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2화(142/325)
142. 움직이게 만들어야지
“헤드 셰프 자리를 건 요리 대결?”
“떨어지면 ‘이제 주방을 떠나세요’인 거야? 우리, 언제부터 서바이벌 레스토랑이었냐?”
“서바이벌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전쟁?”
“그건 또 뭔 소린데?”
“아, 새로 온 셰프가 우리 셰프랑 같은 행성 출신이더라고.”
다음날,
소식을 들은 요리사들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개중 몇 명은, 출근한 한길을 포착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셰프! 이런 건 쉬는 날 하면 안 됩니까?”
“모처럼의 이벤튼데 관객이 없으면 할 맛 나겠냐고요. 이건 참가자에 대한 배려가 아닙니다!”
“이왕이니까 촬영하면 어떨까?”
“그러게, 너튜브 올려도 조회수 폭발할 것 같은데.”
“우리 레스토랑에서 이런 일도 한다고 말하면 아무도 안 믿더라고. 억울해 뒤지겠다니까?”
“어? 너두? 나두!”
고작 10초 사이에 평범한(?) 레스토랑 대결이 전 세계에 중계될 판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정말 해낼 거다. 이놈들이라면.
이럴 때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밑 작업은 다 끝났나 보지?”
“···.”
“···.”
“저는 아무 말도 안 꺼냈습니다, 셰프!”
“저도 듣기만 했습니다, 셰프! 방금 촬영 얘기를 한 사람은 허기현, 이승재, 박수호였습니다.”
“이 배신자들! 선배를 팔아먹냐?”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만을 얘기합니다, 선배. 악! 왜 그러세요?”
“진실을 얘기했으니까 칼을 맞아야지!!”
한길이 주의를 주었음에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몇 명이 얽혀서 헤드록을 거는 바람에 더 정신이 없어졌다.
“셰프, 외부 공개용은 아니고 내부용으로도 촬영이 안 됩니까? 하필이면 저희가 일하는 시간에 이런 재밌··· 아니, 중요한 이벤트를 열다니. 억울합니다!”
“한가한 걸 보니 1호점에 메뉴 하나 추가해도 되겠는데?”
“···.”
“···.”
“사죄드립니다, 셰프!”
“추가할 거면 방금 발언한 기현 선배의 육류 메뉴로 부탁드립니다, 셰프!”
“가보겠습니다, 셰프!”
다행히, 두 번째 협박은 먹혔다.
1호점 요리사들은 도망치듯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한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피로를 떨쳐내려 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소파 위에 처음 보는 생명체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 유셰프?”
“하아아암, 굿모닝 셰프.”
“어제 집에 안 갔습니까?”
소희였다.
아마도.
평소의 단정한 소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가 사자 갈기처럼, 중력을 거부하고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 시원하게 하품을 하는 모습은, 고전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사자와 무서울 정도로 똑 닮아 있었고.
“새행애애앵각보다 늦어져서요. 전 세헤에에수 좀 하아아아암고 올게요.”
소희는 우렁찬 하품을 세 번이나 더 한 후,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밤샘까지 할 줄이야.’
레스토랑의 CCTV는 한길의 폰에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어제 새벽 세 시까지 소희가 작업 중인 모습은 봤는데, 설마 집에 안 갈 줄 몰랐다. 반면, 대결 상대인 강훈과 허민혁은 차가 끊기기 전에 돌아갔었고.
‘저렇게 무리하다가 실수하면 어쩌려고···’
평소와 달리 흐트러진 모습에 불안해졌지만, 세수한다던 소희는 변신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오전에는 소희의 지휘 아래 어제의 메뉴를 복습하고 신메뉴를 만들었다.
“오늘 만들 메뉴는 판자넬라(panzanella)다. 하루가 지난 빵과 채소를 곁들여 먹는 샐러드다.”
판자넬라(panzanella)는 오래된 빵을 재활용하는 토스카나의 전통 샐러드다. 딱딱하게 굳은 빵을 물에 살짝 적신 후, 토마토, 오이, 양파, 바질, 파슬리 등과 함께 곁들여서 먹는 빵 샐러드다.
“양파가 너무 매워. 미리 맛보고 너무 매우면 물에 담가두고 써.”
“빵이 너무 눅눅하잖아? 드레싱의 염분이 닿으면 토마토에서도 수분이 나와. 그것도 계산했어야지.”
우려와 달리, 소희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제보다 긴장도 덜 하고 표정은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세 시가 되자, 조용히 구석에서 지켜보던 한길이 패스에 섰다.
“브레이크 타임이다.”
주방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다리던 요리 대결의 시간이다.
모두를 모아놓고 한길은 간단한 대결 규정을 설명했다.
“형식은 간단하다. 레스토랑의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한다. 1호점 직원들이 손님이고, 메뉴는 지금까지 배운 피치 파스타, 리볼리타, 누디와 판자넬라다. 경우랑 승환이는 내려가서 1호점 애들한테 주문 좀 받아오고.”
“예스, 셰프!”
“유셰프는 빨간 접시, 강훈은 파란 접시, 허민혁은 노란 접시를 사용한다. 주문 배분은 내가 하지만, 나가는 요리는 따로 점검하지 않는다. 경우랑 승환이는 다 먹은 접시도 수거해 오고, 그때 손님이 남긴 평가지도 들고 온다. 질문은?”
“없습니다.”
“그러면 자리 잡고.”
참가자 셋이 각자의 스테이션으로 이동해 세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경우와 승환이 주문 티켓을 들고 왔다.
‘녀석들, 신났네.’
주문만 봐도 1호점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메뉴별로 다 시켜보겠다는 각오가 느껴졌으니까.
“유셰프, 강훈! 각자 리볼리타 둘, 판자넬라 둘, 누디 셋, 피치 셋.”
“허민혁! 리볼리타 하나, 판자넬라 하나, 누디 둘, 피치 둘.”
한길은 적절하게 주문을 배분했고, 요리사들은 모두 행동에 나섰다.
“리볼리타 나옵니다.”
“리볼리타입니다, 셰프.”
“판자넬라입니다.”
시작은 비등비등했다. 샐러드인 판자넬라와 수프인 리볼리타는 간편한 요리이니까.
하지만 다음 메뉴, 누디로 넘어가자 차이가 확연히 나기 시작했다.
“어···? 왜 이러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허둥대는 이는, 허민혁이었다. 냄비에서 누디를 건져낼 때마다, 동그란 완자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허민혁, 뭐 하는 짓이지?”
“네?”
“지금, 치즈 곤죽이 된 물에 누디를 넣는 건가?”
“죄송합니다, 셰프.”
망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허민혁은 풀어진 치즈 반죽이 동동 떠다니는 탁한 물에 새로 만든 완자를 넣고 있었다.
“주방에서 나와.”
“죄송합니다, 셰프! 실수입니다!”
“실수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다. 나와.”
필요에 따라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은 주방에 둘 수 없다. 주방은 항상 바쁘고 긴박하게 돌아간다. 긴박한 상황일수록, 기본을 지켜야 하는 거고.
“냄비도 들고나와.”
“냄비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 치워.”
허민혁은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냄비의 내용물을 먹기 시작했다. 소금물에 둥둥 떠다니는 치즈 덩어리는 맛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한입 먹을 때마다 허민혁은 괴로운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허민혁의 주문은 남은 인원이 처리한다. 누디, 피치 하나씩 추가다.”
“예스, 셰프!”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둘만 남았다.
#
‘멍청한 놈.’
허민혁의 실수를 보며, 강훈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누디는 치즈에 밀가루를 묻힌 완자다.
그리고 치즈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녹는다.
만두피를 만들었다면 녹은 치즈를 내부에 가둬둘 수 있겠지만, 누디는 만두피가 없다.
그래서 물기 제거가 필수다. 표면을 충분히 건조하면 얇은 막이 생겨 한동안 수분 침투를 막아주니까.
강훈은 완자 하나하나를 있는 대로 쥐어짜서 물기를 철저히 제거했고, 밀가루 옷도 충분히 입혀두었다.
‘이런 걸 꼭 말로 설명해줘야 아나? 하여간, 요즘은 기본적인 머리도 안 돌아가는 놈들이 너무 많아.’
명문대 출신인 강훈은, 요리가 좋아 학벌을 포기하고 이 길로 들어섰다.
뛰어난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 요리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 관찰력도 뛰어나야 하고.
강훈은 항상 1등을 해왔고, 그건 주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방보조 한 달 만에 라인 쿡이 되었으며, 라인에 선지 고작 반년 만에 육류 담당까지 맡았다.
그래서 더욱 소희가 거슬렸다. 저렇게 어린 여자가 자신의 위에 있다니. 그것도 헤드 셰프라니. 아무리 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강훈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번개 같은 속도로 누디를 완성하고, 순식간에 피치 파스타 주문도 처리했다.
마지막 요리를 플레이팅하며 소희 쪽을 바라보니, 소희는 아직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피치 파스타 둘입니다.”
한길에게 요리를 건네주자, 싸늘한 시선이 돌아왔다.
‘날 더럽게 싫어하나 보네.’
일하다 보면 아랫사람들끼리 윗사람 욕도 적당히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아닌가?
대인배 같았으면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가 줬을 텐데. 넘어가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몰아붙이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공개적인 대결까지 준비했다. 정말 속이 좁은 인간이다.
‘실력도 없으면서.’
기껏 ‘복잡한 요리’라고 들고 온 게 누디다. 저게 뭐 그리 어렵다고. 저런 인간은 미슐랭 요리 한번 먹으면 놀라서 기겁할 테지. 요즘은 하여간, 개나 소나 레스토랑을 연다.
‘그래도 일단 참자.’
하필이면 아는 형들의 레스토랑이 풀로 차 있어 갈 곳이 없다. 자신 정도의 실력자면 누구나 불러줄 텐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거다.
몇 달만 여기서 버텨야 한다. 그러다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바로 옮기고.
“주문 모두 완료했습니다. 유셰프 주문도 도와드릴까요?”
강훈은 일부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확실히 해두고 싶었으니까.
누가 봐도 자신이 더 뛰어난데 저 여자의 편을 들어준다면 모두가 이상해할 거다.
“다 했나?”
“네, 셰프.”
“유셰프, 완성된 요리는 직접 전달하세요. 넌 나 좀 따라오고.”
한길을 따라 주방 밖으로 나가니, 테이블 하나가 세팅되어 있었다. 다 먹은 그릇을 수거해서 진열해둔 테이블이었다.
“차이가 보이나?”
“···.”
소희가 사용한 빨간 접시는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반면, 강훈의 파란 접시 위에는 남겨진 음식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가장 많이 남겨진 요리는 누디였다. 하나같이 한 입만 먹고 내려둔 모습이었다.
“대체··· 왜?”
같은 레시피를 사용했는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리 없다. 강훈의 머리에 스친 생각은 하나였다.
‘함정이다.’
빨간 접시만 다 먹어 치우라고 언질을 준 거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망신시키기 위해 더러운 수를 쓴 게 틀림없다.
“제대로 익명으로 진행한 것 맞습니까? ”
강훈은 얌전히 당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유셰프 요리만 맛있게 먹어주라고 지시를 내린 것 아닙니까? 같은 요리, 같은 레시피인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건 말도 안 되잖습니까?”
셰프가 음모를 꾸민다면, 최대한 증인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에 의혹을 심어둬야 한다. 하지만,
와그작. 와그작.
“쟤 뭔 헛소리냐?”
“셰프가 반칙을 했다고?”
“쉿! 조용! 안 들리잖아?”
“갈수록 흥미로워 지는데?”
관객인 요리사들은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이, 강훈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팝콘까지 들고 와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고.
“아무리 제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러지, 이 자리만큼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대결하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실망스럽..”
강훈은 꿋꿋하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말을 끝낼 수 없었다. 갑자기 홀로 달려온 경우가 말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셰프, 파란 접시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빨간 접시로 추가 주문 가능하냐고 묻는··· 어? 죄송합니다!”
경우는 설마 강훈이 듣고 있는지 몰랐던 모양이었다. 어색하게 말을 끊고 사과하는 게 오히려 강훈을 더욱 무안하게 만들었다.
“경우, 추가 주문은 몇 개지?”
“여덟 개요.”
“밑에 놈들한테 기다리라고 해.”
“예스, 셰프!”
한길은 다시 강훈을 주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소희를 불러서 상황을 설명했다.
“익명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유셰프가 파란 접시, 강훈이 빨간 접시를 쓰도록 하죠. 누디 4인분씩 추가 주문입니다.”
“예스, 셰프.”
강훈은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정성을 다해 누디를 완성했다. 하지만 얼마 후, 경우가 울상을 지으며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파란 접시를 들고서.
“셰프,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그냥 원하는 걸 주면 안 될까요? 저 자칫하면 맞아 죽습니다.”
“유셰프, 미안합니다. 누디 네개, 추가로 부탁드립니다.”
“예스, 셰프.”
강훈의 누디만 다시 돌아왔다.
결국 추가 주문을 소희가 처리해야 했고.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건 무슨 일인지···
“주방 불 끄고 나오죠.”
홀로 나가자, 관객이 두 배로 늘어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길이 그릇을 세기 시작했다.
“유셰프, 리볼리타 10 접시, 판자넬라 13 접시, 누디 19 접시, 피치 20 접시. 강훈은, 리볼리타 10 접시, 판자넬라 10 접시, 누디 11 접시, 피치 12 접시.”
이상했다.
유셰프의 주문 처리량이 훨씬 많았다.
자신보다 누디와 파스타 모두, 8인분 더 만들었다.
“왜 유셰프의 주문이 더 많죠?”
“추가 주문이다.”
“추가 주문은 공정하게 나눠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훈이 다시 항의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차별을 하다니,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추가 주문을 처리할 사람이 있는지 물었는데, 강훈, 너는 대답도 안 하더군.”
“그건 집중하느라··· 이름을 불러줬으면 들었을 것 아닙니까?”
“헤드 셰프가 네 비서라고 생각하나?”
“···.”
“이름을 안 불렀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 하고?”
“그건···.”
강훈은 변명을 찾아 허우적거렸지만, 한길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유셰프는 돌아온 그릇이 없네요. 강훈은 돌아온 그릇이 총 11 접시이니 평을 읽어보겠다.”
각 그릇에는 요리사들의 평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한길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낭독을 시작했다.
“옆에는 치즈가 포슬포슬하고 폭신하던데 이건 행주 짜듯 꽉꽉 짜놨네. 나한테 왜 이럼?”
“계란이 얼어서 사각거림. 계란 샤베트입니까?”
“이빨 시림. 틀니 낄 나이가 되면 다시 시도하겠음.”
‘아, 계란!’
그제야 강훈은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한길의 누디는 간단해 보여도, 사실은 까다로운 요리다.
치즈 반죽이 익는 시간은 3-4분.
하지만 치즈 반죽 안에 들어간 계란 노른자는 꽁꽁 얼어있다. 그 3-4분 사이에 노른자를 따뜻하게 녹여야 한다.
강훈은 어제저녁, 계란을 냉동고에 넣은 상태로 떠나고 오늘 아침에 꽁꽁 얼린 노른자로 완자를 만들었었다. 반면, 소희는 밤새도록 여러 실험을 하며 3분 안에 계란이 최적의 온도로 조리되도록 계산해서 준비했고.
단순히 노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 이 메뉴를 본 순간부터, 온도 차가 있음을 알았다는 뜻이니까. 통찰력이 달랐다.
허민혁이 치즈 온도를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처럼. 강훈은 계란 온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강훈, 허민혁. 두 사람은 오늘까지 수고 많았다. 어제오늘 일당은 챙겨줄 테니 유셰프에게 인적사항 전달하고 가도록.”
셰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해고 통보를 했다.
당장 직장을 잃은 것도 큰일이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요리사들의 목소리가 더 아팠다.
“유셰프님, 완전 멋있더라. 솔직히 저 두 놈이 없어도 혼자 다 처리하겠던데? 저놈들은 있으나 마나더라.”
“맛은 또 어떻고? 치즈가 완전 구름처럼 포슬포슬하더라니까? 어떻게 수분을 가둬두면서 겉만 저렇게 말리지?”
“그나저나, 역시 빌런이 있어야 보는 맛이 있어?”
“꼭 못하는 놈들이 존나 방어적이잖아. 아까 셰프가 판을 짰다고 따지고 드는데 경우가 와서, 크크, 개꿀잼! 몰래 녹화했으니까 나중에 봐봐!”
강훈에게는 첫 경험이었다.
항상 남을 비웃기만 했지, 비웃음을 받는 위치에 놓인 적은 없었으니까.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처음이지만,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쪽팔려서 고개를 푹 숙인 강훈에게, 한길이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강훈은 남은 음식이랑 실패한 음식들 다 먹고 가. 아, 한 자리에서 먹기 힘들테니 포장해 주지. 들고 가서 처리해.”
11인분의 남겨진 누디.
조리 중에 풀어질 것 같아 냄비에서 미리 건져낸 누디까지 합하니, 실패작이 무려 다섯 봉지에 달했다.
“유셰프는 식사를 못 하셨으니 밥 먹고 계속하죠.”
반면.
소희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
“파파렐레 굵기가 왜 이리 달라? 일부러 손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는 거야?”
“아닙니다, 셰프!”
“단 한 순간도 긴장 풀지 말고 제대로 해!”
“예스, 셰프!”
대결 일주일 후.
주방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소희는 더이상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그걸 나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우리 여왕님, 진짜 멋지지 않냐?”
“나한테도 소리 질러주셨으면··· 들을 때마다 짜릿해!”
“유셰프라면 지구가 정복당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추종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해고당한 두 명 대신 새로 고용한 요리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물들어 소희를 찬양했다.
‘뭐, 일만 잘하면 괜찮겠지.’
1호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어쨌든 모두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주방 요리사들의 훈련은 무사히 마쳤다. 내일이면 모든 가구가 들어오니 홀 세팅도 완료된다.
이제 오픈만 남겨둔 상황.
내부적으로 모든 준비는 마쳤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아··· 이 새끼들, 오늘도 미루는데요.”
소희는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짜증을 냈다.
“또 상공회랑 통화하신 겁니까?”
“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소희는 틈틈이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신청을 위해 이탈리아 상공회에 연락하고 있었다.
해당 인증제도는 상시 접수였다. 접수는 저번 주에 이미 했지만, 담당자는 심사 일정이 언제인지 알려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상공회면 공무원 맞죠? 분명 일하기 싫어서 내년으로 미루려는 거예요.”
“내년이요?”
“찾아보니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7월달에 시상식이 있었더라고요. 올해도 7월 시상식이면 석 달이 남았는데, 서두르면 귀찮으니까 그때까지 버티려는 게 분명해요.”
소희는 상공회가 내년으로 심사를 미루려는 속셈이라고 믿고 있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곤란하다.
애당초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를 신청하는 이유는, 호텔 입점 심사에 유리한 이력을 채우기 위함이다. 호텔 입점 심사 후에 인증을 받아서는, 의미가 없다.
“내일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해서 괴롭히려고요. 귀찮게 굴면,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을까요?”
“···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하죠. 아직 저희가 오프닝 전이라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요. 문을 열지도 않은 식당이니 진지하게 상대 안 하는 거겠죠.”
“그럴 수도 있지만··· 촉이 온다니까요? 이거, 분명 내년으로 미룰 수작이라니까요?”
소희는 한참동안 다채로운 표현을 섞어가며 투덜대더니, 한길을 보며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한길의 얼굴이 너무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셰프는 걱정 안 해요?”
“걱정합니다.”
“이렇게 계속 미루면 어쪄려고 그래요?”
소희의 질문에 한길이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 하긴요. 강제로라도 움직이게 만들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