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1화(151/325)
151. 복수는 이렇게!
‘나쁘지는 않아. 분명 나쁘지는 않은데…’
알레산드로의 제안은, 분명 솔깃한 제안이었다. 지금 레스토랑의 가장 큰 문제는 마진이었으니까.
살루미는 직접 만드니 오히려 비용이 절감되었다. 천연기념물 흑돼지인 만큼 가격을 후하게 쳐줬지만,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결과적으로는 쥐꼬리만큼만 포장되는 수입 제품보다 훨씬 저렴했다.
생면 파스타도,
그만큼 노동이 필요했지만, 재룟값만 보면 밀가루와 계란 정도다. 크게 비싼 건 아니었다.
문제는 올리브유, 산 마자노 토마토 등, 이탈리아에서 직접 들여오는 식자재값이다. 특히 DOP 제품의 경우, 프리미엄이 붙는다.
화이트파크 비프 같은 특수 재료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좋은 재료에 들이는 비용은 아깝지 않지만… 수수료는 별개다. 이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수고료’는 솔직히 아까웠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니까.
그걸 없앨 수 있다면…
그 돈을 아낀다면…
주방 인력을 보충할 수 있다.
지금처럼 계속 요리사들의 체력을 갈아서 운영할 수는 없다. 적당히 쉬는 날도 갖도록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계속 굴러갈 수 있으니까.
알레산드로가 재룟값을 아껴준다면…
교대 근무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솔깃하다.
그렇긴 한데…
‘마음에 안 들어.’
내용을 떠나서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저걸 꼭 지금 말해야 했을까?
심사를 마치고 인증을 받은 후에 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나?
이탈리아 사람들은 제멋대로라고 들었는데, 정말 이기적이다.
‘후우… 열은 내지 말고…’
한길은 속으로 숨을 고르며 화를 참았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일개 개인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행동 하나에 레스토랑 식구 모두의 미래가 달려있다. 그 책임감 때문에 오히려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다.
지금은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 아닌, 레스토랑의 미래를 계산하고 일정을 짜야 하니까.
‘유셰프는 괜찮나?’
갑자기 걱정되어 곁눈질로 소희를 보니, 역시나 똥 씹은 얼굴이다. 혹여나 또 주먹을 쥐고 달려들지 않을까, 걱정되어 시선을 아래로 내려서 그녀의 손을 보았다.
‘….’
소희는 이번에도 주먹을 쥐고 있었다.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부들거리는 주먹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손가락 스트레칭을 하듯, 주먹을 쥔 상태로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스트레칭하는 손가락이 하나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남에게 보이면 조금 곤란한 손가락이다.
소심하게 뒤에서라도 욕을 하는 행동이 어린애 같았지만, 왠지 웃음이 나오면서 한길 안에 있던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었다.
‘알렉산드로는 아직 못 본 것 같은데….’
한길은 소희를 말리는 대신, 그녀의 앞에 섰다. 그녀가 보내는 메시지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그러면 조금 곤란하니까.
“회장님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마르코 로씨 쎼프님이십니?”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교황 성하가 방한했을 때 찾았떤 리스토란테가 있죠…”
호텔 셰프.
그것도 교황을 접대할 정도의 셰프다.
“재심사도, 과정은 똑같나요?”
“기본쩍으로 똑까튼데, 아무래도 싸람의 취향이 다르니까요.”
“그건 무슨 뜻이죠?”
알레산드로는 조금 머뭇거렸다.
“지금까지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를 씬청한 리스토란데는 120군데인데, 인쯩을 받은 곳은 20개밖에 업써요.”
생각보다 떨어지는 레스토랑이 많았다.
“그중 제가 씸사를 한 게 15 곳입니다.”
저쪽이 더 까다롭다는 말이었다.
“후우…”
다시 한숨이 나왔다.
“로씨 셰프가 합껵시킨 곳들은 쩐부 공똥점이 있죠. 하이엔드입니다. 여기도 재료 쑤급이나 조리법, 메뉴에 꼬민의 흔적이 많으니까 쪼금 다뜸어서…”
“돌리지 않고 그대로 말해주셔도 됩니다.”
“가쩡식으로는 아마 어려울 겁니다. 아마도 말이?.”
스스로 말하고도 알레산드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솔직히 이만한 민폐가 어딨냔 말인가.
한길은 눈을 질끈 감고 감정을 추스른 후, 말을 꺼냈다.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가정식과 파인 다이닝 메뉴를 겸할 예정입니다. 안 그래도 테이스팅 메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정해지면 알려주시죠. 당장 매장 판매는 안 되더라도, 미리 맛보기로 보여드리는 건 가능합니다.”
“떼이스띵 메뉴요?”
갑자기 알레산드로의 눈이 빛났다.
입을 살짝 벌리며 혀를 조금 내밀기까지.
“기대되는 꾼요! 지끔의 전똥 메뉴도 좋지만, 쌔로운 것도 분명 잘하실 껍니다! 띱을 드리자면, 로씨 셰프 앞에서는 무조건 이딸리안! 저보다도 이딸리안 재료에 까다로운 뿐이라서요.”
알렉산드로는 말하는 도중에도 몇 번,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아쓉네요. 쩌도 먹어보고 시쁜데…”
“심사할 때, 함께 오셔도 됩니다. 어차피 1인분이든, 2인분이든, 만드는 수고는 별 차이 없으니까요.”
“쩡말요?”
알레산드로는 귀를 쫑긋 세웠지만, 전혀 귀엽지 않았다.
예뻐서 그를 부르는 건 아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까다로운 심사위원이라면, 한 명이라도 내 편이 그 자리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꺼낸 말이었다.
“끄럼 연락 뜨리겠습니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하는 알레산드로였지만, 그 순간 슬아와 데니가 다가왔다.
“오! 매니저! 그리고 쏘믈리에도! 이곳의 써비쓰는 최고였습니다! 분위기, 맛, 의미까지! 쌍황이 이렇게 되어 쩡말 죄송하지만, 이런 리스토란테가 한꾹에 있다는 게 축뽁일 쩡도입니다. 똔이 아깝지 않죠!”
미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알레산드로는 더욱 큰 소리로 극찬을 했다. 그에 대고, 슬아가 살갑게 웃어주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계산서입니다.”
“깨산서?”
“심사위원이 아닌, 손님으로 찾아오셨다고 들었거든요. 아닌가요?”
슬아는 지금껏 본 중 가장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악의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따지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한길은, 굳이 말하자면 무뚝뚝한 편이었다. 소희는 싸움꾼이었고. 저렇게 생글거리며 할 말을 하지는 못한다.
당황하는 알레산드로를 보며, 슬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귀한 재료를 사용하거든요. 오늘 드신 살루미는 천연기념물이고, 화이트 파크는 멸종 위기 관리 종이죠. 맛의 방주에 오르는 재료이다 보니, 무상으로 나눠주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알레산드로처럼 이쪽 분야에 선구적인 통찰력을 가지신 분이라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맛의 방주…
저 표현은 어디서 들은 걸까?
한길 역시 오늘 처음 들은 표현이었다.
분명 살루미를 보여줄 때 나온 말이었는데…
‘그때 슬아가 옆에 있었나?’
의아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도움이 되었다.
“하하… 끄렇죠. 물론, 찌불할 예정입니다.”
알레산드로는 머리를 긁적이며 계산서를 읽었지만,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음식 깝쓴 그렇다 치고, 이건 몬까요? 투어비?”
“저희 시설의 프라이빗 투어를 뜻합니다. 살루미 제조실부터 파스타 제면실. 그리고 짧은 이탈리안 쿠킹 체험이 들어간 투어 프로그램이죠.”
“리스토란테 메뉴에는 없었는데…”
“이 서비스는 메뉴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진행하고 있죠.”
그런 프로그램은 없다.
슬아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딱히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금 쎄군요. 이래서 일반인들이 투어를 할까요?”
“일반 요리사나 저 같은 매니저가 진행하는 투어는 인당 10만 원입니다. 하지만, 알레산드로는 더블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셨죠.”
“떠블 프리미엄?”
“셰프 서비스입니다. 저희 헤드 셰프님은 30만 원, 익세큐티브 셰프님은 50만 원입니다. 두 분이 함께 동행했으니 80만 원인 셈이죠. 조금 높은 금액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문적인 설명이어서 깊이가 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슬아는 말하는 도중, 계속 한길에게 눈길을 주었다. 신호를 주면 멈추겠다는 눈빛이다.
슬아의 성격상, ‘원래 비용은 이렇지만, 공짜로 해드릴게요’라고 웃으며 한 마디로 수습이 가능할 거다.
하지만.
한길은 신호를 주지 않았다.
알레산드로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어쨌든 한길과 향후 사업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거로 화를 낸다면, 앞으로 함께 일을 할 상대가 아니다.
오늘 일은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손해배상비를 요구하기도 뭐 했다. 그것을, 슬아가 적당히 포장하며 요구한 거다.
“끄…”
알레산드로가 망설이자, 이번에는 슬아 옆에 있던 데니가 거들었다.
“우와, 형님! 역시 제가 만난 손님 중 최고의 미식가이십니다! 진정한 지식과 철학을 갖춘 미식가는 푼돈을 신경 쓰지 않고 대의를 본다고 들었는데! 안 그래도 요리 하나하나 드실 때마다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했는데, 이런 분이라 그러셨군요!”
데니는 조금 과할 정도로 아부를 했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계산은, 할부로 하시겠습니까? 일시불로 하시겠습니까?”
“이, 일씨불로 하겠씁니다.”
알레산드로는 카드를 들고 한참을 망설인 후에 건네주었다.
쏜살같이 계산을 마치고 돌아온 슬아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오늘 정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언제든 또 오세요!”
#
“슬아, 잘했어!”
“저 새끼,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진짜 한 대 후려칠 뻔했네!”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알레산드로가 떠나자마자,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심사 결과가 궁금해서 몰래 엿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먹튀를 용납할 수는 없지!”
“진짜 슬아 누나 멋지다니까?”
“내가 누나라고 부르지 말랬지? 매니저님!”
“손님 앞에서만 그러기로 한 거잖아? 지금은 손님도 없는데!”
티격태격하는 데니와 슬아를 보며, 요리사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왜? 듣기 좋구먼. 슬아 누님!”
“잘한다! 슬아 누님!”
“아씨, 누님은 진짜 아니다! 그만!!!”
“오늘 큰 건 하나 했는데! 이러면 누님이지!”
가격대가 높은 비스떼카 피오렌티나가 들어갔으니, 오늘 코스 가격은 대략 27만 원대. 그걸, 80만 원 프리미엄까지 붙여 판매한 거다.
브레이크타임에 진행한 심사라 매출에는 타격이 없었고, 요리사들의 업무에도 큰 지장은 없었다. 한길과 소희가 조금 수고를 했을 뿐.
금전적으로는 그렇지만…
심리적으로는 다르다.
주방 요리사들은, 오늘 당장 억울함이 풀릴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심사를 미룬 것에 대한 열분이 있었고. 심지어 다음 심사는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지?”
“다 먹어놓고 심사를 안 해? 저러면 잘려야 하는 것 아냐?”
“안 그래도 알아봤는데, 저 사람도 상공회 직원은 아니더라고요. 굳이 말하자면, 상공회 회원이 상공회의 일을 도와주는 형식이라 자르기는 힘들죠.”
“그딴 게 어딨어!”
“시발, 누구 똥개 훈련 시키냐!”
“저런 십새…”
“그만! 셰프 앞에서 말투가 너무 거칠잖아?”
분위기가 과열되자, 누군가가 눈치를 줬다. 모두의 시선이 소희와 한길을 향했다.
그 순간, 소희가 입을 열었다.
“개새끼.”
“유셰프?”
“왜요, 개처럼 먹는 꼴을 보고 말한 건데. 개새끼라고요, 댕댕이. 이런 말도 못 해요? 우리끼리 있는데?”
소희의 욕설은 입에 찰지게 감겼다.
“우리 셰프 멋지다!”
“사랑합니다, 셰프!”
요리사들은 환호했고, 한길은 한동안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하게 내버려 두었다.
“저놈, 어떻게 복수하지?”
“그러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앞으로 같이 일할 거면 하루 주방 형을 내리는 건 어떨까?”
“주방 형? 돼지 발골 같은 걸 시키려고?”
“미친! 귀한 돼지를 망치면 어쩌려고?”
“소프리토 형은 어때요? 냄비 앞에서 하루종일 서 있는 것도 고역이거든요. 특히 요즘 같이 날씨도 더워질 때에는. 하루 15시간씩, 나무 주걱을 들고 불 앞에 서 있는 것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담아둔 채로 주방에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집중력에도 좋지 않고, 그런 마음이 요리에 녹아드는 것 피하고 싶었으니까.
“자! 이쯤하고 다들 서비스 준비하고!”
“예스, 셰프!”
한참을 떠들던 요리사들이 조금 가라앉을 때가 되어서야 한길은 그들을 돌려보냈다.
“유셰프는 저랑 잠시 얘기 좀 하시죠?”
#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한길은 소희에게 질문했다. 이제부터는 비즈니스를 논할 차례다.
“후우… 짜증 나긴 하지만, 솔직히 받아들여야죠. 좋은 건 좋은 거니까요. 마진을 생각하면.”
“역시, 그렇죠?”
“셰프도 오케이에요?”
역시 생각이 통했다.
그러고 보면, 소희는 한길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러면 진행하죠. 몇 가지 조건만 수정하고요.”
“역시! 저도 조건을 다시 얘기하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셰프는 어떤 조건이에요?”
한길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수수료를 받아야죠.”
“수수료요?”
“저희 매장에서 제품을 홍보하고 그로 인해 고객을 확보한다면, 매칭 비용을 받아야죠. 저희로 인한 판매량 수익 일부를 내놓.. 아니, 배분하라고 할 생각입니다.”
“흐음.. 괜찮네요.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유셰프는 뭘 생각하셨는데요?”
소희가 싸늘하게 웃었다.
어딘가 사악한 웃음이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지만, 묘하게 잘 어울렸다.
“지벨로, 구해오라고 하려고요.”
“아!”
아까 심사 중에 나온 실험 계획 중에, 지벨로가 들어갔었다. 지벨로 살루미는 워낙 구하기 힘든 재료인 데다가, 수입 규정에 어긋날 확률이 높아 알아보는 것도 일이었다.
“수입 규정도 지가 알아보라고 하고, 현지에서도 지벨로 곰팡이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도 알아보라고 하고, 뭐, 샘플 물량도 들고 오라고 하죠.”
소희는 짜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2호점에서 재료를 알아보는 건, 소희의 역할이었다. 1호점의 최셰프는 원래부터 이런 일을 해왔지만. 소희는 관리자 역할은 처음이었고, 대놓고 싫어했다.
요리는 좋아했지만, 전화를 붙들고 통화로 해결하는 일은 쥐약이었다. 말하자면, 하기 싫은 숙제와도 같았다. 그걸 떠넘길 상대를 찾은 거다.
“뭐? 이탈리아는 어쩌고 저째? 이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죠, 한국인은 어떤지. 한국인의 집착을 뼛속 깊이 새겨줘야지. 이 위대한 야근의 민족이 어느 정도 근성을 갖고 일하는지! 두고 봐라, 아주 그냥, 넌 죽었어, 임마.”
소희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음.. 그러면 자세한 내용은 유셰프가 상의해서 진행해 주세요. 최대한 저는 빼놓고요.”
“왜요?”
알레산드로를 굴리고 싶은 건 한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다 저쪽이 정말 토라져서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니까요. 조금 거친 얘기는 유셰프가, 달래는 게 필요할 때는 제가 나서죠. 그게 안전장치가 될 겁니다.”
“제가 왜 채찍이죠?”
“그럼 당근 할래요?”
소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 채찍이 좋아요. 손에도 익고.”
“계약서에는 필수조항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한 업체에 의존하는데, 그쪽에서 갑자기 싫다고 안 하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특정 기간 동안은 의무적으로 본인이 말한 조건을 수행하도록 계약서를 쓸 수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좋았어! 기간제 노예계약이군요!”
“그 표현은 쓰지 마시고요.”
“네.”
“그래도 도망갈 수 없게 처리해 주세요.”
“네!”
이것도 정리되었고.
그럼 다음은…
“그런데 셰프. 테이스팅 메뉴, 벌써 구상 시작하신 거예요?”
테이스팅 메뉴.
이건, 지금껏 만든 이탈리안 요리와는 다르다.
지금까지는 충실하게 이탈리아의 전통 레시피를 만들었다. 한길만의 메뉴이긴 했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 적용했다. 김치찌개를 만들 때, 각자의 비법이 들어가지만, 결국은 김치찌개인 것처럼.
하지만 테이스팅 메뉴는 셰프의 창의력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요리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소희는 유난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게… 테이스팅 메뉴 자체도 만들기 어렵지만, 이탈리아는 정말 유난하거든요.”
“왜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전통에 민감하니까요.”
“그건 눈치채긴 했습니다.”
“아니, 셰프는 몰라요.”
소희가 정말 질렸다는 듯이 좌우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몇 년 전에, 알랭 뒤카스 밑에서 배웠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셰프가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방송에 나가서 자신의 아마트리치아나(amatriciana) 파스타 비결이 마늘이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아마트리치아나.
한길이 아직 퀘스트에서 보지 못한 파스타이지만, 현대에서 이탈리안 레시피를 공부하며 본 기억이 있다.
분명…
여섯 개 재료가 들어갈 거다.
그완찰레, 페카리노, 화이트 와인, 토마토, 후추, 고추.
마늘은 없다.
“그때 아마트리체 마을의 지방의회에서 공개적으로 그 셰프를 비난했었어요. 마늘을 넣는 건, 지금껏 지켜온 맛과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라고, 부시장이 언론에 발표했죠. 천 년간 지켜온 맛을 짓밟았다면서요.”
마늘 하나로?
“그래도… 이탈리아에도 셰프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전쟁을 치렀죠. 뭐, 가장 유명한 마시모 보투라도 그런 얘기 하잖아요. 이탈리아의 영혼이 없다, 창의성만 강조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세대의 셰프들에게 독을 풀어놓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별의별 소리를 하면서 문 닫게 만들려고 했었다고.”
“….”
“지금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또 우리는 외국인이니까 더 불리하죠.”
전통을 중요시하는 건 좋지만, 너무 고여있다 보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외국인의 새로운 해석에는 더욱 반발이 있을 거다.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에휴,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생각해 두신 메뉴가 있나요?”
한길은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뻔했다.
“그렇게 웃지 마요, 카키 사장님 같으니까.”
“아무 말 안 했는데요?”
“알아요, 알아. 내일 얘기하자는 말이죠?”
“어떻게 알았어요?”
“메뉴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고요?”
씨익.
“하아… 알겠는데, 기억하세요. 교황에게 요리를 만드는 셰프였다는 걸. 그럼 전 주방에 갈게요.”
“의외로 빨리 끝나네요?”
“뭐가요?”
잔소리가.
“몰라요, 나도 적응하는 내 자신이 싫으니까 묻지 마세요. 그런데 어딜 그렇게 봐요? 뭐가 있어요?”
소희는 한길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지만, 그 자리에는 책꽂이밖에 없었다.
“참고로, 남의 레시피를 지나치게 참고해도 알아볼 거에요. 그러니까… 아이, 몰라. 그냥 내일 얘기해요!”
그렇게 말하며 소희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저녁, 가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의 요리사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의 교황을 섬기던 전속 요리사.
몇백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