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2화(152/325)
152. 스카피의 면접
[지난 퀘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로를 수정 중입니다.] [1%… 5%…. 15%…]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창이 떴다.
‘경로를 수정해?’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한길은 스카피의 자물쇠를 발견했었다. 히든 퀘스트를 의미하는 자물쇠를.
그때는 시간이 부족하여 열람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다시 스카피를 찾아갈 생각이었고.
‘그래서 바뀐 건가? 경로가 이렇게 쉽게 바뀌는 거였어?’
한길은 대기하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에 스카피를 보지 못했다면, 다른 경로가 있었다는 뜻일까? 고대 로마에서도… 제빵사 에우리사케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피키우스를 만나지 않고 다른 길을 갔을까?
지금까지는 퀘스트에서 미션이 주어지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한길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퀘스트가 주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자유도가 높다.
그렇다면…
만약 아예 다른 지역을 간다면?
예를 들어,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면…
퀘스트 역시 그 상황에 맞춰 수정되는 걸까?
하지만 그 이상은 생각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히든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가 통합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3 – 대주교의 인정을 받아라!>.
목표: 대주교 로렌조 캄페지오의 인정을 받으세요.
제한 시간: 2주
보상: 50,000 고르메 포인트
실패 시: 대주교의 저택을 떠나야 합니다.
+
‘대주교라…’
스카피가 대주교의 저택에서 일하는 중이니, 한길이 스카피를 만날 것을 가정하고 짜인 퀘스트다.
한길이 미리 공부한 역사를 토대로 보면, 대주교는 앞으로 한 달 내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찰스 5세를 위해 연회를 연다.
[퀘스트 진행 상황입니다] [총 (2)개의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파이널 퀘스트 – 왕비의 연회>.
목표: 왕비의 연회를 성공리에 치르세요.
제한 기간: 1달
보상: 300,000 고르메 포인트
실패 시: 상점의 아이템 10개를 무작위로 회수합니다.
– 진행률: 40%
– 영국에서 놀라운 업적을 세웠습니다.
– 이탈리아 스테이지에 진입했습니다.
– 메디치 가문의 요리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 히든 퀘스트를 발견했습니다.
…
+
어느새 영국의 파이널 퀘스트에도 제한 기간이 정해졌다. 여러모로 복잡하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인가?’
로마에 가서 스카피의 주방에 들어가고, 대주교의 인정을 받고, 황제를 만나서 왕비의 이름으로 연회를 열면 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랬다.
“마크, 어서 나와! 해 떴어!”
상황정리를 마치자, 발렌티나가 한길의 방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는 날.
다음 목적지는 로마다.
#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꼬박 하루 반이 걸렸다. 로마의 성문 앞에서 한길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정말 길 안 잃겠어?”
“제가 어린아이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마크는 외국인이니까… 로마 인간들은 다 날강도라고!”
발렌티나는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한길을 올려다보았다.
이 일행과는 이곳에서 헤어진다.
한길은 이대로 로마 시내로 들어갈 예정이고, 이들은 로마 인근의 마을에 들렀다가 옴브리아 주로 돌아간다고 했다.
“주책맞기는, 결국 남남인데 뭘 그리 걱정하냐? 네 오빠 걱정을 그리 해봐라!”
마리오는 저 멀리에서 팔짱을 끼고 불만스럽게 툴툴대고 있었다. 한길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빠는 알아서 잘하잖아? 그리고 누가 오빠한테 돈을 떼어먹으려 하겠어? 생긴 것부터가 그리 험악한데! 마크는 딱 봐도 비실비실하잖아!”
비실비실한 건 아닌데…
하지만 퀘스트 속 한길은 현실보다 키도 작고 왜소하긴 했다.
‘아직 삐져있나?’
로마까지 오는 도중, 마리오는 깨어있는 시간 내내 한길에게 한곳에 정착하는 삶의 이점을 열심히 설명했었다.
노치아 마을에 정착하면 발렌티나와 가정을 꾸리고 둘이 여관을 차릴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인생 계획까지 설계해 주었고.
미안하지만 할 일이 있어서 안 된다고 좋게 돌려서 거절했는데, 그게 서운한 모양이었다.
“마크! 우리의 인연은 언젠가 다시 이어질 거라 믿는다! 건강해라, 친구!”
프란체스코는 과장된 손짓과 말투로 대사를 친 후에 한길을 와락 껴안았다.
“절대 아프면 안 돼!”
발렌티나도 후다닥 달려와 품에 안겼다. 작은 아기 고양이처럼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대던 발렌티나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로마에서 주인님 만나면 베네치아로 다시 가는 거야? 아니면 영국으로 돌아가? 이제 이탈리아에는 안 와? 그럼… 다시 못 보는 거야?”
이들과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이후로 매일같이 함께해왔다. 그만큼 정도 들었고.
“편지 쓸게요.”
“편지를 어떻게 써? 움브리아까지 오는 여행자들이 많은 게 아닐 텐데.”
이쪽 세상에서는 스마트폰도, 전화도 없다.
편지를 주고받기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대로 헤어지면, 정말 두 번 다시 못 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발렌티나가 저렇게 침울한 거였고.
“언젠가는, 일이 마치면 한번 놀러 갈게요.”
“거짓말…”
“정말로요. 노치아 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
발렌티나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법 다부진 티를 내도 아직 어렸으니까.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고민하던 한길의 시선이 방황하다가 수레로 향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제노아에서 구매한 당나귀 수레다. 이제 로마에 도착했으니 이것도 처분해야 하는데…
“정말이에요. 꼭 찾아갈 테니까, 그때까지 이 당나귀 수레를 맡아주세요.”
“어? 똥쟁이를?”
발렌티나는 유일하게 당나귀에게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었다. 그렇게 좋은 이름은 아니지만.
“어차피 로마에서는 제가 돌봐줄 수 없어서… 팔아야 하나 싶었거든요.”
“너, 마크! 가족은 파는 게 아니지!”
“그러니까 발렌티나가 대신 돌봐줘요. 일이 끝나면 꼭 똥쟁이 데리러 갈 테니까.”
그제야 발렌티나는 환하게 웃었다.
기한은 없지만 언젠가는 가겠다는 약속이었으니까. 기약 없는 기다림보다는 조금 형태를 남겨둔 이별이었다.
거짓말도 아니었고.
언젠가 상황이 여의케 된다면 노치아 마을은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우리는 옆 마을에 있을 거야! 일이 없어도 무조건 일주일은 머무를 거니까 필요한 일이 있거나 쫓겨나면 찾아와!”
마리오는 으르렁거리듯이 소리를 질렀다.
‘일이 없어도…’
사실은 발렌티나가 몰래 알려줬었다.
노치아로 가려면, 로마까지 들를 필요가 없다. 여기에 오면, 돌아가게 되는 거다.
즉, 한길을 무사히 로마에 데려다주기 위해서 이들은 일부러 먼 길을 돌아온 셈이었다. 마리오는 절대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은근 코시모랑 비슷하다니까?’
피렌체에서 코시모와 작별 인사를 할 때도 비슷한 형식의 이별이었다. 여관에서 더는 일할 수 없다고 말하자, 코시모는 욕설을 잔뜩 퍼부었었다. ‘네놈이 일은 다 벌여놓고 노인네한테 수습하라는 거야? 양심 없는 놈!’이라면서.
그러고는 가는 길에 굶지 말라고 도시락으로 치즈와 살루미, 빵을 한 덩이씩 챙겨줬었다.
“마리오도 건강하세요. 노치아는 꼭 한번 찾아갈게요.”
“네놈도 아프긴 마. 객지에서 뒈지는 것만큼 서러운 건 없으니까. 그래도 뭔가 일이 생겨서 죽을 때가 되면 노치아의 코시모네로 주검이라도 보내 달라고 하고.”
여기서 죽으면 시신은 영국으로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말은 절대 꺼낼 수 없었다.
“네, 꼭 그럴게요.”
#
“트라스테베레(trastevere)는 어느 쪽이죠?”
“형씨, 장사하는 것 안 보여? 길 물어볼 거면 다른 데 가 봐! 일없어!”
“프리타타 하나 주세요.”
로마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친 상인은, 오래된 기름에 절인 끔찍한 맛의 프리타타를 건네준 후에야 길을 알려주었다.
“저기 오른쪽 방향으로 걷다가 강을 건너면 삐까뻔쩍한 동네가 나타나. 용케 그런 부촌에 아는 사람도 있나 보지?”
길을 물어보는 경험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이상하네.’
기분이 조금 묘했다.
분명 처음 베스트 고르메에 로그인되었을 때만 해도, 한길은 혼자가 더 편했었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데 익숙했다.
처음 루시아네에서 일할 때만 해도 항상 주변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 항상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
퀘스트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루시아네는… 당연히 없겠지?’
오랜만에 찾아온 로마는, 한길이 기억하는 고대 로마와는 모습이 많이 달랐다.
놀랄 것도 아니다.
그로부터 약 1,500년이 흐른 셈이니까.
목조 건물이었던 루시아의 식당이 아직 남아있을 리 없다.
‘어? 여기는 뭔가 익숙한데…?’
트라스테베레를 향해 걸어가던 중, 낯익은 골목이 나왔다. 목조가 아닌 돌로 지어진 건물…
이 벽…
이건…
‘만찬 장소!’
통구이 행렬이 벌어진 그 장소.
로마 시민 만찬을 열기 위해 아피키우스가 구입했던 그 정원이 틀림없었다. 정원을 감싸는 돌벽은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걷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어느새 한길은 저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길을 따라서.
‘아…’
정원의 입구는 뻥 뚫려 있었다. 견고한 돌벽과 달리, 나무 게이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정원 안에는, 고대 로마에는 없었던 건물이 하나가 더 세워져 있었다. 옛 건물도 남아있었지만… 모두 형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왜 이러지? 당연한 건데…’
이것도 기분이 묘했다.
그 어떤 견고한 건물도…
언젠가는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그날의 만찬은, 한길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었다.
‘그쪽 세상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언젠가 쿨타임이 다 돌면 아피키우스가 살아있는 로마에 다시 찾아갈 수 있다. 그걸 아는데도… 기분이 이상했다.
아피키우스의 로마 저택은 차마 가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서둘러 가자.’
한길은 걸음을 돌리고 바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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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요리사?”
대주교의 저택 앞에는 문지기가 있었다.
“네, 일자리가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아는 사람은 있고?”
“스파키에 대해서 듣고 왔는데요.”
“흠, 잠깐 기다려. 사람을 불러올 테니까.”
문지기는 심부름꾼을 불렀고, 한길은 문 앞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자리는 있나 보네?’
발렌티나 일행과 함께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요리사는, 실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나름 기술직이었으니까.
코시모의 여관에서도 단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귀족 집에서도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사람을 임시로 고용한다고 했다.
특히 갑자기 연회를 열 때는, 마을 여관의 요리사까지 비싼 돈을 주면서 고용한다고 했고.
“당신이 그 요리사인가요?”
잠시 후, 한길을 찾아온 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현대로 따지면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 같은.
“주방 견습생 에리오입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소년을 따라 몇 개의 건물을 지나고 마당을 가로지르자, 별도의 건물이 나왔다. 그 안에는, 일전에 봤던 남자가 있었다.
스카피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려나.
생각보다 젊다.
현대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스카피가 교황의 전속 요리사가 된 건 60대의 일이다. 즉, 아직 세상의 인정을 받기 전, 젊은 시절의 천재를 만나게 된 거다.
“자네는 누구지?”
스카피는 날카로운 눈매로 한길을 위아래로 훑었다.
“나는 한번 만난 사람은 다 기억하는데,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이군. 나를 안다고?”
“직접 아는 건 아니고, 피렌체에 있는 상인을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자리를 구한다… 요리 경력은 있고?”
“네.”
한길은 순간 경력을 몇 년이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현실에서는 요리를 한 지 10년 차이지만, 퀘스트 속 한길은 더 어렸으니까.
하지만, 스카피는 숫자를 묻지 않았다.
“손을 보여주게.”
“네?”
“양손 손바닥을 하늘로 펼치고 뻗어보란 말일세.”
시키는 대로 하자, 스카피가 다가와 손을 유심히 살폈다. 손가락을 몇 번 꾹꾹 눌러보기까지.
‘아, 굳은살.’
굳은살을 보는 거였다.
요리사의 손은 고울 수가 없다.
매일같이 손을 쓰는 데다가, 아무리 요리에 숙련되어 있어도 주방은 위험한 환경이다.
한길 역시 퀘스트를 겪으면서도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거친 손.
딱딱하게 박힌 굳은살.
화상 자국.
그게 이력서보다 더 확실한 증거였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 사람의 증거.
“흠… 일단 확인을 해보도록 하지. 따라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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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옆에 있는 작은 마당을 통과하면, 작은 방이 있었다.
여기저기 바구니와 항아리가 가득한 방…
재료창고다.
방안에는 아까 마중 나왔던 소년처럼, 어린 연령의 소년들이 가득했다.
스카피는 여러 거대 항아리가 줄 세워진 곳으로 한길을 데리고 갔다.
“오늘 아침에 들어 온 올리브유지. 이걸 분류해보게.”
한길은 바로 스카피의 의도를 파악했다.
시대는 달라도, 한길도 현대에서는 셰프다.
주방을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새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본기부터 확인할 거다.
소희와의 면접에서도 재료를 보는 눈을 가장 먼저 확인했었고.
“어떻게 분류하길 원하십니까?”
“주방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며, 그것도 질문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아직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그게… 사실, 저는 영국인입니다. 이탈리아식 재료 분류법은 잘 알지 못합니다.”
“뭐? 영국인?”
스카피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황당하다는 얼굴.
‘이 시대에는 국가에 대한 차별은 없을 텐데?’
여권이 필요하거나, 일하기 위해서 영주권이나 비자가 필요한 시대는 아니었다. 영국 왕궁에서도 프랑스인 주방장이 있었고.
“하아… 영국인들은 불을 쓸 줄은 아나? 아니, 불은 쓰겠지. 고기 굽는 것 말고 요리라는 것을 하던가?”
스카피의 얼굴에 떠오른 건 경멸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야만인을 보는 얼굴.
영국은 예나 지금이나.
미식가에게는 지옥이었다.
한길이 직접 봤던 고기 덤벅의 밥상이나 공작새를 깃털 채로 올린 요리를 생각하면…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하아… 뭐,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일단은 분류해주게. 열조리용 올리브유와 그냥 사용하는 올리브유로 나누면 되는 거네.”
전혀 기대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지시를 듣고 한길은 숟가락을 들고 와 항아리 안에 있는 올리브유를 하나하나 맛보았다. 눈을 감고 집중하면서.
‘이건… 향이 많이 사라졌네.’
‘이건 질감이 뭔가 애매해.’
눈앞에 창이 떠서 올리브유의 정보를 읽을 수도 있었지만, 한길은 창을 확인하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을 집중 시켜 올리브유의 질감, 향,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집중했다. 최대한 자신의 실력만으로 스카피의 시험을 통과하고 싶다는, 알 수 없는 고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갓 수확한 듯 매캐하면서도 톡 쏘는 향이 살아있는 올리브유. 방금 낚싯줄에서 꺼낸 활어처럼 팔딱팔딱 뛰는 생동감이 있는 올리브유.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냉장고에서 보관한, 뭔가 애매한 우유 같은 올리브유…
그 종류도 다양했지만.
신기하게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각자의 특색이 느껴졌다.
‘이건 좋은 훈련법인데?’
라벨을 읽고 맛을 보면, 사전에 편견을 갖고 재료를 분석하게 된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듯이 맛을 보는 경험은 또 달랐다.
오로지 미각으로 맛을 평가하게 된다.
집중력이 달라진다.
답안지를 보고 문제집을 푸는 것과, 전혀 보지 못한 백지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것의 차이.
‘나중에 애들한테도 한번 시켜봐야 겠네.’
좋은 훈련법을 하나 배워갔다고 기뻐하며 씰룩이는 한길을, 스카피는 불만스레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지?”
스카피가 재촉하자, 한길은 서둘러 병을 나눴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쪽에는 샐러드용으로 향이 진한 올리브유를 두고, 다른 쪽에는 열 조리용으로 향이 덜 진한 올리브유를 나열했다. 그중에서도 또 분류를 나누었고.
“이쪽이 열 조리, 이쪽이 그 외입니다. 이 중에서 첫 줄은 아마 북쪽 지역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이쪽은 토스카나주의 올리브유, 이건 조기 수확 올리브유 일 겁니다.”
마치 소믈리에가 된 듯했다.
스카피는 조용히 스푼을 받아서 각 병의 맛을 확인한 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버터 정리를 해 보지. 하얀 버터와 노란 버터, 염지를 한 것과 아닌 것, 3-5월 사이에 만든 것을 분류해 보게.”
버터의 분류법은 처음 들어봤다.
하얀 버터와 노란 버터는 눈에도 그 차이가 보이니 분류가 어렵지 않았다. 버터가 만들어진 달을 추적하는 것은 정말 새로웠지만… 눈을 감고 집중하니 희미한 향의 차이가 있었다.
“3-5월에 만든 버터를 왜 고르라는 건지는 알고 있나?”
“….”
피렌체에서 치즈 장수와 스카피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스카피는 3월에 만들어진 치즈를 선호했다.
“소가 봄의 새싹을 먹은 직후라 우유 맛이 더욱 신선합니다.”
이번에는 스카피의 한쪽 눈썹이 갈고리처럼 휘어졌다.
그 외에도 스카피는 다양한 재료를 주면서 질문을 했다. 설탕, 소금, 전분가루 등을 거친 후…
“이걸 부위별로 나눠보게.”
새 한 마리, 돼지 반 마리를 내려놓고 도축을 시켰다.
물론, 노치아의 정육사들에게 비법을 전수받고 현대에서도 3주에 한 번 살루미를 만드는 한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은 주방으로 따라오지.”
주방으로 들어오니, 어느 정도 이곳의 시스템이 눈에 보였다.
마당에 있던 사람들, 재료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아직 사춘기 정도쯤 되는 어린 견습생이었다.
반면,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20대는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스카피는 재료가 잔뜩 올라간 테이블 앞으로 한길을 끌고 갔다. 각종 채소, 살루미, 그리고 계란이 담긴 바구니가 대여섯 개…
스카피는 바구니에서 계란을 꺼내서 유심히 살핀 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계란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계란을 주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보게. 종류는 최대한 다양하게, 부재료는 여기 이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을 사용해도 되고.”
이제부터가 본격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