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5화(145/325)
145. 라떼는 말이야
틀린 그림의 정체는, 파스타 섹션의 선반이었다.
파스타 요리사들의 머리 위에는 선반이 있다. 그 선반에는 파스타 조리에 필요한 프라이팬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하지만 지금은 각 요리사 위에 두어 개의 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파스타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팬이 필요하니, 조만간 팬이 없어 조리를 못 하는 상태가 될 거다.
‘그러고 보니 접시도···.’
조리공간 옆에는 플레이팅에 필요한 접시를 쌓아둔다. 보통 스무 개가 넘는 접시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고작 여덟 개.
접시와 팬을 채워 넣는 건, 주방 보조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주방 뒤로 달려간 보조들은, 빈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길은 바로 설거지 구역으로 향했다.
2호점의 주방은 ‘ㄱ’자 구조다. 설거지는 작업 특성상 이물질이 튀니, 조리공간에서 분리된 구역에서 처리한다.
패스에서 보이지 않은 사각지대인 셈이다. 그곳에는 설거지 담당 두 명이 배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뭐야, 한 명 어디 갔어?”
한길의 눈에 보인 건, 공황 상태에 빠진 설거지 담당 한 명뿐이었다.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식기 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있었다.
“셰, 셰프!”
“인택이는 어디갔어?”
“그, 그게··· 도망··· 갔어요···.”
“언제?”
“그··· 방금 전은 아닌데 그렇게 오래전도 아니고···”
“일단 세척기는 놔두고 파스타 팬부터 씻고 있어!”
한길은 짧은 지시를 내리고 패스로 돌아가 소희에게 현 상황을 알렸다.
“한 명이 도망갔어요. 설거지 구역에 있을 테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쪽으로 오세요.”
“셰프가 직접 설거지를 하게요?”
“네.”
“굳이 왜··· 아니, 지금 남는 전력은 셰프밖에 없네요. 네, 알겠습니다.”
한길이 굳이 설거지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요리사를 보내도 되고, 주방 일손이 모자라면 한길이 요리해도 된다. 하지만,
‘그러면 흐름이 깨져.’
아까 몇몇 요리사들의 실수로 흐트러졌던 주방의 호흡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팀원의 구성을 바꾸면 또 한 번 흐름이 깨진다.
주방에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
한길은 이 레스토랑의 최고참 셰프. 상사가 바로 옆에서 조리하면 요리사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게 좋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괜한 실수를 유도할 수도 있고.
즉, 한길이 조리공간에 투입되는 것보다는 직접 설거지를 하는 게 큰 맥락에서 주방 흐름에 도움이 되었다.
다시 설거지 공간으로 향하자, 설거지 담당인 동진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셰프.”
그래도 다행히 손을 놀리고 있지는 않았다. 건조대에는 네 개의 팬이 새로이 올려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서둘러!”
“아, 아무리 그래도 셰프가.. 설거지를···”
한길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치마를 두르자, 동진은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한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나 설거지, 특기야. 팬은 내가 맡을 테니까 식기세척기 돌려! 일단은 파스타 그릇만 넣고!”
#
‘잘리겠지? 분명 잘릴 거야···’
설거지 담당인 동진은, 한길이 앞치마를 두르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시키는 대로 랙(rack: 식기 세척기에 사용하는 건조대)에 접시를 채워 넣고 있었지만, 손끝이 떨렸다.
‘셰프가 설거지를 하다니···’
총괄 셰프가 설거지를 하게 만들었다.
막상 사고를 친 당사자는 도망가고 없다.
지금이야 급하니 그냥 넘어갔지만, 마감하면 모든 화살은 동진에게 쏟아질 거다.
‘그 X 같은 새끼!’
속으로 도망간 설거지 담당을 욕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이해도 갔다.
자신도 할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으니까.
‘식기세척기가 있으니까 쉬울 줄 알았는데···’
업소용 세척기가 있어 좋아했던 것도 잠시.
식기세척기도 은근 손이 많이 간다.
더러운 접시를 바로 기계 안에 넣고 돌릴 수는 없다. 세척기 전용 랙에 접시를 꽂고, 강한 수압으로 접시 위의 음식물을 일차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접시 위에 있는 기름진 음식물이 기계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다른 접시까지 더럽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팬과 냄비는 일일이 손으로 씻어야 한다. 스테인리스 강 재질은,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산화되어 어두운 적갈색 얼룩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그릇의 수량이 문제였다.
2호점은 룸을 제외하고 80석.
손님 한 명이 최소 네다섯 개의 접시를 사용하고, 거기에 포크와 스푼, 물컵까지 사용한다.
테이블은 평균적으로 3~40분마다 회전되고 있었다. 두시간 반째로 접어드는 지금까지 설거지를 한 접시는 2천 개가 넘었다. 팬은 400개 이상.
물론, 레스토랑에 2천 개가 넘는 접시를 두지 않는다. 여유 분량은 두지만, 서둘러 설거지를 해서 재사용해야 한다.
‘언제 끝나지···’
설거지를 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접시 탑이 도착했다.
비좁은 공간에는 식기세척기의 열기와 세제, 살균제의 냄새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옷은 땀에 절어있고 눈은 따갑다.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고 손발이 무겁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
“앗, 뜨거!”
세척기에서 갓 나온 접시는 김이 날 정도로 뜨겁다. 손 가죽이 따끔따끔했지만, 동진은 간신히 참고 접시를 꺼내 설거지 구역 입구에 있는 선반으로 향했다.
달그락! 달그락!
아직 뜨거운 접시를 메인, 파스타, 디저트용으로 분류하여 선반에 쌓아둔다. 이러면 보조들이 달려와 필요한 접시를 가져간다.
일도 고되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미친, 왜 아직도 그릇이 이것밖에 없어! 안 보인다고 노닥거리고 있냐?”
“시발,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 해? 이래서 주방에 들어오겠어?”
틈틈이 와서 욕설을 쏟아붓는 주방보조들이었다. 처음에 나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접시와 팬이 떨어질수록, 험악해졌다.
“시발, 이건 착취 아냐? 설거지 알바 쓰면 도망갈 거 뻔하니까 우릴 쓰는 거 아니냐고! 꿈을 인질로 잡고 부려먹는 거잖아? 더러운 새끼들!”
불평하던 인택은, 결국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며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나갔다.
‘이런 일을 하러 온 게 아닌데.’
설거지 담당인 동진도, 도망간 인택도. 요리사 지망생이다. 조리전문학교를 졸업했고, 주방에 서는 게 꿈이다.
‘다른 레스토랑을 알아봐야 하나? 훈련하는 기간 동안 출근한 건 페이를 챙겨 주려나? 재수 없어서 새로 옮기는 곳에 여기 사람들이랑 아는 사람이 있으면···’
“··· 시작해!”
“네?”
“동진! 딴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
갑자기 이름을 호명 당해 고개를 들어보니, 셰프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다음은 앞접시, 파스타 접시 반반씩 넣고 돌려!”
“네, 셰프!”
레스토랑에서는 메뉴마다 사용하는 접시가 다르다. 파스타 접시는 움푹하게 파인 UFO 같은 모양이다. 메인은 납작한 네모. 앞접시는 조금 작은 크기의 동그란 접시.
동진은 지시에 따라 필요한 접시를 랙에 꽂고, 호스로 음식물을 제거하고, 랙을 밀어서 기계에 넣어 가동했다. 다 씻겨진 접시를 치우자마자 다시 지시가 내려졌다.
“다음은 메인, 디저트, 전채, 파스타 접시랑 식기! 골고루!”
“네, 셰프!”
아직 정신은 없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해지고 있었다. 머리를 비워두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셰프는 지금 해야 하는 행동, 다음으로 해야 하는 행동을 알려줬다. 따르기만 하면 된다.
‘셰프가 있으니까 와서 욕하는 사람도 없고.’
총괄 셰프와 함께 있는 건 불편했지만, 그래도 욕설이 사라진 건 다행이었다. 셰프의 앞에서 감히 욕하는 주방보조가 있을 리 없으니.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반에 그릇을 쌓아 올리던 동진은 갑자기 멈춰 섰다.
‘오늘 이런 적이 있었나?’
선반 위에는 모든 접시와 식기가 골고루 진열되어 있었다. 오늘 저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몇 접시는 놓을 곳이 없어 자리를 찾아야 하는 반면, 몇몇 접시는 아예 쌓이지 않아 욕을 먹었었는데···
욕설이 사라진 이유는, 욕설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접시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왜···?”
동진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셰프가 다가왔다.
‘혼날 차례인가?’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혼내는 모양이었다. 셰프의 표정은 엄격했지만,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혼자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흐름을 읽어. 주방은 전체가 톱니바퀴야.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고.”
“···.”
“여기가 멈추면 주방 전체가 멈춰. 지금 레스토랑에 나가는 요리 중, 이곳을 거치지 않는 요리는 없으니까. 가장 바쁘지만,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곳이야.”
“···.”
“요령 있게 해, 그릇이 들어오는 순서를 보지 말고 나가는 순서를 보고.”
‘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듣기만 하던 동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
산더미 같은 그릇이 쉴 새 없이 들어오다 보니,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대로 처리하고 있었다.
당장 필요한 파스타 접시보다는, 가장 위에 쌓여 있는 디저트 그릇을 씻고 있었고. 접시 탑 가장 밑에 깔린 전채 그릇은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여기는 주문 소리가 안 들리니까, 흐름을 알고 싶으면 선반을 봐. 선반이 비어있는 부분이 지금 당장 필요한 그릇이니까. 파스타는 다른 메뉴보다 많이 나가니까 다른 그릇의 두 배의 수량을 항상 준비해 두고. 남은 건 혼자 할 수 있겠지?”
라스트 오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머지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잘 마무리 해 둬.”
그 말과 함께 셰프는 주방을 떠났다.
#
“드디어!!!”
“미친!!! 죽겠다!!!!”
라스트 오더가 끝나면 주방은 마감한다. 하지만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건 앞으로 한 시간 후. 그동안 요리사들은 짧은 휴식을 취한다.
“그래도 안 죽고 살아남았네···”
“엄마 보고 싶다···”
“사고 안 내고 끝난 게 용하다. 오늘, 한잔 걸치러 갈 사람?”
지옥 같은 주방에서 해방된 기쁨. 무사히 하루를 끝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 몰려오는 피로감. 휴게공간에 널브러진 요리사들은, 각자의 감정을 배출하기 바빴다.
동진은 소파에 자리가 없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그런 동진을 보고,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탁 쳤다.
“막내! 너, 대단하더라?”
“뭐가요?”
“첫날부터 셰프한테 설거지를 시키다니!”
아까 동진에게 와서 소리를 질렀던 주방 보조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말에, 모든 요리사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뭐? 셰프가 설거지를 했다고? 우리 셰프가?”
“그건 또 언제 일어났다냐?”
“야, 우리 셰프 물 들어가서 망가지면 어쩌려고!”
“병신이냐, 생활 방수기능쯤은 당연히 갖추고 있지. 아니면 샤워는 어떻게 하는데?”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주방 보조는 구태여 아무도 몰랐던 상황을 모두 앞에 까발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벌써 셰프를 그렇게 부려먹다니. 신입도 대단한데?”
“우리 대신 복수해 준 거 아냐? 앞날이 기대되는구먼.”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 절반은 1호점에서부터 같이 일해왔다고 들었다. 서로 꽤 친해서 장난도 많이 쳤고.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주방에서 일하게 된 동진과는 아직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지금 하는 저 말도, 장난인지 비꼬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아 동진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기만 했다.
“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왜! 셰프 설거지 실력은 어때? 알려달라고!”
“그러게! 몸에서 손 몇 개 더 안 튀어나오디? 야! 어디가!”
동진은 야유하는 요리사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크게 숨을 들어 마시니,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면서 폐 안에 쌓여 있던 세제 가스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잘리진 않을 것 같은데··· 마감 후에 다시 부르려나?’
셰프는 화가 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것 같지는 않고··· ‘감히 셰프에게 설거지를 시킨 막내’가 되었으니 앞으로 고생길도 훤한···
“너, 여기서 뭐 하냐?”
“선배는 왜···”
“안이 하도 시끄러워서.”
말을 걸어온 이는, 김경우 선배였다.
주방에는 크게 네 개의 스테이션이 있다.
전채, 파스타, 메인, 디저트.
각 스테이션에는 그 구역을 총괄하는 수석 요리사가 있고, 그 아래에 일반 요리사가 있다. 그 아래에 주방보조, 그리고 가장 말단이 설거지 담당인 동진이다.
경우 선배는 파스타 스테이션의 수석 요리사였다. 다른 몇몇 요리사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은 편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에 처음으로 수석이 되었다고 들었다.
좌우로 몸을 크게 흔들며 스트레칭을 하는 경우를 보며, 동진은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선배, 보통 이러면 무슨 처분이 내려집니까?”
“처분?”
“오늘 실수요.”
“실수?”
동진의 질문에 경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잠시의 공백 후, 이제야 질문을 이해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설거지 조금 늦었다고 벌주면 주방이 돌아가겠냐? 귀엽네, 이놈, 크크.”
“그래도 다들··· 셰프까지 와야 했고···”
“아, 저 사람들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 셰프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너만 봐서 질투하고 있는 거니까.”
경우의 말에도 동진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잔뜩 주눅 들어서 축 처진 동진을 보며, 경우가 말을 이어갔다.
“실수에 사로잡히면 절대 주방에서 일 못 해.”
“네?”
“그 기계 같은 셰프도 가끔 실수해. 어차피 실수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거니까, 피하는 것보다 극복하는 걸 생각하라고. 몇 달 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서 잘할걸?”
격려의 말이었지만, 듣는 순간 속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억울함이었다.
동진도 요리를 공부했고, 실력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주방에 민폐를 끼친 건 미안하지만, 본심은···
“몇 달이나 더 해야 할까요··· 전 설거지를 배우러 온 게 아닌데···”
설거지만으로 자신이 평가받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자마자 부드러웠던 경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왔다.
“야, 요리가 쉽냐, 설거지가 쉽냐?”
“네?”
“파스타 만드는 게 쉬운지, 설거지 하는 게 쉬운지 묻는 거잖아.”
“··· 설거지가··· 쉽죠.”
“서비스 중, 가장 쉬운 설거지도 제대로 못 하는 놈한테, 너 같으면 요리를 맡기겠냐?”
“···”
이건 반박할 수 없었다.
“조리실력은 기본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체력,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멘탈. 체력 나가고 멘탈 나가면 배운 거 다 까먹으니까.”
“···.”
“실력 있다고 깝치다가 호되게 당한다? 경험담이니까 새겨들어.”
“경험담이요?”
경우는 갑자기 혼자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셰프한테 설거지 시킨 게 뭐가 대수라고. 나 때는 혼자 메인 스테이션 맡겠다고 깝쳤다가 사고까지 났다니까? 웰링턴을 넣고 오븐을 꺼 버린 거지, 미친놈이. 서둘러도 웰링턴은 40분이나 걸리고, 심지어 그때 테이블이 VIP 테이블이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서비스 메뉴 몇 개 나가고, 셰프가 테이블 사이드로 요리해서 시간을 벌었어.”
“···.”
“그래도 안 잘렸다니까? 그날 저녁에 최셰프님이 나 때문에 손해 본 내역을 정산해서 보여주시는데, 망쳐먹은 재료들이랑 서비스로 나간 요리 값이랑 다 합해서 50만 원 가까이 나오더라.”
“그걸··· 청구했어요?”
“아니, 나도 그럴 줄 알고 식겁했는데 보여주고 끝나더라. 알고만 있으라고.”
“왜요?”
“내 자만심 하나가 레스토랑에 얼마나 손해를 끼쳤는지 보여주려는 거겠지.”
“굳이 그걸 보여줄 필요까지 있나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후에 셰프가 한 말이 더 웃기더라. ‘그래도 100만 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50만 원 굳었네요’라면서, 크크크.”
경우가 웃는 포인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한테 경험 쌓게 해주려고 하루에 100만 원은 투자할 각오가 되어있었다는 뜻이잖아? 그런 대형사고 친 놈도 수석으로 올려줬으니까,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여기서는 투자 대비 리턴만 높으면 잘 올려주니까. 그럼 난 먼저 들어간다!”
경우는 다시 레스토랑으로 향하다가, 뒤늦게 뭐가 떠올랐는지 후다닥 달려왔다.
“너, 나랑 이 얘기 한 건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이다.”
“다른 사람들이요?”
“안에 있는 다른 요리사들. 1년 안에 ‘라떼는 말이야’ 시전하면 10만 원, 내기했거든. 말하면 죽는다!”
경우가 들어간 후. 생각을 정리한 동진도 뒤따라 휴게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닫자마자 동진은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선배님들, 오늘, 죄송했습니다!”
널브러져 누워있던 요리사들은 어리둥절했다.
“저 새끼, 누가 갈궜냐?”
“도망간 놈은 따로 있는데 왜 쟤가 머리를 숙여?”
“쉿! 뭔지 모르지만 놔둬 봐! 배꼽 인사 받아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아까 비꼬고 있다고 생각한 건, 동진의 과민반응이었다. 대다수의 요리사는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할 뿐이었다.
다시 꼿꼿하게 몸을 세운 동진은,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오늘 민폐를 끼친 선배님들 자리는 제가 청소해 두겠습니다!”
손님이 나가고 나면 주방 청소를 한다.
냉장고 선반, 바퀴, 화구 위에 있는 후드까지 깨끗하게 닦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팬이 없어서 유셰프가 나한테 소리를 질렀었지?”
“나도.”
“웃기지 마, 디저트는 접시 남아돌았잖아.”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불안감 때문에 손이 0,5초 느려졌단 말이지. 잘 부탁한다,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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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점의 오픈은 대성공이었다.
예상치보다 1 5배로 손님을 받았다는 건, 매출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설거지 담당은 한 명을 더 뽑았다. 하루 선배가 된 동진이 지시를 내렸고, 그날 이후로 설거지는 밀리는 일이 없었다.
메인 요리의 주문도 늘었다.
슬아와 데니가 홀 스텝을 대상으로 영업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이 주문량을 모두 감당하다니! 우리, 좀 대단하지 않냐?”
“우리가 못하는 게 어딨냐?”
주방은 엄청난 주문량을 소화하면서, 손님 앞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요리사들은 스스로도 뿌듯한지, 틈만 나면 자화자찬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소희와 한길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들은 잊고 있었다. 이제 겨우 토스카나 지역 하나에 적응했을 뿐이다. 새로운 지역이 열리면, 이 모든 상황을 신메뉴로 다시 반복해야 한다.
전체 회의 때 말해줬으니, 저들도 이탈리아 20개주 향토 밥상의 컨셉은 알고 있다. 지금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지.
‘아직은 말하지 말자.’
한길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희를 보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희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젓는 걸 보니,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슬아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한길을 찾았다.
“셰프, 카키 사장님 오셨는데요?”
“지금?”
“그냥 오신 건 아니고, 식사하러 오신 것 같은데···”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뇨. 문제는 아닌데··· 좋은 일인 건 맞는데··· 그냥 나와보세요. 셰프를 찾고 있으니까.”
슬아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사라졌다.
카키는 단체 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함께 온 손님들은 열 명 정도.
“아, 셰프! 오늘 촬영이 있었는데, 끝나고 제가 쏘기로 해서 손님 좀 데려왔어요.”
한길을 본 카키는, 양손을 크게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쪽은 개그맨 연호석 씨, 여기는 보이그룹 에스퍼의 강연우 씨, 이분은 가수 백소연 씨, 엠씨인 서인경 씨, 아! 그리고 이분도 아시죠? 방송인 로베르토 씨. 다들 모처럼 왔으니까 사진도 찍죠.”
카키는 ‘잘했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꼬리는 없지만, 그 모습이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인증샷을 찍고,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무언가 말을 꺼내는 걸 보니, 분명 라이브 방송도 하는 거다.
홍보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건 고마운 일이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좋은 일이긴 한데···
‘이 이상 손님을 감당할 수 있으려나?’
고마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