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8화(158/325)
158. 한길의 심문법
한길이 만들 요리는 가지 파르미지아나 (melanzane alla parmigiana).
어떻게 보면 라자냐와도 비슷한 요리지만. 파스타 대신에 가지를, 라구 대신 토마토소스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이다.
스카피가 회의를 하는 동안, 한길은 토마토소스를 미리 졸여놓고 가지를 손질해 두었다. 소금을 잔뜩 뿌려둔 가지를 들고 와서 그 위에 쌓인 소금을 걷어내자,
“소금은 간을 하기 위해서 뿌려둔 게 아니었나?”
스카피가 질문했다.
얼굴에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가득하다.
“알려드리면 뭘 주실 건데요?”
“뭐?”
“눈으로 보시는 건 공짜지만, 해설을 원하시면 값을 치르셔야죠.”
스카피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은 설명할 때마다 무언가를 요구했으면서.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건 스카피가 치사하게 굴어서 똑같이 되돌려주는 게 아니다.
‘정보가 필요해.’
집사와 스카피는 이미 황제의 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카피는 그 사실을 한길로부터 숨겼고.
아직 신뢰하지 않는 거다.
지금까지는 황제와의 접점만을 생각했다면, 이제부터는 상세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스카피의 정보가 필요하다.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거래하는 게 빠르다.
앞으로는 스카피의 호감을 사기 위해, 혹은 인정을 받기 위해 지식을 마구 나눠줘서는 안 된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다는 걸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나마 약점이 빤히 보이는 사람이라 다행이지.’
스카피의 약점은 하나.
요리.
스카피는 한길의 요리 뒤에 숨겨진 과학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호기심 단계.
호기심 때문에 황제의 정보를 털어놓지는 않을 거다.
조금 더 간절하게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맛보기로 조금만 더 보여주고…
보다 깊게 빠져들면…
필요한 정보를 캐낸다.
“궁금하지 않으시면 계속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스카피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품 안에서 밀랍 태블릿을 꺼냈다.
“계산을 할 거면 정확한 기록을 남겨야지. 어디보자, 내가 아까 아티초크를 식초에 담가둬야 한다고 알려줬었고…”
스카피는 자신의 이름 아래에 세 개의 작대기를 그었다.
“아까 세 개의 팁을 알려줬으니 네놈도 세 개까지는 알려줘야지. 불만은 없겠지?”
“네. 뭐가 알고 싶으시죠?”
“가지에 소금을 뿌린 이유.”
“수분을 빼내기 위한 겁니다.”
“수분?”
이 시대에 삼투압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다. 그러니 최대한 스카피가 납득 가능한 형태로,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
“소금은 식재료 안에 있는 물을 껍질 밖으로 끄집어냅니다.”
“소금만 뿌리면 물이 빠진다고?”
“생선도, 고기도 염지를 해서 수분을 빼내잖습니까.”
“그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수분이 빠지는 것도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까 그런거고. 이렇게 소량으로, 그것도 채소에 뿌려도 물이 빠진다고?”
“정 못 믿겠으면 나중에 양배추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수분이 가득한 양배추 위에 소금을 뿌려두고 밀봉하면, 수분이 빠져나가 물이 고이고 양배추는 흐물흐물한 상태로 변할 겁니다.”
“흠…”
스카피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소금에 절이는 조리법은 그 역시 해봤을 거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원리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거다.
“일단 알겠네.”
“알겠으면 계산을 해야죠.”
스카피는 마지못해 작대기를 그었다.
3:1
“말이 나온 김에 구름 계란과 튀김에 대한 것도 알려주지?”
“지금요?”
“네놈 마음 변하기 전에 들어놔야지.”
한길이 변심할까 봐 안절부절하고 있다.
이쪽이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 튀김은 반죽을 먼저 익히고 그 안에 가둬둔 재료를 익히는 요리인 겁니다. 반죽이 한꺼번에 갑옷처럼 재료를 감싸야 하기 때문에 기름에 퐁당 빠트리는 거죠…”
한길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계란 흰자와 딥프라잉의 원리를 풀이해 주자, 스카피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흥분이 차올랐다.
“반죽 안이 작은 오븐처럼 되는 거군! 기름에 익히면서 오븐에 넣는 효과도 동시에 노리다니! 이건 기발한데?”
순식간에 점수는 3:3
여기서 질문 하나만 더 하도록 유도하면 한길의 승리다.
‘너무 쉽네.’
다음 요리를 보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가지는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지 차이 나는 식재료다. 과학적인 조리법이 가장 중요한 재료이기도 하고.
한길은 다시 눈앞의 요리에 집중했다.
가지 파르미지아나에 들어가는 가지는 튀겨서 사용한다. 가장 먼저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 물을 섞어 걸쭉한 반죽을 만들어주고, 가지를 반죽 안에 담가 튀겨냈다.
차그르르!
반죽이 두툼하면 안 된다. 반투명 베일을 쓴 것처럼, 얇디얇은 튀김옷을 입혀주고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튀겨낸다. 체에 올려 기름기를 살짝 제거하면…
마지막은 조립.
오븐에 들어갈 팬의 바닥에 가지 튀김을 먼저 깔아준다.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고루 덮어주고, 치즈는 두 종류를 사용한다. 방금 갈아낸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얇게 썬 모차렐라 치즈.
한 층을 완성하면 다음 층도 다시 가지, 토마토, 치즈를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준다.
“이대로 오븐에서 30분만 구워주면 됩니다.”
“이건 별로 특별한 게 없는데?”
“보기에는 그렇죠.”
스카피는 실망한 얼굴이었지만, 이 요리는 직접 먹어봐야 그 진가를 안다.
30분 후.
주방 보조가 완성된 요리를 들고나오자, 스카피의 표정이 변했다.
잘 구워진 샛노란 치즈.
그 위를 장식하는 갈색 얼룩.
오븐 속에서 치즈가 끓어오르며 그을린 흔적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공기 중을 가득 채우는 치즈의 구수함.
토마토소스의 풍미.
“먹어봐도 되겠나?”
스카피는 두 눈을 파르미지아나에 고정하며 질문했다. 스카피가 총주방장이니 굳이 한길의 허가 따위 필요 없는데도 말이다.
“잠시 기다리세요. 덜어드리죠.”
끄덕.
한길은 일부러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조금 더 안달 나게 만들어야 한다.
황제의 정보를 털어놓을 정도로 간절하게.
식칼을 들고 와 케이크를 자르듯, 네모난 덩어리를 잘라내고. 뒤집개를 이용해서 덩어리를 들어 올리자,
주우우우욱!
치즈가 늘어났다.
한길은 기다란 치즈 실을 끊지 않고, 뒤집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렸다. 치즈가 점점 얇아지면서 스스로 끊어지도록.
속에 가둬져 있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고소한 치즈 향이 코안을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드셔보시죠.”
스카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포크를 쥐고 눈앞의 요리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총 네 개의 층이 있으니, 그 높이는 손가락 네 개를 세운 것과도 같다. 네모난 덩어리를 다시 한번 먹을만한 크기로 나누고 포크 위에 올리자,
주우우욱!
질리지도 않고 치즈가 다시 늘어났다.
스카피는 식히지도 않고 포크를 그대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후우… 후우…”
역시 뜨거운 모양이다.
허겁지겁 찬 공기를 빨아들이고 입안을 식힌 스카피는, 그대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입은 오물오물. 표정은 무방비하게 풀어져 있다.
“흐으으응.”
콧소리인지 신음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까지 내고 있지만,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긴 한데…
황제의 정보를 털어놓을 정도일까?
궁금해서 한길 역시 한 조각을 덜어내어 맛을 보자,
“…!”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고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상상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다.
통통하게 튀겨낸 가지는, 치아에 닿자마자 뜨거운 육즙 폭탄을 터트렸다. 가지에 무슨 육즙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입안에 터지는 맛은 육즙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육즙만이 주는 그 충족감과 만족감을 가득 담고 있으니까.
속에 감춰둔 즙을 모두 내어준 가지는, 그대로 녹아내려 혓바닥에 엉겨 붙는다. 녹진녹진하게, 유혹하듯이 혀 위에서 미끄러지는 식감이 관능적이다 못해 퇴폐적이다.
토마토소스는 푸근한 감칠맛과 약간의 산미를 더해준다.
파르미지아노 치즈가 깊은 풍미를 입혀주고, 모차렐라의 약간 밍밍한 듯한 우유 향이 여백을 만들어주며 밸런스를 맞춰준다.
“이건… 왜 이런 거지?”
어느새 한길도 눈을 감고 있었다. 스카피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스카피는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나도 가지를 만들긴 했지만 이런 맛이 난 적은 없어.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만드는 방법은 다 보셨잖아요?”
“그런데…?”
“알려드려요?”
스카피는 고개를 격하게 위아래로 끄덕였지만, 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설명이 조금 복잡한데 알아들을 수 있으련지…
“가지는 맛은 좋지만, 향이 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기름에 조리해야 그 맛이 살아나죠. 기름은 모든 맛을 몇 배로 증폭시켜주니까요.”
기름은 모든 식재료의 맛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기름의 맛을 잘 모르겠다면, 기름을 두르지 않고 구운 파전과 기름을 잔뜩 붓고 지글지글 끓이다시피 구운 파전을 비교하면 된다. 분명 같은 맛이지만, 몇배는 더 강렬한 그 맛.
기름에 튀겨낸 가지는, 특유의 향이 몇 배로 강렬하게 살아있었다.
“나도 기름에 가지를 조리해보긴 했는데 이렇게는…”
“식감이 이상했겠죠.”
끄덕.
“가지는 구조적으로 공기구멍이 많습니다. 스펀지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물에 삶으면 물을 빨아들이고, 기름에 삶으면 기름을 빨아들입니다.”
끄덕끄덕.
“기름이 과하게 들어가면 물컹물컹하고 기분 나쁜 식감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소금을 뿌려둬서 가지의 수분을 최대한 제거했죠. 이러면 공기구멍이 많이 줄어들어 적당량의 기름만 흡수하게 됩니다.”
기름은 한곳에 많은 양이 몰려있는 것보다, 얇은 실처럼 골고루 분포되는 편이 맛있다.
마블링을 생각하면 된다.
한길의 비법은, 가지 안에 가지의 향을 가득 품은 마블링을 만들어낸 셈이다.
“하나만 더 먹어도 되겠나?”
“계산 먼저 하고요.”
한길의 이름 아래에 작대기 하나가 더 늘었다.
“점수가 3 대 4이네요. 이러면 이번에는 제가 질문을 해도 되죠?”
한길이 가지 파르미지아나 한 덩어리를 더 덜어서 건네주자, 스카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한길은 심문을 시작했다.
“조만간 큰 행사가 있을 거라고 했었죠.”
“그렇지.”
스카피의 목소리는 반최면 상태다.
“특별한 손님을 위해 연회를 열 계획이죠?”
“뭐, 그렇지.”
“그 손님이 누구죠?”
“끄응…”
스카피는 일순 반항했지만, 가지 한 조각을 더 오물거린 후에는 순순히 털어놓았다.
“다음 주에 큰 연회가 있지. 손님은 조촐하게 대여섯 명 정도이지만, 중요한 자리야. 메디치 공작에 데스테 후작부인까지 오시니까.”
나름 쓸만한 정보이지만….
한길이 알고 싶은 정보는 아니다.
“그것 말고 이번 달 말에도 연회가 있지 않나요?”
“그건….”
어느새 접시가 비어 있었다. 스카피는 텅빈 접시를 보며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고.
“그건 지금 말해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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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코, 완성된 요리를 들고 왔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래, 들고 오게.”
집사는 눈앞의 요리를 보자마자 흐뭇하게 웃었다.
백작가에서 데려온 요리사들은, 집사의 주문 그대로의 요리를 들고 왔다. 이 저택에 들어오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초비 샐러드, 캐비어 토스트, 구운 트뤼플, 건포도 잼과 모스타치올리, 설탕으로 만든 마지판 비스킷, 아몬드 우유로 만든 푸딩, 철갑상어를 넣어 만든 파이…
‘호화롭군.’
보기만 해도 고귀한 밥상이다.
오늘은 특별히 힘을 가득 주고 귀한 재료를 많이 썼다. 손님이 없는 날에 이런 고급 요리를 낼 수는 없다. 저택의 마에스트로는 지출에 상당히 까다로운 인물이었으니까.
그래서 집사는 개인 돈을 사용했다.
최고급 와인, 트뤼플, 캐비어…
반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지출이었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황제의 눈에만 들면 이 몇 배를 한 달 안에 벌 수 있으니까.’
이토록 호사스러운 상차림이 스카피의 잡초 요리에 질 리 없다. 스카피를 내치고, 다음 주 연회에서 손님들을 사로잡고, 로마의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외칠 때 황제를 위한 특급요리를 낸다. 그 생각만으로 짜릿해졌다.
심지어 집사가 생각하는 요리는 무려…
“자네들, 혹시 늑대도 요리해본 적이 있나?”
집사는 눈앞의 요리사에게 질문했다.
최근 지인의 사냥터에 늑대가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그 늑대를 잡게 되면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을 해둔 상태다. 늑대 요리는 흔치 않으니,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화제가 될 거다.
스카피는 돌려서 거절했지만, 이 요리사들이라면 만들어줄 거다.
“음… 우연한 기회에 접해본 적이 있지만, 정말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맛없는 고기도 없거든요. 피 냄새가 정말 말도 못 해서…”
“냄새는 진한 소스로 없애도 되잖아?”
“소스는 맛을 없애는 게 아니라 덮어버리는 겁니다. 악취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희미하게라도 남아있죠.”
“그래서 못하겠다는 건가?”
“아니… 꼭 원하시면 하겠습니다.”
요리사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기색을 보였지만, 집사가 세게 나오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뿐 아니라 자신의 의견도.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요리사와 집사 관계 아니겠는가!
“가끔은 맛보다 중요한 것도 있지. 이 요리가 역사에 기록된다고 생각해 보게. ‘맛’은 문자로 기록하기 어렵지만, ‘늑대 다섯 마리가 올라간 상이었다’는 문장은 바로 와 닿지. 그 한 문장만으로도 위용이 드러나지 않나.”
“그렇군요. 저는 배운 게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자네는 이런 문화를 모를 테니까. 그냥 얌전히 내 말만 듣고 따라오면 곧 소프라쿠오코로 만들어주지.”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들어가서 마무리해.”
“네, 스칼코.”
겸손하고 착실한 요리사들이다.
그렇게 만족하고 있을 때,
“스칼코!”
주방으로 보냈던 보조가 달려왔다.
상에 올리기 전, 모든 요리는 주방에서 한번, 그리고 예하 앞에서 한번 시식을 한다. 독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시식을 위해 보냈던 보조가 당황하며 달려온 것이다.
“그래, 스카피의 메뉴를 맛보았느냐?”
“네. 저… 사실, 그게…”
갑자기 불안감이 스쳤다.
‘설마, 스카피 이놈… 못 만든다고 발뺌해놓고서는 갑자기 참치와 거북이 요리를 만든 건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자신을 골탕 먹이는 게 삶의 낙인 놈이었으니까.
“왜, 메뉴가 달라졌나?”
“아니, 말씀하신 채식 메뉴 그대로였습니다.”
“후우… 그러면 뭐가 문제지?”
“그게… 너무..”
“너무…?”
“너무… 맛있습니다.”
“…”
그저 어이가 없었다.
“네놈, 상인 집안 출신이었지?”
“네, 네…”
“경험이 없으니 고작 채소랑 잡초 풀떼기 몇 개 구운 거로 호들갑이지. 그러지 말고 서비스나 준비하게.”
“그렇지만…”
“예하께서 금방 오실 테니 손 씻을 물을 구해오고. 오늘은 오렌지즙을 풀어서 상쾌한 향을 입혔으면 좋겠군.”
“네, 준비하겠습니다.”
집사는 보조의 말을 무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라(sala)를 세팅했다.
대주교가 식사하는 공간은, 이 저택에서 가장 큰 방인 살라다. 식사할 때마다 테이블을 들고 와서 세팅해야 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더 신경 써서.’
집사는 테이블 위에 하얀 리넨 테이블보를 세 개나 깔았다. 냅킨을 곱게 접어서 올리고, 이왕 좋은 날이니 신선한 꽃도 들고 와서 상 위에 흩뿌렸다.
그리고 벽면에는 크레덴자를 준비했다.
‘오늘은 특별히 마욜리카 접시를 쓰자.’
마욜리카(majolica)는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그려진, 이탈리아의 명물 도자기다. 은접시보다도 귀하다.
크레덴자 위에 마욜리카 접시 스무 개를 탑처럼 쌓아 올리고. 고급 와인을 여덟 병 꺼내 세팅했다. 요리는 은쟁반에 담아 보기 좋게 진열했다.
마무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대주교가 살라로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바로 크레덴자로 향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모라티?”
“무슨 날이라뇨. 오늘은 육식을 못 하시니 기력이 쇠하실 것 같아서, 예하의 건강을 위해 최대한 힘이 나는 자리를 마련해봤습니다.”
대주교는 말없이 자리에 앉고 오렌지 물에 손을 씻었다.
그 사이, 집사의 보조들은 크레덴자의 요리를 마욜리카 접시에 고이 담아 서빙을 시작했다. 총 열두 개의 화려한 요리가 상 위에 차려졌다.
“오늘은 크레덴자 요리가 많군.”
“예하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이건 베네치아에서 직접 구해온 캐비어를 곁들인 토스트이고, 이건 나폴리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철갑상어로 만든 파이입니다.”
집사가 스카피보다 유리한 것 중 하나.
스카피는 주방을 벗어날 수 없지만, 집사는 항상 주인의 근처에 있다. 집사는 최대한 대주교의 입맛을 돋우기 위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고생했군.”
오늘따라 대주교의 말이 짧다. 평소 같으면 요리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칭찬도 더 많으신데.
그러고 보니.
입맛이 없으신지 잘 드시지도 않으신다.
“이건 피렌체의 장인이 만든 마지팬이고, 이건 시리아에서 가져온 최고급 건포도를 졸인 잼이죠. 이 와인은 밀라노에서 가장 명물이라고 불리는 와인…”
집사의 설명을 듣고도 반응이 없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건 분명….
요리가 입맛에 안 맞는 거다.
백작가 요리사 놈들이 피곤하다고 건성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이대로라면 스카피가…’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정말 스카피의 잡초 요리를 더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때, 입구에서 보조가 신호를 보내왔다.
주방에서 요리가 도착했다는 뜻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하인들은 따끈따끈한 요리를 상 위에 차렸다.
총 열두 개의 요리.
예상했던 대로, 생선 요리는 하나고 나머지는 다 채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접시.
스카피는 모든 요리를 평민들이 쓰는 나무 접시에 담아서 올렸다. 그냥 평민들이 쓰는 접시도 아니고, 너덜너덜한 것이 빈민이 쓸법한 접시다.
“오늘은… 주방 요리가 조금 소박하군.”
대주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사실 식사 초기부터 그런 것이지만.
이건…
기회다.
오늘의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모두 스카피 탓으로 돌릴 기회.
“죄, 죄송합니다, 예하!”
집사는 최대한 우왕좌왕하며 대주교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제, 제가 오늘은 정신이 너무 없어 주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을 못 해?”
“사실은 크레덴자 전용 요리사들을 따로 고용하는 바람에, 오늘은 그들이 제대로 적응하는지 확인하느라 바빴습니다. 스카피에게는 참치와 거북이 요리를 만들라 지시 했는데… 스카피라면 알아서 잘할 거라 믿었는데… 아마 제가 크레덴자 요리사를 따로 구해와서 화가 났나 봅니다.”
“….”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대주교 예하의 테이블에 이런 접시로 채식만 내다니! 이건 선을 넘었죠. 다 제가 사람을 다루지 못한 잘못입니다. 책임을 물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대주교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확인하고, 집사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려오는 말에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스카피를 불러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