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3화(153/325)
153. 앞뒤가 안 맞아
‘지금부터가 진짜다.’
한길은 주먹을 꽉 쥐었다.
향후 모든 퀘스트의 성공 여부가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 그 생각을 하니, 긴장감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스카피의 주방에 들어가더라도, 수많은 일손 중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대로 비유하자면, 라인쿡이 아닌 헤드 셰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황제가 올 때 자신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으니까.
‘이탈리아의 귀족 주방은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주방 시스템은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훨씬 낮다는 점만 제외하면.
설거지하는 소년들은 갓 중학생이 된 듯했다. 재료 관리를 하는 이들은 ‘청소년’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도축 담당은 고등학생 정도? 그나마 주방은 20대고.
영국 왕실에서는 이미 숙련된 사람만 있어서 몰랐지만, 아마도 귀족의 주방에서는…
어린 나이에 견습생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한길의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해 주방 밑 작업, 전채, 파스타, 육류, 해산물 수순을 밟고 올라가듯이.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 건지 보려는 거겠지?’
스카피가 한길에게 재료 관리부터 시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거다. 한 바퀴 돌면서 한길이 어느 계단 즈음에 서야 할지 파악하려는 거다.
재료와 도축은 통과했고, 이제 주방이다.
‘여기서 요리만 잘하면…’
라인쿡으로 합격한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다.
한길 역시 ‘요리사’를 뽑을 때는, 조리 실력만 확인하고 바로 라인에 투입한다. 굳이 ‘이 사람이 헤드 셰프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건 함께 일 하면서 차근차근 알아가면 되니까.
문제는, 한길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
단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잠시 질문해도 됩니까?”
“뭐지?”
”최대한 다양한 요리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한 번에 나가도록 준비해야 합니까?“
“한 번에?”
“그럴 거면 추가로 일손이 필요해서요.”
“그럴 필요는 없어. 하나씩 만들자마자 바로 시식할 거니까.”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
스카피는 처음부터 한길의 주방 지휘력을 볼 생각이 없었다. 단순하게 요리를 하는 라인쿡을 뽑으려는 거다. 그게 당연한 거고.
‘그래도 해봐야지.’
불가능은 아니니까.
스카피의 요구사항은 총 세 가지.
하나, 계란이 주재료여야 한다.
둘, 요리의 종류는 최대한 다양해야 한다.
셋, 부재료는 마련되어 있는 걸 자유롭게 써도 된다.
한길은 바로 움직이는 대신, 전략을 먼저 짰다.
단 한 번뿐인 기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임팩트다.
‘왜 하필 계란이지?’
계란은 이곳에서 귀한 재료가 아니다.
코시모의 식당에서도 삶은 계란, 계란 프라이, 그리고 계란을 파전처럼 부친 프리타타가 자주 나갔다. 가난한 농부도 파스타를 만들 때 계란을 사용했다. 계란은 다른 재료를 엮어주는 풀처럼 사용되니 수많은 요리에 들어가지만…
주연은 아니다.
조연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계란이라서 다행이야.’
계란만큼 변화무쌍하고 드라마틱한 재료는 없으니까. 물론, 현대의 과학 지식이 있기에 그 가능성을 알고 있는 것이지만.
#
대주교라면 성직자다. 하지만 성직자의 주방은, 놀라울 정도로 메디치 주방과 닮아 있었다.
커다란 작업대, 그릴, 벽난로처럼 생긴 화로, 작은 오븐. 조리도구도 칼은 스무 종류 이상, 체도 다섯 종류… 재료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정도면 웬만한 현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다.
‘어떤 요리를 먼저 만들까?’
스카피는 최대한 많은 요리를 만들라고 했지만, 한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백 가지 요리를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게 과연 옳은 걸까? 자신이 면접을 본다면, 정말 백 개의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릴까?
그렇게 한가할 리 없다.
‘비슷한 요리의 변형이 여러 번 나오면 오히려 실망스러워.’
숫자만 많고 반복적인 느낌이 들면 오히려 빈곤해 보인다. 강렬한 요리만 선별해서 보여줘야 한다.
한길이 선택한 첫 번째 메뉴는 스카치 에그 (scotch egg).
서양식 계란 튀김이다.
삶은 계란에 소시지 옷을 입혀준 후, 빵가루를 묻혀 튀겨내는 요리.
‘하필이면 영국 음식이지만…’
흔치 않게 영국 음식 중에서 호평받는 메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누구나 만드는 방법으로는 그다지 맛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요리의 핵심은 반숙 계란.
야들야들한 반숙 계란과 바삭한 소시지 갑옷. 그 대비가 극명할수록, 맛은 강렬하다.
한길은 우선 계란을 삶았다. 삶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완성된 계란은 찬물에 넣어 익는 과정을 완벽하게 정지시켰다.
다음은 소시지 옷.
이 요리는 살루미보다 발효되지 않는 소시지가 더 좋다.
‘역시 없는 게 없네.’
서민들은 보존 기간이 긴 살루미를 주로 먹었지만, 이곳에는 발효하지 않은 소시지도 있었다.
소시지 껍질을 벗겨내면, 결국 다진 돼지고기다. 이미 간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추가 양념은 필요치 않다.
한길은 다진 고기를 완자처럼 동글동글 빚어낸 후, 손바닥 사이에 두고 납작하게 눌렀다. 손으로 조금씩 눌러가며 모양을 다듬으면, 동그란 만두피 같은 모양이 된다.
제법 두툼하니까 만두보다는 송편에 가까우려나…
탁탁!
조심스레 계란 껍데기를 까고, 반숙 계란을 꺼낸다. 반숙 계란은 완숙 계란만큼 단단하지 않아 다루기 까다롭다. 그 모양이 깨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고기 반죽 안에 넣고 송편처럼 빚어준다.
다르르르!
다음은 딱딱하게 굳은 빵을 막자로 갈아서 빵가루를 만든다. 그리고 빵가루 위에 소시지 옷을 입은 계란을 굴린다.
그러면 소시지 옷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삐죽삐죽한 빵 갑옷으로.
커다란 냄비에 기름을 잔뜩 붓고 온도 확인을 위해 반죽을 떨어트리자,
챠그르르르!
반죽이 가라앉았다가 3초 후에 떠올랐다. 175도에서 180도 사이일 때 나타나는 현상. 이 온도에서 7-8분 튀겨준다.
챠그르르!
시간이 지나면서 창백했던 빵 옷이 변했다.
전체적으로 황금빛이 감돌지만, 솟아오른 가시는 짙은 갈색이다. 늠름한 가시는 고슴도치처럼 위세 좋게 뻗어있다.
한길은 계란을 체로 건져내고, 허공에 대고 탁탁 털어 여분의 기름기를 제거해주었다. 그리고 칼을 들고 와 계란을 반으로 잘랐다.
바사삭!
귓가를 때리는 소리.
손끝에 느껴지는 단단함.
계란의 단면은 한눈에 봐도 맛깔나 보였다.
한가운데에는 오렌지색에 가까운 진한 노랑.
일본 라멘 위에 올리는 반숙 계란처럼, 진득하면서도 촉촉해 보인다. 먹으면 목이 막혀오는 그런 퍽퍽한 노른자가 아니다.
노른자 주위에는 푸딩처럼 탱탱한 흰자가 있다. 계란을 포위하고 있는 소시지는, 분홍빛을 머금은 연갈색.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고슴도치 같은 갈색 빵가루 갑옷이다.
각기 다른 맛, 향, 식감이 4겹으로 겹쳐져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요리, 스카치 에그입니다.”
한길은 시식하는 스카피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스카피는 계란을 한 손으로 들고 후후 불은 후, 입 안에 넣었다. 바삭바삭한 빵가루가 부서지는 소리가 한길에게도 들려왔다.
하나를 먹고 또 하나.
열심히 입을 오물거렸지만, 스카피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다음.”
다음은 메디치 요리대회에서도 선보였던 메뉴.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분리하고, 흰자만 거품기로 저어주어 공기를 주입하는 요리.
몽글몽글한 흰자 구름.
그 위에 살포시 얹은 노른자.
현대에서도 SNS를 장악할 정도로, 보는 사람을 현혹하는…
“클라우드 에그입니다.”
스카피는 여전히 묵묵하게 먹기만 했다. 남기지는 않았지만,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
다음은 에그 베네딕트.
<한스키친>에서 만들었던 수란 샌드위치다.
계란의 흰자만 익혀서 흐르는 노른자를 가두는 요리.
바싹하게 구운 토스트 위에 신선한 루콜라를 얹는다. 그 위에 수란을 올리고 진득한 홀란데이즈 소스를 뿌려준다.
“다음.”
스카피의 얼굴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지만, 한길은 오히려 저 반응이 기꺼웠다.
‘그래야지.’
아피키우스 다음으로 만난 역사적인 요리사다. 쉽게 넘어가면 재미없지.
다음은…
퍼프 페이스트리로 크러스트를 만든 에그 타르트.
버터와 밀가루 반죽을 겹겹이 접어서 50겹의 얇은 층을 만든다. 크루아상처럼 층이 진 크러스트는 입안에서 크리스피하게 터질 거다. 그 안에 계란 커스터드를 담아둔다.
잘 구워진 에그 타르트는 진한 노란색과 캐러멜처럼 살짝 태운 갈색이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이 눈을 찔렀다.
“다음.”
다음은 수플레 오믈렛.
언젠가 주방에서 경우가 실수했을 때, 시간을 벌기 위해 만들었던 오믈렛이다.
노른자와 흰자를 동시에 쉴 새 없이 휘저어 공기를 주입하고 도톰한 케익처럼 구워낸다.
머랭 같이 부풀어 올랐지만, 노른자도 함께 넣었기 때문에 꼬들꼬들함 대신, 윤택하면서도 부드러운 거품이 된다. 저게 혀에 닿아 녹으면…
“다음!”
스카피의 눈빛은 어느새 복잡한 빛을 띠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까다롭네. 이번에는… 그걸 만들어 볼까?’
아직 메뉴에는 올리지 않은 창작 메뉴.
이름은 임시로 수란 모차렐라라고 부르고 있다. 모차렐라 안에 수란을 가두는 요리다.
한길은 재료 테이블로 다가가 모차렐라 치즈를 골랐다.
‘치즈가 좋네.’
포동포동한 하얀 복숭아 같은 치즈 덩어리.
들어 올리면 그 수분이 그대로 느껴져 마치 아기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 같다.
칼로 하얀 모차렐라 덩어리를 조금 썰어서 맛을 보자,
‘…?’
진한 향이 입안에 휘몰아쳤다.
한길이 아는 모차렐라와 다르다.
단순히 신선도의 차이가 아니라…
[물소 모차렐라(1등급)가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우유가 다르다.
소젖이 아닌,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다.
밍밍하다고 부를 정도로 순한 맛의 모차렐라와 달리, 강렬한 야생의 향이 느껴졌다. 색깔로 표현한다면 일반 모차렐라가 베이지, 이건 레몬과 비슷한 선명한 노란색이다.
단면을 살펴보니, 평소에 먹는 모차렐라와 모양새도 달랐다.
소젖으로 만든 모차렐라는 쫀쫀하고 탄력이 있다. 하지만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는, 단면이 레이스처럼 울퉁불퉁하다. 단면만 보면, 어딘가 크림치즈 같다.
‘유지방이 더 많나 보네.’
그래서 더 크리미하고 부드럽다. 입에 착 달라붙는 기분 좋은 산미도 느껴진다.
‘이 정도면 노른자에 묻히지 않겠어.’
현대에서 이 요리를 만들었을 때는, 노른자에 비해 모차렐라가 너무 약했다. 계란에 파묻히는 느낌이 들어서 파르메산 치즈를 조금 갈아서 넣어줘야 했다.
하지만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라면, 수란의 노른자와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긴장감 있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래서 재료가 중요하구나.’
이탈리아 요리는 재료 맛이라는 이유.
같은 조리법이어도, 양질의 치즈가 들어가면 맛이 전혀 달라진다.
한길은 서둘러 모차렐라 수란을 만들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모차렐라를 찜통에 올려 살짝 녹인 후, 이것 역시 만두피처럼 펼쳐둔다. 그 안에 수란을 넣고, 보자기를 싸듯이 모아서 모양을 만들어준다.
잠시 기다리면, 치즈가 보자기 형태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 위에 준비해둔 마늘 소스를 뿌린다.
‘다음 요리는 역시 머랭이 좋을까? 베이크드 알래스카? 증류주가 있던가?’
스카피가 맛을 보는 동안, 한길은 다음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크렘 브륄레도 아직 안 만들었고…
“이제 그만.”
고개를 들어보니, 스카피는 무표정한 가면을 버리고 어느새 한쪽 입술을 씰룩이고 있었다.
“자네, 재밌군.”
#
‘이 시기에 새로운 요리사라…’
스카피는 눈앞의 요리사가 의심스러웠다.
너무 완벽한 타이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스카피의 주방에는 자리가 없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 명의 쿠오코(cuoco: 요리사)가 그만둬 버렸다.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가지만…
이유를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안 그래도 사람을 구하던 참에,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온 요리사.
‘수상해.’
자신의 주방에 잠입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 의심은 곧 사라졌다.
“사실, 저는 영국인입니다.”
자객을 보내려면, 칼을 쥘 줄 아는 사람을 보내야 한다. 자신의 적이 영국인 요리사를 보냈을 리가 없다.
‘돌려보낼까? 아니, 그래도 여기까지 들여 왔는데…’
스카피는 일말의 기대도 없이 남자에게 올리브유 분류 작업을 시켰다.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첫 줄은 아마 북쪽 지역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이쪽은 토스카나주의 올리브유, 이건 조기 수확 올리브유 일 겁니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심정을 얼굴에 드러낼 만큼 어리석지는 않지만.
‘어떻게?’
각 항아리에 담긴 올리브유의 맛을 확인하니, 수상한 요리사의 말 대로였다. 영국인의 둔감한 혓바닥으로 이 차이를 알아낸 것이 놀라웠다. 아니, 이탈리아 사람이어도 이렇게 정확하게 분류하긴 어려울 거다.
수많은 올리브유를 맛보고, 집중해서 각 올리브유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훈련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나?’
고급 올리브유는 값이 비싸다. 훈련할 정도로 자주 먹어봤다면, 집안에 돈이 꽤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설탕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스카피는 확신하게 되었다.
‘꽤 높은 곳에 있던 사람이구만.’
영국인은 설탕 덩어리를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스카피의 주방에는 원뿔 모양의 설탕 덩어리를 사용한다. 재료의 신선도를 우선시 하다 보니, 필요할 때마다 전용 집게로 덩어리를 조금씩 부숴서 막자로 갈아서 쓴다.
이 남자는 요리사라면서 그걸 모르고 있었다.
영국인이라서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유럽에 유통되는 모든 설탕은 이탈리아에서 오니까. 맛은 구분하는 걸 보니 설탕을 못 먹어본 것도 아니고
설탕은 알지만, 그 원형은 모른다?
지금껏 이런 잡일을 맡을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놈은…’
여기까지 추리하자, 하나의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잡일을 하지 않고 요리를 하는 사람.
값비싼 재료를 맛보며 훈련하는 사람.
그 정체는 하나밖에 없다.
스칼코(scalco: 집사) 후보.
스칼코는 귀족의 메뉴를 기획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집사는 부유한 평민이나 작위 없는 귀족 출신이다.
가끔 집사 후보들이 외국에서 경력을 쌓고 고국으로 돌아가 활약한다고 들었다. 그러면 영국인이 왜 이탈리아에 왔는지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이건 또 어떻게 된 거지?’
다음 순간에 또 멈칫하게 되었다.
영국인이 도축을 완벽하게 했기 때문이다.
견습생들보다 더 정확한 손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체 저놈은 뭘 하는 놈이며, 이곳에는 왜 왔단 말인가.
‘요리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요리에는, 그 사람의 살아 온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스카피는 지금껏 수많은 지역을 여행하며 지역별 요리를 공부해 왔다. 외국인을 만나면 사정사정해서 그들의 요리도 배웠고.
요리하는 과정을 보면, 맛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차그르르르르!
남자는 냄비 가득 기름을 담고, 반죽을 기름에 떨어트리는 이상한 의식을 치렀다. 들어본 적 없는 의식이다.
이윽고 첫 번째 요리가 나왔다.
“스카치 에그입니다.”
“스카치?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건가?”
변방국인 영국에서도 야만스럽다고 부르는 스코틀랜드 요리라… 센스 없는 작명에 맛을 보기 꺼려졌지만,
킁킁!
냄새는 좋다.
보기에도 좋고.
계란은 일부러 조금 덜 익힌듯했다.
촉촉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계란.
그 주위를 감싸는 소시지에서 기름진 육향이 흘러나와 코끝을 찔렀다.
바사삭!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튀김 옷.
살짝 매콤한 육즙을 쏟아내는 소시지.
탱글탱글한 흰자와 끈끈한 노른자.
맛있다.
이건… 절대 영국 요리가 아니다.
“클라우드 에그입니다.”
다음은 구름처럼 생긴 계란.
솜뭉치처럼 뭉쳐있는 계란 흰자는 부드러우면서도 꼬들꼬들한 느낌이 살아있었다.
입천장을 간질이는 기분 좋은 식감.
치즈가 들어가서 짭조름한 것이, 혀에도 착착 감긴다.
“에그 베네딕트입니다.”
다음은 작은 빵 위에 세워진 작은 탑.
탑의 꼭대기는 계란이 장식하고 있다.
동그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반 계란과 달리, 이 계란은 계란 프라이처럼 약간 퍼져있다. 접시가 움직일 때마다 파르르 떨리고 있고.
작은 탑을 깨물자,
주르륵!
노른자가 터졌다.
진득한 계란 꿀이 흘러내렸다.
계란 꿀은 이미 뿌려진 노란 소스와 섞이면서 입안에서 연금술을 부렸다.
바삭한 빵.
아삭하면서도 향긋한 루콜라.
포동포동한 계란 흰자.
고소한 계란 꿀.
이것도 처음 맛보는 요리다.
“수플레 오믈렛입니다.”
이번에도 처음 보는 계란 요리다.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그 중간.
노란 계란 거품을 구운 신기한 요리.
거품을 썰어서 입에 넣자, 수십 개의 기포가 터지는 게 느껴졌다. ‘팡’하고 요란하게 터지는 게 아니라, 소리 없이 터지고 그대로 사르르 녹아내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정신을 놓을 것 같은, 마성의 식감.
“자네, 재미있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카피는 이탈리아반도는 물론, 영국, 프랑스, 스페인, 아랍 상인들이 먹는 요리까지 모두 알고 있다. 자신이 모르는 요리는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이건, 이 세상의 요리가 아냐.’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처음 불을 가져다주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직 미개한 인류에게, 보다 높은 차원의 생명체가 전하는 선물이다.
‘미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악마나 천사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내는 경우가 있다고들 한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남자는 인간이 아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요리하며 살아온 인간은 아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자신을 도우려는 천사일까?
아니면 파멸을 지켜보려는 악마인 걸까?
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걸까?
천사라면, 하늘이 보내준 조력자다.
악마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각오는 언제든 되어 있다.
일단 실력을 조금만 더 확인해 보고.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마크입니다.”
“다음은 파스타를 만들어보도록 하지. 간단하게 로마의 3대 파스타로.”
“그게…”
스카피의 말에, 이세계의 생명체는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왜 그런가?”
“먼저 만드시는 걸 보여주시면, 그대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라… 이탈리아 레시피는 잘 몰라서요.”
의외로 허술한 점도 있고.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놈이다.
“비켜보게.”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쫓아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