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1화(141/325)
141. 대결
“유셰프, 잠시 얘기 가능한가요?”
“···네.”
“그러면 사무실로 가시죠.”
소희가 레스토랑으로 돌아오자, 한길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소희는 사무실로 향하는 내내 한길의 눈치를 살폈다. 질문하고 싶었지만, 이물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목이 꽉꽉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길이 자리에 앉은 후에도, 소희는 의자 앞에 쭈뼛쭈뼛 서 있었다.
“오늘··· 어땠나요?”
겨우 말을 끄집어내자, 한길이 소희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소는 없다.
“듣고 싶은 말을 해 드릴까요, 아니면 솔직히 말할까요?”
“솔직하게요.”
“전체적인 진행은 나쁘지 않았지만, 유셰프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한길의 판결을 듣고 소희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침에 시작할 때만 해도 잘해보자며 의욕을 불태웠었다. 하지만,
– 설마 간도 안 보고 요리를 내겠습니까?
요리사의 말끝에 섞인 코웃음이 귀를 찔렀다.
– 별것도 아닌 거로 트집 잡네.
들으라는 듯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그녀의 몸이 반사적으로 굳어 버렸다. 묻어뒀던 기억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금은 소희가 헤드 셰프고, 저 요리사는 소희 밑에서 일하는 요리사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지금껏 경험해온 선배들과 겹쳐 보였다.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손발이 무거워졌다.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아니면 처음부터 반말해서 그런가?’
우습게 보이고 싶지 않아 처음부터 말을 놓았는데, 그게 신경 쓰였다. 갑자기 요리가 아닌, 요리사들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다.
– 하지만 전에 있던 레스토랑에서는···.
– 여긴 그 레스토랑도 아니고, 이 메뉴는 전혀 다른 메뉴니까.
옳은 말을 하는데도, 왠지 해서는 안 되는 말 같았다.
– 이런 요리일수록 더 정갈해 보이도록 신경 써야 하니까.
설명을 해도, 궁색한 변명처럼 보였다. 갑자기 산소가 옅어진 것처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는데, 한길의 눈에 자신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소희는 한길의 입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예전 상사들에게 들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야지. 사회생활도 실력이야.
– 주방에서는 요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워크이니까.
– 쟤들도 심하긴 하지만, 너한테만 그러는 데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레스토랑이었지만, 소희는 이곳이 좋았다.
바보 같지만 소란스러운 요리사들도. 그 뒤를 수습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슬아도, 엄격해 보이지만, 남몰래 뒤에서 챙겨주는 최셰프도. 신기하게 말이 잘 통하는 재료 덕후인 한길도.
하지만 자신이 들어온 순간, 삐그덕 거린다. 그렇다면, 정말 소희가 문제인 거다.
“제가 헤드 셰프로는 부족한 모양입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
“아, 사람들과 잘 지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네?”
“전 사람 좋고 무능력한 셰프보다, 깐깐해도 능력 있는 셰프가 좋으니까요.”
“하지만 여기는 왠지 가족 같은 분위기라···”
“멋대로 친해진 거지, 가족같이 지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저래 봬도, 다들 실력은 확실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계속 데리고 있지도 않았고요.”
“···.”
“주방이 차질없이 굴러간다면, 사이가 나빠도 상관없습니다.”
일정한 음의 목소리가, 종일 머릿속에 울리고 있던 잡음을 밀어냈다,
“제가 유셰프를 헤드 셰프로 고용한 건, 그만한 실력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부담된다면, 그것도 이해합니다. 원하시면 헤드 셰프에서 물러나고 일반 요리사로 주방에 합류해도 됩니다. 단, 그럴 경우 미리 말씀해 주세요. 일정을 다시 조율해야 하니까요. ”
얼핏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차가운 말이었다. 철저하게 이그제큐티브 셰프가 헤드 셰프에게 하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한길의 말을 듣고 소희의 머릿속은 더욱 맑게 개어왔다.
이건 소희에게 있어 일생의 기회였다.
이 나이에 헤드 셰프가 되는 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실력만으로 인정기를 원했었고, 한길은 오로지 실력만 평가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만두실 겁니까?”
“잘리기 전에는 안 나갈 겁니다.”
“다행이네요. 이탈리아 경력을 갖춘 헤드 셰프를 구하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지난 사흘간 나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식으로 말하니 괜히 서운했다.
이상하게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소희는 저도 모르게 퉁명한 말투로 따지듯이 물었다.
“할 말은 그게 다예요?”
“아, 본론을 못 꺼냈네요. 사실은 양해를 바랄 게 있다고 해야 하나, 부탁한다고 해야 하나···”
“부탁이요?”
“제가 멋대로 대결 일정을 잡아버렸거든요.”
“대결이라니요?”
“아까부터 딴지를 걸어온 강훈 요리사와 허민혁 요리사 말입니다. 그렇게 뒤에서 떠들 거면 대놓고 정면승부를 하라는 말을 꺼내버렸습니다. 응해 주실 거죠?”
헤드 셰프와 라인 쿡의 요리 대결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당연하죠. 걸어온 싸움은 거절하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다행이네요. 이왕이면 이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긴 사람이 헤드 셰프가 되기로 했는데, 둘 다 제 타입은 아니거든요.”
“처음부터 이 얘기 하려고 부르신 건가요?”
“네. 왜요?”
“표정이 평소와 달라서···”
“그거야 당연히 유셰프의 의견도 묻지 않고 멋대로 대결을 잡아버렸으니 미안해서요. 괜찮다고 하시니 안심이 되네요.”
그제야 활짝 웃는 한길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
“첫날인데 고생 많았다.”
한길의 앞에는 열두 명의 요리사들이 줄 서 있었다. 종일 조용히 있던 이그제큐티브 셰프의 말에, 모두 경청하는 자세였다.
“내 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던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랑 같이 일해온 요리사들은 쌓아온 신뢰가 있지만, 처음 일하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불만을 삭여두는 주의가 아니라서, 오픈 전에 제대로 짚고 넘어가려 한다.”
갑자기 모두의 시선이 새로 온 요리사 다섯명에게 꽂혔다. 1호점 요리사들은 투덜거리기는 해도, 한길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은 없었으니 말이다.
“우선, 내가 접수한 첫 번째 불만은, 메뉴가 너무 간편하다는 거였다. 최대한 이탈리아 전통을 살리면서 주방에서 소화 가능한 메뉴를 만들려고 했는데, 기술이 부족해서 이런 메뉴를 만들었다고 오해를 하더라고.”
한길의 말에 1호점 요리사들이 창백해졌다.
“아닙니다, 셰프!”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희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불만이라니요! 다수결로 투표하시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이들은, 한길의 까다로운 요리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아직 한길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 요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나마 소수의 손님을 대상으로 한 갤러리 행사였기에 망정이지, 그 코스를 식당에서 낸다는 생각만으로 피가 씻겨 나갔다.
한길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자, 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조금 더 복잡한 메뉴도 구상했었지만, 현재 주방의 캐파로는 힘들다고 생각해서 내가 멋대로 뺐거든. 그런데 저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한 건가 싶어서.”
“···”
“강훈, 허민혁.”
“···네.”
“가정주부도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불만이라고 했었지?”
“···.”
한길이 이름을 부르자, 문제의 요리사 두 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두 번째 불만은, 헤드 셰프를 못 믿겠다는 거였지. 실력이 아닌, 모종의 이유로 유셰프를 헤드 셰프 직에 앉혔다고 말이지.”
이번에는 1호점 요리사들도 조용했다.
그들 역시 왜 소희가 헤드셰프인걸까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으니까.
한길이 직접 임명했으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넘어갔었지만, 넘어간 것과 납득하는 건 다르다.
“앞으로 불만이 있으면 바로 나에게로 와줬으면 좋겠다. 괜히 손님들이 오가는 곳에서 광고하듯이 떠들어대지 말고. 알겠나? 강훈, 허민혁.”
“···.”
“···.”
주방에는 한길의 조용한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1호점 요리사들은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1호점을 운영할 때도, 한길이 가장 중요시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주방에서 어떤 혼돈이 일어나도 손님은 몰라야 한다는 것.
그런데 손님들이 오가는 장소에서 레스토랑 험담을 하다니. 당장 해고당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한길은 처음 보는 싸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불만이 있다면, 오픈 전에 해소해 줘야지. 그래서 요리 대결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으로서 참가자는 유셰프와 강훈, 허민혁이다. 이긴 사람은 2호점의 헤드 셰프로 임명하기로 했지. 지금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또 있다면 지원해도 된다. 지원하고 싶은 사람?”
“···.”
“참가한다고 딱히 불이익은 없어. 이 레스토랑은 경력도, 나이도, 인맥도 보지 않을 예정이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올라가는 곳이니까 헤드 셰프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도 나서도 돼.”
한길은 이 기회에 못 박아두고 싶었다.
여기서는 실력이 전부라고.
문제의 요리사들을 그냥 해고하면, 소희를 감싸기 위해 해고했다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직접 전력으로 부딪히게 할 예정이었다. 소희와 대결을 해보고, 자신의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깨닫도록.
“참가자가 더 없네? 그러면 대결 메뉴를 보여주겠다. 모두 따라오도록.”
한길은 주방에 있는 하나의 스테이션에 자리를 잡고 준비물을 세팅했다.
“지금부터 만들 요리는, 내가 재해석한 누디(gnudi)다.”
누디는 이번에 토스카나에서 배워 온 요리 중 하나였다. 옷을 입지 않은, 누드 라비올리라고도 불리는 요리다.
간단하게 말하면, 치즈를 완자처럼 빚어서 살짝 삶은 후, 소스를 버무려 먹는 요리였다. 생김새는 뇨키(gnocchi)랑 비슷하지만, 뇨키는 감자로 만들고 누디는 치즈가 만들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코시모는 이 요리에 근대나 시금치도 다져 넣었지만, 한길은 오로지 리코타 치즈만 넣는 방식으로 다듬었다. 채소의 섬유질이 치즈의 섬세함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리코타 치즈는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리코타 치즈는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치즈다. 우유와 크림을 중불에서 끓여주고, 레몬즙을 넣어주면 우유가 몽글몽글 뭉친다.
체에 치즈직포를 올려두고 내용물을 부으면, 탁한 액체가 걸러지고 뭉쳐진 치즈만 남는다. 완성된 치즈 위에 적당한 무게의 물건을 올려두고 하룻밤 냉장고에 넣어두면, 물기가 빠져나가고 크리미한 치즈만 남는다.
“누디의 반죽은 심플하다.”
리코타 치즈, 파르메산 치즈, 계란 노른자, 너트맥, 그리고 소량의 밀가루를 넣어서 섞어주면 새하얀 치즈 반죽이 생긴다.
“전통 누디는 이 반죽만 사용하겠지만, 우리 메뉴에는 특별히 계란 노른자가 들어가지.”
그 말과 함께, 한길은 실리콘 얼음판을 꺼냈다. 그 안에는, 어제 미리 얼려둔 계란 노른자가 들어 있었다.
하얀 치즈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뜯어내서 동그랗게 빚어내고, 가운데를 꾹 눌러서 움푹한 구멍을 만들고 얼린 노른자를 넣는다. 그리고 다시 소량의 반죽을 덮어서 손으로 돌돌 말면, 동그란 치즈 완자가 완성된다.
“완자는 밀가루에 한 번 굴린다. 수분 제거가 중요하니 충분히 묻혀주고.”
세몰리나 밀가루가 가득 쌓여있는 쟁반에 완자를 굴려서 치즈 완자에 밀가루 옷을 입힌다.
“이대로 최소 하루, 길게는 사흘간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게 기본 누디다. 다음은 소스.”
소스는 간단하게 세이지 버터 소스를 만들었다. 올리브유를 듬뿍 두른 펜에, 세이지 허브를 넣어 연두색 물이 우러나올 때까지 저온에서 조리한다. 허브를 걷어내고, 버터를 넣어서 진득한 소스의 질감이 나올 때까지 열조리를 한다.
“완성된 누디는 살짝 삶아준다.”
삶는 용도로는, 어제 미리 만들어둔 완자를 사용했다.
완자는 냄비에 입수할 때는 바닥에 가라앉는다. 하지만 익을수록 떠올라서 수면 위에 동동 떠다닌다.
떠다니는 완자를 건져내서 소스가 있는 팬에 넣어주고. 소스를 두루 묻혀가며 열조리를 한 후, 플레이팅이다.
동글동글한 찹쌀떡 같은 덩어리들은, 노란 버터 소스를 두르고 접시 위에 올라갔다. 그 위에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주니, 하얀 눈꽃이 내려앉았다.
꿀꺽.
요리사들은 이미 요리 대결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접시 위의 누디만 노려보고 있었다.
“셰프. 맛봐도 되겠습니까?”
“맛은 당연히 봐야지. 경우, 인원수에 맞춰서 포크 좀 들고 와.”
포크가 도착하자마자, 요리사들은 앞다퉈 접시로 달려들었다. 한길에게 먼저 맛보라고 포크를 건네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놈들이니 어쩔 수 없지만.
“우와!”
“예술이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요리사들이 입을 오물거리며 감탄사를 내뱉을 때가 되어서야 한길은 맛을 보았다.
‘잘 나왔네?’
버터가 들어간 소스의 맛이 느껴졌지만, 적당히 보디감만 줄 정도였다. 세이지의 향긋함이, 버터의 느끼함만 걷어내고 고소함과 윤택한 맛만 더해주었으니까.
누디 자체는 깃털 같은 맛이었다.
완자의 겉에 묻힌 밀가루가, 종잇장처럼 얇은 만두피가 되었다.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내리는 만두피. 그 안에는 폭신한 배게 같은 리코타 치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코타 치즈는 크리미하면서도, 다른 치즈보다 산뜻하고 상쾌하다. 이빨이 완자의 가운데에 다다르면, 갑자기 눅진한 계란 노른자가 튀어나와 가벼운 치즈의 주위를 감싸 안았다.
달달함은 없지만,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가벼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요리였다.
얼핏 간단해 보여도, 까다로운 메뉴였다. 직접 만들어보면 알 터.
“대결은 내일 브레이크타임에 한다. 심사하는 사람들은 1호점의 스태프와 요리사고. 유셰프와 강훈, 허민혁은 남아서 내일 대결용 완자를 만들고 가도록. 나머지 사람들은 퇴근해도 된다.”
완자는 최소 한 시간, 냉장고 안에 넣어두어야 한다. 표면이 완전히 건조되지 않으면 무너져 내리니까.
하지만 한 시간으로는 복불복인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아, 최소 하루 전에 만들어 두는 게 좋았다.
한길은 주방을 빠져나가는 요리사들을 뒤따라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준비물은 각자의 스테이션에 보관하고.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서로의 스테이션에 다가가지는 말도록. 주방에 CCTV도 있으니까, 일도 없는데 남의 자리에서 기웃거리면 무조건 탈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