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7화(147/325)
147. 빨리빨리 민족
“우리 셰프, 잘한다!”
“내 속이 다 후련하네!”
숨을 참으며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던 요리사들은, 한길이 폰을 끄자마자 환호했다.
지난 몇 주간, 가장 괴로웠던 이들은 주방의 요리사들이었다.
그들은 끼니때마다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주문은 매일같이 몰아쳤고, 하루하루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손은 떨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눈도 침침했지만, 그런 상태로 실수 없이 신속하게 요리를 해야 했다.
주방을 마감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집에 갈 기력이 없어 휴게공간에서 잠들었고, 일어나면 바로 밑 작업부터 시작했다. 한길이 비교적 가까운 자신의 집을 오픈했지만, 그 거리조차 걷지 못하고 휴게실에서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그런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쉬겠다고 말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쓰러질 것 같아도, 쓰러져서는 안 된다.
그들을 대신할 사람은 없으니까.
한 명이라도 빠지면 전체 라인이 무너진다.
그들을 지탱하는 건 요리에 대한 열정. 맛에 대한 자부심. 실수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성취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돈으로 성공을 매수한 레스토랑이라는 오명.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인 타격이 더 컸다.
요리사들도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마녀사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했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공격하는 이들을 똑같이 찌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키보드 워리어는 숨어서 공격한다.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반격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스토랑을 두둔하는 순간 직원이냐고 의심받을 테고, 모든 화살은 레스토랑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조용히…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는데…
카키와 한길의 맞대응은 그동안 가슴과 혈관까지 꽉꽉 막고 있던 응어리를 단번에 풀어주었다.
“셰프, 점잔 뺄 줄 알았더니 의외로 화끈하시네요?”
“그만큼 열 받은 거지. 누구냐? 셰프한테 분노 패치 설치한 거! 잘했어!”
한길은 예상외로 대담하게 나왔다.
이미 요리 과정을 모두 공개해서 우월한 맛이 나오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그걸 믿지 않은 사람들은 팩트가 아닌 뇌피셜로 떠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팩트로 대응하겠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인증을 받아올 테니,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닥치고 기다리라… 라는 말을 한 셈이었다. 물론 표현은 그렇게 거칠지 않았지만 말이다.
“크~ 멋있다.”
“막 화나서 열 올리는 것도 아니고, 차분하게 말하니까 더 있어 보이지 않냐?”
“근데 너무 선전포고같이 들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선전포고 맞아.”
한길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나왔다. 얼굴에 걸쳐진 미소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괜찮습니까?”
“뭐가?”
“그쪽에서 계속 미루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떨어졌다는 말이 돌 것 같아서요.”
“지금 상황에서 미룰 순 없겠지.”
“그렇긴 하지만…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면 저희한테 불리하지 않을까요?”
“선택권이 있는 게 아니니까. 난이도가 올라가더라도 타이밍이 더 중요해. 우리는 지금 당장 인증이 필요한 거니까. 리스크가 있어도 어쩔 수 없어, 해볼 수밖에.”
한길은 충동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 레스토랑의 손익을 계산하며 움직였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떨어지면 어쩌지?”
“떨어지면 우리가 돈 주고 광고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건가?”
“그러면 너무 억울한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요리사들과 달리, 한길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럴 일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는 건데.”
“맞아요, 사람마다 입맛도 다르고…”
한길은 단호했다.
“우리 레스토랑이 떨어질 리 없어. 우리 주방은 흠잡을 곳이 없으니까.”
“….”
“….”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한길의 말을 곱씹고 있었으니까.
우리 레스토랑, 우리 주방은 흠잡을 곳이 없다…
“셰프, 방금 저희 칭찬해 주신 거 맞죠?”
“‘우리’가 완벽하다는 거죠?”
한길은 화를 잘 내지 않았지만, 칭찬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짧은 한마디가 더 와닿았다.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뭐를? 아, 잘하고 있다고.”
“아니, 그 뉘앙스가 아니었잖아요! 한 번만 더요! 누가 녹음기 들고 와!”
‘내가 너무 칭찬에 인색했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걸하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요리사들을 보며, 한길은 약간의 반성을 했다.
“너희들 다 잘하고 있어. 요리 실력도, 판단력도, 순발력도, 그리고 정확성이랑 근성도 다 뛰어나. 실수만 없으면 절대 우리가 떨어질 리 없어.”
“…”
“…”
요리사들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더 무안해졌다.
“실력도 없는데 너희같이 소란스러운 놈들을 데리고 있을 리가 없잖아?”
“누구냐, 셰프한테 감정 패치 설치한 놈!”
“인간이 되셨군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셰프!”
“평생 따르겠습니다, 셰프!”
“전 제 첫 번째 아이를 바치겠습니다, 셰프!”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애를 바쳐?”
참았던 말들이 뒤늦게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하아… 이래서였지.’
한길은 자신이 왜 칭찬을 안 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조용히 넘어갈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란도 또 얼마나 이어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데,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카키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카키는 이빨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씨익 웃고 있었다.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장난치고 있을 때야? 셰프가 하는 말 못 들었어? 난이도가 올라간다잖아!”
“네, 셰프!”
이 상황을 정리해 준 이는 소희였다.
“긴장했다고 실수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앞으로 단 하나의 실수도 절대 용납 못 해!”
#
카키의 방송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카키는 사과 따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난 잘못한 게 없고 숨기는 것도 없다. 탈세 혐의는 조사에 응하고 있으니 욕을 하려면 결과를 보고 욕해라‘였다.
┗ 저는 중립이었는데 뭔가 카키 태도 건방지네요. 이름값 하네.
┗ ㅇㅇ 인성이 별로인 듯
┗ 난 오히려 멋지던데?
┗ 저렇게까지 나오면 정말 찔리는 게 없는 것 아닐까?
┗ 철이 덜 든 거지.
연예인은 공인이다.
잘잘못을 떠나서 이슈가 생기면 고개를 숙이고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공손히 사과하는 게 기본이다.
규격에 맞지 않는 카키의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오히려 호감을 느끼게 된 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한편, 한길도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카키는 원래부터 그렇다 치더라도, 그 셰프가 더 놀라운데?
┗ 그러게요. 끼리끼리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 예전에 방송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점잖은 이미지였는데, 뭔가 실망…
┗ 난 오히려 불쌍하던데? 괜히 카키랑 엮여서.
┗ 그런데 그 오스피… 그게 뭐지? 그리 대단한 것임?
카키와 한길을 응원하는 사람도,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이 공통으로 거론하는 단어가 있었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는 잘 알려진 제도가 아니었다.
왜곡되고 변형된 이탈리아 요리가 많으니, 정부에서 직접 정통 요리를 인증한다. 이탈리아 정부의 요리 품질 보장 제도.
그 취지는 좋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이탈리아 음식이 변형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년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의 인증 수여식이 열렸지만, 참석하는 이들은 대개 상공회 회원이나 그들의 지인이었다.
그렇게 생소한 제도가, 하루아침에 포털을 점령했다.
1 카키 레스토랑 인증
2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3 이탈리아 정부 식당
4 진짜 이탈리아 요리
실시간 검색어를 보며 가장 놀란 이는,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의 소장이었다.
“정말 신청을 했었나?”
“그게…”
“머뭇거리지 말고 확실히 얘기해! 언제 했지?”
“저번 달부터요….”
“그런데 왜 말을 안 한 거고?”
“이미 수여식 행사 준비도 마무리되어서…”
고개를 숙이며 손을 꼼지락대는 이는, 인턴이었다.
이탈리아 상공회의소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제 상주하며 근무하는 직원은 일곱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전화 응대는 두 명의 인턴이 번갈아 가며 했고, 그 인턴 중 한 명이 보고하지 않았던 거다. 괜한 일을 만들기 싫어서.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최저임금 받는 인턴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런 행동은 시간 낭비고.
“당장 마르코 로씨 연락처 찾아서 나한테 보내!”
소장은 짜증 섞인 말투로 으르렁댔다.
마르코 로씨는 서울에 있는 5성급 호텔의 레스토랑, <일루미나티>의 총주방장이다. 상공회의소의 식음료위원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의 심사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호텔 일이 바쁘니 당장 움직이기는 어려울 거다.
“알레산드로 로마노 연락처도 넘겨!”
알레산드로 로마노는 식음료위원회의 부회장이자, 이탈리아 식재료를 수입하는 업체의 사장이다. 사장이다 보니 일정이 보다 자유롭다.
“연락처를 달라는 건 혹시…”
“당연히 심사하러 가야지!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으니까.”
“기회요?”
“전 국민이 주목하고 있잖아?”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이 인증제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이 들어올 때는 노를 저어야 한다.
돈 한 푼도 들이지 않은 공짜 홍보라면 더더욱.
“그 레스토랑에도 전화하고, 쉬는 날이 언젠지 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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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상공회의소의 홍보 담당, 이지원입니다. 이쪽은 식음료 위원회의 부회장이신 알레산드로입니다.”
일주일 후.
알레산드로는 고르메 키친에 와 있었다. 레스토랑의 시설과 조리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자료를 만들 직원 한 명도 동행했다.
“이그제큐티브 셰프, 이한길입니다. 이쪽은 헤드 셰프인 유소희입니다.”
“알레산드로입니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
“와이프가 한국인이라서요.”
악수를 한 후, 알레산드로는 눈앞의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주방장이 한국인이다.
총주방장도 한국인.
아무리 기다려도, 따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주방에 이탈리아 사람은 없나요?”
“네. 유셰프는 이탈리아의 ICIF를 졸업하고 로마의 <라 페르도>에서 3년간 근무를 한 경력이 있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남자 셰프는 여자 셰프의 이력을 나열했다.
인증 기준 중 하나.
주방장은 이탈리아에서 정식 요리 교육을 이수하거나, 이탈리아 소재 레스토랑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갖춰도 기준을 만족하는데, 여자 셰프는 두 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근무하던 레스토랑은 미슐랭 별을 받은 유명 레스토랑이었고.
서류상으로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한국인이 배워봤자 얼마나 배웠다고.‘
알레산드로는 절로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아야 했다.
소장으로부터 대충 상황은 전해 들었다. 전 국민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인증을 받겠다고 선언했다고.
그 발언은, 알레산드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기 위해 태어난 종족이라고도 불린다. 이탈리아 요리는, 민족의 자존심이다.
’하긴, 무식하면 용감하지.‘
미슐랭보다 더 받기 까다로운 게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인증이다. 그걸 모르니까 그딴 소리를 한 거지.
미슐랭은 기술로 때우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탈리아 요리는 그럴 수 없으니까.
이탈리아 요리는 전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영혼, 정신을 알아야 한다.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인에게는 절대 무리고.‘
재료를 수입하는 일이 본업인 만큼, 알레산드로는 유난히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마트부터 찾았었다.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것밖에 없다고?‘
한국은 발효음식의 나라라고 들었다.
된장, 김치가 대표 식재료라고.
그래서 이탈리아의 치즈나 와인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치즈는 400여 종이 된다. 와인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이탈리아의 대표 재료인 파스타는 350여 종이나 된다.
이탈리아의 마트에 가면 치즈는 최소 열 종류가 있다.
브랜드가 아니라 종류다.
파르메산, 페코리노, 모차렐라, 부라타…
각 종류의 브랜드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대표 음식인 파스타도 마찬가지.
길게 늘어진 선반에는 수십 종의 파스타가 마련되어 있다. 브랜드만 다른 게 아니라, 종류가 다른 파스타가.
한국 마트의 장류 코너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종류도 고작 된장, 고추장, 쌈장.
한국에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된장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간장을 뽑지 않고 담근 된장은 토장. 간장을 뽑은 후의 장은 막된장. 메주로 속성으로 담근 것은 막장. 수분이 조금 더 많은 장은 즙장, 기타 등등.
하지만 마트에서 이런 다양한 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의 종류가 더 많은, 웃지 못할 경우도 많았고.
이탈리아의 치즈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치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명품 된장이 없다. 장인이 만드는 된장도 있다고 들었는데,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 장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대다수는 커다란 식품기업에서 만드는 된장을 사용하고 있고.
’너무 달라.‘
알면 알수록 한국은 신기한 나라였다.
예를 들면 생선.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에도 고무꺽정이, 쑤기미 같은 신기한 생선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들의 이름은 제대로 불리지 않고 있었다. 모두 통틀어 ’잡어‘라고 불렸으니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같은 반죽을 써도, 모양이 다르면 파스타의 이름이 제각기 다르다.
가장 기본인 스파게티만 봐도.
그보다 조금 가느다라면 베르미첼리 (vermicelli), 또 더 가느다라면 ’천사의 머리카락‘이라고도 불리는 카펠리니 단젤로 (capellini d’angelo).
스파게티와 비슷한 두께지만 납작하게 눌린 면은 링귀니 (linguine). 마찬가지로 비슷한 두께지만 가운데 구멍이 있는, 빨대 같은 면은 부카티니 (bucatini).
리본형 파스타도, 튜브형 파스타.
길이에 따라, 크기에 따라, 표면에 찍힌 문양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각 재료의 개성을 존중해야 하니까.
그래서 알레산드로에게 생김새가 전혀 다른 생선을 통틀어 잡어라고 부르는 건, 문화 충격에 가까웠다.
’한국인에게 이탈리아 요리는 무리지.‘
민족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다.
한국인은 계산이 뛰어나고, 판단력도 빠르고, 합리적이다. 그래서 IT 강국이 되었고, 빠르게 성장했다.
아내와 결혼한 뒤에 더더욱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 빨리빨리 민족이다.
성질이 급하고, 무엇이든 당장 눈앞에 있는 결과를 중요시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의 대명사는 슬로우 푸드다. 슬로우 푸드 무브먼트의 탄생지가 이탈리아니까.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각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존중하고, 각 지역에서 먹던 전통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당장 돈이 안 돼도, 조금 번거로워도, 지금은 편한 방법이 있어도. 옛 방식을 고집하고 그 맛을 계승해 나간다.
음식에는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이탈리아에서는 바로 옆 마을만 가도 요리가 달라진다. 그런 수천, 수만 가지의 음식이 모여서 이탈리아 요리인 거다.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다.
‘서둘러 처리하고 가자.’
마음을 정리한 알레산드로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휘리릭 넘겼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인증에 필요한 기준을 정리한 도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재료죠. DOP 재료는 뭐가 있죠?”
DOP(denominazion d’origine protetta: 원산지 보호 인증)는 유럽 연합의 품질 보증 제도다. 그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재료에 붙는 마크다.
전통 재료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모조품이 많아져서, 모조품과 진품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DOP가 가장 중요한 재료는…
“일단 올리브유부터.”
“그러면 주방으로 가시죠.”
알레산드로의 말에, 남자 셰프는 자신을 주방으로 안내하고 올리브유 병을 꺼냈다.
“종류가 이것밖에 없어요?“
알레산드로의 말에 여자 셰프가 눈썹을 치켜 떴지만, 남자 셰프가 그녀의 어깨를 잡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리군.’
젊은 사람 특유의 치기 어린 느낌이 있었다.
어차피 주방에만 있을 거면 상관없지만, 레스토랑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하는 모양이었고.
”이탈리아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올리브유인데, 다섯 종류밖에 없다니.“
이번에는 코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것도 모르면서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를 받겠다고 호언장담해? 이탈리아 식재료의 가장 기본의 기본인 올리브유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런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남자 셰프는 신사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희 레스토랑은 이탈리아 20개 주 밥상을 컨셉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즌마다 이탈리아의 다양한 지역 요리를 선보이고 있죠. 이번 시즌은 토스카나 주이기 때문에, 당장 꺼내놓은 올리브유는 모두 토스카나산입니다.“
눈앞의 올리브유를 대충 훑어보니…
과연, 토스카나의 DOP 제품들이었다.
하지만,
”이건 토스카나 산이 아닌데?“
리구리아 산 올리브유가 하나 섞여 있었다.
알레산드로는 굳이 라벨의 원산지 정보를 보지 않아도 그걸 알 수 있었고.
그런데 남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토스카나는 프란토이오(frantoio)나 모라이오로 (moraiolo)종의 올리브를 주로 사용하는데, 그래서인지 매캐하고 허브 같은 향이 짙어요. 요리의 마무리에 살짝 뿌리면 올리브 향을 입힐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향이 강한 만큼 섬세한 재료 맛을 덮어버립니다. 그런 재료에 한해서 리구리아의 타지아스카(taggiasca) 종으로 만든 올리브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제품은 향이 옅고 버터에 가까울 정도의 부드러운 질감만 더해주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고요.“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한국인의 특기인 암기력이다.
남자는 어디선가 책에서 본 지식을 앵무새처럼 잘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는, 재료는, 책을 외운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물론, 레스토랑에서 이 올리브유만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재료를 보셔야 한다면 이쪽으로 오시죠.”
남자가 안내한 곳은 팬트리.
작은 재료 창고다.
그 안에는 한눈에 봐도 서른 병이 넘는 올리브유가 진열되어 있었다.
“필요에 따라 다른 지역 제품들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들도 일일이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죠? 원하시면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남자는 웃고 있었지만, 행동도 말투도 어딘가 도발적이다.
“아뇨, 올리브유는 이 정도면 됐습니다. 다음은 치즈를 살펴보도록 하죠.”
알레산드로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휙 돌렸다.
지금 누구 앞에서 주름을 잡는 거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어디, 어디 다른 것도 얼마나 암기했는지 확인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