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6화(16/325)
< 16. 겉과 속이 달라도 >
‘자물쇠?’
<베스트 고르메>에서는 새로운 스테이지를 진출할 때마다 자물쇠가 열렸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자물쇠를 열면 무언가 얻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자물쇠를 클릭한다고 생각하자,
[히든 퀘스트를 발견했습니다.]+
<히든 퀘스트 ? 세기의 제빵사> .
목표: 세기의 제빵사, 에우리사케스에게 인정을 받으세요.
제한 시간: 3 시간
보상: 등록된 식당에 매일 150개의 빵이 무료로 배송됩니다.
실패 시: 이번 스테이지에서 제빵 아이템은 얻을 수 없습니다.
– 퀘스트 미진행시, 해당 퀘스트는 사라지고 두 번 다시 진행할 수 없습니다.
+
[히든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무료배송이라니.
한길의 눈이 번뜩였다.
안 그래도 손님이 늘면서 포인트가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
무료로 이런 최상품을 얻을 수 있다니.
놓칠 수 없는 기회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실패하면 지금 맛본 빵도 구할 수 없게 된다.
현실에서 아무리 찾아도, 방금 맛본 퀄리티의 빵을 구할 수는 없을 텐데.
‘인정을 받으라고……’
만약 퀘스트의 목적이 ‘에우리사케스 보다 더 나은 빵을 만들라’는 것이었다면 깔끔하게 포기했을 거다.
제빵은 지식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밀가루와 물의 배합 비율, 빵의 발효 상태, 열의 조절. 그 어느 하나 주어진 공식이 없다.
그날그날의 습도와 온도에 따라 반죽의 발효 상태가 달라진다. 오랜 경험이 축적된 손끝으로 그 발효 상태를 알아보고, 시간과 온도를 조절하며 구워내는 게 제빵이다.
기본적인 원리는 독학으로 공부해서 알고 있지만, 한길은 빵집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다.
평생 빵만 만들어온 장인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길 필요는 없다.
목표는 인정을 받는 것.
한길에게는 지식이 있으니,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왜 말이 없지?”
한길이 퀘스트를 수락하기가 무섭게, 노인의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 반죽에 무슨 짓을 한다고 했던가? 내 반죽에 불만이 있나 보지?”
“다른 빵들과 비교하면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대로라면 도저히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 어디서 감히, 이런 무례한!”
한길이 단호하게 말하자, 아들인 듯한 점원이 씩씩댔지만, 한길은 시선을 노인에게 고정했다.
그의 입꼬리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미약한 경련이 일고 있었다.
‘미완성이구나.‘
태어난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이상하게 한길은 노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한길 역시 많이 지어본 표정이니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보고 ‘이게 아니다’라는 건 알지만, 고치는 방법을 모를 때.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아서 느껴지는 갑갑함.
“칼 하나만 빌려도 되겠습니까?”
한길은 칼을 받아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납작한 빵과 발효된 빵을 썰었다. 그리고 두 단면을 나란히 진열했다.
매끈하고 다듬어진 모습의 납작한 빵 옆에 있으니, 발효 빵의 부족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분화구처럼 생긴 크러스트.
터져있는 껍질 아래에는 공기구멍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실망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과자 봉지를 열고 겨우 한 줌 밖에 안 되는 과자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그런 배신감을 주었다.
“이래도 완성도가 같다고 보시나요?”
“지금 누구 앞에서 큰 소리야? 원래 밀가루 발효종을 쓰면 끓어서 부풀게 되어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노인의 아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덤벼들 태세를 취했지만, 노인은 그를 말렸다.
“그래서, 이걸 고치겠다고?”
“5분만 주신다면요.”
에우리사케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길을 작업대로 안내했다.
“다들 비켜주게.”
“하지만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아침 손님이 몰려옵니다.”
“5분이면 되네.”
반죽을 만들던 인부들은 모두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얌전히 물러섰다.
“반죽이 필요하다고 했나? 알아서 고르게.”
에우리사케스의 눈이 시험하듯 한길을 훑었다.
실제로도 시험이었다.
작업대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있었다.
그들이 만들던 반죽도 다섯 개.
발효된 상태도, 성형된 상태도 다 다르다.
반죽도 제대로 못 고르는 사람이라면, 볼 것도 없이 바로 내쫓을 속셈이었다.
한길은 손을 씻고 반죽을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손에 찐득찐득하게 붙는 반죽 두 개는 걸러냈다.
다음으로는 양손에 반죽을 올려 들어보았다. 글루텐이 충분히 형성되면, 그 찰기로 동그란 모양이 유지된다. 중력에 못 이겨 살짝 가라앉는 반죽을 또 하나 걸러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으로 반죽을 꾸욱 눌러보고, 더욱 탄성 있게 올라오는 쪽을 선택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에우리사케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한길은 작은 손칼을 달라고 하고, 조심스레 반죽 한 가운데에 십(十)자 모양으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하얀 밀가루 한 줌을 쥐고 위에 흩뿌렸다.
“됐습니다.”
“…..”
“장난하나?”
“원래 하시던 방식대로 구워주시죠.”
한길의 말에 뒤에 있는 인부들도, 아들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워낙 간단한 기술이니까.
그래서 일부러 빵의 단면을 보여주고 다소 무례한 태도까지 취한 것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우연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으니까.
“그대로 하게.”
노인의 말에 직원 한 명이 나무 주걱을 가져왔고, 그 위에 반죽을 올리고 황토로 만든 뚜껑을 덮은 후, 화덕 오븐 안에 넣었다.
“뭐 하자는 짓인지.”
“아까운 반죽만 날렸네.”
“바빠 죽겠다는데 별의별 미친놈이 다 와서는.”
한길의 귀에 직원들의 험담이 들려왔다.
다소 험한 욕설까지 섞는 이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잠시 후면 알게 될 테니까.
“5번, 구워졌습니다.”
그 말과 함께, 인부가 한길의 빵을 화덕에서 꺼냈다.
덮어진 뚜껑을 여는 순간,
“뭐… 뭐지?”
“어… 어떻게?”
주변에 있던 이들이 입을 떡 벌리고 어버버하고 있었다.
한길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어두운 적갈색 빵은 윤기 있고 매끄러웠다.
옆구리가 터진 흔적은 없었다.
위에 뿌려둔 밀가루는 첫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뽀송뽀송했다.
칼로 그었던 부분은 꽃송이 모양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연한 토스트처럼 부풀어진 속살이 있었다.
식빵을 손으로 뜯을 때, 길게 찢어지면서 나타나는 질감. 그런 질감의 넓적한 속살이 얼기설기 엉켜져서 있었다.
스코링(scoring) 이라는 기술이다.
바게트 빵에서 흔히 보이는, 대각선으로 그려진 옅은 무늬.
이 무늬는 반죽 성형의 마지막 단계에서 칼질해서 만든다.
단순히 미관상의 이유는 아니다.
발효된 빵은, 어떻게 보면 풍선과 같다.
발효종이 활성화되고 소화를 하면, 가스가 생성된다. 그 공기를, 쫀쫀한 밀가루 글루텐 풍선 안에 가둬두는 거다.
문제는, 오븐에 들어가는 순간 발효종의 활동이 갑자기 왕성해진다는 것.
그 팽창을 감당 못 하면, 글루텐 풍선이 터지게 된다.
스코링은 가스가 탈출하는 길을 뚫어주는 작업이다.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통제하는 작업.
간단한 기술 같지만, 스코링은 19세기나 되어서야 대중화되었다.
심지어, 이 기법에 이름을 붙인 이는, 요리사도 아닌, 과학자였다.
요리는 과학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맛이, 식재료의 화학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하지만 당연히, 로마 시대에는 그런 상식이 없었다.
한길이 부풀어진 발효 빵을 썰어서 에우리사케스에게 건넸다.
“확인해 보시죠.”
#
‘희한한 젊은이네.’
에우리사케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청년을 지켜보았다.
나이는 20대 정도.
어딘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은 제법 순해 보였지만,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독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에우리사케스에게 있어 발효 빵은 미완성작.
즉, 실패작이었다.
그런 실패작을 도무지 쓸 수 없다고 하면서, 낱낱이 해체해서 자신의 눈앞에 펼쳤다.
에우리사케스의 치부를 공개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노예 출신인 에우리사케스는 살면서 악의에 찬 행동을 수없이 겪어왔다.
하지만 이 청년은 달랐다.
청년이 반죽을 바라보는 진지한 눈.
칼을 그을 때도, 확신에 찬 손길로 정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계산하듯이, 깊이도 확인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호기심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청년에 대한.
하지만 완성된 빵을 보자마자, 에우리사케스의 머릿속에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럴 수가!”
절로 탄식이 나왔다.
완성된 빵은 하나의 미술품 같았다.
어두운 적갈색의 크러스트, 연갈색의 속살, 그리고 하얀 밀가루가 아름다운 그러데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섬유질은 조각상처럼 정교했다.
‘이게 얼마만이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30년 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에우리사케스는 빵만을 바라보는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조금 더 맛있는, 조금 더 새로운 빵을 만들기 위해 청춘을, 아니, 일생을 바쳤다.
최정상의 위치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무덤 겸 기념비를 건설했다.
스스로의 재능을 믿었고, 지금껏 해온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언이었다.
쉰 살이 넘어가자, 에우리사케스는 처음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그것을 넘어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고민을 나눌 상대조차 없었다.
‘뭐, 이 정도면 됐지.’
‘지금도 충분한데, 어디까지 앞서 나가려고?’
모두가 그에게 멈추라고 말했다.
주변에는 이미 에우리사케스의 상대가 될만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올려다볼 뿐.
30년간 넘을 수 없는 벽만 바라보며, 공허함 속에서 살아왔다. 평생 자신의 동력의 되었던 열정과 희열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빵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오랜만에 심장이 다시 두근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새로운 빵.
그것도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 다른 이가 만들다니.
경계심보다는 흥분에 몸이 들끓었다.
“드셔보시죠.”
청년은 에우리사케스를 비롯한 모두에게 빵을 돌렸다.
빵의 단면을 살펴보니, 공기구멍이 달랐다.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전체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아니, 이런 맛이!’
그의 혀에 느껴지는 미각은 혁명에 가까웠다.
빠작!
단단한 외부 크러스트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씹혔다.
오도독!
칼날이 직접 스쳐 간 반죽은 돌돌 말린 상태로 구워져 진한 구수함을 주었다.
연하게 구워진 토스트는 부드럽게 고소했고, 내부의 속살은 촉촉했다.
전에 만든 빵에는 두 개의 층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네 개의 층이 각기 다른 맛으로 혀끝을 자극했다.
“어떤가요?”
“자네는….. 누구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르쿠스입니다.”
“마르쿠스? 길드원인가?”
“아니요.”
“이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청년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하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빵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바람의 힘입니다. 내부에 생기는 바람이 제대로 흘러가도록 길을 만들어 준 겁니다.”
단어 선택이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반죽을 길게 말아서 대각선으로 칼날을 그어도 잘 어울릴 겁니다.”
한길이 말하는 것은 바게트였지만, 에우리사케스가 설명만으로 그걸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좋았다.
에우리사케스는 정답이 주어지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반죽 안에 길을 트는 방법이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30년간 막혔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앞으로 갈 수 있는 방향은 무궁무진했다.
“자네, 제빵을 할 생각은 없나?”
“죄송합니다, 이미 직업이 있어서요.”
“직업?”
“요리사입니다.”
모처럼 꺼낸 제안을, 청년이 망설이지도 않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명색이 아우리사케스다.
로마 제일의 제빵사.
로마의 군대에도, 로마의 황제에게도 빵을 납품하고 있다. 자신의 아래에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권력을 쥐고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우리사케스는 다시 권유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세상의 금은보화를 다 줄 테니 빵을 버리라고 하면, 생각도 않고 거절할 터.
“포럼 근처의 루시아네 식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찾아오시죠.”
청년의 태도는 아까 자신의 치부를 공개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매우 공손했다.
“자네도 겉과 속이 다르구먼.”
“그건 욕이 아닌가요?”
“글쎄. 스펀지 케잌처럼 겉과 속이 같은 빵도 있지. 하지만 역시 빵은 시골 빵이 제일이거든. 겉으로는 단단한데, 속에서는 쉴새 없이 끓고 있어. 그래서 깊은 맛을 내고 오래가지.”
“그런가요.”
“언젠가 자네 요리도 맛보고 싶구먼. 루시아네라고 했나?”
노인의 질문에 한길이 환하게 웃었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눈앞에 보인 창 때문이라는 걸, 에우리사케스는 알지 못했다.
#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무사히 퀘스트를 마치고 한스키친으로 돌아온 한길은, 즐거운 마음으로 재료를 골랐다.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난 빵을 얻었다.
좋은 재료만큼 요리사를 기쁘게 하는 건 없다.
‘치킨 말고 다른 것도 해볼까? 소스 밀도도 바꿔보고……’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혹여나 사라질까, 노트를 꺼내서 급하기 끄적이기만 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요리를 만들어볼 수 있을지.
깨톡!
깨톡!
그때, 한길의 집중을 깨트리는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밤에 이렇게 연락할 사람이 없는데.
슬아였다.
―사장님, 이거 보셨어요?
―아, 당연히 안 보셨겠구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거, 사람 쓴 거 맞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저도 아이디 무한생성 가능한데, 키배 한번 뜰까요?
한길이 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무한한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한길은 슬아가 보낸 링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별스타그램의 링크였다.
< 16. 겉과 속이 달라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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