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화(15/325)
< 15. 준비는 빵빵하게 >
“사장님, 영업 안 하세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개인 사정이 있어서요.”
“치킨버거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거 들고 가서 집에서 한번 드셔보세요.”
가게 밖에 CLOSED라고 적힌 팻말을 걸어놨음에도 제법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한길은 그들 손에 샐러드를 하나씩 쥐여 주며 돌려보냈다. 모처럼 찾아준 손님을 되돌려 보내는 게 마음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후우….. ”
혼자 텅 빈 식당에 남은 한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아직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그 사람이 죄를 반성했을 때의 얘기다.
호승이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한스키친 사장님이 치킨버거를 발명했나?’
그 말대로, 치킨버거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지금 화제가 되는 카키 버거는 한길의 작품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만든 메뉴다.
사용되는 재료, 조리법, 식감과 맛의 조합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그걸 그대로 따라서 사용하는 건 어떻게 봐도 도둑질이었다.
그렇다고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없었다. 요리 메뉴에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싸움으로 시간과 심력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한길이 할 수 있는 건 요리뿐.
그렇다면 요리로 호승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다.
두 번 다시 자신의 메뉴를 도둑질할 엄두도 못 내게.
“그러면 역시 답은 샌드위치인가?”
메뉴판을 보며 한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뉴욕 브런치’는 브런치 전문점답게, 샌드위치가 메뉴의 주를 이뤘다. 시그니처 메뉴도 모두 샌드위치.
그리고 때마침, 한길이 개발한 신메뉴에도 샌드위치가 있었다.
문제는 그 완성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
프라이드치킨과 치킨버거는 시스템상에서 99%의 완성도를 갖췄지만, 샌드위치의 완성도는 겨우 88%였다.
판매는 가능하지만, 버거나 치킨만큼 놀라움을 주는 맛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짐작이 갔다.
‘빵이 필요해.’
지금의 샌드위치에 사용하는 빵은 일반 식빵이었다. 식빵은 두께가 얇아서 소스가 잘 스며든다. 그래서 한길이 생각해둔 레시피를 구현해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보다 견고한 빵이 필요하다. 흔히 시골빵이라고 불리는 곡물빵이면 가장 좋고.
문제는 가격이다.
잘 구워진 시골빵은 한 덩이에 적게는 4~5천 원, 많게는 8천 원을 넘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4시간 후면 다음 퀘스트가 시작되니까.
로마는 빵이 주식이다.
밥 대신 빵을 먹는 민족이니 분명 쓸만한 빵을 구할 수 있을 거다. 잘 찾아보면.
루시아의 식당에서도 여러 종류의 빵을 판매했지만, 그중 샌드위치에 적합한 빵은 없었다.
밥 대신 먹는 빵이라 그런지, 밀도가 높아 꾸덕꾸덕했다. 치즈나 과일을 곁들여 먹기에는 좋아도, 샌드위치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래도 분명 있을 거야. 제대로 찾아보면.”
한길은 노트북을 꺼내고 화면을 켰다.
이게 가게를 일찍 마감한 이유였다.
이번에 갈 때는, 제대로 준비된 자세로 가고 싶었다.
#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 #3 ? 1,000명의 선택!>.
목표: 제한 시간 내에 1,000인분의 요리를 판매하세요.
보상: 10,000 고르메 포인트
제한 시간: 48 시간
실패 시: 상점에 등록된 아이템 하나를 회수합니다.
+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한길을 맞이한 건 퀘스트 창이었다.
식당 홀로 나오자마자, 루시아가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없는 꼬리를 흔들어가며 한길을 반겼다.
“마르쿠스, 오늘도 장 보러 같이 갈 거야?”
“네, 물론이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빵을 찾으러 다니고 싶지만, 퀘스트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최상의 빵을 구해와도 포인트가 없으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으니까.
심지어 퀘스트를 무시하면 상점에 있는 재료도 사라진다.
다행인 점은, 한길이 만든 튀김과 파전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는 것.
굳이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손님이 몰려왔다.
장을 보고 가게로 돌아오니,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듣던 대로 별민데?”
“이건 대체 어디 요리예요?”
“와, 식감이 예술이네. 여섯 개만 더 주세요, 포장으로!”
손님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로 튀김을 우적우적 먹었다. 식당에서 먹고, 포장주문으로 들고 가는 이들도 많았다.
거리에 와사삭하는 튀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또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대로라면 이틀에 천명분은 충분히 판매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손님이 너무 몰려와서 화장실 갈 틈 없이 요리만 하는 게 문제였다.
결국 해가 질 녘이 되어서야 한길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잘 먹고 내일도 힘내야지!”
루시아가 환하게 웃으며 빵과 치즈가 담긴 접시를 건네주었다.
“마르쿠스가 복덩이라니까! 오늘 얼마나 팔렸는지 알아?”
“얼마요?”
“못해도 700인분은 팔렸을 걸? 포장이 많으니까 좋네. 다들 3인분씩은 사가니까!”
루시아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계산을 해보려다가 이내 포기를 했다. 손으로 계산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으니까.
한길은 적당히 대화를 맞춰준 후, 준비한 질문을 꺼냈다.
“루시아, 혹시 에우리사케스를 알아요?”
“에우리사케스? 제빵사?”
“네.”
“그야 당연히 알지, 로마에서 에우리사케스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마르쿠스 베르길리우스 에우리사케스.
(Marcus Vergilius Eurysaces).
에우리사케스는 한길이 조사하며 알게 된 인물로, 로마에서 이름난 제빵사였다.
에우리사케스는 그리스 노예 출신으로, 자신의 자유를 산 자유인이었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빵집을 차렸고,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제빵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빵 하나로 인생 역전을 한 인물.
그는 죽기 전, 로마의 성문 앞에 있는 노른자위 땅을 샀다. 그리고 로마를 오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자신의 무덤 겸 기념비를 세웠다.
아내의 모습이 담긴 그림과 자신의 빵집을 기록한 조각상들로 세공된 무덤은 지금도 로마 거리에 남아있다.
웬만한 귀족도 로마 시내에 기념비를 세우지 못하는데, 그걸 일개 제빵사가 해냈다.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정점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빵 하나로.
그 정도 인물이 만든 빵이라면 분명 맛이 예사롭지 않을 터.
하지만.
무덤이 건설된 시기는 약 20BC.
한길의 퀘스트 시기는 20AD.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아마 살아있진 않겠지만……’
희망은 있었다.
한길이 알아본 바로는, 로마에는 제빵사를 위한 길드가 있었다. 길드 소속원은 다른 업종으로 전직을 할 수 없었으며, 자녀를 무조건 길드에 가입시켜야 했다.
즉, 유명 제빵사는 대대로 가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에우리사케스의 후손이 남아있을 터. 한길은 그 후손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혹시 에우리사케스의 빵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나요?”
“그야, 성문 근처니까 알긴 하지만, 여기서 꽤 먼데? 걸어서 한 시간은 걸려. 줄이 어마어마하니까 새벽에 가야 할걸?”
#
다음날,
한길은 동이 트기 전에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소문대로, 규모가 남다른 빵집.
마당에는 당나귀가 커다란 맷돌을 돌리고 있었고, 내부에는 길쭉한 작업대에 다섯 명의 직원이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서둘러!”
“1번, 4번 다 구워졌어?”
오븐 앞은 그야말로 전쟁터.
이글루 모양의 화덕 오븐 앞에는 여러 명의 인부가 거대한 나무 주걱 같은 도구로 빵을 넣었다 꺼내고 있었다.
“뭐로 할거요?”
입구에서 카운터를 지키는 남자가 한길을 보며 무뚝뚝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카운터 위에는 족히 스무 종류의 빵과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었다.
‘어, 이것도 있었나?’
그중 익숙한 모양의 빵을 보고 한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밝은 노란색의 넓적한 빵.
솜이불처럼 폭신해 보이는 빵의 표면은 고루 기름칠해서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한길도 잘 아는 빵이었다.
“이거, 먹어봐도 되나요?”
“1애스, 선불.”
카운터를 보는 점원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뱉어내듯 말을 던졌다.
하지만 한길은 불쾌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손님이 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
점원이 저 모양인데도 이 규모의 빵집이 유지되는 거면, 에우리사케스의 빵 맛은 그대로이지 않을까.
한길은 동화 한 닢을 건네고 네모난 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포카치아(1등급)가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
품명: 포카치아 (Focaccia)
등급: 1
원산지: 로마, 이탈리아
가격: 100 고르메 포인트.
정보: 최고급 밀과 올리브유를 사용하여 구워낸 포카치아 빵입니다.
+
포카치아는 한국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빵이다.
올리브유를 위아래로 둘러서 구워내서 겉이 바삭하다.
반면, 내면은 피자 도우처럼 쫀득쫀득하고 찰지다. 실제로, 포카치아는 피자의 원형이라고 불리니까.
로마의 최고급 올리브유을 사용한 데다가 중간중간에 로즈메리까지 더해져, 식감은 물론 풍미도 뛰어났다.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샐러드에 곁들여서 내도 좋을 테고.
‘일단 하나는 구했고….. 다음은?’
한길은 진열된 빵을 다시 훑었다.
얼굴의 두 배는 됨직한 크기의 동그란 빵.
연한 황금색부터 고급 원목 가구 같은 적갈색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지만 한길이 찾는 빵은 없었다.
표면에 윤기가 없는 걸 보니, 모두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는 빵이다. 이스트를 대량생산할 수 없는 시대이다 보니, 로마에는 이런 납작한 빵들이 더 흔했다.
납작한 빵은 샌드위치에 사용하기에는 맛도, 크기도 적합하지 않았다.
“혹시 발효된 빵은 없나요?”
“발효된 빵?”
점원은 왜 자신을 성가시게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고갯짓을 했다.
조금 떨어진 카운터에 진열된 부풀어진 빵으로.
“모양이 조금 반듯한 빵을 찾고 있는데요.”
“형씨, 빵 몰라? 발효 빵이 반듯한 모양이 어딨어? 먹으려면 먹고 말려면 말아.”
“하나 가져갈게요.”
점원은 대놓고 험한 소리를 하자, 한길은 동화 하나를 건네고 빵을 골랐다.
‘색은 좋은데.’
적갈색을 띠고 있는 빵은 붉은 기운이 감돌면서 반지르르했다. 발효가 잘된 빵일수록 연한 광택이 난다.
크러스트는 까슬까슬했다.
적당히 거칠지만, 너무 거칠지는 않고.
두 손으로 빵을 살짝 눌러보자, 베개가 가라앉는 것처럼 폭신하게 눌러졌다가 다시 튕겨 올랐다.
좋은 탄력이다.
빵을 코앞에 대자, 시큼한 향이 올라왔다.
사우어도우(sourdough).
사우어도우는 이스트 대신, 밀반죽을 상온에 두고 발효 시켜 만든 빵이다. 레몬이나 식초만큼 강한 향은 아니지만,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시큼함이 특징.
바사삭!
양손으로 빵을 갈라보자. 예리할 정도의 선명한 소리를 내며 크러스트가 갈라졌다.
‘스펀지 같아.’
빵의 속살은 각기 다른 크기의 공기구멍이 나 있어 스펀지 같았고, 촉촉했다. 물기는 묻어나지 않지만, 손끝에 그 수분이 전달되었다.
갓난아기의 볼을 누를 때 느껴지는, 그런 촉촉함.
한입 먹어보자,
[카뮤빵(1등급)이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
품명: 카뮤빵 (Kamut bread)
등급: 1
원산지: 로마, 이탈리아
가격: 100 고르메 포인트.
정보: 고대밀인 카뮤밀 (카로산 밀)로 만든 빵입니다. 현대 밀보다 고소하고 단맛이 특징입니다.
+
혀끝에 달곰함이 느껴졌다.
이 시대는 설탕이 귀하니, 빵에 설탕을 넣었을 리 없다. 카뮤밀의 은은하면서도 그윽한 단맛이었다.
고소하기만 하면 텁텁할 수 있는데, 단맛이 곁들어져서 상쾌했다.
한여름에 차갑게 식혀둔 옥수수 차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면서 구수한 맛이었다.
맛도, 질감도 훌륭하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모양.
화산 분화구처럼 울퉁불퉁한 표면.
단순히 보기에만 흉한 게 아니라, 이대로라면 샌드위치에는 쓸 수 없다.
샌드위치의 위아래 빵 모양이 다르면 내용물이 빠져나오니까.
대충 이유는 짐작이 갔다.
저걸 고칠 방법은 정말 간단하지만……
“혹시, 주문 제작도 가능한가요?”
“주문 제작?”
점원의 얼굴이 어느새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아침 손님이 몰릴 시간인데, 한길의 까탈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5분이면 됩니다. 오븐에 들어가기 직전의 반죽에 잠깐 작업을 하고 싶어서요.”
“형씨, 그냥 좀 갑시다.”
역시나 남자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한길이 다시 말을 꺼내려는 찰나,
“왜, 뭘 할 생각이지?”
묵직하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버지. 별것 아니에요. 진상손님.”
점원의 뒤에서 나타난 백발의 노인.
족히 여든은 넘어 보이지만, 눈매도 날카롭고 걸음걸이도 당당했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에우리사케스…?”
한길이 무심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자, 노인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만난 적 있나?”
“아뇨.”
“그런데 왜 그리 귀신 본 듯한 얼굴이지?”
그야, 죽은 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길이 놀란 이유는 또 있었다.
천사의 머리 위에 떠다니는 동그란 광륜처럼, 노인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 물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물쇠 모양의 홀로그램이었다.
< 15. 준비는 빵빵하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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