼요. 그보다, 셰프! 이거요!”
소희는 서둘러 봉지 하나를 내밀고 그 안에서 동그란 빵 한 덩이를 꺼냈다.
“토스카나 빵의 새로운 샘플이에요. 이번에는 일부러 하루 지나서 굳은 거로 가져와 봤어요. 한번 맛보시겠어요?”
토스카나 빵은 작은 빵집에서 납품받기로 했다. 레스토랑용으로 특별히 소금 없이 만들어준 빵이었다.
“어떤가요?”
“흠···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원래는 나무 장작 오븐에 넣어서 약간의 훈향이 나야 하는데···”
소희의 얼굴에 그늘이 지자, 한길이 서둘러 덧붙였다.
“물론, 그걸 요구할 생각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나무 장작을 사용하는 오븐은 없을 테니까요.”
“나무 장작 오븐의 훈향이 나는 빵은 이탈리아에서도 구하기 어렵다고요···”
“그래서 이것도 충분히 좋은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요. 그럼, 가서 준비하세요.”
어제부로 2호점 주방 공사가 끝났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2호점에서 일할 요리사들을 모아서 메뉴 특훈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분명 준비할 게 많을 텐데···
“무슨 할 말 있으신가요?”
소희는 2층 주방으로 가는 대신, 한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그··· 여기 말고 사무실 안에서 말하면 안 될까요?”
“뭔데요?”
“개인··· 면담이요.”
머뭇머뭇하는 소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무슨 일이죠?”
“그, 별 건 아니고요. 아시겠지만··· 제가 헤드 셰프 경험은 처음이라서요.”
“아···”
한길은 최대한 이해심 가득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요리하는 것과 주방을 지휘하는 건 다르다. 소희는 요리에 재능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맡은 헤드 셰프 자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길 역시 그랬으니까.
“그냥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 유셰프라면 잘 할 테니 긴장하지 마시고요.”
“긴장이 아니라, 그, 의견을 구하고 싶어서요.”
“의견이요?”
“사람은 자기가 배운 대로 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배운 곳이··· 조금··· 업계에서도 엄격하기로 소문난 곳이라서··· 한번 들어봐 주실 수 있을까 해서···”
“들어보다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셰프가 주방 요리사라고 가정하고, 파스타를 덜 익혀서 왔다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저한테 말을 걸어주세요.”
“역할극··· 같은 건가요?”
뜬금없는 부탁에 한길이 당황하자, 소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얼굴뿐 아니라 귀까지.
요컨대, 헤드 셰프역을 미리 리허설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소희가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바람에 한길은 서둘러 웃음을 삼켰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냥 주방 요리사 역을 해주세요.”
“음··· 셰프, 파스타 나왔습니다. 이렇게요?”
한길이 대사를 읊자, 소희가 갑자기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소희는, 가상의 파스타를 들어 올리고 면발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딴 걸 만들고 스스로를 요리사라고 부르는 건가? 이런 실력으로 셰프가 되겠다고?”
“···.”
“··· 너무 과한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그래도 X발이나 그런 욕설은 안 했는데···.”
한길은 당황하다 못해 그대로 얼어붙었다.
소희는 인상이 차가운 편이었지만,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너무 찰진 욕설이 나오는 게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묘하게 충격적이었다.
“유셰프. 욕설은 웬만하면 하지 맙시다.”
“그래서 안 했는데요?”
“인격 모독도 금지고요.”
“아, 이 정도도 인격 모독으로 여겨질 수 있는 거군요. 음, 한 번만 다시 해볼게요.”
그리고 두 번째 시도.
“셰프, 파스타입니다.”
“이건 사람이 삼키라고 만든 음식인가?”
“···.”
“이것도 과해요? 인격 모독은 아닌데···”
“지금까지 대체 어떤 환경에서 일해 온 겁니까?”
소희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요리 학교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말밖에 들은 적이 없어서··· 이런 말에 발끈하면 나약하다고 하고··· 그래서 상담해 달라는 거였는데···”
“유셰프.”
“네.”
“그냥 말을 아끼도록 하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오라’는 한마디만 하세요.”
“그래서 군기가 잡힐까요?”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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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점 주방에 설 요리사는 총 열두 명이었다.
그 중 일곱 명은 1호점에서 넘어온 요리사들이고, 남은 다섯 명은 새로 뽑은 이들이었다.
“오늘부터 고르메 키친 2호점의 헤드셰프를 맡게 된 유소희 셰프다.”
“유셰프라고 부르도록.”
소희는 한눈에 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긴장할수록 눈이 길게 찢어졌는데, 지금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모두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군기’ 얘기를 왜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소희는 나이도 어렸는데, 심지어 동안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열두 명의 요리사들 앞에 서 있으니, 이 중 가장 막내처럼 보였다.
“지금 나눠주는 종이에는 우리가 앞으로 만들 메뉴와 레시피가 적혀 있다. 30분 시간을 줄 테니 다들 정독해보고 질문이 있으면 물어보도록.”
소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지만, 지시를 내리는 게 어색해 보였다.
“우선은 네 개 스테이션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안티파스토에 두 명, 프리모 여섯 명, 세콘도 세 명, 돌체에 한 명.”
이탈리안 다이닝은 기본적으로 네 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채인 안티파스토(antipasto)로 시작해서 첫 번째 메인인 프리모(primo)에는 파스타나 리소토가 나온다. 두 번째 메인인 세콘도(secondo)에는 육류나 해산물이 나오고, 마지막 돌체(dolce)는 디저트다.
정찬에는 그 외에도 식전 요리나 샐러드, 치즈 등의 코스가 더해지지만, 일단 지금은 네 개 코스만 다루기로 했다.
“앞으로 1주일간 모든 메뉴를 만들어본 후, 각자의 실력을 토대로 스테이션 배정한다. 알겠나?”
“예스, 셰프.”
“오늘은 리볼리타와 피치 알레 브리촐레(pici alle briciole)를 먼저 만든다. 파스타는 모두 수제로 만들고, 점심 저녁 서비스 직전에 신선하게 만들어 사용할 예정이다.”
소희의 말에 요리사들의 반응이 갈렸다.
“손으로···? 하루에 두 번···?”
의문이 담긴 얼굴로 되묻는 이들은 새로 온 요리사들이었고,
“역시 옮기길 잘했어!”
“해방이다!”
환호성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기존의 1호점 요리사들이었다.
“가장 먼저 피치 파스타를 만들어 볼 테니 잘 보도록.”
소희는 첫 번째 메뉴의 시범을 직접 보여주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든 후에는 15분간 둬서 수분이 적당히 날아가야 면발을 뽑기 좋고··· 면을 삶을 때 소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마늘은 딱 이 색깔, 금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보고··· 소금간 대신 면수를 약간 넣어주고···”
생각보다 요리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정확히 포인트만 알려주면서 참고해야 할 시각적, 후각적 팁도 알려주었으니까.
피치 알레 브리촐레는 간단한 요리였다.
면을 직접 뽑는 건 손이 많이 갔지만, 올리브유에 마늘과 빵가루, 안초비만 넣으면 된다.
지나치게 심플한 요리에 의구심을 가진 요리사들은, 소희가 만든 완성품을 맛보자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씹는 쾌감이 있는 쫀득한 면발. 그 면발에는 마늘과 안초비의 감칠 맛이 제대로 입혀져 있었다, 고소한 빵가루는 맛과 식감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고.
담백하지만, 동시에 풍부한 맛이었다. 고작 여섯 가지 재료로 이런 맛이 나온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바로 시작한다. 완성된 요리는 패스로 들고 와서 검사를 받도록. 통과한 사람은 다음 메뉴 훈련이 시작될 때까지 휴게실에서 쉬고 있어도 된다.”
소희가 지시를 내려지자마자, 요리사들은 후다닥 각자의 스테이션으로 가서 조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소희는 매의 눈으로 요리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살폈다.
‘아직은 나쁘지는 않은데···’
한길은 처음에 소희를 소개해준 이후로는 조용히, 이 자리에 없는 듯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는 상태에서 요리사들도, 소희도, 어떻게 행동하는지 파악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셰프, 완성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요리를 완성한 이는, 새로 고용한 요리사였다. 면접을 볼 때도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치던, 유난히 의욕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름이 강훈이었나?
그는 가장 빨리 완성했다는 사실을 자랑이라도 하듯, 뽐내는 자태로 패스로 향했다.
하지만 강훈의 파스타를 맛본 소희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위험한데?’
저건 군기를 잡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분노를 느끼는 얼굴이었다.
“지금···”
“유셰프.”
때맞춰 한길이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자, 잠시 뒤집어져 있던 소희의 눈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 다시!”
“이유가 뭔가요?”
“간이 안 맞아.”
강훈은 그 이상 반박하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다시!”
“다시!”
“다시!”
한 시간여가 지나도, 합격을 받은 요리사는 없었다. 첫 번째로 통과한 이가 나온 건, 두 시간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들어가서 쉬었다가 나중에 부르면 다시 오도록.”
“형들, 봤어? 분발하라고!”
“그것도 다 운이지. 잘난척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들어가!”
첫 번째 합격자는 1호점에서 온 김경우였다. 경우 이후로도 줄줄이 합격자가 나왔고.
마지막까지 남은 세 명은 모두 신입 요리사였다. 그들이 끝까지 합격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본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시.”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문제?”
졸지에 꼴찌 중 한 명이 된 강훈이 불평을 터트리자, 소희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간을 제대로 봤나?”
“당연히 봤죠. 설마 간도 안 보고 요리를 내겠습니까?”
강훈의 말끝에는 기분 나쁜 코웃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소희는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패스를 벗어나 시범 요리를 만들 때 사용했던 스테이션으로 향한 소희는, 냄비에서 면수 한 국자를 떠서 강훈에게 건네주었다. 그제야 강훈의 얼굴에 깨달음이 왔다.
그는 팬에 올린 파스타만 간을 보고, 면수의 간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합격을 받은 이들은 모두 소희의 냄비에 들러 면수 맛을 보고 소금간을 조절했지만, 남아있는 이들은 자신의 요리에만 몰두하느라 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도 못 채고 있던 것이었다.
“피치 파스타는 면이 두꺼워서 끓일 때 소금간을 더 진하게 한다고 말했을 텐데. 바닷물 정도의 농도로. 이 정도 농도로 맞춰.”
“하지만 전에 있던 레스토랑에서는···.”
“여긴 그 레스토랑도 아니고, 이 메뉴는 전혀 다른 메뉴니까.”
강훈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 리볼리타를 만들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콩이 뭉개졌어.”
“다시! 채소 크기가 너무 달라.”
소희는 오전에 자신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보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요리일수록 더 정갈해 보이도록 신경써야 하니까.”
리볼리타의 기원은 남은 재료를 재활용하는 요리이지만, 레스토랑에서 나온 요리가 재활용된 요리로 보여서는 안 된다. 소박한 요리일수록 더욱 정갈하게,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소희의 설명을 듣고도, 강훈이 조용히 코웃음을 치는 게 보였다.
‘저건 싹수가 노란데?’
아직 어색함은 있었지만, 소희의 설명은 한길이나 최셰프보다도 친절한 편이었다. 저들이 저렇게 불만을 표출하는 건, 소희의 행동보다는 그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였다.
“저녁 휴식하고 재개한다. 한 시간 후에 다시 모이도록.”
요리사들이 우르르 주방 밖으로 나가자, 소희의 얼굴 근육이 풀어지면서 덕지덕지 묻어 있는 피로가 그대로 보였다.
“셰프, 전 밖에서 커피 좀 사 올게요. 한 시간 내로는 돌아올 거예요.”
“그렇게 하세요.”
한길은 딱히 위로도 하지 않았다. 지금껏 계속 지켜보기만 할 뿐, 딱히 나서지도 않았고.
차갑게 들릴지는 몰라도. 헤드 셰프 자리를 짊어지려면 이 정도 난관은 소희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녀 셰프라고 좋아했는데···”
사무실로 향하는 도중, 휴게실 문틈으로 몇몇 요리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한길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익숙한 목소리.
1호점 요리사들이었다.
“겉모습만 그렇고 내용물은 우리 셰프랑 똑같지 않냐?”
“어떤 점이?”
“뭔가 기계 같은 거? 눈에 카메라라도 장착된 거 아냐? 별의별 걸 다 잡아내잖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는 것도 놀라운데 두 명이나 있다는 게 말이 돼?”
“사람이 아니니까. 왜 그, 터미네이터도 남자 모델, 여자 모델이 있잖아?”
“터미네이터? 진짜 그러고 보니 조금 닮은 것 같은데?”
평소와 같은 바보스러운 장난을 주고받는 소리에 한길은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러고 보니 유셰프가 제대로 일하는 모습을 다른 요리사들은 본 적이 없긴 하네.’
시범 요리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소희의 장점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제대로 활약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신뢰도가 높아질 텐데···
괜히 생각이 복잡해져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실력 없는 것들이 꼬투리만 잡잖아?”
“채소가 똑같은 크기인 게 그리 중요하면 기계를 쓰지, 왜 요리사를 쓰냐?”
“그리고 메뉴도 좀 실망스럽지 않냐? 가정주부들도 만들 수 있는 요리잖아? 힘 빠지게.”
“왜 그런 사람이 헤드 셰프지? 솔직히 나이도 어리잖아?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혹시···”
“혹시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셰, 셰프!”
한길이 갑자기 등장하자, 험담하던 요리사 두 명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까부터 거슬리게 행동하던 강훈과 그 옆자리에 있던 요리사였다.
치졸한 험담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심지어 레스토랑 바로 인근에서, 요리사 의상을 입고 험담을 하다니.
“헤드 셰프에게 불만이 있던 것 같던데.”
“아, 아닙니다.”
“내 메뉴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고.”
“그,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손님들에게 그런 사실을 광고하려는 것 같고.”
“···.”
두 명의 요리사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땅만 보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네?”
“실력으로 대결하라고, 유셰프랑, 원하는 대로 복잡한 요리로 말이지.”
물론 이 둘은 계속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인성이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손님이 지나가는 통로에서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니까.
하지만 그만두기 전에, 이들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