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4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49화(149/325)
149. 요리가 종교라면…
‘정말 까탈스럽네.’
한 마디, 한 마디.
시비를 거는 듯한 알레산드로의 말투는, 한길에게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심사 전날, 소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요리는 종교에요. 그것도 멀쩡한 종교가 아닌, 사이비 종교! 요리 얘기만 나오면 정말 눈깔이 뒤집힌다니까요?
에이, 그 정도까지는…
셰프는 몰라서 그래요! ‘한국인은 맵고 짠 맛밖에 모른다’ 이딴 소리 하면 저 진심 빡쳐서 들이박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 낌새가 보이면 셰프가 저 좀 말려주세요.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소희의 눈은 진지했다.
실제로, 알레산드로가 무례할 정도로 거만한 태도를 보이자, 소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쫑류가 이거 빠께 업써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은, 발사 대기 중인 미사일처럼 똑바로 알레산드로를 향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유셰프!’
당황한 한길이 다가가 이름을 불러도, 소희의 귀는 닫혀 있었다. 살짝 등을 찔러봐도 반응이 없고.
“이딸리아 요리에서 까장 쭝요한 게 올리브윤데, 따섯 종류 밖에 업따니.”
발사 버튼에 손이 올라가는 순간!
한길은 다급하게 소희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제야 소희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면서.
“이딸리아에서는…”
자신의 등에 과녁이 새겨진 걸 모르는 표적은, 겁도 없이 또 입을 나불거렸다.
알레산드로는 한국어가 능숙했지만,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된 발음이 심했다. 이탈리아 대신 ‘이딸리아’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 우리 요리는 대단해.
그건 한길도 인정하는 바였지만, 그 안에 숨겨진 속뜻이 거슬렸다.
“이건 또스카나 싼이 아닌데?”
우매한 것들, 너희가 이탈리아를 알아?
소희는 수시로 주먹을 재장전했고, 한길은 그녀를 말려야 했다.
‘참아!’
편협된 사고에 똑같이 대응하면, 옹졸한 자존심 대결이 된다. 한길이 원하는 건 그런 치졸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스스로 깨우치게 만들고 싶었다. 시간을 들이더라도 차근차근.
철저하게.
굳이 말싸움을 하지 않아도, 이 레스토랑의 맛은 통한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하, 하나만 더!”
시누이 스무 명이 한 몸에 빙의한 듯 행동하던 알레산드로는, 바케 로세 치즈를 맛보고는 가드를 내렸다.
“살루미라는 건 그 땅의 마씨 나야 합니다!”
다시금 저항이 있었지만, 살루미를 맛본 후에는 완전히 굴복하는 게 느껴졌다. 아니, 보였다.
표정만 딱딱하게 관리하면 뭐하나.
침을 질질 흐르고 있는데.
침이 떡칠 되어 번들거리는 입술을 보니, 한길의 안에 있던 적의가 증발했다.
알레산드로의 오만한 말투도. 그럴 때마다 속에서 솟구쳐오르던 짜증도. 어느 순간부터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건…
여유였다.
적의란, 상대가 비슷한 수준일 때 나타나는 거다. 압도적인 전력 차의 상대에게 적의를 느낄 수는 없다.
어린아이가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서 그걸 진심으로 상대하는 어른은 없으니까.
“이건 모??”
알레산드로의 질문은, 세상을 처음 발견한 아이의 호기심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질문이 잦아서 조금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재료나 씨설은 알게씁니다. 이 정도로 쭝분해요. 끄것보다, 쩌건 몬가요?”
알레산드로가 냄비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방정맞을 정도로 코를 벌름거린 후에 말이다.
“오리고기 라구를 만들기 위해 밑 작업을 하고 있죠. 로베르토가 다녀간 후, 파파르델레 알레 아나트라 주문이 너무 늘어서요.”
“역씨! 라구군요!”
“조리 과정도 보여드려야 하나요?”
“크흠, 씸사를 해야 하니까요.”
꼴… 꼬르… 르르륵! 꼬륵!
그 타이밍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알레산드로의 배꼽시계였다.
차라리 한 번에 울렸으면 모를까. 도중에 가둬두려고 억지로 힘을 주는 바람에, 소리는 울렸다 멈췄다 다시 울리기를 반복했다.
한길은 그가 민망해 할까 봐 간신히 웃음을 참았지만, 소희는 이미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소희의 적의도 완전 사라졌다.
항상 태엽 감긴 인형처럼 긴장을 유지하던 소희의 몸에 힘이 빠져있다. 자연스러운 자세. 저건… 여유다.
“동진아, 잠깐 나와봐.”
“예스, 셰프.”
“페이스트랑 육수는 준비된 건가?”
“네, 둘 다 아침부터 작업해놨습니다, 셰프!”
라구의 밑 작업을 담당하는 동진이 활짝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최근 파파르델레 주문이 감당 못 할 정도로 늘면서, 동진은 이례적으로 빨리 설거지 담당에서 벗어났다.
주방에 선 것만으로 기쁜지, 엄청난 업무량에도 표정이 밝았다. 아직까지는.
“유셰프, 알레산드로에게 라구 만드는 걸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럼요.”
한길이 직접 조리를 할 수도 있지만, 소희에게 기회를 넘겨주었다. 헛되이 버린 수많은 불발탄에 대한 사죄다.
가장 강력한 공격은, 그녀의 손으로 하게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설명도 그녀가 더 잘할 테고.
한길이 퀘스트 속에서 경험한 이탈리아는, 500년 전의 이탈리아다. 현대의 이탈리아가 아니다.
그 500년의 공백은 소희가 채워주었다.
치즈의 숙성 정도에 따라 부르는 용어도 소희가 알려주었고.
킁킁!
다시 코를 벌름거리는 알레산드로를 보며, 소희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저건 분명…. 너 이놈, 잘 만났다… 인 것 같은데…
“그건, 라구에 들어가는 소프리토에요.”
소프리토 (soffrito).
이탈리아의 요리에서 팬에 닿는 첫 재료다.
한국으로 치면, 국을 끓이기 전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만드는 작업과 비슷하다.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감칠맛을 내는 베이스를 깔아준다.
소프리토의 구성은 심플하다.
양파, 셀러리, 당근.
하지만 이 소박한 조합은, 이탈리아 요리의 삼위일체라고도 불린다.
셀러리와 당근은 생으로 먹으면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이지만, 열기가 더해지면 다르다. 특유의 쓴맛은 증발하고, 톡 쏘는 듯한 짜릿한 향만 남는다.
소희는 스푼을 들고 소프리토를 조금 꺼냈다.
알레산드로의 코앞에 들이밀자, 그의 입이 벌어졌지만… 소희는 그 스푼을 자신의 입안에 넣었다.
“음, 잘 됐네.”
알레산드로는 민망한지, 벌려진 입을 다물고 쩝쩝거렸다.
“크흠, 근데 쩨가 아는 소쁘리또랑 쪼금 다른 거 가튼데요?”
“저희 오리 라구에 들어가는 소프리토는 올리브유 대신 오리 기름을 사용하거든요.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볶아주고.”
“한 시간이나?”
냄비 속의 소프리토는 형체가 사라질 정도로 흐물거렸다. 손톱 크기로 다져진 채소 덩어리 위로, 은은한 갈색빛이 감돌았다.
캐러멜라이징.
이건, 코시모의 비법이다.
설탕 없이 단맛을 내는 비결이기도 하고.
센 불에서 달달 볶으면, 양파는 마지못해 단맛을 건네주지만, 금방 토라져서 새까맣게 불타 버린다.
재촉하지 않고 약한 불에서 나무 주걱으로 살살 달래주면. 양파는 그 속에 숨겨둔 단맛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아낌없이 내어준다.
설탕의 단맛은 가볍게 혀끝을 스쳐 간다.
하지만 이렇게 끄집어낸 양파의 단맛은, 밀도도 높고 어딘가 끈끈하다.
코시모가 사는 시대에는 설탕이 귀했다. 농부는 엄두도 못 낼 재료다. 그래서 양파로 단맛을 내는 방법을 강구한 거다.
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 소프리토는, 장시간 끓인 곰탕에서 날법한 달곰함을 두르고 있다. 그게 라구의 맛을 끌어올리는, 보이지 않는 비법이었다.
“셰프, 오리고기입니다!”
그 사이, 동진이 소희에게 재료를 가져다주었다. 2호점의 라구는, 오리의 넓적다리를 사용한다.
“다리만 써요?”
“오리는 이 부위가 향이 가장 진하거든요.”
그것도 있지만…
가슴살보다 저렴하다.
그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소희는 오리고기를 아직 차가운 팬 위에 올렸다. 오돌토돌한 껍질이 팬 바닥을 향하도록.
“아찍 불을 안 꼈는데요?”
“일부러 그런 거예요. 처음에는 약불에서 익혀야 하니까요.”
“약뿔에서?”
“오리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새라 체온 유지를 위해 껍질 아래에 지방이 많아요. 센 불에서 구우면 그 지방이 뭉쳐져서 오래된 껌처럼 질겅질겅해져요.”
차가운 팬에서 조금씩 온도를 올려주면, 껍질 내부의 하얀 지방 덩어리가 액체가 되어 녹아내린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팬의 바닥에 투명한 기름이 고였다. 이때 온도를 높여주면,
지글지글.
오리 기름 속에서 살코기가 구워지기 시작한다. 별도로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진한 오리 기름만으로 고기를 구울 수 있다.
치이익!
뒤집으니, 맛있는 소리와 함께 노릇하게 구워진 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과 짙은 갈색이 뒤섞여 있다.
참을 수 없는 기름진 향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소희는 반대편도 완벽하게 구워낸 후, 집게로 오리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옮기는 도중, 다시 한번 알레산드로의 코앞을 지나갔다.
저건… 고의다.
“동진, 기름 좀 정리해.”
“예스, 셰프!”
“기름 쩡리요?”
“오리 기름은 흐르는 금이거든요. 풍미가 엄청나니까, 모아두었다가 다른 요리에 써요.”
소프리토를 만들 때도 이 기름을 쓰고, 다른 사이드 요리를 만들 때도 사용한다.
동진이 팬 속의 기름을 따라내고 일부만 남기자, 소희가 나무 주걱을 들고 다시 팬 앞에 섰다.
팬의 밑바닥에는 오리고기를 구울 때 생긴, 눌어붙은 찌꺼기가 남아있다.
갈색 크러스트.
이건 캐러멜라이징된 오리진액이다.
꿀떡. 꿀떡.
새빨간 와인을 두 모금 정도 부어주고 팬의 바닥을 살살 긁어내면, 오리 캐러멜은 와인에 녹아든다.
“아, 이 와인은 토스카나의 키안티 와인이에요.”
듣고 있는 건가.
알레산드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반쯤 넋이 나가 있다.
오리 캐러멜이 들어간 와인에 아까 만들어둔 달곰한 소프리토를 넣어 준다. 그다음은…
“토마토입니다!”
“이쪽은 네 시간 동안 졸여낸 토마토 페이스트고, 이쪽은 캔에서 꺼내 으깬 생토마토에요. 물론, 둘 다 산 마자노(San Marzano)를 쓰고요.”
“깬을 볼 쑤 있을까요?”
토마토 통조림을 살펴본 알레산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Pomodoro S. Marzano dell’Agro Sarnese-Nocerino“ 라고 적힌 라벨과 DOP 인증마크. 진품이다.
산 마르자노 토마토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토마토라고 일컬어진다. 폼페이를 재로 만든 화산, 베수비오가 있는 화산지대에서 재배하며, 8-9월에 완숙된 토마토만 수확하여 통조림으로 만든다.
묵직한 토마토 향, 은은한 산미, 그리고 열기가 닿으면 바로 소스로 녹아내리는 특징 때문에 이탈리아 요리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가짜가 많다. ‘산 마르자노 식’이라며 교묘하게 비슷한 품종으로 만든 제품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까.
한길이 사용하는 산 마자노는, 물론 진품이었다.
뽀글뽀글.
토마토와 소프리토, 오리 캐러멜이 빨간 수프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른다.
그동안 소희는 살짝 식혀둔 오리고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바삭!
집게가 닿자, 껍질이 조금 부서졌다. 오리 껍질을 벗겨내고 살코기를 집으면, 장조림처럼 생긴 기다란 결이 뼈에서 떨어져 나간다.
꿀꺽!
알렉산드로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목울대를 주책맞게 움직였다.
꼬르륵!
오리 껍질은 한길이 봐도 바로 집어먹고 싶을 정도로 바싹하게 구워졌다. 살코기도 부드러워 보이고. 한 점 정도는 줘도 될 텐데…
어림없다.
“동진, 여기 뼈도 정리해!”
“네, 셰프!”
장조림 같은 오리 살코기는 빨간 수프에 퐁당하고 들어간다. 뼈는 오븐에 구워서 뽀얀 오리 뼈 육수를 내는 데 사용되고, 그 오리 육수도 라구 안에 들어간다.
“이대로 불을 줄이고 여섯 시간 동안 끓입니다. 끝!”
“이건 정말… 쿠치나 포베라(cucina povera)군요!”
가난한 농부들의 요리.
토스카나의 명물, 쿠치나 포베라.
오리 한 마리를 써도. 껍질 밑에 숨은 기름을 짜내고, 살코기는 굽고, 뼈는 육수를 우려내는 데 사용한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알뜰하게.
“쿠치나 포베라라… 어쩐지 할모니 쌩각이 나떠라고요.”
“할머니가 토스카나 분이세요?”
“아뇨. 하지만 전쨍을 겪은 뿐이시라써요.”
알레산드로의 눈빛은 아련했다.
누구든, 어릴 때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 있기 마련이니까.
“끄럼 이건, 여섯 씨간 후에 목을 수 있나요?”
“아뇨, 전날 만들고 식혀둬요. 맛이 더 어우러지면 다시 데워서 사용하죠.”
“끄럼 지금 바로 씨식 가능하네요!”
알레산드로의 두 눈이 빛났다.
‘요리가 종교라면….’
한길은 다시 소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이탈리아 요리가 종교라면, 지금 소희를 보는 알레산드로의 눈빛은, 신도가 교주를 볼 때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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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흥분했어.’
주방을 나오며 알레산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방에서 보낸 한 시간 여의 시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
홀리듯이 눈으로, 코로 요리를 빨아들이기 바빴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나름 심사위원이니까.
“두 분은 들어가세요. 테이블 서비스도 심사 대상이니, 일반 손님처럼 대해주세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저희 매니저에게 알려주세요.”
레스토랑 홀로 나온 알레산드로는, 뒤늦게 얼굴 근육을 추스르고 소희와 한길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오픈 전이라 레스토랑 홀은 텅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짧은 단발머리의 여성이 다가왔다.
“저희 살루미 창고는 보고 오셨나요?”
상큼하게 웃는 여성은, 시선을 뗄 수 없는 미인이었다. 미모도 미모이지만, 봄 햇살처럼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따스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꼴! 꼴! 꼬르륵!
아까부터 방정맞게 울리던 배꼽시계가 또 말썽을 피웠다. 얼굴에 열기가 올라왔지만,
“저희 레스토랑이 볼 게 많아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죠? 시장하시겠어요.”
“하하하.”
“그럼 바로 주문하시겠어요? 여기, 메뉴입니다.”
봄의 여신은 알레산드로가 민망하지 않게, 적당히 상황을 수습해 주었다.
‘오늘은 날이 아니야…’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알레산드로는 메뉴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오타의 유무.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의 심사 규정에 나온 항목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식 코스 분류가 되어 있는지, 제대로 된 요리명이 이탈리아어로 적혀져 있는지 봤지만.
역시, 실수는 없다.
있을 리가 있나.
“추천 메뉴가 있나요?”
“안티파스토는 아페타티를 추천해요. 그날그날 세 종류의 살루미가 나오는데, 오늘은 라르도, 프로슈토와 피노키오나가 나옵니다.”
“매일 달라요?”
“저희 살루미는 모두 매장에서 만들거든요. 그것도 제주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돼지를 사용하는데, 귀한 돼지이다 보니 3주에 한 마리만 들어와요. 한 마리를 알뜰하게 다 먹어야 해서 특정 부위만 고를 수는 없습니다.”
하긴.
맛의 방주에 오르는 재료를 사용하니까.
맛의 방주란,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말이다. 멸종 직전, 짝을 지으며 배에 오르는 동물에 빗댄 표현이다.
다 떨어지면 마트에 가서 바로 구해올 수 있는, 그런 재료가 아니다. 하나하나, 한 점 한 점 소중한 인류의 보물이다.
“그러면 안티파스토는 그거로 하죠. 프리모는 파파르델레 알 아나트라로 하겠습니다. 세콘도는 뭐가 좋죠?”
“프리모가 토마토 베이스이니 트리파는 겹치겠네요. 인볼티니도 있지만 그것도 기름지니까… 비스떼까 피오렌티나는 어떠신가요?”
“그걸로 주세요. 그리고 돌체는…”
“돌체는 칸투치를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전통 토스카나식으로 와인과 함께 나오거든요!”
“그걸로 하겠습니다.”
기분 좋은 서비스였다.
친절하지만 억지로 거리를 좁혀 다가오지는 않는다. 매뉴얼처럼 달달 외우는 것도 아니고, 손님과 대화를 하는 느낌.
서비스도 통과.
그렇다면 다음은…
“와인 메뉴는 어떻게 되죠?”
“그건 제 전문이 아니라, 저희 소믈리에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따사로운 미소를 머금은 여신이 떠나고,
“본 조르노! 세뇨르!”
젊은 남자가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마치 10년 만에 만난 동창을 맞이하듯이.
물론, 처음 보는 인물이다.
슈트 차림이 눈에 띄는 남자였지만, 딱딱한 회사원의 양복이 아닌, 이탈리아 멋쟁이가 입는 양복이다. 핏만 봐도 양복점에서 직접 맞춰 입은 옷이라는 게 보인다.
“오늘, 당신의 미각을 책임져줄 소믈리에, 데니입니다! 메뉴를 보고 싶으시다고요?”
소믈리에는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말을 걸며 메뉴를 건네주었다.
이탈리아어를 하는 홀 직원.
이것도 통과.
와인 메뉴는 100% 이탈리안 와인이다. 오스피탈리타 규정은 최소 30%니까 이것도 통과.
손가락으로 메뉴를 읽어내려가던 알레산드로의 눈에 특이한 내용이 들어왔다.
“소믈리에 코스는 무엇인가요?”
“메뉴마다 다른 와인이 나가는 코스입니다. 맡겨주시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각 요리에 어울리는 최고의 짝을 선별해서 내드리는 거죠!”
조금 가격이 비싼 편이긴 했으나…
그 유혹을 뿌리치긴 힘들다.
“그럼 소믈리에 코스로.”
“감사합니다! 모처럼의 이탈리아 분이시니 긴장되네요! 저도 능력을 풀로 해방해 보죠!”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실력 발휘해 주시죠.”
홀은 활기가 넘치면서 사람을 절로 웃게 만드는,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
꼬륵! 꼴….!
허기가 올라와 다시 배에 힘을 줄 때, 생긋 웃는 여자 직원이 첫 번째 요리를 들고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페타티 나왔습니다.”
접시 위에는 갓 구운 토스트와 세 종의 살루미가 곱게 올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