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4화(144/325)
144. 사각지대
레스토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카키는, 영웅 대우를 받았다.
“카사장님의 숭고한 희생에 경례!”
“충성!”
요리사들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붉은 융단 카펫을 마련하여 카키가 올 때마다 입구에 레드카펫을 깔았다.
전 국민에게 굴욕 영상이 퍼지게 됐으니 한길은 미안함을 느꼈으나,
“다들 저보고 성격은 재미없다고 하던데, 이번에 제대로 보여줬으니 됐죠.”
다행히 카키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스스로 [천연기념물] 짤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닐 정도로.
카키의 라이브 방송은 총 다섯 편이 나갔다.
후속 방송에서는 카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슈가 된 영상이라 클릭했던 사람들이, 한편만 보고도 영상 안에 등장하는 요리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카키는 레스토랑의 모든 요리를 시식했다.
그중 시청자 반응이 가장 좋았던 메뉴는 피렌체의 명물, 비스테까 피오렌티나, 트리파 알라 피오렌티나(trippa alla fiorentina: 토마토소스에 졸인 피렌체식 소 위장), 그리고 람프레도토(panino con lampredotto: 소 막창)였다.
┗ 곱창 버거!! 피렌체 명물이네요! 여행 갔을 때 먹어봤는데, 국내에서도 파는 곳이 있을 줄이야!
┗ 이탈리아에서도 곱창이랑 막창을 먹음?
┗ 곱창 버거 (X) 막창 파니니 (O). 다들 곱창으로 부르시는데, 곱창은 작은창자고, 트리파랑 람프레도토는 소의 위장입니다. 람프레도토는 네 번째 위장을 사용하니 막창이라고 부르는 게 맞고, 버거도 아닙니다. 피렌체에서 현지인들만 간다는 내공 맛집 찾아다녔었는데, 그립군요.
┗ 신기한 요리가 많네요. 파스타도 못 보던 게 많고.
생소한 요리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오리고기 라구로 만든 파파르델레 알 아나트라(pappardelle all’ anatra), 인도식 난처럼 생겼지만 안에 감자와 치즈, 판체타 등이 들어간 토르텔리 알라 라스트라(tortelli alla lastra) 등등. 토스카나 사람들만 아는 특이한 요리도 모두 ‘먹어보고 싶다’는 반응을 자아냈다.
그리고.
의외로, 레스토랑 스텝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스텝들의 휴게공간에는 언젠가부터 이상한 순위표가 걸렸다. 너튜브 댓글에 멘션 된 인물의 순위였다.
랭킹 3위는 데니였다.
┗ 오늘은 의상이 얌전하네?
┗ 저게 얌전하다고?
┗ 1편의 빨간 슈트 깔맞춤에 비한다면야
┗ 컨셉이겠지? 설마 일상생활에서 저렇게 입고 다닐 리가···
댓글을 본 데니는 더욱 불타올랐다.
데니는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한길에게 ‘쇼핑 휴가’를 요청했다. 레스토랑 홀 직원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는다. 데니는 유일한 소믈리에의 특권으로 자유 의상을 허가했지만···
“설마 해서 말해두는데, 형광색이나 무지개색, 반짝이는 옷은 안돼.”
“반짝이는 건, 디스코 라이트처럼 반짝이는 거 말하는 거죠? 새틴이 아니라.”
“그게 뭔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난한 의상 세 벌 정도는 탈의실에 항상 두고 있고.”
랭킹 공동 2위는 소희와 슬아였다.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외모 덕이었다.
“셰프가 모델 같다는 소리 들어서 뭐가 좋은데?”
소희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그리고 슬아는 찰랑거리던 긴 생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났다.
“오! 슬아! 갑자기 웬 단발이냐? 실연?”
“뭐래?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어쩌냐, 나이 들어 보이는데?”
“정말요?”
요리사들의 놀림에, 슬아는 오히려 반색했다.
“다행이다! 다들 저보고 연습생 같다고 하잖아요! 이 나이에 연습생이 뭐야, 연습생이!”
“남들은 동안 소리 듣고 싶어서 난린데. 배가 불렀네, 불렀어.”
“어려 보이면 손해죠! 홀을 책임지는 사람이 연습생 같으면 신뢰하겠어요?”
인기투표 랭킹 1위는, 역시 한길이었다.
너튜버들은 일전에 한길이 출연했던 방송분과 과거 업적을 모두 발굴하여 별도의 영상을 만들었다.
버거 하나로 카키를 조련한 골목식당 주인. 카키의 투자를 받아 오픈한 첫 레스토랑의 대성공. 창의력 넘치는 요리로 국내 재벌인 한대훈뿐 아니라 해외 재벌인 페이튼까지 사로잡고, 심지어 한국인 셰프 최초로 엔아이 타임스에 소개된 천재.
┗ 카키 완전 로또 맞았네?
┗ 로또 맞은 건 이한길이지. 카키 안 만났으면 지금도 골목식당에 있을 거 아냐.
┗ 셰프 교육도 안 받았다던데, 이 정도면 사기캐 아님?
┗ 그런데 이 마스크로 왜 방송에는 안 나올까?
고르메 키친 1호점 손님 중에는, 셰프와의 만남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무수한 사진과 사인, 악수 요청에 한길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이 정도 반응이면 오픈 장난 아니겠는데?”
“내 친구들이 계속 링크 보내주는데, 이거 우리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놀라더라.”
“나도! 우리 완전 대세 아냐? 대한민국에서 레스토랑이 이렇게 이슈된 적이 있었나?”
모두가 들떠 있었다.
유일하게 얼굴이 그늘진 건 한길과 소희, 그리고 슬아였다.
슬아는 1호점의 카키 효과의 지옥이 떠올랐는지, 홀 스텝 트레이닝에 박차를 가했다. 소희는 최근 며칠,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고.
“유셰프님, 왜 그리 뚱한 표정이십니까?”
“축제 분위기인 니들이 이상한 거지.”
“왜요?”
“이건 축제가 아니야, 전쟁이지.”
한길과 소희는 미팅을 할 때마다 걱정부터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오픈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그 말은, 예상치보다 손님이 몰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주방의 캐파는 그대로다.
심지어 모두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다.
그만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대가도 높고.
그럭저럭 알려진 레스토랑의 실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이 주목하는 레스토랑의 실수는, 안티를 낳는다.
“오늘은 모두 일찍 들어가.”
“이 시간에 퇴근입니까, 셰프?”
“대신! 오늘은 8시간 수면 필수다. 놀러 다니는 놈들 있으면 들키는 즉시 해고니까 다들 바로 집으로 가!”
#
오픈 당일.
주방은 런치타임부터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런치 메뉴는 보다 심플하게 구성했는데도, 몰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제야 요리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뭐냐? 세렝게티 초원에서 초식동물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그거.”
“그것보다는 메뚜기떼 같지 않냐?”
“확실히 훈련이랑 다르네··· 어깨 결려···”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요리사들은 매일같이 요리를 해왔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으니까.
레스토랑 요리사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
평소에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막상 경기 당일에 실수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수많은 관객과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소의 실력을 그대로 발휘해야 한다. 주방에는 관객과 카메라가 없지만, 홀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이 관객이자 카메라였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체력을 갉아먹는다.
“벌써 그러면 어떻게? 런치보다 디너가 세 배는 더 빡센데!”
“···.”
런치는 손님이 몰려오는 러시가 12시에서 1시. 단 한 시간이다.
점심때 찾아오는 손님들은 인근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녁 러시는 6시부터 9시간,
세 시간이나 지속된다.
지구력도 필요하다.
요리사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 실수가 주방 안에서만 일어나고 밖으로 나가지 않게 잡아내는 게 한길과 소희의 역할이고.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그 긴장감 때문인지, 한길 역시 목이 굳어와서 수시로 스트레칭을 해야 했다.
“오픈합니다!”
그리고 디너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
“테이블 1, 아페타티 하나, 판자넬라 하나, 토르텔리 무겔라니 하나, 파파르델레 알라 아나트라 하나!”
“예스, 셰프!”
“테이블 4, 리볼리타 하나, 피치 알레 브리촐레 하나, 파글리아 에 피에노 하나!”
“예스, 셰프.”
패스에서 주문을 외치는 이는 소희였다.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역할을 내주는 건 아쉬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한길은 이제는 주방이 아닌, 레스토랑 전체를 봐야 하니까.
‘역시 파스타가 압도적으로 많네.’
대부분의 주문은 전채나 샐러드, 그리고 파스타로 구성되었다. 처음 들어온 주문 스무 개 중, 메인 요리인 세콘디 주문은 단 세 개였다.
영상을 통해 최대한 홍보를 했지만, 손님들은 처음 보는 새로운 요리보다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안전한 파스타를 선택한 거다. 댓글 반응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테이블 4! 피치, 파글리아, 몇 분 남았어?”
“앞으로 1분 30초입니다.”
“파글리아, 2분입니다.”
“2분 후에 패스로!”
파스타 섹션에 주문이 몰렸지만, 그건 이미 예상했었다. 그래서 주방 인력의 절반을 파스타 스테이션에 배치해 두었고.
‘역시 인원을 늘리길 잘했네. 커뮤니케이션도 좋고.’
주방은 조용했다.
물론, 조리하는 소리와 소희의 지시, 답변하는 요리사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그 외에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소리만 나고 있었다.
모두의 집중력이 느껴졌다. 평소의 장난기는 사라지고 하나같이 진지한 눈빛으로 눈앞의 메뉴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유셰프, 전 홀에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주방 잘 부탁드려요.”
“예스, 셰프.”
소희에게 주방을 맡기고 나가자, 홀은 물론 웨이팅 바의 좌석까지 꽉 차 있었다. 텅 빈 홀만 보다가 이렇게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감회 따위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홀을 살피니, 때마침 한길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서 슬아가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리조토랑 피자가 하나도 없어요? 이탈리아 레스토랑인데?”
“네, 이번 달은 토스카나 향토요리만 판매하거든요. 리조토와 피자는 이탈리아 남부 요리라 토스카나에서는 잘 먹지 않는다고 해요.”
“향토 요리?”
“저희 레스토랑에서는 주기적으로 이탈리아 20개 주의 향토요리를 선보이거든요. 나폴리 차례가 되면 나폴리 지역의 전통 피자를 드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모처럼이니까 토스카나 요리를 시도해 보시는 게 어때요?”
“흠··· 땡기는 게 없는데.”
“피첸체 명물인 람프레도토는 어떨까요? 람프레도토는 막창이긴 하지만, 잡내 하나도 없고 전혀 질기지도 않고 쫄깃한 식감인데···”
“그럼 그걸로 주세요!”
“혹시 알레르기는 없으신가요?”
역시 슬아였다.
불평하는 손님들에게 레스토랑의 컨셉을 소개하면서, 차후 나폴리 지역을 대비한 영업까지 하고 있었다.
한편,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데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자~ 눈을 감고 그려보세요. 끝없이 펼쳐지는 푸르른 하늘! 뜨거운 이탈리아 햇살이 내리쬐는 비옥한 땅! 녹음이 짙은 포도밭에서 토스카나 농부들이 포도를 따다가 허기질 때 찾는 그 음식! 뭐겠습니까?”
“뭔데요?”
“크크, 대박! 정말 똑같아!”
데니는 무대 위 연극배우가 독백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 손은 가슴에, 다른 손은 하늘을 향해 높게 뻗으며.
다행히, 손님들은 데니의 팬인 모양이었다. 그 퍼포먼스를 즐기며 부추기고 있었으니까.
몇 없는 세콘디 주문은 슬아와 데니의 공이 클 거다. 다른 웨이터들도 친절하게 잘 응대하고 있었고.
“아, 셰프! 홀에서 뭐 하세요?”
“한번 살펴보려고.”
“역시, 셰프!”
슬아는 손님들을 의식하고 싱긋 웃었지만, 주방으로 향하는 복도에 단둘이 남게 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메인 주문이 이렇게 안 들어올지는 몰랐어요. 괜찮아요?”
“뭐가?”
“파스타 주문이 너무 많아서요.”
한길이 저도 모르게 웃자, 슬아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아니, 너도 많이 컸다 싶어서.”
“뭔 소리래. 나중에 밀어야 하는 주문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저랑 데니만이라도 푸쉬를 해볼 테니까.”
“그러면 람프레도토랑 트리파를 추천해줘. 미리 조리해둔 메뉴라 일정 판매량이 나가야 하거든.”
이 정도면 이쪽도 맡겨도 될 터.
“그럼 부탁할게, 매니저.”
“예스, 셰프!”
#
디너가 시작되고 한 시간.
톱니바퀴는 정확하게 맞물리며 돌았다.
하지만 두 시간째로 접어들자,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전에 철저히 대비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한길은 파스타에 주문이 몰릴 것을 이미 예상했었다. 그래서 그만큼 인원을 배정했었고. 하지만,
‘이것까지는 생각 못 했네.’
간과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었다.
토스카나 컨셉의 파스타는 모두 생파스타를 사용했다.
생면은 건면보다 조리 시간이 빠르다.
건면은 딱딱한 면이 다시 수분을 머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익히지만, 생면은 이미 수분이 있으니 익히기만 하면 된다.
평균 조리시간은 약 5분.
시간이 절반이나 단축된다.
그 말은, 손님들이 요리와 요리 사이에 대기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뜻했다.
파스타는 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영상을 보고 잔뜩 기대하던 손님들이 폭풍흡입까지 하니, 그 시간은 더욱 단축되었다.
손님 한 팀당 평균 50분 정도 머물다 갈 것을 예상했었는데, 30분 만에 일어서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앉았다.
회전이 예상보다 빠르다.
손님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그리고 그 주문은 파스타 섹션에 몰렸다.
“동준, 한동안 파스타 보조해!”
“영욱, 돌체 주문 없을 때는 아페리티보 서포트하고!”
소희도 그 상황을 눈치챘는지, 여유가 있는 스테이션의 인력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전장에 선 장군처럼, 적재적소에 필요한 병사를 증원하면서.
댕그랑!
그럼에도 주방에는 슬슬 소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허둥지둥 움직이는 사람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마음만 급하고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경우! 간도 제대로 못 맞춰? 파파르델레, 소금 간 더 해!”
“예스, 셰프!”
“승환! 비스테까 1분만 더 올려! 벌써 이리 대충대충 할 거야?”
“죄송합니다, 셰프!”
실수가 늘었지만, 1호점에서 온 요리사들은 금방 털어내며 수습에 나섰다.
1호점에서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체력과 지구력을 평균 이상으로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길이 갑자기 던지는 변화구에 익숙해져 있어, 순발력과 정신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새로 온 요리사 중에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이렇게 바쁜 주방에 서 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민식, 마늘 탄내 나는 거 못 맡았어? 시작할 때 약불로 하라고 했지? 몇번이나 말해!”
“죄송합니다.”
“테이블 2, 처음부터 다시!”
“에이씨.”
같은 테이블 요리는 동시에 나와야 한다. 한 명의 실수는, 연대 책임이 된다. 바쁜 와중 다시 리셋된 걸 좋아할 요리사는 없고.
옆에서 터져 나오는 짜증에 민식은 생각이 더 많아졌다.
밀린 주문이 세 개.
빨리 넘어가야 하는데, 똑같은 주문을 반복해야 한다.
파스타 섹션 모두가.
자신 때문에.
“테이블 9, 피치 알레 브리촐레 하나! 토르텔리 무겔라니 하나!”
그사이 주문은 두 개가 더 들어왔다.
피치.
민식의 담당 메뉴다.
그러면 앞으로 네 갠가?
시간은 어떻게···
손이 떨린다.
다리도 떨린다.
두 시간 내내 팬을 들고 흔들었으니 근육 경련이 온 거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사이 또 주문이 두 개가 더 쌓일 테고··· 그러면 여섯 개···
흐트러진 집중력은, 또 다른 실수를 불렀다.
“민식! 비린내 나는 거 못 맡아? 안초비 얼마나 넣은 거야? 테이블 2, 다시!”
“아씨, 나와!”
결국 파스타 스테이션을 담당하는 경우가 민식을 자리에서 몰아냈다. 자리를 빼앗기게 된 민식은 세상 불행을 다 떠안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민식! 이리 와!”
그리고 소희는 그를 따로 불러냈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산하며.
“불만 있어?”
“··· 아닙니다, 셰프.”
“지금 장기 자랑하러 여기 왔어? 여기가 요리 만들면 우쭈쭈하고 박수 쳐주는 곳이야?”
“아닙니다, 셰프.”
“그런데 표정이 왜 그따구야? 드라마 찍냐?”
“아닙니다, 셰프.”
“자기연민에 빠져있을 거면 나가! 요리할 거면 남고!”
“요리할 겁니다, 셰프.”
“어디서? 니 자리도 없는데!”
“다시 돌아갈 겁니다, 셰프.”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에 집중해! 못할 거면 나가고!”
“네, 셰프.”
“집중할 거야?”
“네, 셰프.”
“니 입으로 말해!”
“집중할 겁니다, 셰프.”
소희는 약속대로 욕설은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민식의 얼굴 한 뺨 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과할 정도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한길은 대신 나서야 하나 싶었지만, 민식의 초점은 돌아오고 있었다.
“형, 다음 주문은 제가 맡겠습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민식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만 봐도 한결 정확해졌다.
소희가 자리를 비운 동안 잠시 패스를 맡고 있던 한길은, 소희의 등장에 다시 지휘권을 넘겼다.
그리고 다시 물러서서 주방을 훑었다.
“테이블 7, 얼마 남았어?”
“20초면 됩니다, 셰프!”
“죄송합니다! 40초 부탁드립니다, 셰프!”
“40초 후에 패스로!”
요리사들이 시간을 맞췄다.
주방 보조들이 파스타 그릇을 세팅했다. 요리사들은 그릇에 파스타를 옮기고 패스로 향했다.
그동안 보조들은 다 쓴 팬을 치웠다. 다음 주문의 파스타를 끓는 물에 넣었다.
자리로 돌아온 요리사들은 머리 위에 있는 선반에서 새 팬을 꺼내고 불에 올렸다.
“테이블 11, 파파르델레 5분!”
“피치 4분!”
“1분만 있다가 시작해!”
“오케이!”
호흡은 좋아지고 있었다.
방금 전의 삐걱거림은 사라졌다.
여전히 모두가 힘겹게 움직이지만, 주방의 에너지는 좋다. 그런데···
‘대체 뭐지?’
이상하게 개운하지 않았다.
찝찝하다.
놓치는 게 있다.
파스타와 회전율의 상관관계를 놓쳤을 때처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위화감.
한길은 주방을 계속 훑으며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기억 속의 주방과 현재의 주방을 일일이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우가 또 다른 팬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한길은 깨달았다.
‘이런!’
이 주방에 사각지대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다다음 주문에서 주방은 완전히 멈춰 버린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직 한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