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16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161화(161/325)
161. 구경하고 있어!
“방법이 있나?”
“생각 좀 하고요.”
한길이 조용히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스카피는 손톱을 더욱더 세게 깨물기 시작했다.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사냥 갈 때는 오븐이 필요 없지만, 연회는 파이가 꼭 들어가야 해. 페이스트리도 빠지면 안 되고. 오븐이 없으면… 다른 대안이…”
이대로는 손가락을 통째로 씹어먹을 기세다.
“이럴 수는 없지… 어떻게 온 기회인데… 지금까지 얼마나…”
“우선.”
한길은 스카피의 손을 붙잡고 입에서 구출해냈다. 원래는 혼자 생각을 정리한 후에 결과만 알려주려 했지만, 그쯤이면 스카피의 손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이렇게 당황하는 게 이상했지만…
어떻게 보면, 스카피는 병적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대비하는 사람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준비성이 너무 철저해서 오히려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면하니 당황한 거다.
하지만 한길은 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세계에 던져진 것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이 정도 문제는 항상 겪어왔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우선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죠. 콜라시오네랑 크레덴자는 절반이 차가운 메뉴, 절반이 파이랑 페이스트리죠. 차가운 메뉴는 지장이 없지만, 파이랑 페이스트리는 타격이 크네요. 이 근처에 빌릴만한 오븐이 있을까요?”
“여기는 완전 시골이라 아무것도 없어.”
“그럼 로마 저택에서 만들어서 들고 와야겠네요.”
“저택에서?”
“말로 이동하면 두 시간이니까요. 차가운 파이는 그대로 사용해도 문제없고, 뜨거운 파이는 주물 냄비에 넣어서 한번 데워서 내죠. 그러면 주물 냄비를 몇 개 더 챙겨와야겠어요.”
주방 도구 중에는 거대한 주물 냄비가 있었다. 참숯을 주물 뚜껑 위에도 올려 위아래로 열을 전달하는 구조의 냄비다. 그 안에 넣으면 미리 조리된 음식을 데우는 건 가능하다.
“냄비는 몇 개를…”
“잠시 계산 좀 하고요.”
한길은 스카피로부터 등을 돌리고 메뉴 목록에 집중했다.
“열두 개만 있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음은 쿠치나 요리인데…”
까드득. 까드득.
스카피는 한길이 등만 돌리면 다시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구출하느라 은근히 손이 많이 갔다.
스카피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억울함? 원통함? 분노?
눈이 뒤집혀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듯했다.
“스카피.”
“왜.”
“제대로 얘기를 나눠야죠.”
“하고 있잖아.”
“저를 보시고요.”
“보고 있잖아?”
아니, 눈은 앞을 보는데 앞이 보이지 않고 있다. 10년 치 수고가 무로 돌아가기 직전이니 심경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다.
짜악!
한길은 결국 스카피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사람을 때리는 건 난생처음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선 정신부터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뒤만 돌아보면 앞을 못 봅니다. 똑바로 앞을 보세요.”
스카피는 한 손으로 방금 맞은 뺨을 감싸고 있었다. 황당하다는 얼굴로. 하지만 그 황당함은 잠시 후 괘씸함으로 바뀌었다.
“네놈, 지금 뭔 짓을 한 거냐?”
“정신 차리라고요. 메뉴 수정에 들어갑니다.”
“메뉴 수정?”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 우선 오븐을 사용하는 요리들을 표시해봤어요. 이건 찜으로 대체 가능할 것 같고, 이것도 조금 작게 썰어서 팬에 구워 조리 가능합니다.”
“… 이렇게 되면 팬도 조금 더 챙겨와야겠군.”
스카피도 조금씩 종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별도로 챙겨야 하는 도구와 재료도 필기하기 시작했고.
웬만한 메뉴는 수정이 가능했다.
문제는…
“칠면조네.”
“그렇네요.”
“네놈, 굴뚝 고치는 능력은 없나?”
“평범한 인간입니다.”
“뭐 이리 제약이 많아?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어느새 원래대로의 스카피로 돌아왔다.
한길은 그제야 스카피로부터 완전히 눈을 떼고 생각에 잠겼다.
칠면조는 열에 익혀야 한다.
오븐이 없다면 참숯이나 장작으로 통구이 바비큐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아피키우스의 만찬에서 했던 것처럼…
‘아니, 칠면조로는 안돼.’
바비큐는 열기를 가두는 오븐보다 조리 시간이 길다. 그만큼 고기는 건조해질 거다.
돼지고기처럼 지방이 넘쳐서 살코기 안을 촘촘하게 채워줘야 장시간의 조리에도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다. 버터까지 발라줘야 하는 칠면조와는 맞지 않는다.
못할 건 아니지만…
완벽한 조리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해서 실험해 봐야 하는데, 당장 내일이 연회이니 시간이 없다.
‘전기구이처럼 꼬치로 꿰어 굽는다면…’
그것도 칠면조와는 적합하지 않은 조리법이다.
기름을 쫙 빼내는 방법이니까.
정 안되면 삶을 수도 있겠지만…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칠면조 고기는 도무지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면서 속까지 제대로 익히는 조리법. 도축하지 않고 통으로 요리하는 조리법.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는 조리법. 미리 만들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다듬을 수 있는 조리법. 그런 게 있을 리가….
‘닭고기는 어떻게 했더라…’
칠면조는 익숙지 않지만, 닭이라면 조금 더 친숙하니 방법이 많을 거다. 응용하면 된다.
오븐구이도 있고, 삼계탕, 그릴, 전기구이, 그리고…
‘아!’
하나 있긴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조리법이.
“스카피, 여기서 가장 큰 냄비는 어느 정도 크기죠?”
“냄비?”
“좌우로 큰 게 아니라 통은 좁지만 깊은 냄비였으면 해요. 칠면조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는 돼야겠지만요.”
“아, 그거라면 하나 있기는 한데… 뭘 하려고?”
한길은 스카피의 질문을 무시하고 다음 재료를 확인했다.
“기름은 올리브유 말고 뭐가 있죠? 발화점이 높았으면 좋겠는데.”
“발화점이 뭐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땅콩…은 당연히 없겠고, 식용유도 없을 거고, 해바라기씨유도 없고… 이건 고온에서 오래 끓여야 해서 기름이 중요한데…”
“오래 끓여도 냄새가 안 나는 기름을 말하는 건가?”
“네.”
“홍화유는?”
“아! 그거면 되겠네요. 냄비를 가득 채울 정도의 양으로 구해와 주세요.”
“설마…”
“네, 맞아요.”
그제야 스카피는 한길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아예 통으로 튀겨버리려고요.”
#
“정말 이게 튀겨질까?”
“해봐야 알죠.”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닭고기도 통으로 튀겨서 통닭으로 먹으니까.
칠면조는 워낙 크기가 커서 통으로 튀길 생각을 못 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해줄 조리법이었다.
튀김은 조리 시간이 짧다. 닭 한 마리를 오븐에서 구우면 익는데 최소 40분이 걸리지만, 통닭은 20분 정도면 익는다.
오븐은 공기를 데워서 간접적인 열로 익힌다. 하지만, 튀김은 물보다 더 높은 온도의 기름에 빠트려 직접적으로 열을 전달한다.
“그런데 왜 주방에서 안 하고 밖에서 해?”
“위험하거든요.”
주방보조들이 필요한 도구를 모두 모으자, 한길은 마당에서 풀 하나 없는 구역을 찾아 그릴과 냄비를 세팅했다.
칠면조를 통으로 튀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안전이다. 자칫하면 대형 화재로 번진다. 사용하는 기름양이 워낙 많으니까.
튀기는 도중 칠면조 내부의 수증기가 탈출하면서 사방에 기름이 튀긴다면… 순식간에 기름에 불이 붙고 냄비 안으로 옮겨와 불쇼를 하게 된다.
그래서 깊은 냄비가 필요하다.
절대 기름이 넘칠 일 없도록.
“쿠오코, 이 정도면 됩니까?”
한길은 주방보조가 들고 온 칠면조를 살핀 후, 마른 수건을 가져와 다시 한번 표면을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수분이 있으면 안 된다. 표면에 수분이 남아있으면 기름에 투하하는 순간 튀어 오르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버린다.
같은 이유로, 튀김옷도 사용하지 않았다. 튀김옷을 만들 때 물이 들어가니까. 그 수분도 위험하다.
“이건 그… 버터를 안 발라도 되나?”
“그럴 필요는 없을 거예요.”
“판체타는… 하긴, 붙어 있을 리 없지.”
지방을 보충하지 않지만, 조리 시간이 훨씬 단축되기 때문에 괜찮을 거다. 아마도.
칠면조는 넣고 꺼내기 쉽도록 거대한 갈고리에 걸어두었다. 혹시나 냄비에서 고기를 꺼내려다가 쏟아버리면 그것도 대형 화재로 이어진다.
한길은 칠면조가 걸려있는 갈고리를 조심스럽게 냄비에 투하했다.
챠그르르르르!
막상 넣고 나면 할 일은 없다.
앞으로는 기다림의 시간.
기름이 알아서 표면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킬 테고, 기름 안에서 조리하니 속살이 마를 일도 없다.
약 40분 후에 갈고리를 들어 올려 칠면조를 건져내자, 눈이 아프도록 짙은 원목 색의 고기가 딸려 나왔다.
꿀꺽.
오븐에 넣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진한 색.
그만큼 강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고소함도, 충족감도, 감칠맛도. 몇 배는 더 강렬할 거다.
내부의 육즙이 자리 잡도록 충분히 휴지를 시킨 후. 한길은 칼을 들고 와 날개, 가슴살, 다리 살을 일일이 해부하듯 분해해보았다.
“제대로 익었군!”
“이 정도라면 시간도 5분에서 10분 단축해 봐도 될 것 같네요. 서너 번만 시도하면 적합한 조리 시간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그럼 어디 맛을…”
스카피는 참지 못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달려들었다. 한길 역시도.
“이건…”
“크크크크.”
스카피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놈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는데?”
“그러게요. 오븐구이보다 훨씬 맛있네요.”
칠면조의 단점은 밍밍한 맛이다. 하지만 튀겨서 몇 배나 되는 감칠맛을 두른 칠면조는 짙은 육향을 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육즙이 터졌다. ‘건조하지 않을 정도의 육즙’이 아니라 촉촉함이 느껴지는 육즙이.
“고놈 얼굴 한번 보고 싶네. 하여간, 덤비긴 어딜 덤벼? 이쪽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늘에 대고 몇 번 주먹을 휘두르는 스카피는, 잠시 후 한길을 똑바로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래놓고 니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인간입니다.”
“계속 그렇게 우기면 피 색깔 확인한다니까?”
“저, 찌르면 죽습니다.”
“웃기시네.”
스카피는 웃고 있었지만, 웃을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 죽어요.”
#
연회 당일.
한길과 스카피는 둘로 찢어졌다.
스카피는 로마 저택에서 오븐이 필요한 파이나 페이스트리, 비스킷 등을 만들어 오기로 했다.
그동안 한길은 별장에서 콜라시오네와 크레덴자 메뉴를 감독했다.
설탕이나 시럽에 졸여서 만든 과일이나 견과류를 일일이 맛보며 확인하고, 각종 치즈와 살루미의 상태도 점검했다.
생선을 젤리 안에 넣는 별난 요리도, 훈제 연어 위에 포도 소스를 뿌리고 건포도를 뿌리는 요리도. 모두 상태는 완벽했다.
첫 번째 콜라시오네에 올라갈 요리를 점검하면서, 저녁에 올라갈 요리의 밑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양념에 재워둬야 하는 재료는 제대로 처리되었는지, 여섯 시간 동안 졸여야 하는 소스는 제때 시작했는지.
8개의 코스가 나간다고 하나의 코스가 끝나고 순차적으로 다음 코스를 준비하는 건 아니다. 개중에는 반나절 전에 준비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요리도 있으니까.
오늘 만들 요리는 무려 80개의 메뉴, 380접시다.
레스토랑에서도 하루에 몇백 접시를 감독하지만, 연회는 달랐다.
스무 개의 요리를 지휘하는 것과, 여든 개가 넘는 요리를 지휘하는 건 다르니까.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온몸의 신경을 집중해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도 들었다.
평소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요리가 평범한 댄스곡의 리듬이라면… 이건 ‘왕벌의 비행’이었다. 훨씬 더 잘게 쪼개진 멜로디를 제대로 연결해줘야 한다. 한 음절이라도 틀리면 불협화음이 생긴다.
“여, 잘하고 있나?”
“벌써 오셨어요? 예하와 손님들은?”
“이제 출발하실 거야. 아마 한 시간이면 도착하실걸?”
그러면 플레이팅의 시간.
주방에 있는 거대한 작업대 위에 접시를 올려두고 요리를 담는다. 접시마다 그려진 그림이 다르고, 그 그림 위에 올라갈 요리도 다르다.
요컨대, 테이블 중 하나에 비너스 장식이 되어 있으면, 그 테이블에 사용되는 접시는 큐피드 그림이 그려진 접시여야 한다. 큐피드 접시 위에는 사탕으로 만든 건포도가 올라가야 하고.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손님들이 마상 경기장에 들어가셨습니다!”
“콜라시오네 1 출발!”
첫 번째 콜라시오네는 총 75접시.
하지만 손님들이 앉은 구역의 테이블은 작아서 한 번에 올라가지 않는다.
우선 스무 접시를 보내고.
다시 접시가 돌아오면 다음 스무 접시를 내보낸다.
그 사이, 돌아온 접시는 빨리 설거지를 하고 말린다. 이곳에서 접시는 매우 비싼 물건이라 여유분이 많지 않았다. 빨리 씻고 재활용해야 한다.
“손님들이 연극을 보러 가셨습니다!”
두 번째 콜라시오네의 신호다.
이번에는 아까 한 일을 반복하면서, 식사 준비도 해야 한다. 별장의 다른 방에서 하인들이 식사하니까. 주방 일부는 하인들을 위한 파스타 40인분을 준비한다.
“손님들이 연주를 들으러 가셨습니다!”
세 번째 콜라시오네.
마찬가지로 접시의 그림도 확인하고, 메뉴가 제대로 올라갔는지 확인하고, 맛도 조리법도 확인한다.
이제 남은 건 저녁 만찬.
첫 번째 크레덴자 요리는 이미 정원에서 세팅 중이다. 두 번째 크레덴자 요리는 주방 테이블 위에 세팅해 두었다.
손님이 정원에 도착하면 첫 번째 쿠치나 메뉴가 조리에 들어가고… 그때 칠면조도 튀기기 시작하고….
“마크. 잠시 나와봐.”
갑작스러운 스카피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나가보니,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주방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거다.
“따라와.”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연주는 생각보다 오래 걸려. 아직 한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어.”
한길은 시키는 대로 스카피의 뒤를 따랐다.
스카피는 주방을 벗어나 별장의 어두운 숲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로등이 없는 시대이다 보니, 밤이 되면 시야가 새까매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숲 안으로 들어가니 달빛마저 가려져서 으스스했다.
“스카피… 어딜 가는 거죠?”
“일단 따라와 봐.”
스카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숲을 헤치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지점에서 멈춰 섰다.
멈춰선 곳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천사의 조각상이 있었다. 조각상 주위로는 덤불이 벽처럼 세워져 있었고. 근처에 횃불이라도 있는지, 깜깜한 숲과는 대조되게 밝다.
“조금 있으면 식사 시간이지.”
“네.”
“소식만 전해오면 쿠치나 요리만 준비하면 되고.”
“그렇죠.”
“그건 나 혼자도 할 수 있어.”
“그건… 무슨 뜻이죠?”
스카피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묻어 있었다. 한 손으로는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까 한길이 때렸던 곳이다.
“이쯤 되면 솔직하게 네 정체를 말하지?”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닙니다.”
“아니, 제대로 확인해봐야지.”
스카피는 잔뜩 굳은 얼굴로 한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길의 양어깨를 붙잡고 천사 동상을 향해 강하게 밀어붙였다. 등 뒤로 차가운 대리석이 느껴졌다.
“녹지는 않는군.”
순간…
한길의 머릿속에 스카피가 지금까지 해온 말들이 재생되었다.
악마라느니…
피를 확인해보겠다느니 하는 말…
설마…
그러고 보니.
칠면조를 준비하면서 조금 방심했다. 이곳에 없는 재료명과 발화점 같은 단어를 내뱉기도 했고.
스카피는 지옥 따위, 악마 따위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 걸까? 이 시대에 종교가 선택이 아닌, 삶 그 자체인데?
어느새 스카피는 한 손으로 한길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지금 네가 사라져도 아무도 몰라.”
“…”
“이래도 말할 생각이 없나?”
말을 할 수 없어 고개만 젓자, 스카피의 얼굴이 갑자기 풀어졌다.
“참나, 이것도 안 통하네.”
“네?”
입을 막던 손이 떨어졌다.
“스카피, 이건 무슨 짓이죠?”
“거기, 천사 옷자락 틈에 작은 구멍이 있지? 그 사이를 한번 봐봐.”
의아해하면서도 그 구멍에 눈을 갖다 대자, 불빛이 보였다.
횃불…
정원이다.
연회 장소.
정원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꽃을 엮어서 만든 꽃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곳이라면 들키지 않고 연회를 볼 수 있거든. 요리사인데 요리는 안 하고 연회 구경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 테니까 들키지 않게 보고 있어. 궁금하다고 머리 빼고 구경하면 저쪽에서는 다 보이니까. 지켜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거든.”
“…”
“네놈이 연회를 한번 제대로 봐야 앞으로도 쓸만할 것 같아서.”
“그냥 연회 구경 간다고 미리 알려줘도 되지 않았나요?”
“크큭, 그럼 재미없잖아?”
“설마, 내가 정말 퇴마라도 할 줄 알았나? 난 그런 재능은 없다고.”
스카피는 정신이 돌아오긴 제대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장난질이라니.
“저는 칠면조도 튀겨야 하는데요.”
“그건 내가 하면 되니까.”
“하지만 잘못하면 위험…”
“네놈이 하는 걸 설마 내가 못할까.”
이미 한길은 스카피에게 안전과 관련된 사항을 다 설명해 주었다. 스카피 정도라면 제대로 만들 수 있긴 할 거다.
“신경 쓰지 말고 여기서 구경이나 하라고. 아, 배고플 수도 있으니 이거나 주워 먹고.”
언제 챙겨왔는지, 스카피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그 안에는 설탕에 졸인 간식이 꽤 많이 들어있었다.
“그럼 난 간다! 들키면 진짜 죽인다.”
스카피가 떠난 후, 한길은 천사 동상에 몸을 밀착하며 정원을 살폈다.
잠시 후,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악기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덤불로 가려둔 캐노피 아래에서 연주하고 있었으니까.
횃불을 조명으로 한 정원은, 요정의 나라와도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에 맞춰 요정의 의상을 입은 남녀 두 쌍이 춤을 추며 어딘가로 향했다.
얼마 후, 손님들이 입장했다.
가벼운 몸짓으로, 하늘거리듯 춤을 추는 요정들이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이 예하의 작은 천국이군요!”
한길의 자리에서 보이는 손님은 단 한 명.
나이가 지극한 여인이다.
아마도 저 사람이 후작 부인.
그녀를 제외한 사람들의 모습은, 한길이 숨어있는 장소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인들이 손 씻을 물을 들고나오고.
빵빠라빵!
요란한 트럼펫의 소리가 울렸다.
붉은 옷으로 깔 맞춤한 하인들이 요리를 들고 나타났다.
연회의 시작이다.