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5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59화(159/325)
159. 각자의 재능
‘스카피 상태가 안 좋은가?’
캄페지오 대주교는 오늘의 식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베네치아에서 직접 구해온 캐비어를 곁들인 토스트이고, 이건 나폴리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철갑상어로 만든 파이…”
집사는 사설을 덧붙여가며 최대한 요리를 띄어보려 했지만. 저런 포장이 통하는 건 하급 귀족 정도다.
대주교는 교황과 황제의 사절로 활약해왔다. 유럽 모든 왕실의 초호화 요리를 질리도록 먹어본 대주교에게, 집사의 말은 공허했다.
어딘가 겉치레 같고 습관적이다.
막상 혀에 닿는 맛은 허전하고 풍성함이 없다.
한마디로, 진부했다.
‘식사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대주교는 부유했지만, 신분의 특성상 부를 원하는 만큼 과시할 수는 없었다. 값비싼 보석을 온몸에 칭칭 두르고 다닐 수도 없고, 화려한 옷을 맞춰 입을 수도 없다.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
바로 식사였다.
하지만 비싸고 귀한 재료도 하루 이틀이지. 몇십 년이나 유럽 전역을 다니며 호화로운 요리를 먹다 보니 그것도 금방 질려버렸다.
그러던 중, 스카피를 만났다.
스카피의 요리는 특별했다.
그의 요리를 먹으면, 둔감해진 혓바닥이 벼락을 맞은 듯, 찌릿한 자극과 함께 깨어났다. 정말 오랜만에 미각이 주는 순수한 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그랬는데….
오늘은 밍밍하다.
그 와중 상에 차려진 열두 개의 나무 그릇.
너덜너덜한 모습이, 마치 조용히 항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대주교 예하의 테이블에 이런 접시로 채식만 내다니! 이건 선을 넘었죠.”
집사와 스카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마에스트로를 통해 이미 들었다. 어떤 집안이든, 요리사와 집사 사이에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윗사람에게는 윗사람의 싸움이 있듯이, 아랫사람들도 밥그릇 싸움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건 아는데….
‘스카피, 너마저!’
스카피까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그만큼은 항상 변함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스카피는 보기 드문 존재였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게 요리에만 매진하는 요리사.
임금을 줄여도 좋으니, 대주교가 집을 비울 때는 여행을 다니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던 스카피다. 보다 좋은 식재료를 찾아 나서고 싶다며….
스카피의 유일한 관심사는, 항상 자신의 혀를 호강시켜주는 것. 그런 스카피마저 세상에 물들다니!
“스카피를 불러오게.”
최대한 점잖은 말투로 지시를 내렸지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예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스카피는, 평소와 같은 얼굴이다.
진실한 눈빛. 예의 바른 말투. 차분한 목소리.
농부 출신답지 않게 품격이 느껴지는 태도.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카피, 무슨 뜻으로 이런 상을 차렸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집사와의 갈등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요리를 낸 건가?”
스카피는 잠시 집사의 방향을 보았지만, 바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사이에 갈등은 없습니다. 전 진심으로 스칼코의 탁월한 안목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네놈이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이런 상을 차린 것 아닌가! 내가 분명 참치와 거북이를 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셨습니다.”
“나는 지시를 내린 후에 주방에 간 적이 없고 너와 대화도 한 적 없어. 모든 하인을 추궁해도 똑같이 답할 거다.”
“모라티의 말이 정말인가?”
스카피는 고개를 들어 대주교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진중한 눈빛이 마음에 든다.
“참치와 거북이 요리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진 건 사실이지만, 조리 시간이 부족하여 만들 수 없었습니다. 스칼코에게 조언을 얻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저 혼자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항상 자기 주제를 알고, 겸손하고, 거짓이 없다. 아까부터 쌓여있던 짜증이 조금 풀렸다.
“그렇군.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요리를 낸 거지?”
“귀한 재료로 끔찍한 맛으로 내느니, 소박한 재료로 최상의 맛을 내자 생각해서 지금의 상을 차렸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니까요.”
“금요일?”
“금요일에 금식하는 건, 주님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저는 배운 게 없지만, 주님이 드셨을 법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집사가 다시 소란을 피우자, 대주교는 손을 올려 그를 말렸다.
“스카피는 자네처럼 귀한 환경에서 자란 게 아니네.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몰라서 한 일이니 화는 거두게.”
“그.. 그럴 리가! 예하, 저놈은 그렇게 순진한 놈이 아닙니다!”
“남의 험담을 하는 건 보기 안 좋군. 스카피도 자네 조언을 구하려 했지만, 자네가 바빠서 못 들은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저는 대주교 예하 다음으로 스칼코의 조언을 그 무엇보다 깊이 새겨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내가 시키는 걸 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잖은가!”
“제가 미숙하여 실망을 안겨드려 항상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만하게.”
왜 이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그나저나, 주님이 드셨을 요리라고?”
대주교의 호기심이 동했다.
처음 들어보는 컨셉의 요리였으니까.
“주님은 가난한 자들, 평범한 농부와 어부들과 함께 다니셨으니 그런 요리를 많이 드셨을 겁니다. 여기 이 꽃봉오리는 이탈리아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먹는 엉겅퀴로, 아티초크라고 불립니다. 분명 주님도 맛보셨을 겁니다.”
스카피의 말에 하인 한 명이 아티초크를 작은 접시에 덜어서 대주교 앞에 내려놓았다.
소담한 아이보리 빛 꽃봉오리는 장미처럼 화사하지는 않았지만, 수수하면서도 조용한 품격이 묻어나는 생김새였다.
그 꽃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입안에 넣자, 은은한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깔끔하면서도 단아한 맛이었다. 고소하지만 과하지 않고, 섬세하면서 부드럽다.
역시.
스카피는 아직 이 세상의 때가 탄 게 아니다.
때가 탔다면 어떻게 이런 정갈한 맛을 낼 수 있겠는가.
“이쪽 역시 엉겅퀴의 일종인 카르둔입니다. 살짝 튀기듯이 구워낸 요리입니다.”
또 다른 잡초는, 잡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바삭한 튀김옷 안에는 약간의 쓴맛을 간직한, 어른의 맛이 느껴지는 고소한 풍미가 숨겨져 있었다.
‘정말 예전에는 먹을 게 없으면 잡초를 이렇게 만들어 먹었을까?’
궁핍한 요리이지만…
오히려 그 궁핍함이 상상력을 자극해서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항상 금욕적인 식단을 따르는 수도승들을 불쌍히 여겨왔는데. 이런 요리를 먹고 있었다면, 그들을 동정할 필요도 없는 거다.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
수수하면서도 색다르고 의미도 있다.
의미만 있고 맛이 없으면 꺼려지겠지만, 의미도 있는데 맛까지 갖췄다.
“이건 어부들만 먹는 작은 생선입니다. 좋은 생선은 시장에 팔고, 그물에 걸려든 작은 물고기만 먹는 거죠. 아마 주님의 제자들도 이런 생선만 먹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손가락 크기의 잡어는 크기는 작지만, 기가 막히게 담백했다. 새콤한 오렌지즙과 담백한 생선의 이중주. 딱 두 가지 맛만 느껴지는데도 그 심플함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모든 요리가 색달랐다.
하다못해 콜리플라워를 구워도, 파와 양파만으로 수프를 만들어도, 허브를 뜯어 라비올리를 만들어도. 길가에 버려진 재료도 스카피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황홀한 맛을 내게 된다. 이게 바로 스카피의 마법이다.
“마지막으로는 이걸 드셔보시죠.”
“이건 무엇이지?”
“가지라고 불리는 채소입니다. 유대인들만 먹는 천한 재료라고 불리지만, 주님 앞에서는 만물에 귀천이 없으니까요.”
눈앞에 또 다른 마법이 펼쳐졌다.
길게 늘어나는 노란 치즈.
그 안에 숨겨진 유혹적인 빨간 소스.
처음 맡아보는 푸근한 향.
이 모든 게 시각과 후각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경건해야 하는 대주교의 입장 따위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폭력적으로 자극하는 요리였다.
무서울 정도로 솟구치는 냄새를 맡으며 작은 조각을 입안에 넣자, 무심코 눈이 감겼다.
“으으음.”
자신의 입은 주책맞게 대주교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씹자마자 촤악하고 입안에 퍼져나가는 풍미.
사르륵하고 부드럽게 혀를 문지르는 촉감.
넉넉하게, 윤택하게, 푸짐하게 입안을 기름칠하는 이 맛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이 맛을 음미하는 자체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악과만큼이나 황홀한 맛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걸 신성하게 포장할 수도 있다.
이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자네의 요리도 한 걸음 더 하늘에 가까워졌구먼.”
스카피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것을 겨우 참았다.
“예하, 그건 제가 만든 요리가 아닙니다.”
“이걸… 다른 누가 만들었다고?”
“이번에 주방에 새로 들여온 요리사가 만든 요리입니다.”
“그렇군. 그 요리사는 어떤 인물이지?”
“영국에서 온 요리사입니다.”
“영국?”
‘영국’이라는 단어에 대주교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대주교는 영국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든 헨리 8세의 이혼 사건. 캐서린 전대 왕비와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한 헨리 국왕. 이혼은 인정할 수 없다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사이에 끼어버린 바티칸.
전대 교황은 이 중대한 사안을 캄페지오에게 떠넘겼었다.
영국에 직접 가서 헨리를 만나고, 캐서린을 만나고, 어떻게든 중재를 해보려 했던 그 시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결국 캄페지오는 황제의 편을 들었다.
영국의 보호 추기경 자리를 잃었지만, 그 대신 황제는 그에게 스페인의 주교직을 두 개나 주었고, 아들에게도 주교직을 하나 건네주었다.
어찌어찌 잘 풀리긴 했지만, 영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 하마터면 자신의 정치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뻔한 사건이었으니까.
“그를 불러올까요?”
“아니 됐네. 자네가 뽑았으니 그만한 인물이겠지. 그것보다 다음 주에 있을 연회 말이네.”
“네.”
“그때 여기 이 아티초크와 가지 요리만큼은 꼭 올렸으면 좋겠군.”
이 두 요리는 분명 화제가 될 터.
대주교의 밥상에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요리다.
그런데 스카피가 약간의 머뭇거림을 보였다.
“왜 그러지?”
“요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가지는 차가운 성질의 요리인데 그것을 보완해줄 요리를 앞뒤로 배치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들이 많은데, 최근에 혼선이 많아서 걱정됩니다.”
스카피의 시선이 집사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크레덴자 요리사를 새로 구해왔다고 했었지.
오늘의 상차림만 봐도 불협화음이 너무 심했다.
보아하니, 둘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게 아니라 집사가 스카피를 못마땅해하는 거다. 실력 있는 요리사에 대한 질투다.
“이번 연회는 스카피가 모든 요리를 맡도록 하지.”
“예, 예하! 제가 어찌 감히!”
스카피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겸손하다. 반면,
“예하, 그건 아니 됩니다. 연회는 요리가 전부가 아닙니다! 스카피같은 천한 출신의 하인에게 맡기면 분명 실수가 생깁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말입니다!”
“저는 언제든 스칼코의 조언을 새겨들 마음가짐이 되어있습니다.”
조용히 받아들이는 스카피와 달리, 역시나 집사가 반발했다.
“업무를 조금 다르게 나누면 되지 않겠나?”
“네?”
“요리는 스카피가, 나머지는 모두 모라티가 맡는 거로 하지.”
“하. 하지만 그러면 크레덴자는…”
“크레덴자도 요리의 영역이니 스카피가 맡고. 대신 자리를 꾸미는 건 자네가 하면 되지 않겠나? 각자의 특기를 살리니 그게 더 자연스럽고.”
“하, 하지만 지금껏 요리사가 크레덴자까지 맡은 전례가 없습니다!”
다시 피곤이 몰려오면서 짜증이 났다. 모라티는 모라티 백작의 막내다. 백작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으니 웬만한 실수는 넘어가고 최대한 신경을 써주고 있었으나…
밖에서도 항상 남의 싸움을 중재하는데, 집안싸움까지 직접 나서야겠나.
“내 집에서 내가 하라는데 웬 말이 그리 많지?”
그제야 집사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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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연회의 크레덴자와 주방 요리까지 전부 맡게 됐지! 나한테 맡겨두면 된다고 했지?”
스카피는 주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다 생각이 있다니까 그러네! 내가 대주교 예하를 다루는 법은 귀신같이 안다니까?”
“그건 다행이네요. 집사는요?”
“요리에는 손끝도 대지 말고 접시나 닦으라고 예하께서 말씀하셨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뭐, 요약하면 그렇다는 거지.”
스카피의 말을 듣고 한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리가 나가기 전, 스카피가 소박하다 못해 허름하고 초라한 그릇 위에 요리를 담을 때, 한길은 극구 반대했었다. 스카피는 강경하게 밀어붙였었고.
– 이렇게 해야 예하와 직접 대면할 수 있어. 원격으로 싸우면 무조건 지게 되어 있어. 불려가야 해! 무엇보다, 맛만 있으면 절대 내가 신뢰를 잃을 일은 없어.
스카피는 호언장담했지만…
신중한 성격의 한길이 보기에는, 도박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뭐, 어쨌든 잘 풀렸으니 다행이지! 그보다, 이제 하인 요리를 만들어야지!”
대주교가 식사를 마치면, 집사를 비롯한 귀족 출신 시종들이 밥을 먹는다.
대주교가 홀로 스물네 접시나 되는 요리를 다 먹을 수는 없다. 남은 요리는 시종들의 상 위에 올라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으니, 파스타나 몇몇 요리를 추가로 더 만들어서 올린다.
거기에서 남는 요리는 또 하인들이 먹고. 또 남는 요리는 다른 식솔들이 먹는다. 저택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배를 채운 후에야 요리사들도 식사한다.
모든 업무를 마치고 주방 인원들이 밥을 먹을 시간.
“스카피.”
“왜?”
“또 달리 드셔보시고 싶은 요리는 없으신가요?”
“네놈이 만들려고?”
“네.”
스카피는 기대감에 눈을 빛냈고, 한길은 머릿속으로 남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스카피를 어떻게든 해야 해.’
스카피는 무모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으며, 정보도 제대로 공유해주지 않고, 헛소리까지 하는데… 심지어 한길의 상사다.
연회 전에는 최대한 스카피가 한길의 말을 귀담아듣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보도 더 캐내야 하고.
그리고 한길의 유일한 무기는,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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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와당탕!
방으로 돌아온 집사는,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앞의 책상을 통째로 엎어버렸다.
“그 개자식이!!!”
크레덴자 요리를 가져가다니!
집사의 권한을 앗아가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눈알이 뒤집혔다.
오늘 점심을 위해 거금을 썼다. 한동안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하는데… 얻은 게 없다. 가장 달콤한 보상을 스카피가 앗아갔으며, 심지어 집사의 권한까지 빼앗겼다.
연회가 열리면, 그때 차려진 음식이 항상 화제가 된다. 더불어, 누가 만들었는지도.
그런데.
앞으로 열릴 대주교의 연회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스카피의 이름이 붙게 된 거다.
“젠장! 젠장! 젠장!”
그것도 하필 당장 이번 연회부터라니!
엄청난 귀빈이 오는 자리인데!
이번 연회에는 메디치 공작이 참석한다.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은 다른 귀족과 비교할 수 없다. 일반 귀족이 꺼내는 이름은 한 지역에만 머무르지만, 메디치 공작이 꺼내는 이름은 순식간에 몇백 명의 귀족 입에 오르내린다.
‘그보다 더한 건… 데스테 후작 부인!’
이자벨라 데스테 후작 부인은 미식 명가로 알려진 페라라 공작령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현 페라라 공작의 누이이자, 만토바의 후작 부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귀족 부인의 동경 대상이다.
그녀는 남편의 부재 동안 만토바를 섭정했으며, 전쟁을 막기 위해 프랑스의 국왕과 직접 협상을 하기도 했다.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하며 이 시대의 문화를 이끌어가기도 했다.
어떤 소설가는 그녀를 “지상 최고의 여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또 어떤 외교관은 그녀를 “전 세계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순이 다 되어가지만, 그 영향력은 메디치 공작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그녀가 새로운 장식품을 몸에 두르면, 그 패션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모든 귀족 부인들이 따라 한다고도 하니까.
그런 후작 부인이 스카피를 인정한다면….
“젠장!”
집사는 바닥에 쓰러진 책상에 분풀이했다. 발로 몇 번을 짓밟고 산산이 조각난 목재를 보고 나서야 기분이 조금 풀쳤다. 머리가 차갑게 식어왔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다.
적어도 그런 쥐새끼 같은 놈에게는.
‘아직 기회는 있어!’
이번 연회에서 스카피가 실패하면, 집사가 다시 권한을 가져오게 될 거다.
이번 연회는 중요한 연회이긴 하지만, 전야제다. 황제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 영향력 있는 귀족들이 서로 친분을 나누는 척 하며 누가 어느 편에 줄을 설지 확인하는 자리다.
중요한 건 황제의 연회다.
이번 연회를 스카피에게 내어주고, 황제의 연회를 가져오면 된다.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전략을 짜자,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스카피만 실패하게 만들어야 해.’
이번 연회는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
집사는 모든 진행을, 스카피는 모든 요리를 맡는다.
즉, 모든 진행이 완벽하지만, 요리만 문제가 생기는 연회를 열면 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순탄하게 굴러가지만, 주방에만 문제가 일어나게끔…
“실비오!”
집사의 부름에 근처에 대기하던 보조가 달려왔다.
“예하의 별장에 사람을 보내서 주방을 확인하고 오라고 해! 지금 당장!”
“별장이라면, 거기는 분명 오븐이 망가져 있었는데요. 수리해둘까요?”
“아니, 보고만 와. 절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몰래.”
대주교의 별장은 로마의 외곽에 있는 한적한 시골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따스한 봄에는, 귀족끼리 야외 정원에서 계절을 즐기는 연회를 열기도 한다.
장소 선정은 집사의 권한.
운이 좋게도, 그 별장은 이번 겨울부터 오븐에 문제가 있었지만, 날씨가 풀어질 때 수리하려고 미뤄두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또 다른 보조가 다가왔다.
“스칼코, 대주교 예하께서 보내오신 편지입니다.”
“무슨 편지?”
“데스테 후작 부인의 편지입니다.”
“하아.. 그 망할 할망구.”
후작 부인은 약아빠진 여인이었다.
혹여나 그녀가 미식 명가 페라라 출신이라는 걸 잊을까 봐, 항상 상기시켜주는 행동을 했다.
미식가가 미식가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틈만 나면 수많은 사람에게 미식 얘기를 해야 한다.
그녀는 툭하면 지인들에게 음식을 선물로 보내면서 맛있는 레시피를 함께 적어서 보냈다. 대주교의 집에도, 계절마다 가르다 호수에서 잡은 송어와 잉어를 보냈다. 지금 주방에서 사용하는 물소 젖으로 만든 치즈도, 그녀가 먼저 발굴해서 보낸 것을 스카피가 사용하고 있었다.
후작 부인은 항상 모든 연회 참석 전에 편지를 보내왔다. 그 의도는 뻔하다.
「최근에 프로슈토보다 월등히 맛이 뛰어난 모르타델라를 발견했습니다. 이번 겨울에 만든 것으로, 포 계곡 지대에서 만든 것보다 역시 로마냐 주의 물건이 맛이 뛰어나더군요. 예하께서도 이 맛을 즐기시고 잠시만이라도 근심을 내려놓길 바라며 한 통 보내드립니다. 예하의 연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가 재료를 보낼 테니 연회에 사용해 달라는 거다. 연회 도중 누가 모르타델라의 맛을 찬양하면, 자신이 보낸 것이라고 추임새를 붙이기 위한 용도다.
귀족이라고 해도 항상 거금을 들여 연회를 열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남의 연회에 숟가락을 얹어서 명성을 유지하는 거다.
후작 부인이 인정하는 요리사는, 전 유럽에 소문이 나게 된다. 반면, 실패하는 경우도….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사태도 있었지!’
몇 년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백작가 요리사들을 불러와!”
“네, 스칼코.”
분명 백작가에 있을 당시 들었던 얘기니, 그들은 알고 있을 거다. 요리사들이 달려와 무릎을 꿇자, 스칼코는 서둘러 질문했다.
“몇 년 전에 데스테 후작 부인이 끔찍하다고 했던 새고기, 이름이 뭐였지?”
“새고기요?”
“너무 퍽퍽해서 사람 먹을 게 아니라고… 먼 길을 고생스럽게 들고 왔는데 역시 이탈리아에서 잡은 새가 맛있다고 했었잖아.”
“아, 터키! 칠면조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거!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나?”
“그게… 인도에서 왔다고도, 터키에서 왔다고도 하는 이국의 새인데, 거대한데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몸집은 큰데 맛은 밍밍하고, 지방도 부족해서 굽는 게 조금 까다로운 게 아니죠.”
“그래, 그거. 그건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 거지?”
“오븐이 아니면 무리죠.”
역시.
하늘은 자신의 편이었다.
이국에서 온 까다로운 새를 스카피같은 천한 놈이 알 리 없다. 귀족들도, 심지어 그 후작 부인까지 조리하기 힘들다고 한 새다. 그 와중, 오븐이 망가진 주방…
이렇게 모든 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자네들은 들어가게! 그리고 실비오!”
“네, 스칼코.”
“마테오를 불러와!”
“마테오 말입니까?”
“그래, 이것도 들키지 않게.”
명령을 받은 보조는 바로 달려 나갔다.
사람은 각자 하나씩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스카피가 요리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면, 자신은 전략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스스로 요리를 할 수는 없지만, 재능이 가진 사람들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사용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마테오는 서기의 밑에서 하인 중 한 명으로, 그 역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남의 필체를 기가 막힐 정도로 똑같이 따라 하는 재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