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5화(155/325)
155. 집사와 요리사
쾅!
스카피가 나가자마자 집사인 모라티는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주방의 경력 있는 요리사들에게 거금을 쥐여주며 다른 자리를 알선해 준 게 고작 사흘 전이다. 이번에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뭐? 벌써 요리사를 구해?”
쾅!
책상을 몇 번 내리쳐도, 숨을 크게 후우 후우 내쉬어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모라티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자기암시라도 걸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영국인이니까… 그래, 그냥 개새끼 한 마리가 주방에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지. 별일 없어, 이 정도면. 그래…”
그래도 마음은 쉬이 안정되지 않았다.
“실비오!”
“네!”
큰소리로 외치자, 어디선가 대기하고 있던 자신의 보조가 달려왔다. 집사가 되기 위해 훈련 중인 소토스칼코(sottoscalco)다. 모라티는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하나 꺼내 그의 발밑에 던졌다.
“문지기들한테 앞으로 찾아오는 요리사들은 모두 돌려보내라고 해! 병신같이 들키지 말고 은밀히 처리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전달해! ”
“네, 알겠습니다!”
보조가 달려 나간 후에도 짜증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몇 번을 책상에 대고 화풀이를 하니, 자신의 주먹만 화끈거렸고.
‘역시 마음에 안 들어.’
모라티에게 스카피는 눈엣가시였다.
얌전히 주제를 알고 고개를 숙이면 알아서 챙겨줄 텐데. 자신의 영역을 수시로 침범한다. 겁도 없이.
‘고작 쿠오코 주제에!’
스카피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다.
그에 반해, 모라티의 아버지는 백작이다.
백작가에 태어나면 좋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모라티는 막내였다. 위로는 형이 네 명, 누나가 세 명이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모두 팔팔하게 살아있다.
모든 자식이 작위를 이어받을 수는 없다. 형제가 이리 많으니, 재산을 나누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영지가 위에 있는 형제들에게로 갈 거다.
즉,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모라티는 개털이 된다. 귀족은 귀족이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귀족인 셈이다.
그런 자신에게, 아버지는 집사의 길을 권유했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집사, 메시부고 때문이다.
크리스토포로 디 메시부고 (Cristoforo di Messibugo)는 페라라(Ferrara)에 있는 데스테(D’Este) 공작의 집사다. 메시부고 역시 귀족 출신이지만, 모라티와 비슷한 처지. 즉, 생계를 위해 스스로 일해야 하는 귀족이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던 메시부고는, 공작의 집사가 되어 온갖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그의 연회는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페라라 공작의 명성도 높아졌다.
모라티는 페라라 공작령을 잘 알지 못한다. 베네치아처럼 향신료 무역이 발달한 곳도 아니고, 피렌체처럼 금융으로 이름을 알린 곳도 아니니까.
뭘 하고 먹고 사는 동네인지는 모르겠지만. 화폭에서 뛰쳐나온 듯한 엄청난 연회의 소문만 들어도, 부유하고 막강한 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메시부고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데스테 공작의 대사로 임명되어 밀라노, 베네치아, 볼로냐 등에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찰스 5세로부터 궁정백의 지위도 받게 되었다.
황제가 방문할 때마다 숙식을 책임지며 황제를 보좌하는 지위다. 세습되는 작위는 아니지만, 그 나름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다고 봐야 한다.
덕분에 메시부고는 엄청난 인맥을 얻었고, 각종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영지가 없어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재산을 모았다고도 하고.
‘그 정도는 나도…’
모라티도 나름 호화로운 삶을 살아왔다. 연회 기획쯤은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는 인맥을 백분 활용하여 모라티를 로렌조 캄페지오 대주교의 저택에 꽂아주었다. 때마침 집사가 은퇴하고 공석이 생겨 다행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모라티는 뛸 듯이 기뻤다.
‘캄페지오 정도면 나쁘지 않지!’
10년 전 로마 약탈 사건과 영국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잘나가는 성직자다.
펠트레 교구, 솔즈베리 교구, 볼로냐 교구 등을 도맡아 통치했고, 신성로마제국, 영국, 독일의 보호 추기경 자리까지 올랐었다. 교황의 외교 사절로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특히 찰스 5세와의 친분이 있어 황제가 그의 가족을 거두고 후원해줄 정도다.
이곳에서 오래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는 황제의 눈에 띈다. 자신의 실력이면 황제가 끔뻑 죽는 연회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다. 그리고 메시부고가 그러했듯, 궁정백 정도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쾅!
“그놈만 없으면!!!”
모라티가 대주교의 집에 왔을 때는, 스카피라는 요리사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요리사는 요리사.
집사의 손발이니까.
고작 서민 출신의 기술직이, 귀족의 교양있는 삶과 예술에 대한 미적 감각을 모방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래야 하는데…
쾅!
스카피는 모라티의 연회 기획을 단 한 번도 군말 없이 따른 적이 없다. 무언가를 시키면,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무산시킨다. 그리고, 스카피만의 색깔이 묻은 연회를 열며 모든 공로를 가로채 갔다.
한번은 너무 답답해서 대주교 저택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마에스트로(maestro di casa)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 어쩌겠나, 예하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자네도 일이 편해지고 좋지 않나? 스카피에게 맡겨두면 실패는 없네.
스카피는 특별한 요리사였다.
어딘가의 시골 귀족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를, 대주교가 우연히 발견하고 직접 데려왔다고 들었다.
천재.
모두 그를 그렇게 불렀다.
하필이면 천재를 우상시하는 시대에, 요리 천재가 태어난 거다.
대주교쯤 되는 성직자의 주방을 총괄하는 소프라쿠오코는, 원래 같으면 나이가 훨씬 많아야 한다. 최소 50대.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수십 년의 세월을 겪어야 그 직책에 오른다.
스카피는 아직 젊지만, 남들의 50년 경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실력이 있다고 들었다.
솔직히, 모라티는 잘 모르겠다. 재료를 섞어서 팬에 넣고 오븐에 넣으면 끝인 요리에 천재고 뭐고가 어딨나? 그렇게 치면, 빗자루질의 천재, 돌팔매질의 천재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모라티가 뭘 믿고 말고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대주교다.
스카피는 대주교가 직접 선택한 요리사.
그만큼 신뢰가 두터웠다.
다 늙어빠진 노인네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임금을 챙기니 이만한 보직도 없다고 말했지만…
모라티는 젊다.
야망도 있다.
이곳은 인생의 시작점이지, 종착지가 아니다.
자신의 실력으로 연회를 열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올라가고, 인맥을 얻어 사업까지 할 계획이었다. 그런 그에게, 스카피는 최대의 방해꾼이었다.
‘차라리 대놓고 대들면 좋으련만.’
신분 차가 있으니, 태도가 건방지다면 해임할 핑곗거리라도 생긴다.
하지만.
스카피는 약아 빠졌다.
말투는 항상 공손하게. 자신은 무해하다는 걸 강조하듯이 가끔은 멍청한 척을 하기도 한다. 명령을 거부할 때도, 항상 기술적인 이유를 들먹였다.
‘만만한 놈이 아냐.’
능구렁이처럼 실실 쪼개며 요리조리 피해가고, 모라티의 계획을 싸그리 뭉개버리고, 뒤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놈을 없애려면…
우선 대주교의 신뢰를 무너트려야 한다.
‘빨리해야 하는데…’
로마는 지금 들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카니발이 재개되었다. 로마의 약탈 사건 이후로 9년 만에 처음으로 축제가 열린 거다.
게다가 황제의 튀니지 전쟁 승리와 로마 방문.
교황은 황제를 맞이하기 위해 로마의 빈민촌을 싹 밀어버리고 도시 정비까지 하고 있다. 이탈리아반도 전역의 귀족들이 로마로 모여들며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엄청난 연회와 축제가 열린다.
이름을 남길 거면 지금이 기회다.
그 전에,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
“스칼코!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어느새 일을 맡겼던 보조가 다시 돌아왔다.
“문지기는 모두 동의했나?”
“네, 앞으로 요리사가 추가로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모라티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나는 처리했고.
“연못 쪽은 손을 써두었고?”
“네. 문제없을 겁니다.”
다른 하나의 안건도 처리되었다.
내일이 되면 스카피는 선택해야 할 거다.
‘나를 따르든가, 아니면 망신을 당하든가.’
이건, 마지막 기회다.
#
“계약 조건은 만족하나?”
”네, 생각보다… 후하네요.“
“이 정도는 해야 일할 맛이 날 테니까.”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는 길.
스카피는 한길에게 계약에 대해 물었다.
계약 조건은 후한 정도가 아니었다.
방을 지정해주는 건 물론, 방안에 갖춰져 있어야 물품도 정해 있었다. 심지어 계약은 한길에게 배분되는 식량까지 명시하고 있었다.
하루에 빵 3 파운드, 고기 1 파운드, 와인은 일반 테이블 와인으로 5 리터가 주어진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날에는 계란 여섯 개와 생선 1 파운드가 제공된다.
그 외에도 주방에 들여오는 동물의 가죽과 내장, 동물 기름은 스카피의 지시에 따라 나눈다는 사항이 있었다. 1년에 한 번, 손님 접대용 의복을 제공해 준다는 조건도.
“계약에 대해 추가 질문은 없나?”
“아니, 지금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게 아니라 예하가 주는 것 말고, 나에게서 원하는 건 없냐고. 무엇이든 말해도 좋으니까.”
스카피의 눈빛은 진중했다. 나름 괜찮은 요리를 많이 선보이긴 했지만, 약빨이 과한 느낌도 들었다.
원하는 거라…
한길이 원하는 건 정해져 있었다.
“대주교 예하의 요리를 맡고 싶습니다. 조만간 중요한 손님이 오시면, 그 요리도 맡았으면 하고요.”
“흠.. 그게 조건인가?”
“조건?”
“아무것도 아냐. 예하의 요리사로 바로 고용하겠다 했으면 분명 거절당했을 테지. 일단 주방에 들어오고 적당히 상황을 보며 옮기면 되니까 그건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네.”
“한동안은 다른 요리사들이 만드는 요리를 보며 어깨너머로 레시피를 익혀둬. 지상의 요리는 모를테니까.”
“네.”
“새로운 메뉴는 일상에서는 쓰기 어려워. 전에 만든 계란 요리 같은 건 특별한 날에만, 언젠가 조만간 써먹을 테니 잊지 말고.”
주방으로 돌아오자, 스카피는 요리사들을 불러모았다.
스카피의 주방에 요리사는 많지 않았다.
견습생과 보조들은 꽤 되었지만, 실제로 불 앞에 서는 요리사는 한길과 스카피를 제외하면 여섯 명이다.
“앞으로 함께할 쿠오코, 마크다. 이탈리아 요리는 모르지만, 요리에 대한 건 니들 위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레시피 질문을 하면 그대로 얌전히 알려주도록. 그리고 한동안 예하의 식사는 내가 직접 만들겠다.”
“네!”
“마크는 다리오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살펴보고.”
다리오는 아까 스카피에게 치즈를 가져다준 청년이었다. 얼굴에 젖살도 빠지지 않아 상당히 앳되 보였다. 그는 환한 웃음으로 한길을 맞이했다.
“정말 어찌 될까 싶었는데, 마크가 와서 다행이에요. 요리하신 지는 오래 됐나요?”
“그런 셈이죠? 오늘은 무슨 메뉴인가요?”
“아, 이건 거세한 수탉 요리인데요…”
스카피의 레시피는 영국 요리에 비하면 정교했다.
다리오는 오래 숙성된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염지가 안 된 신선한 치즈를 비율에 맞춰 섞고, 호두와 육수에 절인 빵가루와 함께 막자사발에서 갈아냈다.
그렇게 만든 치즈에 건포도와 버터를 넣고 후추와 시나몬으로 간을 해준다. 계란을 넣어 흐르지 않게 적당한 점도를 더해주고.
거세한 수탉은 살을 발라내고, 그 속에 방금 만든 치즈 속을 넣어서 돌돌 말아준다.
“냄비에는 프로슈토, 시나몬, 생강, 너트맥, 사프란, 화이트 와인, 베르쥬스, 그리고 자두와 건포도가 들어갑니다. 이대로 삶아준 후, 익으면 바닥에 고인 소스를 얹어서 냅니다.”
말로만 들어서는 상상이 안 가는 조합이었다.
“프로슈토를 닭고기에 입혀주는 건 어떤가요?”
“입혀줘요?”
“둥둥 떠다니는 것보다, 닭고기에게 외투를 입히듯이 말아주면 그 향이 더 잘 배어들 텐데.”
“아!”
의견을 제시하니 바로 따른다.
완성된 요리를 맛보니…
특이한 맛이었다.
닭고기는 그 자체만으로 육향이 부족한 편이지만, 프로슈토를 두르니 제법 맛있었다. 생강과 화이트와인이 잡내를 잡아주었고 베르쥬스가 식초처럼 산미도 보태주었다.
여기까지는 이탈리아 요리 같지만…
소스는 굳이 말하자면 인도나 아랍의 향이 느껴졌다. 시나몬과 너트맥, 사프란의 향이 더해져서 묘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특이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인도 카레를 올린 느낌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퓨전 요리 같았다.
“프로슈토를 마는 건 마크가 말한 건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스카피가 서 있었다.
“네, 그편이 향을 입히기 좋아서요.”
“그런 조언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지! 아니, 한 놈씩 돌아가면서 다섯 개씩은 던져줘! 열 개 이상씩 던져주면 오늘 나온 새의 깃털은 몽땅 네놈에게 줄 테니까!”
스카피는 상당히 만족하는 듯했다.
사실…
이 주방은 한길이 봐도 조언이 필요해 보였다.
요리사들은 열심히 하려는 것 같았지만, 사소한 실수가 잦았다. 실수인지 모르고 반복하다보면 잘못된 버릇이 들기 십상이다. 스카피는 자신도 요리를 해야 하니 그걸 미처 못 볼 때가 많았고.
안 그래도 계속 거슬리던 참이었는데, 허가가 떨어졌다.
한길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다리오! 계란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겉돌아. 이러면 구워낼 때 계란 노른자 흐른 자국이 남아. 치즈 조금 더 추가!”
“네!”
“리카르도! 마늘 타는 냄새 올라와! 그 냄새가 올라오기 20초 전에 다른 재료를 올렸어야 했는데. 이대로면 쓴맛이 나. 버리고 다시 시작!”
“네!”
“알레시오! 양파가 아직 허여멀겋잖아? 황금색과 갈색을 띠지만 까만색이 되기 전까지, 충분히 익혀! 그래야 양파의 단맛이 나와. 불은 조금 약하게 숯을 세 개 정도 빼주고!”
“네!”
매일 열 두 명의 요리사들을 굴리는 한길에게, 여섯 명의 실수를 잡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한길은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레시피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재료를 다뤄야 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고. 다행히, 아직 미숙한 요리사들은 한길의 지시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리카르도! 마늘! 센 불에 마늘 넣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한길은 주방을 완벽하게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스카피가 다가왔다.
“네놈은 등 뒤에 눈이 달려 있나?”
“설마요.”
“아니면 등 돌린 상태에서 저놈을 어떻게 잡아낸 건데?”
“소리요. 팬에 닿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리카르도는 마음만 급해서 계속 서두르기도 하고요.”
“됐고, 잠깐 돌아봐!”
설명했음에도 스카피는 굳이 한길의 등을 확인했다. 등 전체를 두드리고 어깨뼈를 세게 누르며 문지른 후에야 한길을 놓아주었다.
“뭐, 잘 하고 있으니 다행이네.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해.”
“네.”
수시로 요리사들의 실수를 잡아내는 것만으로도 주방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요리사들이 신경을 집중하며 요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스카피의 신뢰를 받고, 대주교의 요리를 만들고, 황제가 오면 연회만 준비하면 되는 건가?’
너무 수월했다.
하지만 한길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퀘스트가 단 한 번도 수월하게 간 적은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문제가 터졌다.
#
“쿠… 쿠오코! 큰일 났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달려오는 이는 소토 쿠오코. 주방 보조다.
“뭔 소란이지?”
“그… 생선이…”
“생선이 뭐?”
“오늘 점심, 저녁에 사용할 생선이 이렇게…”
보조는 울상인 얼굴로 바구니를 내밀었다.
굳이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도, 비린내로 알 수 있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그.. 연못에 가니까 강꼬치가 모두 꺼내져서 바구니에 담겨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건 잘… 어제 아침에 확인할 때는 안 그랬는데요…”
이곳의 날씨는 제법 후덥지근하다. 염지도 하지 않은 생선을 땡볕에 놔두니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사용할 수는 없고.
“연못에 다른 생선은 뭐가 있지?”
“그… 참치와 바다거북이만 있습니다.”
그 말에 스카피의 얼굴이 굳었다.
참치와 바다거북이.
어제 집사가 만들라고 했던 메뉴다.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어?”
“그.. 물어보니, 최근에 인근 귀족에게 선물로 보내서 새로운 생선은 내일 들여온다고 합니다. 염지 된 생선이라면 있지만…”
“대주교는 염지 된 건 안 좋아하시지. 그건 손님용이야.”
“그래서…”
심각한 분위기.
재료가 없다.
“참치를… 가져올까요?”
보조의 말에 스카피가 인상을 썼다.
“그럴 수는 없지.”
“왜….”
“다리오! 정원에 가서 쓸만한 채소가 뭐가 있는지 보고와!”
“네!”
“알레시오, 리카르도! 당장 시장에 달려가서 생선이 있는지 알아 와! 그렇다고 아무거나 고르진 말고, 제대로 살이 오른 제철 생선인지 보고!”
“네!”
스카피의 명령에 주방 인원이 하나씩 달려 나갔다. 단둘이 남게 되자, 한길이 조심스레 물었다.
“육류를 다루면 안 되나요?”
“오늘은 금요일이잖아?”
“…!”
영국에도 있기는 했다.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날이.
이 시기에는 교회에서 고기를 금하는 날들이 있었다. 사순절처럼 장기간에 걸친 금식 기간도 있었고, 요일마다 번갈아 가며 고기가 금지될 때도 있었다. 금요일은 항상 금지되었고.
사실…
고기를 먹는다 해도 감옥에 가는 건 아니다.
벌금을 내면 될 일이지만…
대주교나 되어서 금요일에 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
“참치와 거북이라니, 많이 들어본 재료네요.”
“… 증거는 없을 거야. 바구니에 꺼내져 있었다고 하니, 재료 관리를 하는 집사보다는 주방 보조의 탓으로 돌릴 테고. 잘잘못을 따지면 우리가 불리해. 귀족의 말과 평민의 말은 무게가 다르니까.”
“시장에 재료가 남아있다면… 두 시간 내로만 도착하면 어떻게든 준비 가능하겠네요. 재료를 구해오지 못하면 참치를 요리할 건가요?”
“재료는 없을 거야, 적어도 생선은.”
스카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금요일에는 우리뿐 아니라 로마 전체가 금식하잖아? 연못이 없는 귀족들도 많은데, 그들이 목요일에 좋은 물건은 다 쓸어갔을 거야. 지금 가도 남은 건 없고, 남았어도 신선한 물건은 없어.”
“그러면 왜 사람을 보낸 거죠?”
“만에 하나를 위해 행동했다는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잠시만, 방해하지 말고…”
스카피는 눈을 질끈 감고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한쪽 얼굴만 틀어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인데도, 묘하게 여유가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뭐, 꼭 생선만 먹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고기만 안 먹으면 그만이지. 장을 봐야겠어. 같이 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