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7화(157/325)
157. 뷔페와 코스 요리
“어딜 갔다가 이제 오지?”
저택으로 돌아오니, 주방에서 집사가 팔짱을 끼며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를 본 스카피는 일순 멈칫했지만, 금방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갔다.
“스칼코! 이 시간에 주방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되나? 그보다, 어딜 갔다 왔냐고 물었을 텐데?”
“재료를 조금 구해왔습니다.”
“설마, 지금 들고 있는 그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집사는 한길이 안고 있는 아티초크와 카르둔을 보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이런 걸 드시다 예하께서 탈이라도 나시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서민들은 꽤 자주 먹는 음식이거든요.”
“참치랑 거북이를 낼 바에는 잡초를 내겠다?”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지 말입니다. 저도 스칼코의 메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하늘을 찌르지만,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주님께서 못 듣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집사의 눈매가 사납게 찢어졌다.
한길은 집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눈빛이 이해가 갔다. 한길이 보기에도 스카피의 행동은 조금 얄미워 보였으니까.
“주방 인력을 보강하는 즉시, 스칼코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집사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자네가 너무 굼뜨니 내가 직접 해결책을 마련했네. 인사하게. 오늘부터 주방에서 일할 자들일세.”
집사의 뒤에는, 처음 보는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백작가에서 데려온 요리사들이지. 앞으로 요리사가 없어서 요리를 못 만드는 사태는 없겠군.”
“….”
집사는 희열에 찬 눈으로 스카피의 얼굴을 살폈다.
스카피의 얼굴은, 웃음이 사라지고 텅 빈 백지상태였다.
‘하긴, 나 같아도 기분은 안 좋을 테니까.’
만약 카키가 상의도 하지 않고 멋대로 요리사를 구해와서 오늘부터 주방에 투입하라고 한다면? 한길 역시 기분은 좋지 않을 거다. 저들처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스카피는 귀밑을 몇 번 긁적이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새로 온 요리사들에게 다가갔다.
“반갑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여독이 쌓였을 테니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게.”
“아니, 바로 주방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 백작가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족히 사흘은 걸렸을 텐데!”
“일주일 걸렸습니다.”
“아이고 이런, 걸어서 왔구먼! 그래,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지. 혹여나 백작가나 되어서 마차도 내주지 않았다고 야박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이것도 다 스칼코의 깊은 뜻이 있는 거니까. 그래도 휴식이 중요하니 방에 들어가서 조금 쉬다가 저녁부터 합류하게.”
“아닙니다. 바로 시작 가능합니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열성적인 인재들이 다 있나! 그래, 환영하네!”
스카피는 새로 온 이들의 등을 한 번씩 토닥거렸다. 조금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감사합니다, 스칼코! 역시 믿을 사람은 스칼코밖에 없습니다.”
스카피가 다시 활짝 웃으며 다가가자, 집사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귓가에 앵앵거리는 모기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다.
“이게 다 자네가 덜떨어져서 그런 것 아닌가.”
“그건 그렇네요. 사흘 전에 그만둔 요리사를 대체할 인력을 일주일 전부터 알아보시다니! 저에게는 스칼코와 같은 능력이 없습니다. 역시 배우신 분들은 다르군요, 하하.”
집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저들은 크레덴자(credenza) 전용 요리사네. 이 사태를 예상한 게 아니라, 전부터 크레덴자 요리사를 따로 구하려고 했었지. ”
“아, 그렇군요.”
“크레덴자 담당이라고 차별하지는 말고. 나는 저들을 데리고 메뉴 상의를 할 테니 쿠치나는 알아서 하게.”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집사는 새로 온 요리사들을 데리고 주방을 나갔다.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본 후에야 스카피는 중얼거렸다.
“이건 좀… 곤란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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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채소 손질을 하고 있어!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네, 쿠오코!”
“마크는 잠시 나와 얘기 좀 하고.”
스카피는 주방의 다른 요리사들에게 일감을 나눠준 후, 마당으로 한길을 끌고 갔다.
단둘이 남게 되자, 스카피는 실망했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놈, 예지력은 없나 보군.”
“당연하죠. 크레덴자 담당은 뭡니까?”
“뭐긴, 말 그대로 크레덴자를 담당한다는 거지.”
“그 크레덴자가 뭔지를 묻는 건데요.”
“크레덴자를 모른다고? 어디서.. 아,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군. 여기 지상에서는 말이야…”
“영국에는 없는 문화라 모르는 겁니다.”
“아, 그래. ‘영국’에는 없으니까.”
‘영국’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면서 스카피는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영국’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식사할 때 두 종류의 서비스가 나가지. 서비치오 드 쿠치나(servitio di cucina)와 서비치오 디 크레덴자(servitio de credenza)라고 불러. 쿠치나는 주방이라는 뜻이고 뜨거운 요리야. 크레덴자는 크레덴자 테이블을 뜻하고 차가운 요리지. 쿠치나는 내가 담당하고 있고, 크레덴자는 스칼코가 맡고 있어.”
“그런 설명으로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흠… 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군.”
스카피는 근처에 있는 마른 지팡이를 주워서 땅에 간단한 낙서를 그렸다.
“이렇게 방이 있고 이게 대주교 예하가 앉아계신 테이블이라면… 여기, 이게 크레덴자야.”
식사하는 공간에는 최소 두 개의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다.
손님이 앉은 테이블.
그리고 벽면에 세워진 기다란 사이드 테이블.
이 사이드 테이블을 크레덴자라고 불렀다.
“이 위에는 식사에 필요한 접시나 쟁반, 식기, 물병 등을 올리지. 향신료도 있고, 과일이나 요리도 올라가.”
어떻게 보면 뷔페와도 비슷했다.
음식을 담을 그릇을 비롯하여 전채, 과일, 디저트류의 요리가 차려져 있다. 가끔 본격적인 식사 메뉴도 올라갔지만, 따뜻하게 유지하는 장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차갑게 식어버린다.
하지만 뷔페와는 다르게, 손님이 직접 테이블로 가서 요리를 가져오지 않는다. 집사 보조들이 알아서 크레덴자의 요리를 세팅하고 테이블로 들고 온다고 한다.
“1코스 식사라면 크레덴자 서비스 한 번, 쿠치나 서비스 한 번이 나가. 2코스라면 크레덴자-쿠치나-크레덴자-쿠치나 순서로 나가고. 한 코스당 요리는 최소 다섯 개, 많으면 여든 개 까지도 만들어본 적도 있어.”
“그걸 다 먹을 수 있나요?”
“다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뭐, 이건 말로 듣는 것보다 한번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거야.”
‘영국이랑은 전혀 다르네…’
처음 접하는 문화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요약하자면,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귀족 식사는, 뷔페와 코스 요리가 동시에 나갔다.
뷔페는 집사의 담당.
코스 요리는 스카피의 담당.
이 두 개가 번갈아 가면서 나간다.
“크레덴자 메뉴는 집사가 정하고, 주방 메뉴는 내가 정하지. 두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니 메뉴의 관리는 집사가 하고. 단, 메뉴를 만드는 건 주방이니까, 나도 못 만드는 메뉴는 거부할 수 있어.”
“요리사도 거부권이 있나요?”
“간단히 생각하면, 집사는 머리고 내가 손발이야. 머리로 그 어떤 상상을 해도 손발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만들 수는 없으니까.”
집사가 상사라고는 해도, 총주방장의 권한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집사가 떠올린 메뉴를 만드는 이는, 결국 요리사니까.
“지금까지 멍청한 메뉴는 모두 기각시켰었는데, 설마 손발을 따로 구해올 줄이야.”
“… 저, 스카피.”
“왜?”
“이러니까 미움받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집사가 만드는 것보다 내가 만드는 게 더 맛있는걸?”
스카피의 태도는 당당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집사가 어떤 메뉴를 주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온 거다. 분명 집사의 크레덴자 메뉴까지 본인이 내키는 대로 한 거고. 미움받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스카피의 얼굴에서는 미안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맛있는 요리를 위해서라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좋아하지도 않는 집사를 위해 배려심을 보여줄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집사가 조용히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 잔뜩 벼르고 있다가 이제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방해하면 곤란한데.’
이번 퀘스트에서 한길은 대주교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실패하면 대주교의 저택에서 쫓겨나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곳을 나가면 황제를 만날 수 없으니, 두 개의 퀘스트가 걸려 있는 셈이다.
“오늘이 결전이네요.”
“뭐가?”
“재료 사태도 그렇고, 새 요리사들이 투입된 시기도 그렇고. 집사는 오늘 결판을 내려고 각오한 것 같아서요.”
“역시, 네놈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저놈이 혓바닥은 썩었어도 머리는 돌아가는 놈이니까. 나랑 같은 시기를 노리는 거지. 앞으로 몇 주가 정말 중요하거든.”
“왜죠?”
“정체를 알 수 없는 놈한테 그것까지 알려줄 순 없지.”
말 안 해도 안다.
황제의 로마 방문이 있으니까.
그 연회의 지휘권을 두고 두 사람이 경쟁을 하는 거다.
“나는 조금 있다가 집사와 메뉴 얘기를 하러 가야 하니 그동안 네놈이 주방을 보고 있어. 맛은 확실히 챙기되, 모양새는 너무 화려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최대한 소박하게. 자네가 만드는 메뉴도 말이지.”
의외의 주문이었다.
이 시기에 최대한 소박한 요리를 만들라니…
“아, 너무 걱정 말고. 난, 이길 수 없는 싸움은 절대 안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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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피가 떠난 후, 한길은 주방을 돌아가며 살폈다.
오늘 주방에서는 한 코스, 총 열두 개의 요리가 나간다.
스카피가 만든 아티초크, 카르둔, 잡어 요리. 한길은 가지 요리와 수란을 만들기로 했다. 그 외에는 아몬드 우유로 만든 리소토, 양파와 대파로 만든 수프, 콜리플라워구이, 허브가 들어간 양배추 말이, 허브가 들어간 라비올리, 콜라비구이, 버섯을 곁들인 토스트 등이 나간다.
요리사들이 찾아온 재료 중에는 캐비어나 트뤼플도 있었다. 이곳에서도 캐비어와 트뤼플은 상당히 귀했지만, 스카피는 그 재료들을 모두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녀오셨습니까. 메뉴는 그대로 가나요?”
“그건 당연하지. 별다른 실수는 없었고?”
“네, 채소 다루는 건 다들 능숙하네요.”
“저놈들은 하인 요리를 주로 맡아왔으니 당연하지. 네놈도 이제 네놈 요리를 만들어.”
회의에서 돌아온 스카피는 바로 주방에 자리를 잡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집어 든 재료는 아티초크.
“뭘 그리 어슬렁거리고 있지?”
한길이 계속 힐끔거리자, 스카피가 인상을 썼다.
“어깨 너머로 레시피를 배우라고 하셨으니까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놈이 레시피를 베껴가려고 하는데, 내가 가만 놔두겠나?”
스카피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태평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야심을 숨기고 있다. 예리하고 계획적인 성격이지만… 이렇게 철이 덜 든 구석도 있었다. 웃으며 사람을 약 올리기 좋아하고, 지금처럼 이런 유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레시피를 알려주시면 저도 제 레시피를 알려드리죠.”
“이미 다 봤는데. 나만 손해 아닌가?”
“스카치 에그의 비결도 알려드리고요.”
“…!”
스카피는 저택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길에게 질문을 했었다. 어젯밤에 스카치 에그를 만들어봤지만,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설명을 들어보니, 스카피는 기름의 온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아직 온도계가 없는 세상이니까. 게다가, 이곳에서는 기름을 가득 부어 튀기듯이 굽는 조리법은 있지만, 아직 기름에 음식물을 퐁당 빠트리는 디프 프라잉 (deep frying) 조리법은 없었다.
스파키는 한길이 반죽을 떨어트리고 온도를 확인하는 과정을 ‘소환술 의식’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걸어오는 내내 자신에게도 알려달라며 떼를 썼고, 한길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사이에 저택에 도착해 버린 거다.
“친절하게 레시피를 설명해주시면 ‘의식에’ 대한 것도 알려드리죠.”
“네놈들은 꼭 그렇게 계산하면서 거래를 하려 들더라. 인간미가 없어, 인간미가.”
“인간이 아니라면서요.”
“인정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전, 인간입니다.”
“조심해. 계속 그렇게 우기면 피를 확인해 볼 수도 있으니까.”
스카피가 칼을 들며 씨익 웃자, 한길은 조용히 다섯 걸음 물러나서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스카피는 칼을 아티초크에만 사용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아티초크는 현대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한길은 이미 다듬어진 상태로 유리병이나 통조림에 보존된 아티초크만 다뤄봤다. 그래서 생물을 다듬는 모습은 신기했다.
‘버리는 게 반 이상이네.’
아티초크는 엉겅퀴의 꽃봉오리 부분이다. 두꺼운 선인장처럼 생긴 이파리가 겹겹이 겹쳐져 연꽃처럼 생겼다. 여기서 딱딱한 잎은 모두 제거하고, 부드러운 이파리와 꽃눈 부분만을 먹는다.
손질된 아티초크는 양배추를 가로로 반 잘랐을 때의 모양과 제법 유사하다. 꽃눈 부분이 분홍빛이라 장미꽃 같기도 했다.
“이건 다듬고 나면 바로 식초를 풀어둔 물에 담가야 해. 아티초크는 오래 놔두면 검게 변하거든.”
사과를 깎으면 갈색으로 변하듯이, 아티초크도 산화되어 금방 검게 변한다. 현대에서는 산화를 막기 위해 레몬이 담긴 물에 아티초크를 담가두지만, 스카피는 식초를 사용했다.
탕탕탕탕!
다음은 허브와 마늘을 다졌다.
파슬리, 그리고 처음 보는 허브를.
“왜 그러지?”
한길이 스카피의 칼날에 주의하며 다가가자, 스카피가 고개를 들었다.
“이 허브… 한번 맛봐도 되나요?”
“싫다면?”
“구름 계란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비법, 알려드리죠.”
“이런 장사꾼 새끼 같으니라고.”
스카피는 다시 고개를 내렸고, 한길은 허브 이파리 하나를 집어 들고 맛보았다.
[네피텔라(1등급)가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네피텔라(nepitella)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맛은 오레가노와 민트, 바질을 조금씩 섞은 듯한, 익숙하면서 조금 색다른 향이었다.
스카피는 네피텔라와 파슬리, 마늘 양념을 양배추 같은 이파리 안에 채워 넣었다. 올리브유와 화이트 와인을 넣은 냄비에서 아티초크를 조려주면 완성이다.
“한 번 먹어불 텐가?”
한길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카피는 아티초크 하나에 노란 올리브유 소스를 한 국자 끼얹어서 건네주었다.
그 맛은…
섬세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배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식감이 다르다. 삶은 양배추의 질깃함은 없고, 어린 순을 먹는 것처럼 연하다.
맛은 아스파라거스와도 비슷하지만, 아스파라거스 특유의 풋내는 없다. 미묘하게 견과 향이 나긴 했지만, 그 고소함이 강렬하지도 않다. 가벼운 허브와 올리브유 양념이 그 섬세함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향만 더해주고 있었다.
“괜찮나?”
“맛있네요.”
“다행이군,”
다음으로 스카피는 카르둔 요리를 만들었다.
카르둔은 줄기만을 사용한다. 카르둔 줄기는 겉이 매우 단단하고 세로로 줄이 새겨져 있어 셀러리와 거의 똑같은 생김새였다.
우유에서 한번 끓여줘서 떫은맛을 없애고. 또 와인과 오랜지즙을 넣어 한 번 더 삶아내는데도 그 조직감을 잃지 않았다. 그걸 다시 빵가루에 묻혀서 튀기듯이 굽고 치즈를 뿌렸다.
맛은… 아티초크와 비슷하지만 조금 씁쓰름하다. 시금치나 치커리에서 날 법한 떫은맛이 조금 섞여 있다.
‘미묘하게 다르네.’
전혀 새로운 맛은 아니다.
어딘가 익숙한데, 익숙한 맛과는 다르다.
한길은 저절로 컬러 차트를 떠올렸다. 가끔 앱에서 글자색을 선택하라고 할 때 보여주는 그런 색의 도표.
‘초록색’을 선택할 때 단계적으로 연두색, 녹색, 카키색, 청록색을 보여주듯이. 지금 먹은 재료들은 같은 계열이지만 조금씩 단계가 달랐다.
완두콩이 노란빛이 도는 연두색이라고 한다면, 아스파라거스는 녹색이 더 강한 연두색. 아티초크는 완두콩과 아스파라거스 사이에 있다. 카르둔은 카키색 정도 되려나. 치커리는 진한 녹색…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12색 색연필 세트가 갑자기 15색 세트로 변한 것처럼.
일반인이 보기에는 별 차이 없을지 몰라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색이 하나라도 늘어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는 재료를 각자 따로 생각해 왔었네.’
이렇게 분류를 한 적은 없다.
비슷한 계열끼리 엮어서 팔레트를 만든다면?
조미료도 계열별로 엮어서 정리하고. 그림을 그릴 때 물감을 섞듯이 조합을…
“뭔 생각을 그리하지?”
“아닙니다.”
뭔가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자세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스카피는 마지막으로 망둥이 요리를 했다.
손가락 크기의 잡어를 손질해서 올리브유에서 튀겨내고,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튀김 위에 레몬 대신 오렌지즙을 뿌리는 간편한 요리였다.
망둥이는 전어와도 같이 담백하고 고소했지만, 그 향은 훨씬 흐렸다. 오렌지는 현대의 오렌지만큼 달지 않아서 레몬과도 제법 비슷했다.
“맛은 전부 합격인가?”
스카피는 시식을 마친 한길을 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럼 이제 네놈 차례지. 저걸로 뭘 만들 셈이지?”
스카피의 시선이 한길의 자리에 있는 토마토와 가지로 향했다.
“가지 파르미지아나요.”
“파르미지아나? 파르미지아노 치즈가 들어가나?”
요리명을 모르는 걸 보니, 아직 이 시대에는 없는 요리다. 토마토가 대중화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건가.
“금식 날에 치즈를 사용해도 되나요?”
“사순절에는 안 되지만 오늘은 사순절은 아니니까.”
“사용량에는 제한이 없고요?”
스카피도 치즈를 사용하긴 했지만, 소량만 흩뿌렸다. 한길은 그 이상을 사용할 예정이었기에, 확실히 물어보고 시작하는 게 좋다.
“딱히 양에 제한을 걸지는 않는데. 대체 얼마나 쓰려고 그러는데?”
“조금 넉넉하게요.”
“맛에는 자신 있고?”
“물론이죠.”
스카피의 요리는 맛있었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잡어 튀김이 하나 들어가긴 하지만, 나머지 요리들이 채소가 많아서 먹으면 금방 다시 허기가 질 거다.
그런 면에서, 한길이 만들려는 요리는 지금 가장 필요한 요리였다.
가지를 녹이듯이 구워내고 감칠맛 터지는 토마토소스를 버무린 후, 치즈에 파묻어버리는 요리.
맛은 물론 든든함까지 챙기는 요리.
이탈리아의 소울푸드라고 불리는데, 이게 실패할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